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그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다소 날카로웠다.유정은 고개를 숙였고 점점 불안해하다가 결국 작은 소리로 말했다."희상궁께서 오라고 하였사옵니다."원경릉은 이를 의아하다 생각해서 탕양과 눈을 마주쳤다.원경릉이 말했다."희상궁께서 나를 찾아오라고 하셨다고? 그럼 희상궁이 자네에게 약 공장과 의관을 팔아 나에게 반을 나누라 한 것이오?"유정은 한참 침묵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저... 저희 형제들은 단지 뒷걱정 없이 경성을 떠나고 싶을 뿐이옵니다. 반이 되는 돈으로 저희 형제들 반평생의 안정을 바꾸는 것은, 아주 가치가 있다 생각되옵니다.""그래?"원경릉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웠다.유정은 조급해졌다."사촌 형수, 저희 어머니가 형수를 해치려는 일을 저희 형제들은 모두 모르옵니다. 특히 요리점 사랑방에서의 일은 유숙이 저희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저희는 어머니가 형수를 해치려는 것도 몰랐을 것이옵니다. 저를 제발 믿어주십시오!""유숙?""유숙은 공주부의 가신이옵니다."원경릉이 말했다."자네는 먼저 돌아가 있게. 약 공장과 의관을 파는 것은 먼저 급해하지 말게나, 함부로 밖에서 값을 부르지도 말게. 이 일은 내가 자네 사촌 형과 상의를 할 것이니, 상의를 한 후 다시 자네를 이리로 오라 할 것이네."유정은 이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말했다."사촌 형수님 안심하십시오. 저는 반드시 말을 한대로 할 것이오니 절대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옵니다.""이 말은 잠시 접어두고 가시게나!"원경릉이 말했다.유정은 몸을 굽혀 물러났고 탕양은 직접 그를 배웅하며 몇 마디 물었다."그 유숙은 아직도 공주부에 계십니까?""유숙은 계십니다, 어머니의 뒷일을 돕고 계십니다.""그럼 그가 예전에 공주를 도와 약 공장의 일을 관리한 것입니까?""예, 그는 약 공장의 관리인 이옵니다!"유정이 말했다."예, 돌아가셔서 유숙에게 안심하라고 전하십시오. 그의 마음을 태자비께서 아셨사옵니다."탕양은 내색하지 않고
"당시 홍열이 경중에서 약재를 마구 구입했는데, 당시의 약재 시장은 거의 혜평의 장악 속에 있었다네. 그녀의 눈앞에서 거의 여러 가지 약을 깨끗이 사 갔는데 혜평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녀는 알고 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간섭을 하지 않았네. 아주 이상하지 않은가?"탕양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유숙은 약 공장의 관리이옵니다. 그가 만약 혜평 공주에게 상관하지 말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라 했다면, 혜평 공주가 그의 말을 들을지 모르옵니다. 이익이 있다면 모를까요!""그러니, 지금 혜평이 홍열의 이익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인가?"탕양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태자비께서도 이러한 추측이 있으신 것 아니옵니까?""만약 이 추측이 정확하다면 유숙은 더욱 의심스럽네. 그는 유정에게 나를 찾아와 의관과 약 공장을 팔아달라 부탁하라 했고 이제 반이 되는 돈을 나누어 주겠다 했네. 만약 이 일이 전해지면 다섯째와 나의 명성은 모두 나빠질 것이네."탕양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유숙은 홍열의 사람이 아닌 홍열을 협조하는 자일 수도 있사옵니다. 그러나 홍열이 행동할 때 나오지 않았지요. 물론,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니 다시 한번 조사를 해야 하긴 하옵니다."태상황께서 몸이 좀 불편하여 희상궁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궁에서 나와 댁으로 돌아왔다.태상황이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원경릉은 유정에 대해 물을 겨를도 없었다."어찌하여 아프시게 된 것이옵니까? 많이 심하십니까?"희상궁도 조금 피곤해 보였다."이틀 밤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하셨네. 한밤중에 일어나서 담뱃대를 찾으시고, 말려도 말릴 수 없었네. 밤이 깊어 날도 추운데 꼭 장랑 밑에 앉아 담뱃대를 피우시더니, 반 시진을 그렇게 피우셨네. 그러나 보니 고뿔에 걸리셨네.""어의를 모셨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청했네. 오늘 아침 일찍 청했다네. 소용공과 수보도 모두 따라서 병이 났네."희상궁은 난감한 듯 말했다."어찌하여 그들도 병이 난 것이옵니까?"원경릉이
원경릉이 다시 물었다."상궁께서 그와 이 말들을 할 때, 그 유숙이 옆에 있었습니까?"희상궁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있었네, 그 유숙은 줄곧 자리에 있었다네.""그 자는 무슨 자이옵니까? 공주께서 태어났을 때 궁에서 보내 가신이 옵니까?""아니라고 기억하네. 당시 보낸 가신은 몇 년 후에 병으로 죽었네. 이 유숙의 정체에 대해 나는 확실히 모르네. 공주가 시집간 후 숙태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셨으니 그녀도 궁에 들어와 태상황께 문안을 할 때가 적었네. 그래서 공주부에 일에 대해서는 나도 많이 알지 못하네. 오히려 그 몇 명의 아이들은 예전에 제왕과 함께 놀았고 자주 궁에 오니 많이 보았었네."희상궁은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보며 물었다."왜? 그 유숙이 의심스러운 곳이 있는 것인가?"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모르옵니다. 조사를 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으니 이 일은 먼저 궁에 말하지 마시고 태상황 앞에서는 혜평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적게 하십시오.""걱정 말게. 모두들 말하지 않을 것이네. 태상황께서도 떠올리려 하지 않네."희상궁이 말했다.오랜만에 돌아왔으니 희상궁은 바로 기 상궁을 만나러 갔다.두 어르신은 반나절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희상궁은 반드시 태자비의 음식을 주의해야 하고 아이에게 어떠한 문제도 없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다.희상궁은 떠날 때 아주 아쉬웠다. 초왕부에서 5~6년을 살았으니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마음에 담아 두었다.그러나 다행히도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떡들이 궁에 있으니 그녀는 떡들의 곁을 지킬 생각이였다. 물론 세 명의 진정한 아이 외에 또 세 명의 늙은 아이가 궁에 있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것도 잠시 뿐이었다. 마차에 올라 궁으로 돌아가니 그녀는 다시 마음을 돌렸다.희상궁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섯째가 돌아왔다. 탕양은 이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고 그는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당장 이 유숙을 조사해 보거라.""이미 사람을 보내 조사하게 했사옵니다. 다만 유정 쪽
유정은 구매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원경릉이 절반의 수익을 갖는 것을 동의했다고 생각해 매우 기뻐하며 그 돈을 반드시 초왕부에 줄 것이라 말하며 원경릉을 안심시켰다.원경릉도 싫다고 하지 않았다. 다섯째는 오늘 관아에 돌아가기 전, 유정이 돈을 분배하는 것을 먼저 거절하지 않고 유숙이 이 일을 퍼뜨리는지만 보면 그의 목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이렇게 여러 해 동안 공주부에 잠복해 있던 사람을 조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적어도 3~5일 안에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의 목적이 명확하다면 기본적으로 그가 적인지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원경릉이 말했다."이 구매자는 대주 정풍호의 주인장 호청운이라네. 만약 흥미가 있다면 내가 그를 청해 집으로 오게 할 것이네. 자네들이 알아서 얘기를 나누어 보게나. 가격은 상대에서 이미 주었네, 약 공장만 원한다고 하고 이백만 냥을 준다고 하네. 그리고 약은 약 공장의 약만 원하고 자네 어머니께서 생전에 다른 곳에 비축해 둔 약은 원하지 않다네. 이 가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유정은 크게 기뻐했다. 그는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미 물어보았었는데, 지금 약 공장을 팔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이 가격을 낮출 것이니 백오십만 냥에 팔면 아주 잘 팔린 것이라 했다. 이 정풍호의 주인장 역시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그럼 이야기를 나누러 사촌 형수님께서 호 주인장을 대신 청하는 것을 부탁드리옵니다."그가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원경릉은 댁의 시위를 불러 심부름을 시켰고 또 탕양에게 유정을 접대하라 했다. 그 목적은 유숙의 일을 물어보기 위한 것이니 그녀가 자리에 있으면 불편해진다.탕양은 특별히 사람을 명해 좋은 술을 준비하라고 했고, 또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서일도 불러 유정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식사를 했다.식사를 하는 동안 몇 번의 탐색을 했고 유정도 무방비라 한 마디를 물으면 열 마디를 답했다. 마지막에 다행히 유숙이 계셔서 그들에게 방법을 내주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이야기를 거의 다 나누다 보니 호청운도 왔다. 탕양은 사람을 명하여 원경릉을 오시라 청해 유정과 함께 호청운과 약 공장을 파는 일을 상의하게 했다.쌍방 모두 의향이 있고 호청운이 비교적 통쾌하게 가격을 제시했기에 유정은 아주 설렜다. 그러나 그는 바로 결정을 하지 않고 돌아가 동생들과 상의를 한 후 다음날 다시 대답을 주겠다 제기했다.호청운은 내일 와서 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며 이해를 표시했다.탕양은 직접 유정을 문어귀까지 바래다주었고 웃음을 머금고 다시 한마디 말했다."유 도련님, 오늘 식사 자리에서 한 말은 잊지 마십시오."유정이 말했다."탕대인은 안심하십시오. 제가 약속을 했으니 반드시 드릴 것이옵니다, 걱정 마십시오."탕양이 읍했다."그럼 다행이옵니다. 먼저 도련님께 감사를 표하옵니다!"유정은 마차에 올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탕양이 아직도 배웅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그를 들어가게 하려 했다. 그러나 손을 들어 올린 후 다시 신속하게 내려놓았다. 돈을 주려는 이상 당연히 그들 앞에서 신분을 잃어서는 안 된다.그가 집으로 돌아가자 유숙이 마중을 나와 물었다."큰 도련님, 어떻게 되었사옵니까?"유정이 말했다."유숙은 안심하시게. 상대는 이백만 냥이라는 아주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네. 그러나 그는 약공장만 원하고 의관과 비축해 둔 약들은 원하지 않았다네.""그럼 태자비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태자비에게 돈을 나누어 주겠다고 다시 얘기를 꺼내셨습니까? 정말 갖겠다고 하셨습니까?"유숙이 묻자 유정은 앉아 비웃었다."누가 돈을 싫다 하겠느냐? 태자비는 반드시 원할 것이네. 유숙, 초왕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욕심이 많았네. 그 턍양과 서일도 평소에 그저 도리를 따지는 듯해도 이 일에 도움을 조금 줬다고 나에게 돈을 달라고 했네. 그 탕양은 내가 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문어귀까지 와서는 또 말을 꺼냈다네.""그들은 태자를 따라다니며 봉급이 높지 않으니, 자연히 녹봉 외의 돈을 벌 기회가 있으면 잡으려 하겠지요.
이튿날, 호청운과 유정 삼 형제는 초왕부에서 만나 약 공장을 파는 일을 결정지었다. 관아에서도 통판이 와서 이 일을 인증하고 계약을 처리했고, 유숙도 마침내 나타났다.그러나 전체 왕부의 사람들은 모두 이 장사에 집중된 듯 아무도 유숙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계약서는 호청운이 만들었고 유정에게 건네어 보게 했다.유정은 볼 줄도 모르고 잘 알지도 못했고 그의 두 동생도 마찬가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유숙에게 맡겼다.유숙이 계약서를 보고 있으니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나이는 오십 세 전후로 피부가 거칠고 까무잡잡했다. 검은색 옷을 입었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둘러 감고 있는데, 이는 유 씨네 삼 형제와 마찬가지로 혜평을 위해 상복을 입은 것이다.유숙은 자세히 보고 나서 유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돼옵니다!"유정은 서명을 하고 지장을 눌렀다. 그의 두 동생도 모두 따라서 사인을 하고 지장을 눌렀고, 통판이 관아의 큰 도장을 찍게 하면 이로써 장사가 성립되었다.호청운은 상자를 가지고 왔는데, 안에 든 것은 모두 어음이었고 유정에게 가서 확인해 보라 했다. 어음을 세는 것에 유정은 능해서 한바탕 세세히 세어보았고 금액이 맞자 웃으며 말했다."호 주인장, 약 공장은 주인장의 것이옵니다. 장사가 번창하기를 바라옵니다!"호청운 크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의 말씀대로 되기만을 바라옵니다."그는 일어나 읍했다."모두들 감사하옵니다. 이틀 후 식사 자리를 마련할 테니 다들 체면을 세워 주십시오!""천만에요. 탕대인, 통판 나리와 호 주인장을 배웅하시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예!"탕양은 몸을 굽혔다."나리, 호 주인장, 제가 바래다 드리겠사옵니다!"통판은 호청운과 함께 공수를 하고 탕양을 따라 나갔다.유정은 상자를 열어 느낌에 따라 어음의 반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원경릉에게 말했다."사촌 형수, 이 돈들은 차를 드시라 드리는 것이니 주저말고 받으십시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나는 따로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 좀 하겠네. 탕대
유정은 어음을 받은 후 유숙의 분부에 따라 부중의 땅굴에 숨겼다. 의관과 사재기한 약들을 모두 판 후 경성을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유정 몇 형제는 지금 많은 돈을 얻으니 또 경성을 떠나고 싶지 않아졌고, 그날 저녁에 약속을 하고 삼화루에서 놀았다.유숙도 그들이 저녁에 나가고 난 뒤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그는 찻집 안의 별채 사랑방에 도착했다. 사랑방은 양 면이 막혀있었고, 측면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앞에는 난간이 하나 있었고 찻집 마당의 평서(評書) 선생을 마주하고 있다. 이곳은 귀인이 앉는 자리다. 이곳에 오려면 차 한 주전자에 한 냥을 써야 한다.그는 차를 한 주전자를 주문하고 평서를 들었고, 다 들은 후에 다 박사(茶博士)를 불러 평서 선생에게 열 냥의 상을 내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선생을 당장 나에게 모셔오거라!"다 박사는 열 냥의 돈을 보고 눈이 빠질 것 같았다. 이렇게 통쾌한 손님을 본 적 없었기에 바로 고맙다고 예를 올리고는 평서 선생을 찾으러 갔다.평서 선생은 손님이 단번에 열 냥의 상을 내린 것을 보고 다 박사를 따라 사랑방으로 향했다.가림막을 젖히고 들어가 평서 선생은 바삐 몸을 굽혀 감사함을 표했다.유숙은 담담하게 눈을 들어 말했다."앉으시게나!""저..."평서 선생은 손님이 귀인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손이 크다 보니 말에 따라 앉아서 조심스럽게 차를 시중들었다."손님께서는 차를 드시지요!"유숙은 다 박사를 보내고 소매 주머니에서 어음 한 장을 더듬어 꺼내 천천히 밀어냈다.평서 선생은 그 어음의 가치가 천 냥 인것을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손님, 이것은..?""나를 도와 일을 하게나. 일이 잘 되면, 두 배의 보수를 주겠다네!"유숙이 그를 보면서 말했다.평서 선생은 바로 가지지 않고 오히려 먼저 물었다."손님께서는 소인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것이옵니까?"유숙은 그를 보며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걱정 마시게, 너무 어렵지 않을 것이네, 그저 몇 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네.
밖에 앉은 손님들은 싸우는 소리를 듣고 모두 고개를 돌려 보았고, 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자 모두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오히려 칼을 들고 있는 두 사람이 들어와 사랑방을 향해 말했다."선생, 그를 뛰어나오게 하시게나!"유숙이 황급히 내다보자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 두 명이 검을 들고 밖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가림막을 젖히고 도망가려 했지만 가림막을 막 젖히자 장검 한 자루가 그의 목을 가리켰다.유숙이 눈을 똑바로 뜨고 보니 뜻밖에도 서일이었다.서일은 차갑게 말했다."내 검이 얼마나 빠른지 어디 한 번 시험해 보겠느냐?"유숙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초왕부의 서일 장군이셨습니까?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데리고 저를 막으려는 것이옵니까? 저를 정말 죽이시려는 것이옵니까? 태자께서 고의로 혜평 공주를 해치려는 죄를 아무도 모르게 하려는 것입니까?"서일이 침을 뱉고 말했다."혜평 공주를 고의로 해치다니? 달린 입이라도 감히 막말을 하는구나! 혜평 공주가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모습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냐? 유언비어로 태자를 모함하려 해도 누가 믿을 것이라 생각하느냐?"밖에 있던 귀영위도 달려 들어와 차갑게 말했다."그만하거라. 사람들이 모두 도망갔는데 떠들어서 무엇 하겠느냐?"유숙이 밖을 내다보니 찻집에는 정말 사람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매서운 눈빛으로 비수를 들어 서일을 붙잡으려 했지만 밧줄이 날아와 유숙의 두 손을 감았다. 밧줄의 한쪽은 귀영위의 손에 들려있었고 힘껏 잡아당기자 유숙은 넘어졌다."데리고 가거라!"서일이 말했다.귀영위는 유숙을 잡고 난간 밖으로 뛰어나가 당당하게 찻집 정문으로 나갔다.유숙은 또 무엇이라 중얼거리려 하자 다른 한 귀영위가 채찍으로 그의 입을 향해 후려쳤고, 그는 뺨에 피가 나도록 맞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서일은 평서 선생을 훑어보다 공수했다."누구시옵니까?"방금 서일은 이미 밖에 잠복해 있었고 줄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