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몇 분을 기다려 봐도 소여정은 돌아오지 않았다.기다리다 지친 사모님은 귀찮은 듯 나를 향해 말했다.“여정이 아직이에요?”“아직 안 왔어요.”“그럼 수호 씨가 들어와서 올려줘요.”“네?”나는 사모님이 이런 요구를 제기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남자인 내가 들어가서 지퍼를 올려주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았다.게다가 상대는 사장 사모님이라 나는 더욱더 그럴 수 없었다.“사모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소여정 씨 찾아올게요.”나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소여정을 찾으러 가려고 했다.사모님이 얼마나 귀한 분인데, 어떻게 그런 분한테 손을 댄단 말인가?하지만 화장실 입구에 도착했더니 화장실마저 VIP 전용이 따로 있었다. 소여정은 당연히 VIP 전용 화장실을 사용했고.VIP 전용 화장실은 쇼핑몰 VIP가 아니면 들어갈 수도 없다.‘대체 안에서 뭐 하는 거야? 변기에 빠졌나? 벌써 10분이 넘었는데 왜 안 나오는 거야?’나는 결국 안을 향해 소리쳤다.“소여정 씨, 안에 있어요?”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밖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VIP 전용 화장실은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방음 장치를 설치했다고 했다.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밖에서 소리쳐 봤자 안에서 들을 수 없었다.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2분 정도 더 기다렸다. 하지만 소여정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사모님이 기다릴까 봐 나는 다시 돌아갔다.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기다리게 놔두는 것도 방법은 아닌지라 나는 결국 얼굴에 철판을 깔고 피팅룸에 다가갔다.“사모님, 여정 시가 어디 갔는지 못 찾았어요.”“그럼 됐어요. 수호 씨가 나 좀 도와줘요.”“그럼 들어갈게요. 절대 보지 않을게요.”사모님은 내 말이 웃겼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들어와요.”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안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나는 눈을 완전히 뜨지 못하고 가늘게 실눈을 떴다.사모님은
나는 절대 사장 사모님을 탐낼 배짱이 없다. 하지만 사모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자꾸만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나는 그렇다고 나쁜 생각은 하지 않았다.이건 사모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지퍼를 올린 뒤, 나는 사모님께 말했다.“사모님, 다 됐어요.”“네, 알았어요. 나가 봐요.”피팅룸을 나왔는데도 코끝에서 아직도 사모님의 향기가 느껴졌고, 머릿속에는 사모님의 볼록한 엉덩이가 떠올랐다.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재벌 집 규수라고 할 수 있었다.심지어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여자가 어떤지 알았다.‘지위가 다를수록 사람은 이렇게 다르구나.’어떤 여자들은 신체적인 욕망만 줄 수 있지만, 어떤 여자들은 정신적인 만족감까지 줄 수 있다.때문에 나는 사장 사모님 같은 사람과 더 오래 어울리고 싶었다. 그러면 내 인지마저 높아질 것 같았으니까.사모님의 키는 약 165센티 정도였는데 몸매는 완벽하게 굴곡졌다.거기에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분위기를 더하니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 따로 없었다.종업원과 가게 사장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어머, 고객님. 이 옷은 딱 고객님 오이었네요. 너무 잘 어울려요... 마음에 드신다면 바로 포장해 드릴까요?”여종업원은 인센티브를 받으려고 얼른 아부했다. 어쨌든 사모님이 몸에 걸친 옷은 수백만 원의 가치가 있었으니까.판매가 성사되면 종업원에게도 분명 인센티브를 많이 받을 거다.그때, 사모님은 느긋하게 말했다.“잠깐만요, 일행이 오면 계산해 줘요.”“네.”여종업원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해 복무했다.나는 저도 모르게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만약 옷 갈아입은 사람이 여대생이거나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종업원은 절대 이렇게 살가운 태도로 말하지 않았겠지?’사람은 재산이나 지위를 무척 따진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절대 바싹 엎드리지 않을 텐데, 신분이 귀하거나 권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절로 굽신거리니까.그러니 역시 권력과 세력이 최고다.권력과 세
사모님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사람들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넌 부끄럽지도 않아?”사모님의 성격은 분위기와 흡사했다. 모두 비교적 단아한 편이었다. 소여정처럼 털털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소여정은 친구의 팔짱을 낀 채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뭘 부끄러워해? 우리 나이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어디 있다고. 남녀 사이는 기껏 해 봐야 고작 그 몇 가지잖아. 침구랑 가끔 대화 나누다 보면 경험을 얻을지 누가 알아?”소여정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직도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그에 반해 사모님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피가 맺힐 지경이었다.“됐어, 나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올게.”“갈아입긴 뭘 갈아입어? 그 옷 예쁘다니까. 그냥 입고 있어.”소여정은 말하면서 종업원을 불렀다.“이 친구가 입은 옷 포장하고 이 카드로 계산해 줘요.”“내 옷을 사는데 어떻게 너를 계산하게 해? 내가 할게.”임유미는 다급히 말했다.하지만 소여정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는 모습이었다.“내가 우리 친구잖아. 옷 한 벌 정도 못 사줄까 봐?”나는 순간 사모님이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예쁜 친구도 있고, 수억이 되는 옷을 고민 없이 살 수 있으니까.‘하, 역시 이런 친구가 있어야 좋은데.’‘너무 부러워.’소여정은 친구의 옷을 계산한 뒤 본인 옷도 두 벌 구매했다.나는 속으로 은근히 내 옷도 사주기를 기대했지만, 결구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나는 너무 서운했다.‘날 정말 일꾼으로 쓸 생각이었네.’나는 갑자기 윤지은이 떠올랐다. 지난번, 윤지은은 그래도 나한테 옷을 사줬다. 그렇게 비교해 보니 윤지은도 좋았다.쇼핑을 마친 뒤, 두 사람은 주얼리 매장으로 향했다.대중적인 주얼리는 당연히 소여정의 마음에 들리없다. 그녀는 늘 브랜드만 고집했으니까.뒤에 돈 많은 남자가 있으니, 이깟 돈쯤은 눈도 안 감고 써버릴 수 있었다.내가 두 사람과 함께 주얼리를 고르고 나니, 나는 어떤 게 진짜 돈 많은 사람인지 알았다.소여정은 다이아몬드
나는 피곤해 죽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제 곧 퇴근 시간이었다.원래는 이 여자들과 함께하는 쇼핑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서 휴식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또 온천에 가자고? 그것도 언제까지 몸 담글지 모르는 상태로?나는 사모님이 거절하기만을 바랐다.하지만 내 예상외로 사모님은 동의했다.왠지 모르게 사모님이 온천에 가자고 할 때, 나는 크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기대됐다.하지만 소여정이 갑자기 말했다.“정수호, 우리 물건 차에 올려 두고 그만 가봐.”“네?”나는 멍해졌다. 이미 두 사람과 온천에 갈 준비를 마친 상태인데, 먼저 돌아가라니?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아니, 제가 가면 누가 운전해요?”나는 포기하지 않고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애썼다.소여정이 피식 웃음이 터졌다.“네가 없으면 내가 운전 못 한다고 생각하나 보네?”그 말인즉, 소여정이 직접 운전하겠다는 뜻이었다.나는 너무 어이없었다.“그, 그러면 저는 어떻게 돌아가요?”나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남으려고 애썼다.그때 소여정이 돈다발을 던져 주었다.“택시 타고 가. 콜택시 부르던가. 이 돈이면 되지? 이 돈이면 식사도 한 끼 거뜬히 할 수 있을 거야. 어때? 역시 누나밖에 없지?”나는 두툼한 지폐 뭉치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소여정 이 여자는 얼굴도, 몸매도, 인성도 모두 갖췄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다.‘나를 기어코 가게에서 빼내 같이 쇼핑까지 했으면서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쇼핑이 끝난 뒤 몇십만 원을 던져 주면서 알아서 택시 타고 가라고?’‘대체 뭘 노리는 거지?’물건이 많지 않아 충분히 스스로 들 수 있을 거면서. 왜 수십만 원이나 낭비하는지 모르겠다.물론 몇십만 원이 이 여자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이런 행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나는 여전히 남기 위해 노력했다.“아니면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이런 화려한 옷차림으로 운전하는 것도 불편하잖아요.”소여정은 갑자기 나를 뚫어져라 훑어봤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나를 붙잡아주기를 기대했다.하지만 소여정은 나를 붙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모님도 시종일관 빙그레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늘 저녁 온천 가기는 틀렸네.’나는 할 수 없이 택시를 잡아 돌아갔다.오후 내내 두 여자와 쇼핑하러 돌아다니고 몇십만 원이나 벌었다. 이건 나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나는 왠지 기쁘지 않았다.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몇십만 원보다 두 미녀와 온천에 가고 싶었으니까.그건 돈 얼마를 들여도 살 수 없는 기회다. 하지만 나도 내 주제를 알고 있다.나는 평범하다 못해 흔한 일반인이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미녀들을 옆에 끼고 온천에 갈 수 있단 말인가?내가 너무 자만감에 취해 있은 게 틀림없다.몇억짜리 고급 외제 차를 타봤다고 진짜 부자라도 된 줄 알았다니. 상상력도 풍부하지.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무척 괴로웠다.지금 돌아가더라도 집은 텅 비어 나 혼자뿐일 걸 생각하니 더 괴로웠다.나는 얼른 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애교 누나, 오늘 저녁에 정말 돌아올 수 없어요?]애교 누나는 곧바로 답장했다.[못 돌아가요. 남주 곁에 있어줘야 해요. 걔가 아들 때문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손찌검을 했어요.]내 마음은 순간 더 괴로웠다.애교 누나도 돌아오지 않고, 형수는 형과 다시 잘됐고, 나 혼자 버림받은 기분이었다.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동네에서 포장마차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음식을 먹고 술도 마시고 약간 기분 좋게 취해 돌아가면 바로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내가 자리에 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동성 형이었다.형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게 기쁜 일이 생긴 듯했다.“수호야, 혼자야?”형도 나를 봤는지 먼저 인사했다.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응, 오늘 저녁 애교 누나가 일이 있다고 해서 혼자 먹으러 나왔거든. 형은? 형수는 돌아왔어?”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일부러 물었다.동성형
나는 어색하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성 형은 계속해서 주절주절 입을 털었다.“이번에 네 형수랑 사이가 많이 좋아졌어. 이제 네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네 형수 임신 시킬 수 있을 것 같아.”왠지 이 말음 나 들으라고 일부러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왜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하나 궁금했다.‘설마 뭔가를 눈치챘나?’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축하해. 나도 얼른 조카 안고 싶으니까.”“하하하, 수호야, 이제 나와 네 형수는 결실을 보았으니 이젠 네 좋은 소식만 기다릴게.”‘결실은 무슨. 그냥 자랑하고 싶은 거잖아.’‘그리고 뭐? 내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고?’‘왕정민이 어떤 성격인지 몰라서 그러나?’나와 애교 누나의 결혼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나는 기분이 울적해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술을 마셨다.얼마 뒤, 형이 주문한 요리가 다 되자 형은 음식을 포장해 가면서 술 적게 마시라는 가식적인 말을 남겼다.나는 동성 형이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확신이 더 들었다.그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이건 분명 형수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결국 나는 형수에게 문자를 보냈다.[형수, 이번에 돌아간 뒤로 형이 뭐 변한 거 있나요?]형수는 곧바로 답장했다.[유일한 변화라고는 다시 되는 것밖에 없었어.][그럼 다른 거는요? 성격이라든지, 아니면 우리 사이를 물어봤나요?]형수는 아예 나한테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형수가 너무 보고 싶어 나는 그냥 받아 버렸다.여상 속 형수는 이제 막 샤워하고 나왔는지 머리가 축축했다.게다가 새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목덜미 아래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형수는 민낯도 너무 아름다웠다.[수호 씨, 혹시 지금 우리 동네에 있어요?]형수는 바로 내 위치를 알아맞혔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파트 단지 부근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뭐 좀 먹고 있어요. 아까 형을 만나서 얘기 좀 나눴는데 자꾸만 의미심장한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인차 물
하지만 우리 둘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고통을 참고 손을 놓는 것뿐이다.[그래요. 뭐가 됐든, 우리는 각자 생활이 있잖아요. 행복하길 바랄게요. 나도 행복할 거예요.]형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어락 소리가 들려왔다.형수는 황급히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식탁 앞에 앉은 나는 밥 먹을 기분도 사라져 자리에서 일어섰다.애교 누나 집에 도착해 보니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누나가 돌아왔다는 생각에 나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설마 나한테 일부러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그랬나?’나는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지만 곧바로 이상함을 느꼈다.집 안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는데 모두 남자였다.‘남의 집에서 뭘 찾고 있지?’나는 얼른 화장실에 숨어 현재 상황을 판단했다.‘설마 도둑인가?’내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할 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젠장, 어떻게 된 거야? 왜 아무도 없어?”“김씨가 여기에 예쁜 여자가 산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아무도 없는데?”‘김씨?’‘설마 김진호가 보낸 건가?’그렇다면 의미는 달라진다.게다가 두 남자가 여자를 언급했는데, 이곳이 애교 누나 집이니 그 여자는 당연히 애교 누나일 것이다.그렇다는 건 밖에 있는 두 놈 모두 애교 누나를 목표로 들어온 거였다. 애교 누나한테 몹쓸 짓을 하려고!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김진호 이 자식이 이렇게 비겁할 줄이야. 나한테 안 되니까 내 여자한테 손대겠다는 건가?’‘그것도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나는 단단히 화가 났다.나는 조용히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두 사람의 모든 걸 녹화했다.나는 증거를 잡아 김진호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생각이었다.두 남자는 뭔가를 한참 찾았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그러자 그중 한 놈이 버럭 화를 냈다.“젠장, 아직 사람이 안 돌아왔나 봐. 시간이 어느 때인데 대체 뭐 하러 돌아다니는 거야? 돌아오기만 해 봐, 내가 아주 제대로 괴롭혀 줄 거야.”다른 놈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두 놈은 들어온 사람이 여자라는 걸 발견하자마자 눈에서 형형한 빛을 내뿜었다.둘은 바로 상의를 마치고 애교 누나게게 달려들기로 했다.무방비 상태로 가방을 걸어놓은 애교 누나는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고 소파에 누워 쉬려고 했다.그때, 갑자기 두 놈이 나타나 다짜고짜 애교 누나를 소파에 눌렀다.그 변태놈은 아예 애교 누나에게 손을 댔다.“헤헤, 살결이 참 보드랍네. 이 피부 좀 봐, 완전 매끄러워. 데리고 놀면 장난 아니겠어.”성격 나쁜 놈이 말했다.“젠장, 왜 이제야 기어들어와서. 목 빠지게 기다렀잖아. 내가 당장...”“뭐가 그렇게 급해? 그럼 네가 먼저 해.”소파에 깔린 애교 누나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 나는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쳐나갔다.쾅, 짱그랑!나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으로 두 놈의 뒤통수를 한 번씩 가격했다.나를 본 애교 누나는 마지막 희망을 본 것처럼 감격하더니 몸이 나른해졌다.누나는 힘없이 내 품에 쓰러졌다.나는 얼른 누나를 품에 안은 채 위로했다.“무서워하지 마요. 제가 있잖아요.”두 남자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남자잖아. 네가 정수호지?”성격 나쁜 놈이 물었다.나는 솔직담백하게 대답했다.“맞아. 내가 정수호다. 김진호가 보냈지?”“그건 알아서 뭐 하게? 너희 둘 오늘 끝장났어.”성격 나쁜 놈이 손목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손목에서 빠각빠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두 남자는 모두 덩치가 커서 마치 태산 같았다.‘김진호는 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을 구했지?’하지만 나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첫째는 내가 애교 누나를 지켜눠야 했고.둘째는 내가 남자라서다. 남자인 내가 이런 상황에 두려워하면 어떡하나?“누나, 방에 숨어서 문 잠가요.”나는 싸우다가 애교 누나를 다치게 할까 봐 얼른 말했다.애교 누나는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그럼 수호 씨는요?”“저한테 방법이 있으니 얼른 가서 신고해요.”내가 신고하라는 말에 변태놈이 말했다.“이 자식들 신고하려나 봐. 빨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