시신을 도난당하다세 사람이 횃불을 들고 들어가니 신도는 구불구불 미궁처럼 이어져, 세 사람이 지도를 미리 봤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길을 잃을 뻔 했다.순장도는 지하궁전 중심부의 사방에 해당하며 아래로 깊은 구덩이를 파서 각종 부장품을 놓아두는데, 소, 양, 말의 해골과 금은 보석, 도자기와 접시, 병기, 진흙인형으로 만든 시녀와 태감을 순서에 따라 늘어 놓았는데 세 사람이 보기에 부장품은 거의 건드린 적이 없는 것 같다.다시 말해 이 사람은 확실히 도굴꾼이 아니다.안으로 더 들어가니 관이 놓여 있는 지하궁전이다.돌문도 망가져 있고 망가진 정도가 삼중문과 같아서 부서진 돌이 바닥에 어지럽고 안에서 빛이 흘러나오는데 세 사람은 횃불을 꺼서 밖에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이곳의 공기는 그렇게 답답하지 않은 것은 여기가 훼손된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이곳은 궁 안의 여느 전각처럼 네 원기둥에 비룡이 새겨져 있고, 기둥이 높고 길어서 마치 구름까지 닿을 듯한데 꼭대기에 구름 무늬와 용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각종 벽화와 4개의 야명주가 전체 지하궁전을 밝히고 있었다.휘종제의 관은 지하궁전의 높은 받침 위에 놓여 있는데, 받침 규격은 대전의 설계대로 백옥 난간에 백옥 계단으로 제왕의 존귀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관 전체는 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금빛이 도는 남목으로 만들어졌다. 세사람이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관이 밀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열 걸음 밖에서도 관이 벌어진 틈을 볼 수 있는 것이 관에 못이 빠져나와 있었다.“맙소사!” 구사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가슴이 벌렁거려서, “정말 휘종제님께 왔었군요.”세 사람의 얼굴이 굳어 졌다. 이자의 목적은 부장품 때문이 아니라 휘종제의 시체를 훼손하기 위해서? 이자는 휘종제에게 상당한 증오심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우문호는 마음속으로 보친왕을 떠올렸다. 보아하니 원 선생의 예상이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우문호가 앞으로 가서 보고싶어 하자 구사가 말리며
시신을 훔쳐간 범인“예!” 세 사람이 명을 받들었다.“목여!” 명원제는 목여태감을 부르더니 울분에 찬 눈빛으로, “여기 왕릉은 네가 뒤처리를 하고 오도록, 누구에게도 말이 새어 나가서는 안될 것이며 짐도 오늘 여기 왕릉에 온 적이 없다!”“알겠습니다!” 목여태감이 작게 말했다.명원제는 향은전 제사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휘종제의 신위가 놓여 있는 곳에 절을 한 뒤 신위 앞에서 맹세하길 반드시 황조부의 시신을 찾아 오겠다고 했다.우문호는 명원제를 경성으로 보내 드리고, 친왕들은 동릉으로 돌아갔으며 목여태감과 구사는 여기서 탐문하고 묘를 지키는 수비들을 처리했다.원경릉은 궁에서 태상황을 돌보는데 태후가 발인할 때 태상황은 통천각에 서서 발인하는 대열을 보더니 내려올 때 실수로 넘어져서 계단을 구르는 바람에 상처가 상당히 심하다.명원제는 여기서 계속 곁에 있을 생각이었으나 밤에 홀연히 누군가를 따라 나간 것이 급한 용무가 있어 보였으며 그 뒤로 명원제를 본 사람이 없다.원경릉은 마음이 착잡한 것이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지만 태상황 곁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신시(오후 3시~5시)가 끝날 무렵 명원제가 왔는데 냉정하고 엄숙한 얼굴로 접근 금지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원경릉은 분명 무슨 일이 터졌음을 확신했다.명원제가 원경릉에게 나가있으라고 했을 때, 물어볼 엄두도 못 내고 인사 드리고 물러나왔다.물러나와 외전에 서 있는데 원경릉은 귀가 예민해서 명원제가 태상황에게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휘종제의 시신이 도둑맞았다’는 말에 원경릉은 뜨악하고 말았다.귀를 쫑긋 세우고 계속 들어보니, “굉장히 큰 일이라 소자 아바마마를 속일 수 없었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마음 속으로 짚이는 사람이 없으십니까? 당시 누가 황조부를 이렇게 증오했을까요?”휘종제는 태상황의 아버지로 자기 아버지의 시신이 파내졌다는 말을 듣고 극도로 흥분해서 선혈을 토하다가 겨우 진정됐는데 천천히 명을 내리기를, “이 일을 안풍친왕께 알려라.”“아바마마……” 명원제가 놀라서, “큰
사건을 되짚어보는 부부“안풍친왕 전하? 아직 매화장에 계셔?”우문호가, “계실 게 틀림없어, 사람을 보내서 오시라고 말씀드렸으니 큰 아버지께서는 분명 오실 거야.”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휘종제는 안풍친왕의 아버지신데 아버지의 시신을 도둑맞았다니 아들 된 도리로 돌아와야 마땅하다.우문호는 원래 바로 나가려고 했으나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차라리 잠시 앉아 원경릉에게 얘기해주며 머리 속을 좀 정리하고 가기로 했다.“오늘 보고한 사람은 아마도 일부러 우리에게 알린 게 틀림없어. 이자가 증조 할아버지의 시신을 훔친 건, 도발이야.”원경릉이 생각해보더니, “한바탕 청산한 것일 수도 있고!”“청산이라?”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예리하게 눈을 반짝이며, “그래서 보친왕이 제일 혐의가 짙어. 단지 보친왕이 오래 잠복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수면 위로 떠오르다니 도대체 의도가 뭐지? 온 집안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만 일까?”“지금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 원경릉이 관계를 간단히 요약하듯, “유친왕은 휘종제의 동생으로 보친왕과 태상황 폐하는 사촌형제지 친 형제가 아니야, 보친왕이 살아 남은 뒤 온 집안의 원수는 방치해둔 채 전심을 다해 사촌 형에게 충성을 다하는 건 좀 사리에 안 맞는 것 같아.”“맞아, “ 원경릉이 우문호가 방금한 말을 듣고 생각난 듯, “상대방이 일부러 자기에게 알렸다고 했지, 휘종제의 시신을 누가 훔쳐 갔다고?”“그렇지, 황조모는 동릉의 신도에 묻히시니까 집례하는 사람은 휘종제 쪽에 가서 향을 피우고 보고만 올리면 돼. 향은전에서도 가능한 게 향은전에 위패가 놓여 있거든. 그런데 이자는 묘실 문이 훼손됐다고 나에게 알렸어. 묘실 문까지 내려갈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야.”“이렇게 큰 허점을 상대가 모를 이유가 없어. 그토록 정교하게 일을 짜맞추는 자가 이렇게 큰 허점을 드러낼 리가 있을까?” 원경릉은 의혹을 느꼈다.우문호는 딱딱한 얼굴로, “그래서 이게 도발이라는 거야. 선전포고라고. 일부러 이렇게 한 이상 음
할머니 실종 사건만아가 밖에서, “태자비 마마, 노마님 안에 계신 가요?”“안 계셔!” 원경릉이 문을 열어, 만아 손에 말린 감초가 한 광주리 들려 있는 것을 보고, “왜?”만아가, “아침에 노마님께서 쇤네를 부르셔서 감초를 뒤집어 말리라고 하시며 자감초(炙甘草)를 만드셔서 급히 학당에 가져가셔야 한다고. 쇤네에게 잘 말려 두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노마님이 안 보이세요.”“지금이면 학당에 계신 게 아닐까?” 원경릉이 말했다.“오늘은 학당 가실 필요 없어요, 초사흘이니 매달 4일은 휴일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원경릉도 정신이 없어서, “맞다, 오늘 쉬는 날이지. 다 찾아 봤니? 외출하신 건 아니고?”“쇤네가 문지기에게 물어봤는데 문지기 말이 오늘 노마님이 나가시는 걸 못 봤다고, 초왕부는 전부 찾아봤는데 안 계세요.” 만아가 말했다.원경릉이 뒤를 돌아 우문호를 보는 눈빛이 당황스럽다. 우문호가 낮은 목소리로, “일단 찾아보자, 어쩌면 약을 달이고 계실 수도 있으니까.”“그래, 만아야, 넌 탕태인에게 사람을 풀어서 초왕부를 샅샅이 찾으라고 해줘.”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릉은 어제까지 궁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원경릉과 우문호도 나가서 찾으며 희상궁과 기상궁에게 물어봤는데 두 사람 모두 오늘 노마님을 뵙지 못했다고 했다.희상궁이,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전에는 매일 아침 노마님께서 황손들을 보러 오셨는데 오늘은 오지 않으셨어요.”“할머니 방에서 시중 드는 사람한테는? 물어봤나?” 우문호가 물었다.희상궁이, “노마님은 곁에 시중드는 사람을 두지 않으셨어요. 필요 없으시다고. 신변의 일은 본인이 직접하시고 밤에도 누가 옆에서 밤을 같이 보낼 필요 없다고 하셨고요.”원경릉은 할머니가 원칙이 굉장히 강한 분이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의 시중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봉의각에 머물면서도 먹는 것을 가져와 차려주는 것을 제외하면 자기 생활에 필요한 일은 전부 자기 손으로 하셨다. 청소 빨래 등을 다 직접
소홍천이 가져온 이야기증언이후 우문호는 사람을 시켜 할머니를 보호하고 출입할 때도 사람을 미행 시켰으나 의대를 연 뒤로 평소처럼 안정을 되찾았다고 생각하고 할머니도 미행까지 하는 건 너무 ‘오버’라고 하셨다.원경릉은 사식이를 데리고 주숙유네 집에 가며 마음 속으로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건만, 주숙유집에 물어보니 할머니는 온 적이 없다고 했다.원경릉은 정말 황망해서 얼른 초왕부로 돌아와 우문호에게 알렸다.우문호는 소홍천과 같이 돌아왔는데 들어오자 마자 황망해서 새하얗게 질린 원경릉을 보고 달래며, “걱정하지 마, 만약 진짜 병여도 때문이면 당분간은 할머니를 해칠 리 없으니.”“보친왕 아냐? 확실히 그 사람일까?”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이자의 계획이 이토록 치밀하고 피맺힌 원한을 짊어졌으니, 정말 할머니가 보친왕의 수중에 있는 거면 정말이지 도저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원경릉은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우문호가, “소홍천 얘기 좀 들어보자. 내가 돌아왔을 때 소홍천도 막 날 찾아온 참이거든. 다바오가 보친왕을 문 뒤로 소홍천에게 엄밀히 보친왕부(寶親王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으라고 했어, 보친왕은 상당히 의심스러우니까.”원경릉이 소홍천을 보자 소홍천이 앞으로 나와 예를 취하며, “맞습니다. 보친왕부는 어젯밤 수상한 거동이 있었는데 보친왕부 가신 하나가 자시(밤11시~1시)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와 누군가와 화명루(花明樓)에서 만나더니 안에서 대략 반 시진 정도 의논을 한뒤 각자 헤어져서, 우리 쪽 사람이 둘로 갈라져 따라붙었는데 그자는 헤어진 뒤 유씨 집 큰 마당 옥상에 매복해 있다가 오경(五更, 새벽3시~5시)이 되길 기다려 똥통을 비우러 골목으로 들어오더니, 똥통을 비운다며 수레를 밀고 초왕부 후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막 일어나셨는데 그 놈이 할머니를 수레바닥에 묶고 소평촌(小坪村)쪽으로 갔습니다.”과연 똥 치는 자로 위장하면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고 초왕
진실에 다가서다마을에 남은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팔며 살고 있기 때문에 산세에 익숙했다. 우문호는 마을사람들에게 물어 산세를 파악하고 서일을 시켜 눈 늑대 두 마리를 데려와 할머니를 찾게 했다.큰 산이 아득하게 이어진 가운데 적의 족적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뿐 더러 소홍천 사람은 미행에 실패했다. 다행히 눈 늑대와 다바오는 따라갔는데 둘이 경단이 늑대와 찰떡이 늑대에게 단서삼아 가는 길에 찍찍 오줌을 싸서 남겨뒀을 것이다.저녁 해시(밤9시~11시)즈음 마침에 다바오와 만났다. 산등성이 평지에 엎드려 우문호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달려오면서 컹컹 짖는데 만두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다바오는 짖으며 산등성이 절벽을 긁어 대는데 우문호가 횃불을 들고 가서 칡넝쿨을 치우니 놀랍게도 동굴입구가 보였다. 서일에게 눈 늑대를 데리고 들어가 조사하게 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단서가 없는지 찾아보라고 부근을 조사 시켰다.서일이 들어간지 대략 반 시진(1시간)정도 지나 돌아와서 보고하길, “전하, 여기 끝은 깎아지는 듯한 낭떠러지로 밧줄을 늘어뜨린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아래쪽 골짜기로 옮겨진 게 분명합니다.”우문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래는 어디로 통해 있지?”“깊은 산중에 깎아지는 절벽으로 산 허리춤에서 이 높은 산들을 우회하는 형태라 산을 가로지르는 거나 마찬가지로 평현(蘋縣)에 도착하게 됩니다.”우문호가 차갑게, “평현에는 강이 있지, 강을 따라 아래로 100리가 못되는 곳이 서절(西浙)지역으로 보친왕의 봉지야. 그러니까 보친왕 사람이 우리를 데리고 놀며 한바퀴 돌렸지만, 목적은 보친왕의 봉지인 서절이었어.”서일이 엄숙한 목소리로, “그럼 우리가 서절로 쫓아가야 하지 않을까요?”우문호가, “구사가 경성에 없으니 네가 주재상을 찾아가, 입궁해서 아바마마께 삼천명의 금군을 동원해 같이 서절로 향하도록 말씀 드려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일부는 나눠 물길을 따라 따라가고 나머지는 육로로 가라. 난 보친왕부에 다녀온 뒤
보친왕과 맞대결보친왕부는 초왕부에서 거리상으로 별로 멀지 않은 데 길 3개만 지나면 된다.얼추 축시(새벽 1시~3시)무렵, 큰 길은 텅 비어 적막하다. 양쪽 살림집과 점포들이 고요히 웅크리고 있고 상점 입구의 포렴만 바람에 나부낀 채 늦가을의 스산함이 뼈 속 깊이 사무친다. 온통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초사흘의 상현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별이 하나 가득 밤하늘을 수놓으며 보석처럼 반짝였다.우문호는 손에 횃불을 들고 말을 달려 보친왕부로 갔다.저택에 도착하자 입구엔 파수를 하는 자가 아무도 없고 처마 밑에는 등이 2개 걸려 있어 그윽하고 옅은 빛을 내고 있다. 이 불빛을 제외하고 전부 캄캄한 어둠 뿐이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옥으로 가는 길인 양 공포심이 들게 했다.문지기는 대문 옆에 있지 않고 야경꾼이 말발굽 소리를 듣고 대나무발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누구십니까?”우문호가 말을 세우고 낮은 목소리로, “왕야께 태자가 일이 있어 만나러 왔다고 알려라.”야경꾼은 태자 전하라는 말을 듣고 얼른 발을 내리고 나갔는데 자세히 봐도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감히 태만할 수도 없어 문을 열고 예를 취하며 우문호에게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하고 알리러 갔다.우문호는 본관에 한동안 앉아 있자 그제서야 발소리가 들렸다.보친왕이 흰색 잠옷을 입고 겉에 바람막이를 걸치고 머리엔 관을 하지 않은 채 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들어왔다.우문호를 보고 마치 약간 놀랍다는 듯, “태자 전하께서 심야에 무슨 일이십니까?”우문호가, “왕야, 일단 하인들을 내보내시는 게 좋겠습니다.”보친왕이 손을 젓자 하인들이 물러나면서 본관 문도 닫았다.보친왕은 옷자락을 펼치고 앉아 눈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왕야라고 하시니, 서먹서먹하게 느껴집니다.”우문호가 눈을 치켜 뜨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휘종제 시신을 당신이 훔쳐 가셨습니까?”보친왕의 얼굴이 기이한 빛을 띠더니, “휘종제의 시신을 잃어버리셨습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왕야는 이
드러나는 보친왕의 계획온화하고 자애롭던 얼굴이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며, “그리고 내가 감당 못할 게 뭐 야? 재산 몰수와 일가 참수?”마지막 말에 눈빛이 돌연 차가워 지고, 그 차가움 속에 숨겨진 화염이 불붙는데 얼굴 근육이 순간 팽팽하게 경직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사나워졌다.보친왕 마음 속의 증오가 ‘재산몰수 일가참수’란 8글자로 폭발하고 만 것이리라.우문호가, “이 정도면 인정하신 거군요.”보친왕은 우문호를 한동안 노려보다니, “원래 한해쯤 이걸 가지고 놀 생각이었는데 초왕부 개가 날 문 뒤로 우리 집에 지켜보는 사람이 붙더군. 너희들이 날 의심한다는 걸 알고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어.”“어? 왕야의 원래 계획이 뭐 였죠? 지금 계획은 또 어떤 거고요?” 보친왕이 깔깔 웃으며, “맞춰봐!”우문호가 차갑게, “서절 지역은 산세가 험하고 가난해서 계륵과 같은 봉토인 건 맞습니다. 황숙이 봉토에 있고 싶지 않아 경성으로 돌아와 장사를 하시는 것도 이해가 되고요. 어쨌든 왕야가 서절에 없으니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 왕야가 서절에서 토호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서절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건 쉽지요. 경성에서 온화한 태도로 황실의 대소사를 직접 담당하니 사람의 이목을 가리기에 편하고, 황자들이 지들끼리 싸우느라 바빠서 왕야에게 주의를 기울이기나 하겠습니까? 대주와 군사동맹이 아니면 대주에서 병여도를 보낼 일도 없었고, 절대로 이렇게 빨리 왕야가 드러날 리도 없었겠지요. 병여도는 이미 당신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원래 계획을 추측해 보죠. 자신이 병장기를 만들어 모반을 기도해 스스로 황제가 되려 했다.”보친왕이 미소를 띠고 어디 한번 들어보자 하는 눈빛으로, “태자가 똑똑하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상당히 짧은 시간동안 조리 있고 깔끔하게 분석해 냈어, 하지만 절반만 맞았군.”“그래요? 어디가 잘못 됐죠?” 우문호가 긴장한 얼굴로 보친왕을 쳐다봤다.보친왕이, “정권을 들어 엎고 싶은 건 사실이야, 하지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