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나연은 오늘 매우 협조적이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옷을 벗고 얌전히 누웠다. 하지만 어제 자기 몸을 보게도 하지 않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얌전해지니 오히려 이상했다. 너무 이상하다 못해 나는 내 눈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이렇게 얌전한 게 이상했다.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했다. 다행히 치료가 끝날 때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다.나는 서나연의 집에서 나오면서 너무 의아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이렇게 순순히 보내준다고? 왜 생각할수록 수상하지?”나는 유미 사모님 집에 도착해 서나연의 상황을 사모님께 말했다.그러자 사모님은 웃으며 말했다.“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한 거 아니에요? 서나연 씨 가족이 서나연 씨를 설득했을 수도 있잖아요. 서나연 씨가 순순히 협조하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죠.”나는 그 말에 싱긋 웃었다.“하긴, 맞아요. 참, 사모님, 그 그릇 아직 사지 못했는데 제가 사면 바로 가져다줄게요.”“그럴 필요 없어요. 고작 그릇 하나인데요. 내가 새로 하나 사면돼요.”사모님은 그릇 하나 때문에 내가 고생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안 돼요. 제가 윤 사장님께 물어봤는데 그 그릇은 사모님이 어릴 때부터 사용한 골동품이라면서요? 그런 걸 어떻게 배상하지 않아요?”“그릇은 신경 쓰지 마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사모님이 계속 고집부리자 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요.”“참, 발목은 어때요?”나는 사모님이 전에 발을 상했던 게 떠올라 걱정스레 물었다.그랬더니 사모님이 대답했다.“이제 많이 나았어요. 부기도 빠지고.”“제가 약 더 발라줄게요...”나는 사모님에게 약을 발라준 뒤, 사모님이 만든 삼계탕을 들고 정 사장님께 가져다줬다.하지만 사장님은 너무 바빠 삼계탕을 먹을 시간도 없어 보였다. 보아하니 무슨 큰일이 터진 듯했다.사장님은 한참 뒤 나에게 다가왔다.“수호 시, 잠깐 이리 와 봐. 할 얘기 있어.”나는 사장님을 따라 사문실로 들어갔다.사장님은
정 사장님이 얼마나 마음 졸이고 있는지는 그의 눈빛과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나도 이런 사장님을 존경하기에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안전에 주의해요.”천수당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이 사실을 민우에게 말하고 요즘 약재를 구입할 때, 적게 구입하더라도 절대 품질이 안 좋은 약재를 구입하지 말라고 주의하라고 일러두었다.민우와 현성 또한 이번 사태에 무척 신경 쓰는 눈치였다.“정수호가 누구야?”우리가 한창 얘기 중일 때, 가게로 들어온 젊은 남자 한 명이 내 이름을 불렀다.“내가 정수호인데, 당신은 누구죠?”젊은 남자가 말했다.“우리 호미 형님이 진찰 좀 봐달래.”그 말에 현성이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건달과 조폭들 중에 망치나 도끼 같은 섬뜩한 이름을 쓰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호미라니. 뭐 농민도 아니고. “알았어요. 내가 나가볼 테니까 너희는 할 일 봐.”나는 구급상자를 챙겨 들고 젊은 남자와 가게를 나섰다.하지만 벤 한 대에 가까워질 때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이런 행색을 하고 벤을 타고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게를 털러 오는 나쁜 놈들이다.나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그쪽 호미 형님이라는 사람은 어디 있죠?”“가면 알 거야.”젊은 남자는 예의 없이 계속 반말을 해댔다. 심지어 내가 도망갈까 봐 무서운 것처럼 계속 경계하는 모습이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도망간다고? 내가 왜?’나는 오히려 어떤 놈이 나를 찾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벤은 도시를 지나 점점 으슥한 교외로 향하더니 한 폐공장에 멈춰 섰다.차가 도착하자 점은 남자는 나를 차 밖으로 밀었다.차에서 내리자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임화영이었다.나는 이 모든 게 임화영 짓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임화영은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정수호, 또 만날 줄은 몰랐지?”“확실히 뜻밖이긴 하네. 설마 나랑 한번 자보겠다고 이렇게 온갖 수단 다 쓰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매력 있나
“호미 오빠. 어떻게 이럴 수 있어?”호미는 임화영의 뺨을 힘껏 후려갈겨,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렸다.“닥쳐.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수호 형님 미움을 살 리 없었잖아!”‘수호 형님?’누군가 나를 이렇게 불러본 건 처음이었다.그 순간 나는 문득 호미처럼 똘마니들을 받아 나 대신 일하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너, 이리 와 봐.”나는 호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호미는 바로 쪼르르 달려왔다.“쪼그려 앉아.”내 말에 호미는 순순히 쪼그려 앉았다. “네 본명은 뭐야?”“안대성입니다.”“이름 소박하고 좋네. 호미보다 훨씬 듣기 좋아. 보아하니 건달 일 오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예전에 뭐 했어?”안대성은 사실 예전에 큰형님을 따라다녔었는데, 큰 형님이 감방에 들어간 뒤로 자꾸만 다른 무리에게 배척당해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따로 단체를 설립했다고 했다.게다가 본인도 망치, 호미 같은 이름을 쓰고 싶었지만 그런 이름은 서열이 높은 형님들이 다 쓰고 있어 비슷하게 호미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럼 저 여자랑 무슨 사이인데?”“특별한 사이는 아니고, 예전에 잠깐 사귀었는데 제가 가난하다고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요. 나중에 제가 이 바닥에 있다는 걸 알고 내 양동생이 되었어요.”‘젠장, 이건 뭐 할리우드도 아니고 복잡하네.’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안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나 따라다닐래?”“네. 당연히 좋죠.”안대성은 무척 흥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바로 안대성의 머리를 때렸다.“참 쉽게 말하네? 진심 아니지?”“진심이에요. 정말 진심이에요. 형님, 주먹도 센 것 같은데 제 형님 할 자격 충분해요. 그리고 우리 애들이 힘이 없어요. 하지만 형님이 있다면 목표도 생기니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죠.”나는 안대성을 반신반의했다.하지만 현재로서 안대성과 그의 똘마니를 내 부하로 받아주는 건 나한테 이득밖에 없다.“네 사람 다 소집해. 앞으로 다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안대성은 신속히 자기
“매일 감시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주해진과 김진호가 뭔가를 꾸미면 나한테 얘기해. 그리고 별일 없으면 이 한의관에서 어슬렁거리지 마. 장사하는 데 방해되니까.”“이 두 가지 요구가 다야? 간단한데?”“내가 말한 대로 하면 주해진한테서든 나한테서든 돈을 얻을 수 있고 남편과의 결혼 생활도 유지할 수 있어.”“하지만 거절하면 결혼 생활은 완전히 무너질 거고, 주해진은 결국 당신을 떠날 거야. 그때 손해 보는 쪽은 당신이라는 거, 잘 알지?”임화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대성이 입을 열었다.“뭘 고민해?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얼른 형님한테 고맙다고 하지 않고 뭐 해?”“급할 거 뭐 있어? 잠깐 고민 좀 하고...”“고민은 무슨! 우리 형님이 널 얼마나 봐줬는데...”임화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내 요구에 동의했다.“그리고 너희들은 한 가지 임무를 줄게. G시에서 온 약재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요즘 어떤 사람과 연락하는지 잘 감시해.”안대성은 그 말에 헤실 웃으며 대답했다.“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나와 연락처를 주고받은 안대성은 직접 운전해 나를 바래다주었다. 심지어 한의관 문 앞에 도착한 뒤에도 형님, 형님 하면서 공손하게 굴었다.그걸 본 민우는 의아해했다.“이 사람들은 누구야? 왜 너를 형님이라고 하는데?”나는 으쓱해서 말했다.“방금 내 동생들로 받아줬어. 앞으로 우리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들은 이 애들 시키면 돼.”“맞아. 진작 이럴 사람 찾아야 했어. 아니면 뭐든 우리가 직접 하면 너무 힘들고 번거로워. 심지어 남한테 약점 잡힐 수도 있고.”현성도 매우 공감했다.그때 문득 정 사장님 일이 떠올라 내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괜한 걱정이기를 바라며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법치 사회인데, 설마 누군가 불법적인 일을 마음대로 저지르겠냐는 생각을 하면서.그날 오후 퇴근 후, 윤지은을 보러 병원에 간 나는 그제야 윤지은이 퇴원했다는 걸 알았다.‘이 여자가,
Y시 경찰 말로는 사장님이 탄 차가 통제를 잃고 협곡으로 돌진하여 완전히 파손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차에 타고 있던 사람 모두 사망했다.그 소식을 들은 순간 나는 내 귀를 믿을 수 없었고, 사모님은 아예 눈앞이 깜깜해 까무러치기까지 했다.나는 사모님을 데리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잠시 뒤 사모님 상태를 검사한 윤지은이 말했다.“별일 없어. 극심한 충격으로 쓰러진 거야. 호섭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거 진짜야?”“내가 그런 일로 농담하겠어요? Y시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 제가 마침 사모님 옆에 있어 똑똑히 들었어요. 시체가 이미 영안실에 누워있다고 했어요.”나는 정 사장님이 떠난 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렇게 까다로운 간암도 치료했는데, 어떻게...‘하!’나는 사모님이 깨어난 뒤 이 모든 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윤지은 역시 친구가 겪을 슬픔을 알기에 무척 걱정했다.30분 뒤, 사모님은 깨어났다.“나. 나 Y시에 갈래. 나 호섭 씨 찾으러 갈래.”사모님은 얼굴은 온통 눈물법벅이 되었다.그 모습을 보는 나와 윤지은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사모님 지금 이런 상태인데 어떻게 가요?”윤지은도 딱 잘라 말했다.“갈 수 있어.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안 돼. 너 아직 많이 불안한 상태라 가면 충격만 받아.”“호섭 씨 내 남편이야. 남편이 사고를 당했는데 가보는 것도 안 돼?”목청 찢어져라 우는 사모님을 보는 내 마음은 괴롭기만 했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가야지. 당연히 가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는 거야. 우선 네 컨디션부터 조절해.”“어떻게 조절해? 난 너처럼 멘탈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 이런 일 당하고도 냉정하게 처리하지 못해. 난 못한다고! 호섭 씨는 내 남편이야. 간암을 겨우 이겨냈는데, 교통사고라니?”“그렇게 착한 사람인데, 뭐든 남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인데, 애 이렇게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해? 착한 사람은 복 받는다며? 호섭 씨 복은 어디 있는데? 어? 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요. 조사하기 어려워서 아마 단순 사고사로 결론 날 것 같아요.”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 강한나가 그 뒤로 무슨 말을 했는지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정 사장님이 이번에 Y시로 갔던 게 누군가의 이익을 건드린 걸까? 그래서 그 사람들이 사장님을 해친 걸까?’누군가의 이익을 건드린 거라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서윤기다.나는 곧장 안대성에게 전화해 최근 서윤기의 행적을 물었다.그러자 안대성이 대답했다.“형님, G시 약재상은 요즘 계속 호텔에만 있고 밖에 별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잠시 돌아다니는 것 외에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내가 설마 잘못 짚었나? 서윤기가 아닌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찜찜했다.나는 형사가 아닌지라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탐정 사무소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기에 형사 수사 능력은 조금 탑재했다.내 육감이 말해주건대, 정 사장님의 사고는 서윤기와 떼어놓을 수 없다.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사모님께 얘기하지 않았다.사모님은 영안실에서 나오자마자 또 쓰러졌다.이번 상황은 전보다 많이 심각했고 심박수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좀처럼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보며 나와 윤지은은 걱정이 앞섰다.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침을 놓아 사모님 상태를 완화해 주는 것뿐이었다. 잠시 뒤, 사모님은 스르르 눈을 뜨더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방금 호섭 씨를 만났는데 이번 일 단순 사고가 아니래. 누군가 차에 손을 댔대. 호섭 씨는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살해당한 거야.”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식은땀이 났다. ‘설마 진짜인가? 사모님이 정말 사장님 말을 들은 걸까?’무엇보다 이건 내가 전에 생각했던 거랑 너무 일치했다.“유미야, 그러지 마...”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달래려 했지만, 유미 사모님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윤지은 손을 꼭 잡았다.“진짜야. 호섭 씨가 나한테 그랬어. 지은아, 날 믿어줘...”사모님은 많이 격앙되어
나는 윤지은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무척 감격스러웠다.나 혼자 다른 도시에서 도움 없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윤지은이 같이 조사하겠다고 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나는 느릿한 말투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위해 진실을 밝혀요.”그동안 나와 윤지은은 서로 고양이와 개처럼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함께 정 사장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뒤, 강한나를 만나러 갔다. 강한나라면 전문가의 관점에서 우리를 도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최선을 다해 볼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방금 사건 기록을 봤는데 현장 사진과 다양한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단순 사고사일 수 있어.”“내가 의심했던 브레이크 흔적 거리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사고사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결론적으로 조사하기 매우 어려워.”한참 듣고 있던 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현장 증거로 조사할 수 없으면 다른 쪽으로 출발해야겠네.”한창 낙담하고 있던 나는 윤지은의 말에 다급히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는 거예요?”윤지은은 팔짱을 끼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내가 알기로 운전한 기사는 호섭 씨랑 오랜 친구였고 운전 실력도 엄청 뛰어나. 이 점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함께 차에 탔던 피해자 가족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나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 사고 유가족들부터 조사해 봐요.”강한나는 우리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이 사건이 만약 인위적인 거면 두 사람도 위험해. Y시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달라. 여긴 무법지대인 D국과 엄청 가까워.”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게 뭐? 의심 가는 구석이 있는데 그냥 덮자고? 그러고도 내가 무슨 친구야? 유미 지금 충격이 너무 커. 호섭 씨는 유미한테 가장 중요한 사
“들여보내 줘요. 나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어 줘야 해요...”장례식장 입구에서 유미 사모님은 몇몇 직원들에게 가로막혀 애타게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와 윤지은은 급히 달려갔다.“사모님, 여긴 왜 왔어요?”장례식장도 규칙이 있는데 가족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나가기 전 분명 사모님더러 호텔에서 휴식하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한참 애를 먹던 두 직원이 얼른 말했다.“얼른 이분 좀 말려 봐요. 이곳 냉기를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하세요. 그런데 자꾸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안 됩니다.”“그리고, 절차는 다 밟았나요? 다 밟았다면 얼른 화장할 수 있게 사인하세요. 시체 안에 계속 두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나는 손을 저으며 두 직원의 말을 잘랐다.“네, 알겠어요. 먼저 가서 일들 보세요.”나와 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모님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너무 지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은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유미야, 이러지 마...”윤지은은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사모님 역시 슬피 울부짖었다.“왜? 좋은 사람은 복이 온다며? 그런데 왜...”“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호섭 씨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왜...”처절한 외침에 듣는 나도 너무 괴롭고 삼장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이 순간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그 어떤 위로도 사모님의 비통한 심정을 달랠 순 없으니까.나는 그저 사모님이 진정할 수 있게 침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나는 조금 안정이 된 사모님을 안아 차에 앉혔다. 창백하고 초췌한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때 윤지은이 이를 악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이번 사건 우리가 꼭 밝혀낼게.”그 순간 나도 윤지은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걸 당장 토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