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배연우를 밀어내려고 할 때 백연우는 정말 칼로 내 어깨를 긁었다.그 순간 갑자기 고통이 밀려오더니 어깨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나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내 팔을 바라봤다.“벤다는 거 진심이었어요?”백연우는 여전히 눈웃음을 살살 쳤다.“어머.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고의로 그런 거지.”“정말 미쳤네요!”나는 더 이상 백연우와 같은 공간에서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백연우는 내가 떠나가는데도 막지 않았다. 내 가게가 여기 있으니 본인은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백연우가 깔깔 웃으며 떠나자 민우와 현승은 다급히 내실로 달려와 나를 살폈다.“수호야. 너 팔 다쳤어. 아까 그 여자 짓이야?”현성은 놀란 듯 버럭 소리쳤다.“저 여자 미친 거 아니야? 정말 칼로 너를 벴다고? 대체 왜 이랬대?”나는 내 상처를 소독하면서 말했다.“됐어. 이미 떠났는데 뭐. 내 탓이야. 애초에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는데.”“어디 봐 봐.”“그냥 살짝 베인 것뿐이야. 상처가 깊지 않아서 괜찮아.”나는 팔에 난 상처를 신속히 치료했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백연우에 대해 제대로 요해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해 백연우에 관한 걸 물었다.“지은 씨 친구 대체 어떤 성격이에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오히려 되물었다.[아무 사이도 아니라더니. 그건 왜 묻는 건데?]“그냥 궁금해서요.”나는 양심에 찔려 대답을 피했다.그러자 윤지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도 할 얘기 없어. 끊을게.]역시 윤지은 아니랄까 봐 한번 아니라고 하면 얄짤 없었다.나는 그제야 다급히 나와 백연우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얘기했다.내 말을 들은 윤지은의 말투에 갑자기 화가 잔뜩 나 있었다.[아무 일 없었다더니. 이게 아무 일 없었던 거야?]“용천 호텔에서는 백연우 씨가 먼저 유혹한 거거든요. 나는 남자지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상대가 그렇게 유혹하는데 내가 어떻게 버텨요?
나는 백연우가 이렇게 까다로운 상대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미친 여자일 줄은 더더욱 몰랐고.하지만 윤지은 말처럼 이건 모두 내가 벌인 짓이기에 내가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도와줄 수 없다.다음에 백연우가 찾아오면 나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고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을 거다.‘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속으로 답을 찾으니 나는 더 이상 짜증 나지 않았다.백연우가 미친 여자이긴 해도 너무 심하게 공격한 건 아니라 나는 피부가 살짝 까지는 거로 끝날 수 있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승호가 미치도록 질투 났는데 지금은 오히려 질투가 아니라 놈이 불쌍했다.백연우 같은 여자와 결혼하게 생겼으니 남은 인생 안 봐도 뻔하다.연승호는 아마 백연우가 어떤 사람인지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나는 오히려 백연우와 연승호가 약혼하는 날이 기대됐다.‘백연우가 하루빨리 연승호 주변만 맴돌아야 할 텐데.’...한편 백연우는 천수당에서 나오자마자 연승호의 전화를 받았다.[자기야. 지금 어디야?]백연우는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솔직히 대답했다.“방금 천수당에 다녀왔어.”그 말 한마디에 연승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백연우는 그의 약혼녀인데 이렇게 공공연히 천수당에 드나드는 것도 모자라 숨기려고 하지도 않으니 연승호는 체면이 깎였다.사실 연승호는 백연우를 시험해 보려고 전화한 거였다. 그런데 시험하기도 전에 백연우가 순순히 인정해 버리니 연승호는 오히려 화를 내지도 못했다.연승호는 확실히 백연우에게 쩔쩔맸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백연우가 그만큼 매력 있고 섹시했으니 연승호는 백연우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도 해도 정도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연승호는 자기 여자가 공공연히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천수당은 왜 갔어?]연승호는 일부러 화가 난 듯 말하며 백연우에게 자기가 그녀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보여주었다.그러자 백연우는 오히려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알
오늘 매출액이 총 1760만 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날아갈 듯 기뻐했다.오늘 솔직히 개업식을 하던 날보다는 손님이 확 줄어들어 매출도 확 줄어들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2천만 원가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수호야. 나 요즘 일할 맛 나. 우리 진짜 잘하면 부자 되겠는데.”털털하게 웃으며 말하는 민우는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현성은 여전히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젠장. 난 우리가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어. 너희 둘과 사업한 거 내 인생에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어.”한바탕 기뻐한 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오늘도 이런 매출을 유지한 건 우리 가게 평판이 좋기 때문이야. 오늘 보니까 손님 대부분이 단골이 데려온 친구거나 친척들이었어. 계속 평판에 신경 쓰면 손님 걱정은 할 필요 없을 것 같아.”“민우야. 약재 구매는 네가 관리해. 무조건 엄격하게 통제해야 해.”민우는 진지하게 제 가슴을 팍팍 두드렸다.“걱정하지 마. 모든 약재는 내가 직접 확인하고 있어.”“현성아.”“어? 나한테도 시킬 일 있어?”현성은 일에 온 신경을 쏟아붓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요즘 여자 꼬시는 데 온 정신이 팔렸으니까.하지만 그래도 나는 귀띔해야 했다.“고객 관리는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돼.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면 고객 관리를 잘하는 게 관건이야.”“알아. 걱저앟지 마. 나도 민우처럼 열심히 할게.”현성은 비록 덤벙거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일 처리는 잘한다.우리는 간단한 회의를 한 뒤 식사하러 밖으로 나갔다.그러고 나서 민우는 임설아와 함께 떠났고 현성도 주선영을 찾으러 떠나 버렸다.나와 고수연은 같은 방향이었기에 출퇴근할 때 내가 항상 고수연을 데려다주곤 했다.일을 시작한 뒤로 고수연도 얼굴에 빛이 났고 눈이 이채를 띄었으며 말도 많아졌다.“수호 씨, 나 장부 정리 꽤 하죠? 나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월말에 내가 완벽한 도표를 만들어 보여줄게요.”고수연이 기뻐하는 걸 보니 나도 기뻤다.“그래
나도 고수연이 농담한 거라는 걸 알았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차를 세운 뒤 우리는 함께 형수 집으로 향했다.매일 형수를 찾아와서 돌봐주는 건 이미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처음에는 형수가 얼른 깨어나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점점 의식이 없는 형수를 보는 것도 익숙해졌다.형수가 깨어나든 말든 나는 형수를 평생 돌봐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뜻밖에 남주 누나가 찾아왔다.지난번에 병원에서 헤어지고 난 뒤 남주 누나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남주 누나와 남편이 어떻게 됐는지도 몰랐다.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남주 누나는 형수 손등을 닦아주고 있었다. 남주 누나를 본 순간 나는 멍해졌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나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왔어?”“남주 누나, 여긴 어쩐 일이에요?”남주 누나의 미소는 우리 사이의 어색함을 깨뜨렸다. 때문에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남주 누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말 이상한 게 하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말이라도 해야 해?”“그건 아니에요. 물 마실래요? 물 따라줄게요.”“필요 없어. 태연이 몸 다 닦아줬어. 나 바로 갈 거야.”남주 누나는 형수 몸을 닦아준 뒤 예쁜 옷 한 벌을 꺼내며 말했다.“고태연. 얼른 일어나. 나 네 옷 샀는데 당장 입어보고 싶지 않아?”“그리고 너 깨어나지 않으면 정수호 다른 여자한테 뺏긴다.”남주 누나는 이 말을 형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나는 똑똑히 들었다.그 순간 나는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남주 누나가 예쁜 옷을 형수 옆에 내려놓고는 허리를 살살 흔들며 나한테 걸어왔다.“나 배웅해 줘. 괜찮지?”“네. 아래까지 배웅해 줄게요.”남주 누나가 고수연과 작별한 뒤 나는 남주 누나를 아래층까지 배웅했다.차에 올라타자마자 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았다.“남주 누나...”나는 다급히 누나를 밀어냈다.“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묻지
하지만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었다.남주 누나를 떠나보낸 뒤 형수네 집에 돌아가려고 뒤돌았을 때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혜란을 본 순간 나는 온몸이 불편해졌다.하필 이 타이밍에 고혜란한테 그런 모습을 들켰다면 모든 게 끝날 거다.나는 불안한 마음에 얼른 설명했다.“어머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고혜란의 미소에는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지? 하필 그런 장면을 봐버렸네? 그래. 어디 말해 봐. 들어나 보자고.”고혜란의 말투에는 비아냥이 가득 담겨있었다.나는 해명하려고 했지만 고혜란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어머님, 저 애교 누나한테 진심이에요.”나는 해명하는 대신 내 마음을 표현했다.고혜란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진심이 몇 푼이나 할까? 자네 진심 따위 누가 쓰게 본대?”고혜란의 말은 이태웅보다 직설적이고 마음을 찔렀다.그나마 내 멘탈이 강해서 다행이었다.“어머님 기분 안 좋은 거 알아요. 욕할 테면 마음껏 욕하세요. 전 괜찮아요.”“자네 주제에 안 괜찮을 건 또 뭔가? 내 딸과 결혼하고 싶다면서 내 동의도 없이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고혜란은 또 나를 공격했다.하지만 나는 화를 내기는커녕 피식 웃었다.그러자 고혜란은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웃긴 뭘 웃나?”“어머님이 너무 귀여우셔서요.”고혜란은 잠깐 멍해 있더니 한참 뒤 반응했다.“입만 번지르르해서. 말발로 우리 딸 꼬셨구먼? 애교는 쉽게 넘어가도 난 쉽지 않을 거야.”고혜란은 모 대학교 교수라 나를 철없는 애송이로 보고 있었다. 그러니 애송이 따위가 하는 아첨을 당연히 마음에 둘 리 없었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거짓말 아니에요. 어머님. 따님이 성인인데도 어머님이 여전히 이렇게 활력 있으신 걸 보니 건강하다는 뜻이에요. 게다가 사고도 민첩해서 욕도 매일 바꿔가면서 하더라고요. 그건 머리가 잘 돌아가고 논리가 정연하다는 뜻이죠.”“게다가
“어머님,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세요.”“흥. 말로 이기지 못하겠으니 쫓아버리는 건가? 정수호, 자네 똑바로 들어. 내 앞에서 똑똑한 척하지 마. 속셈도 다 집어치우고. 진작 나한테 다 들켰으니까.”고혜란은 나에게 다가와 차갑게 경고했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어머님도 너무 똑똑한 척하지 마세요.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게 제 진짜 마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내 말에 고혜란의 얼굴을 이내 싸늘해졌다.“뭐라고? 지금 나한테 똑똑한 척하지 말라고 했어?”“어머님, 저는 어머님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저를 모두 다 꿰뚫어 봤다고 자신하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제가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흥. 차라리 자네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안 그러면 우리 딸 지능을 의심해야 하니까. 왕정민에게 속은 것도 모자라 자네한테까지 속아 똑같은 곳에서 두 번이나 넘어진다니. 나 고혜란은 그렇게 멍청한 딸 둔 적 없으니까.”고혜란은 매사에 자신이 넘쳤다. 심지어 자기가 총명하니 자기 딸도 총명하다고 자신했다. 게다가 자기의 사상을 애교 누나에게 강요했다. ‘어쩐지 애교 누나가 겁 많고 나약하다 했네.’“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그러니 인제 그만 가보시지 그래요?”고혜란은 내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려고 꿰뚫을 것처럼 노려봤다.사실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단지 고혜란과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고혜란이 가지 않는다면 내가 갈 수밖에.나는 먼저 고혜란을 지나쳐 떠났다.내가 떠나는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고혜란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그도 그럴 게, 자기 딸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자기한테 잘 보이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무시하고 대꾸하고 그것도 아니면 사탕발림으로 살살 꼬드겼으니 말이다.고혜란은 속으로 점점 자기 딸을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하게 두면 안 되겠다고 확신했다.집에 도착하기 바쁘게 고혜란은 애교 누나를 불러 꾸짖었다.“내가
고혜란은 화가 나서 애교 누나를 삿대질하며 욕했다.“너 정말 미쳤구나? 머리가 정말 어떻게 된 거였네. 어떻게 그런 망발을 할 수 있어? 너 정말 뻔뻔하구나?”애교 누나는 눈시울을 붉혔다.“제가 왜 뻔뻔한데요? 제가 엄마한테 잘못한 거라고 있어요? 아니면 엄마를 창피하게 했어요?”“이게 창피하지 않아? 이혼하고 새파랗게 어린놈을 만났는데, 그놈은 밖에서 이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그게 네가 요구한 거라니. 너 엄마 체면을 아주 바닥으로 처박는구나!”애교 누나는 가슴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아파 눈물을 뚝뚝 흘렸다.“엄마, 다른 사람은 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엄마가 어떻게 저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어요?”“제가 왜 왕정민한테 까맣게 속았는데요? 엄마한테는 책임 없다고 하실 거예요?”고혜란은 버럭 화를 냈다.“네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왕정민 같은 놈 만난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애교 누나는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았다.“어릴 때부터 엄마는 저한테 늘 엄격하게 요구하셨잖아요. 학생 때는 연애하면 안 된다 스킨십도 절대 안 된다 하면서요. 심지어 저 대학 다닐 때까지 남자애들을 피해 다녔어요.”“그래서 내가 만난 놈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도 모르고, 어떤 남자한테 평생을 맡겨야 할지도 모르고 왕정민이 나한테 조금 잘해줬다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엄마, 제가 남자한테 속는다고 연애도 못 하게 막고 저를 잘 보호했다고 생각하시죠? 엄마가 저를 온실 속 화초로 길러 비바람 한 번 맞아보지 못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겠어요?”고혜란도 마음이 아팠다.“너 지금 엄마가 너를 너무 지나치게 보호했다고 탓하는 거니?”“그런 뜻 아니에요. 그냥 저 이제 서른 넘었으니 저 혼자 싸워보게 내버려두라는 뜻이에요.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책임질게요.”“이런 게 차라리 예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사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수호 씨와 태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 왕정민한테 완전히 놀아
고혜란은 순간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녀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어졌다.이게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 기른 딸이라고?은혜를 모르는 건 둘째 치고 그녀 딸로 태어난 게 후회된다니?자식 키우는 엄마한테 이보다 더 마음 아픈 말은 없을 거다.고혜란은 눈물도 나오지 안았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애교 누나도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다급히 사과했다.“엄마. 그런 뜻이 아니라...”고혜란은 뻣뻣하게 딸을 밀치고 아무 말도 없이 짐을 챙겼다.애교 누나는 자기가 어머니를 화나게 했다는 걸 알고 해명하려고 했다.하지만 고혜란은 마치 목석처럼 멍하니 짐을 챙겨 말없이 떠날 준비를 했다.“엄마, 미안해요. 가지 마세요.”고혜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곳을 떠났다.애교 누나는 무력감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사실 누나는 어머니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무심코 한 말이 어머니의 마음에 대못을 받았다. 그 순간 누나는 죽고 싶었다....나는 형수의 상태를 살핀 뒤 형수 집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형수 집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애교 누나를 보고 말았다.나는 다급히 애교 누나 집으로 들어갔다.“누나, 왜 그래요?”애교 누나의 얼굴은 이미 눈물 범벅이었다.“엄마가 내 말 때문에 화나서 가버렸어요. 난 진짜 불효녀에 나쁜X이고 사람도 아니에요...”“대체 무슨 일인데요? 어머님은 왜 가셨어요?”애교 누나는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엄마가 분명 상처받았을 거예요. 방금 나를 욕하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았어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렸어요. 그런 모습 처음 봐요. 수호 씨, 나 집에 데려다줘요. 나 엄마한테 사과해야 해요.”애교 누나는 일부러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한 게 아니다. 누나도 어머니가 자기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다.나는 조심스럽게 누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지금 돌아가도 어머님 화가 안 풀리실 거예요. 차라리 내일 가요. 어머님께도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