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 상황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나는 아직 어리고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경험이 전혀 없었다.그때 모태진이 말했다.“괜찮으니까 수호 씨는 가 봐요.”“그럼 아내분은...”“수호 씨가 방법을 대서 돌려보내 줘요. 나머지는 저녁에 돌아가서 처리하고 싶으니까.”“오후에 계속 출근할 거예요? 휴가 안 낼 거예요?”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계속 출근하려 하다니 정말 대단했다.모태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집에 애 둘이 있는데, 출근 안 하면 어떻게 내 자식 먹여 살리라고요?”‘하, 사람이 중년이 되면 마음대로 할 수 없구나.’나는 갑자기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런 부담도 없이 스스로 돈 벌고 모으면 되니까.“그럼 잠깐 휴식해요. 내가 나가볼 테니까.”다시 로비에 도착해 보니 동료 몇 명이 이미 모태진의 아내를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소란을 피워댔다.이러다가는 가게 영업까지 지장 줄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나는 아무리 설득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정 사장님이 나서서 그 여자의 마음을 달래주었다.모태진의 아내는 떠났지만 직원들은 뒤에서 모태진에 대해 수군댔다.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둥,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둥 하면서.소문은 참으로 무서웠다.모태진은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일했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동료들은 알만큼 알고 있다.나 같은 신입마저 모태진이 절대 그런 일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함께 오랫동안 일한 동료들이 이렇게 뒷담화하고 있다니.이게 인간인 듯싶다.남이 저보다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게 인간이다.마치 이렇게 남을 망가뜨리면 자기의 가치가 증명되기라도 하는 것처럼.이 선생님과 나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이 선생님도 이제 곧 간다.“이 선생님, 오늘 오후부터 일 그만둘 건가요?”이미 짐 정리를 마친 이 선생님을 보니 오후에 바로 떠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이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
“무슨 임무요?”나는 너무 궁금했다. 그때 이 선생님이 정 사장님 사무실을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떠나면 자네가 날 대신해 정 사장 좀 챙기게. 매일 제때에 약 챙겨 먹도록 상기시켜 주고.”“네? 정 사장님이 편찮으신가요?”“큰 문제는 아니라 걱정할 거 없네. 하지만 약은 끊으면 안 돼. 정 사장은 뭐든 다 좋아, 사람이 관대하고 직원들한테도 잘하지, 하지만 본인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내가 약 먹으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먹을 생각을 안 하니 원. 그러니 반드시 누군가 상기시켜 줘야 하네.”‘아, 그렇구나.’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신경 쓸게요.”“자네는 사람이 참 착해. 기대가 크니 잘해 봐. 혹시 아나? 언젠가 이 가게 일인자가 될지.”나는 마구 도리질했다.“무슨 그런 말씀을. 저 이제 출근한 지 며칠밖에 안 되는 신입이에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엄청 많아요.”이 선생님은 허허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지어 우리가 배웅하겠다고 하는 것도 한사코 거절하시며 혼자 배낭을 메고 떠나갔다.왠지 모르겠지만, 이 선생님이 떠나니 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마치 연로하신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것처럼.내 마사지룸에 들어왔지만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나는 기분을 풀려고 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한참 대화하다 보니 기분이 많이 좋아져 다시 일을 시작했다.잠깐 휴식할 때 보니 모태진도 일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분도 꽤 좋아 보였다.그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그때, 익숙한 실루엣이 가게로 걸어 들어왔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한은솔이었다.아마 또 모태진을 찾아온 것일 거다.나는 황급히 물컵을 내려놓고 한은솔을 내 마사지룸으로 끌어 들였다.“여기가 어디라고 또 와요? 오늘 태진 선배 아내분이 가게까지 찾아온 건 알아요?”나는 한은솔이 떨어져 나가길 바라며 오늘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말했다.그랬더니 한은솔은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꼈
“그러고 나서 저를 호텔로 데려가 밤새도록 같이 있어 줬어요. 저는 침대에서 자고 모 선생님은 소파에 있었어요. 저희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한은솔은 울며 계속 나한테 설명했다.그게 나로서는 와닿지 않아 그저 조용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태진 선배가 그렇게 좋은 사람인 걸 알면 더 멀리했어야죠. 태진 선배가 은솔 씨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아이도 벌써 초등학생이에요. 은솔 씨가 기분 안 좋다고 막 찾아오고 술 먹었다고 지켜달라고 하면 선배 아내는 어떻겠어요? 아이는 또 어떻겠어요?”나는 이 모든 문제가 한은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한은솔이 모태진한테 아무 감정도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우리 가게에 다른 마사지사도 많은데 하필 매번 모태진을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자꾸만 둘이 있으려 하는 것도 그렇고, 문제가 없다는 게 이상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한은솔을 불여우라고 하기에는 또 아니다.한은솔의 외모와 조건으로는 훨씬 더 좋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모태진처럼 나이도 들고 처자식도 있는 사람한테 아직 20대인 젊은 처녀가 가질 목적이 뭘까?물질적인 요구 외에 아마도 정신적인 기탁일 거다.그게 가장 무서운 거다.그래서 내가 제때 막아야 한다.한은솔은 여전히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솔직히 한은솔의 이런 모습을 보면 조금 짜증이 난다.우는 게 뭔 소용 있다고? 울면 뭐 문제가 해결되나?그때, 모태진이 내 마사지 룸으로 들어왔다.그건 내가 가장 보기 싫었던 장면인데, 역시나 벌어지고 말았다.“은솔 씨, 왜 그래요? 왜 그렇게 울어요?”모태진은 한은솔 앞에만 서면 항상 이렇듯 인내심 있고 다정한 모습만 보여준다.한은솔도 그런 모태진을 보자 단번에 그의 품에 달려가 안겼다.“모 선생님, 죄송해요. 저 정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흑흑흑...”‘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이지?’너무 충격이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서 왜 품에 안기는데?’‘그렇게 우는 건 또 뭐고?’나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모태진을 바라보며 하
“또 운전기사 노릇이에요? 이번에는 또 어디 가는데요?”솔직히 말하면 썩 내키지 않았다.첫째, 운전도 하고, 물건도 나르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가게에서 고객을 받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둘째, 이토록 아름다운 미녀들과 함께 있는데 보기만 하고 만질 수 없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차라리 아예 접촉하지 않고 가게에서 고객들 마사지나 해주고 오일이나 발라주는 게 더 낫지 않은가?소여정은 내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자 살짝 내 허리를 꼬집었다.“가라겸 가. 뭔 말이 그렇게 많아?”그 행동에 나는 흠칫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낼 수 있는 건지?친구 두 명이 여기 있는데, 나를 막 터치하다니.사장 사모님은 이미 습관이 된 것처럼 아무 반응도 없었지만, 백연우는 우리를 계속 쳐다봤다. 그 눈빛에 등골이 오싹했다.마치 학교 교감쌤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느낌처럼.때문에 나는 백연우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저 지금 출근해야 해요. 계속 저를 이렇게 사적으로 불러내면 사장님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요.”소여정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그딴 이유로는 날 설득할 수 없어. 임유미도 괜찮다는데, 수호 씨가 왜 신경 써?”사장 사모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보나 마나 이번 아이디어도 소여정이 낸 게 틀림없다.이 여자는 왜 맨날 나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지. 하루라도 안 괴롭히면 마음이 불편한가?“세분과 함께 다니기 싫다는 게 아니라 번거로운 일 찾아서 하기 싫은 것뿐이에요. 그리고 임천호가 아는지 마는지를 떠나서 친구분 윤지은 씨가 저한테 소여정 씨와 멀리하라고 계속 강조했거든요.”소여정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윤지은은 지금 없잖아? 수호 씨도 나도 말 안 하면, 예네 둘도 절대 말 안 할 거야. 그럼 윤지은이 알 리도 없고.”“그래도 안 됩니다. 만에 하나 알게 될 수도 있잖아요. 전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런 수호 씨 마음대로 안 되겠는데? 유미야, 네 차례야.”소여정
“용천 빌라. 나 거기서 하루 묵을 거거든.”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급히 물었다.“그러면 저도 묵어야 하잖아요?”“그렇지. 수호 씨가 안 묵으면 누가 운전해 줘?”소여정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하지만 나는 싫었다.돌아가지 않으면 애교 누나한테는 어떻게 설명하라고?그리고 형수도 걱정돼 죽겠는데.“그럼 전 갈 수 없어요. 여자 친구가 오해할 거예요.”나는 차에서 내리며 진지하게 해명했다.그러자 소여정이 나에게 현금다발을 꺼냈다.“여자 친구한테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해.”“이건 돈 문제가 아니에요. 전 단 한 번도 외박한 적 없어요.”소여정은 또 현금다발을 꺼냈다.“하룻밤에 200만도 벌고 부자 체험도 해볼 수 있는데 설레지 않아?”소여정 손에 든 현금을 보고 설레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게다가 전에 용천 펜션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데, 강북에서 가장 유명한 펜션이다.펜션 안 인테리어는 별장급이고, 개인 수영장도 딸린 데다 파티장, 온천 등이 있다.내 돈을 내지 않고 이런 걸 체험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고 싶었다.“좋아요, 그럼 우선 여자 친구한테 전화해 볼게요.”나는 소여정이 건네는 돈을 받고 구석진 곳으로 와 애교 누나한테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누나, 걱정하지 마요. 절대 몸 함부로 굴리지 않아요. 도착하면 영상통화 할게요.”애교 누나가 오해할까 봐 나는 일부러 설명을 덧붙였다.하지만 누나는 별다른 오해를 하지 않고 예전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수호 씨, 가고 싶으면 가요. 나한테 보고할 필요 없어요. 우리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수호 씨는 아직 자유예요. 앞으로 하고 싶은 건 회보할 필요 없이 뭐든 해요.”“애교 누나가 저를 믿는 건 누나 일이고, 누나한테 회보하고 싶은 건 내 일이잖아요.”나는 강력하게 어필했다.이건 내가 진심으로 애교 누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다.애교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그래요. 그 회보 받을게요. 오늘 저
이곳은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최고였다.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안내원이 따라붙었다.소여정은 미리 핸드폰으로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그것도 최고 VIP들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때문에 접대할 때부터 펜션 측은 우리에게 과일과 와인을 준비해 주었다.심지어 일부 과일은 이름도 모르는 것들이었다.그 순간, 내가 한없이 초라해졌다. 보고들은 게 너무 없었으니까.여자 세 명이 안내원과 대화를 주고받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과 과일을 사진 찍었다.다른 뜻은 아니고 그저 기념용이었다.나도 이런 건 본 적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기념.게다가 용천 펜션 로비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다.우장하고 넓고 화려한 호텔에 들어오니 내가 마치 황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역시나 이래서 다들 부자가 되려고 하는구나 실감했다.돈 많은 사람들은 정말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세 명은 바로 모든 수속을 마쳤다.나는 그 사이 얼른 핸드폰을 거두었다. 세 사람에게 내가 몰래 사진을 찍었다는 걸 들키기 싫었으니까.세 사람이 내 모습을 발견했다면 분명 촌놈이라고 여길 테니까.그때 백연우가 내 그런 모습을 봤는지 한쪽 입꼬리를 비쭉 올리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소여정이 허리를 살짝씩 움직이며 나에게로 걸어왔다.“이제 수속은 마쳤으니 수호 씨는 가서 우리 짐 가져와.”“이건 우리 세 명 거, 이건 수호 씨 거.”소여정은 나에게 색깔이 다른 카드키 두장을 건넸다.세 명의 것은 새까만 색이라 보기에도 귀티 나고 심플했지만, 내 것은 초록색이라 그다지 높지 않은 등급 같았다.딱 봐도 세 명의 방과 내 방은 달랐다.하지만 별것도 아니었다. 나는 운전기사로 온 것이니, 무료로 이곳에서 노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나는 세 사람의 짐을 들고 로비를 막연하게 바라봤다.‘젠장, 어디로 가야지?’나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기에 객실을 가려면 어디로 가
내가 어지러워 쓰러지려던 그때, 다행히 친절한 청소부 누님이 나에게 방향을 안내했다.방문을 열고 들어가 세 사람의 짐을 하나둘 차곡차곡 놓은 나는 참지 못하고 주위를 빙 돌아다녔다.이곳은 아주 커다란 로열스위트 룸이었다.방마다 개인용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욕조도 있었으며 창밖에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그야말로 환경이 너무 좋아 나는 또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내가 한평생 이런 곳에 올 기회가 얼마나 될까?나는 베란다도 한번 기웃거렸다.베란다는 쉴 수 있는 공간과 다과를 즐기는 공간도 있었다. 게다가 방안에 각종 신선한 과일과 와인이 구비되어 있었다.그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내 손에 쥐고 있던 초록색 카드키를 바라봤다. ‘내 방은 어떻지?’당장 가보고 싶었다.내 방 번호는 819라서 세 사람과 같은 층에 있지만 방향이 정반대였다.이번에는 노하우도 있었기에 단번에 내 방을 찾았다.바로 카드키를 긁고 안으로 들어갔다.놀랍게도 내 방도 꽤 컸다.물론 로열 스위트룸처럼 화려하지 않은데 보통 호텔보다는 훨씬 좋았다.심지어 안에는 여러 가지 와인과 신선한 과일 그리고 욕조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발코니가 조금 작았다.하지만 나한테는 이미 너무 큰 기쁨이었다.나는 내 방에 대고 찰칵찰칵 몇십 장의 사진을 찍어 몇 장은 애교 누나에게 보냈다.[애교 누나, 도착했어요. 이게 제 방이에요. 앞으로 기회 되면 누나도 데리고 올게요.]애교 누나는 나에게 짤막한 답변을 해 왔다.[제대로 즐겨요.]나른한 침대에 누운 나의 기분은 전례 없이 설렜다.내가 살아생전 이토록 화려한 호텔에 묵을 줄이야. 잠시 누워있다가 나는 소여정에게 문자를 보냈다.[물건은 이미 방에 넣어뒀어요. 그다음에 저는 뭘 하면 되죠?]소여정이 나에게 200만 원이나 주고, 여기에서 무료로 놀게 해줬으니, 나는 당연히 세 사람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여정의 답장을 받았다.[이젠 수호 씨가 할 일은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해.]‘이제 내
어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무척이나 아꼈다.내 말에 어머니는 당연히 아주 기뻐하셨다.[우리 아들 능력자네. 엄마는 참 기뻐.]“엄마,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어머니랑 아버지 꼭 강북에 데려와 부자의 생활을 누리게 해줄게요.”[나랑 니 아버지는 됐다. 네 그 효심만 있으면 만족한다. 우리 같은 촌구석 양반들은 그런 곳에 가도 편히 못 있는다. 수호야, 너만 잘 지내면 나랑 네 아버지는 만족한다.]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성실하고 평범한 농부이며, 농부의 순박하고 진솔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한참 수다를 떨다가 대화 주제는 결국 나에게로 왔다.[수호야, 너도 일만 넘 신경 쓰지 말고, 시간 나면 여자 친구도 좀 만들고 그래. 나랑 네 아버지가 지금은 아직 젊으니 내도 봐줄 수 있잖아...]시골 사람들은 결혼을 일찍 한다, 때문에 어머니가 이리도 나를 재촉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나는 애교 누나의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릴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말하기로 했다.애교 누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했기도 했으니, 일찍 말하든 늦게 말하든 똑같았으니까.“엄마, 사실 저 여자 친구 있어요.”어머니는 그 말에 무척 좋아하셨다.[정말이야? 너무 잘됐네. 어떤 여자야?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데?]나는 어머니를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제 여자 친구가 저보다 나이 좀 많아요. 이혼도 한 번 했고요. 하지만 사람은 엄청 좋아요. 저도 정말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고요.”[이혼했었다고? 뭐 별거 아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다 오픈 마인드잖아. 두 사람만 좋으면 우리는 의견 없다. 시간 날 때 여자 친구 데려와 봐. 우리도 좀 보게.]역시 어머니가 이런 일로 나를 나무라지 않을 줄 알았다.나는 너무 기뻤다.“그래요. 며칠 뒤 마침 휴가인데, 그때 데려갈게요.”우리 부모님은 비록 시골 토박이지만 모두 깨어 있는 분들이시고, 나에 대한 태도도 느슨하신 분들이다.어머니와 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좋
윤지은은 사모님의 손을 잡았다.“유미야, 정수호 혼자 다녀오게 해. 서윤기가 지금 판자촌에 있어. 그쪽에 지키는 사람들 많을 거야. 우리 셋이 함께 가면 보는 눈이 많아 쉽게 들킬 거야.”사모님은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수호 씨, 조심히 다녀와요.”사모님과 윤지은과 작별한 뒤 나는 차를 몰고 판자촌으로 향했다.한 시간 정도 지난 후 나는 노랑머리와 만났다.“사람은 어디 있어요?나는 다급히 물었다.노랑머리가 대답했다.“이연화 집에 있어요. 마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기 두려워요.”노랑머리 말대로 마을에 오가는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아마도 이동민이 특별히 풀어둔 순찰대원일 거다.하지만 나는 반드시 이연화 집에 가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 신분을 확인할 수 없으니까.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노랑머리에게 말했다.“우리 옷 갈아입고 저 속에 몰래 잠입해요.”“아, 그건 안 되지 않아요? 너무 위험해요. 들키면 끝장이에요.”“무서워할 거 뭐 있어요? 발각되더라도 내가 발각되지. 그쪽은 상황 봐서 도망쳐요.”노랑머리는 내 견결한 태도에 결국 나와 함께 옷을 갈아입었다.한참 뒤 나는 마스크를 끼고 거들먹거리며 마을로 들어섰다.그 모습을 본 노랑머리가 나를 향해 슬그머니 엄지를 추켜세웠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대담한 줄 몰랐던 모양이다.나는 곧장 이연화 집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우리는 몇몇 집 앞을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이 마을이 절대 겉보기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누군가 지키고 있는 집에 분명 뭔가 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발각될까 봐 많이 관찰하지는 못했다.이연화 집에 와보니 문이 꽉 닫혀 있었다. 나는 사람이 없는 구석을 찾아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러자 방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먼저 들려오는 건 이연화의 목소리였다.“조금희 그 망할 놈이 나 몰래 뭘 했는지, 아직도 그 2천만이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곧이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왔는지 뭔
나는 유미 사모님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사모님, 사장님도 사모님 곁에 있어요. 다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같이 있어 드릴 거예요.”나는 하늘에 걸린 별들을 보며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나는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목석같은 남자다. 하지만 이토록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건 순전히 사모님을 달래주기 위해서다.그때 사모님이 갑자기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수호 씨, 나 정말 너무 괴로워요. 진짜 너무 괴로워요. 하지만 이대로 의기소침해할 수 없어요. 나도 내가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사모님이 갑자기 무너지는 걸 보니 나는 쩔쩔매는 동시에 마음 아팠다.그런 사모님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나는 사모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그때 우리 뒤에서 갑자기 거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젠장. 오늘 왜 이렇게 운이 안 좋다 했더니 너희 두 재수탱이가 내 기운 앗아가는 거였구나.”담배 연기에 찌든 남자 한 명이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도박쟁이들은 돈을 벌면 날아갈 듯 좋아하다가도 돈을 잃으면 길 가던 개들조차 발로 차버리기 일쑤다.나는 사모님이 다칠까 봐 얼른 사모님 손을 잡으며 말했다.“사모님, 우리 가요.”그때 남자가 손을 뻗어 우리 앞에 막아섰다.“가긴 어딜 가? 내가 언제 가라고 했어? 내 돈 다 잃게 만들었으면서 배상도 안 해?”나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비키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남자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가만있지 않는다고? 어떻게 가만있지 않을 건데? 아...”나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목을 잡아 힘껏 비틀었다. 그 순간 그는 아파서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나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네가 돈 잃은 건 네 운이 나빠서야. 길 가는 사람 탓하지 마.”나는 남자를 밀쳐버리고 사모님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소리가 우리 휴식을 방해할까 봐 집 문을 꼭 잠갔다.우리가
“정 못 참겠으면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저 사람들 끝나면 돌아와요.”나는 내 의견을 말했다.하지만 오히려 윤지은의 따가운 시선이 돌아왔다.“이렇게 으슥한 곳에서 여자인 나 혼자 어딜 가라는 거야? 넌 정말 날 여자라도 안 보는 거야?”“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여자가 아닐 리가요. 그냥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의견 좀 낸 거죠. 어떻게 뭐든 내가 지은 씨를 적대시한다고 생각해요?”나는 호의를 무시당한 게 너무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때 윤지은이 아예 축객령을 내렸다.“나가. 너랑 말 섞고 시지 않아.”그 순간 나도 참았던 화가 올라왔다. ‘어떻게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도 나한테 화낼 생각부터 하지?’‘내가 가나 봐라.’나는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윤지은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그러자 윤지은은 눈이 커다래지며 물었다.“뭐 하는 거야?”윤지은은 말하면서 자기 가슴을 감싸안았다.그 행동에 나는 피식 웃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난 사람이지 짐승이 아니에요. 옆집에 사람이 저렇게 많고, 사모님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 설마 지은 씨한테 뭔 짓 하겠어요?”“난 그냥 귀띔하려는 거예요. 앞으로 나한테 불만 있으면 말해요. 매번 참아서 추측하게 하지 말고. 난 사람이지 지은 씨 배안에 들어 있는 회충이 아니에요. 안 그래도 워낙 변덕 심한 지은 씨 속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뭐라고?”윤지은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변했다. 하지만 나는 윤지은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미리 끼어들었다.“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 사모님 지금 상황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거 아니에요. 우리 때문에 사모님한테 폐가 되면 안 되잖아요.”“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마요. 쌀쌀맞게 굴 거면 이유라도 알려주던가요. 만약 앞으로 또 이러면...”윤지은은 이를 악물며 나를 노려봤다.“어쩔 건데? 가만 안 두겠다고?”나는 싱긋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갔다.윤지은이 뒤에서 나더러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사실 나도 윤지은을
‘정말 그런가?’‘설마 우리가 그동안 노력했던 게 오해였다고?’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그 순간 나는 사모님 몸이 갑자기 영혼이 나간 듯 축 처지는 걸 느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윤기만 잡으면 진실을 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진실이 더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우리가 한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때 윤지은이 갑자기 밖에서 들어와 나를 불렀다.“정수호, 전화 왔어. 그 노랑머리한테서 온 연락이야.”나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어때요? 단서 찾았어요?”[수호 형님, 얼른 도망쳐요.]“왜요?”[이동민이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형님 대신 일한다는 걸 알고 오규빈을 잡아갔어요. 그 자식 입이 가벼워서 형을 말해버리고 형네가 있는 곳을 불어버렸어요.][지금 이동민이 사람들 데리고 그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전 도망 나와서 전화하는 거예요.]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게 이런 상황인 듯싶다.나는 전화를 끊고 윤지은과 사모님께 말했다.“우리 당장 여기 떠나야 해요.”그러고 나서 곧바로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안 돼요. 아직 알아내지 못했는데 이대로 못 가요.”나는 다급히 사모님 팔을 잡아 끌었다.“사모님, 서윤기한테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 안 가면 이동민이 사람 데리고 오면 끝장이에요.”“적어도 몸이라도 보존하고 있어야 나중에 뭘 하든 할 거 아니에요. 우선 여기 떠나서 천천히 조사해 봐요.”사모님은 여전히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해 결국 나와 윤지은이 강제로 사모님을 차에 태웠다.떠날 때 우리는 집에 남아 있는 할머니도 함께 데려갔다. 그러고 나서 노랑머리를 만나 할머니를 넘겨주었다.노랑머리는 숲 뒤에 숨어있었다.“형님, 오규진과 오규빈이 모두 이동민한테 잡혔어요. 이제 남은 건 저뿐이에요. 저 어떡해요?”나는 노랑머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혼자 남으면 사람이 적어 일하기 더 쉽잖아요. 게다가 세 사람 돈
“됐어. 이제 말해.”서윤기는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우선 이거 풀어줘. 이렇게 외진 산에서 나 혼자 도망도 못 쳐.”나는 두말없이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적당히 해. 넌 우리 손에 잡힌 상황이야. 흥정할 자격 없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모님은 아예 서윤기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말해. 말 안 하면 가만 안 둬!”“알았어. 말할게. 정호섭 일은 나랑 상관없어.”나는 또다시 서윤기의 뺨을 때렸다.“상관없다고? 내가 룸 밖에서 똑똑히 들었어. 네가 이동민 지시해서 조금희를 협박해 대신 일을 저지르게 했다고 했잖아.”“그리고 사고 직전에 조금희 계좌로 2억이 뜬금없이 입금된 거 이미 확인했어.”“나랑 이동민이 협력하는 건 사업적으로 왕래가 있기 때문이야. 조금희는 아예 몰라. 2억은 더더욱 모르고.”“정말 모르는 거야? 거짓말하는 거야? 서윤기,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날 자꾸 몰아붙이지 마!”서윤기는 공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나 정말 모른다고. 이렇게 잡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나처럼 돈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죽는 걸 두려워해. 어렵게 Y시 시장을 뚫었고 떼돈 벌 기회가 생겼는데 이대로 죽기 싫다고.”서윤기의 눈빛과 도는 꾸며낸 것이 아닌 듯했다. 그건 조금 의외였다.‘설마 서윤기가 정말 정 사장님 일과 관련이 없나?’‘아니야. 분명 관련이 있어. 내가 룸에서 들었던 게 분명한데 틀릴 리 없어.’나는 사모님과 윤지은에게 서윤기를 며칠 더 가두었다가 다시 물어보자고 건의했다.사모님은 이미 힘이 쫙 빠져 우리 부축 없이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호섭 씨, 제발 진실을 빨리 알 수 있게 지켜줘.”사모님은 결국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와 윤지은은 그런 사모님한테 더 힘내라고 위로할 수박에 없었다.“지금 서윤기가 우리 손에 있으니 도망치지 않은 이상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어요.”“유미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이러다 화병 와.”위로의 말은 누구나 할
게다가 집에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다리도 불편하고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침침했다.노랑머리가 그 할머니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기에 우리는 곧바로 서윤기를 차에서 끌어냈다. 서윤기는 내리지 않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나는 그의 다리를 잡고 강제로 끄집어냈다.강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놀란 서윤기는 소변까지 지리고 말았다.“대체 뭐 하자는 거야? 왜 날 이런 곳에 끌고 온 건데? 여기 어디야?”“나도 몰라.”나는 솔직히 말했다.그 말에 서윤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정수호, 너 정말 미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너도 정 사장님 죽이는데, 난 왜 너한테 이러면 안 돼?”내가 반박했다.그러자 서윤기가 바로 말했다.“난 아니야. 정호섭 일 나랑 상관없어. 나 억울해.”“억울한데 Y시에는 왜 나타난 건데?”“우연이야. 다 우연이야. 난 여기 약재 구입하러 왔어. 나 정말 정호섭 일 몰라...”사실 나도 지금까지 직접적인 증거를 입수하지 못한 탓에 서윤기가 진짜 범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문제는 서윤기의 입이 너무 무거워 입을 열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나는 서윤기를 방에 끌고 가 꽁꽁 묶고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서윤기 잘 좀 감시해요. 난 약초 찾으러 나갔다 올게요.”윤지은은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약초?”“Y시에 사실 심마라는 풀이 잘 나거든요. 다른 말로 쐐기풀. 사람이 그 풀에 닿으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요.”나는 일부러 서윤기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서윤기도 한약재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당연히 쐐기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내 말에 바로 겁을 먹었다.“뭐 하는 거야? 쐐기풀로 어쩌려고 그래? 나 쐐기풀에 알레르기 있어. 이러나 나 진짜 죽어.”나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나 한의사야. 그런 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정수호, 내가 돈 줄게. 아주 많이 줄게. 나 풀어줘.”서윤기는 애원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나는 서윤기의
나는 또 서윤기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랬더니 서윤기의 코에서 또 피 두 줄기가 흘려내렸다.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불법이면 어때? 난 너 죽을 거야!”“정수호. 이렇게 할 필요까지 있을까? 정호섭은 이미 죽었어. 네가 날 죽여도 정호섭은 돌아오지 않아...”서윤기는 버둥거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우리는 아예 서윤기를 엘리베이터 안에 밀어 넣었다. 심지어 서윤기가 세게 반항해 데리고 나가기 어려울까 봐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그의 뒷목을 후려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취한 서윤기를 부축하는 것처럼 홀을 지나 가게를 나갔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곧장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그때 윤지은이 물었다.“어디 가려는 거야?”“호텔은 돌아갈 수 없어요. 사람 적은 곳으로 가야 해요. 인터넷으로 이 부근에 민박집 있는지 검색해 봐요. 아예 그곳을 임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윤지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그 사이, 사모님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나는 그런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 마침 장소 검색을 마친 윤지은이 말했다.“안 돼. 민박집은 너무 밀집되어 있어 발각되기 쉬워.”나는 순간 사람 한 명이 떠올라 차를 길옆에 세우고 윤지은한테 말했다.“지은 씨가 운전해요. 연락은 제가 할게요.”우리는 이내 자리를 바꾸었다.사실 내가 떠올린 사람은 노랑머리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도박해요? 솔직히 말해요. 거짓말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요. 경찰에 신고하려는 게 아니에요. 나 대신 한적하고 은밀한 곳 알아봐 주면 돼요.]그 시각 노랑머리는 불법 도박장에서 한창 놀음에 푹 빠져 있었다. 오늘 그는 운이 좋아 이미 수십만 원을 벌어 마침 그만두려던 참이었다.그때 마침 내 문자를 본 노랑머리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장했다.[형님, 제가 한적하고 비밀스러운 곳 하나 아는데, 그곳은 내 구역이 아니라 친구 구역이라 돈을 내야 해요.]나는 바로 답장했
사실 이동민 외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나는 재빨리 영감들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도 그럴 게, 때리는 족족 쓰러졌으니까.곧바로 룸 안에서 처벌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이동민은 한나둘씩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더니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나에게 걸어왔다.서윤기를 잡으려면 우선 이동민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나는 옆에 있던 노인을 발로 차버리고 악에 받쳐 이동민의 시선을 마주 봤다.“이 자식, 죽어!”이동민은 주먹을 쥐더니 화려한 동작 없이 바로 내 얼굴을 향해 날렸다.하지만 나는 그걸 재빨리 피한 뒤 이동민 뒤에 숨어 공격 기회를 노렸다.이동민은 속도가 느렸지만 힘이 강해 내가 손을 뻗을 때 내 손을 단번에 다리 사이로 잡았다. 그 순간 나는 팔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하지만 나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이동민의 허벅지 안쪽 살을 잡았다.남자의 약점은 그곳만이 아니다. 허벅지 안쪽 살을 꼬집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제압할 수 있다.이동민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다리에 힘을 풀었다. 그사이 나는 다시 놈의 가장 나약한 곳을 덥석 잡았다.그 순간 이동민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고 말았다.옆에 잇던 서윤기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하고 곧장 밖으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하지만 나는 의자로 이동민을 쓰러뜨린 뒤 신속히 서윤기를 잡았다.“거기 서! 서윤기. 넌 도망 못 쳐!”“정 사장님 죽음 네가 조작한 거지?”서윤기는 도망치면서 말했다.“어디서 생사람 잡아? 내가 했다면 증거를 내놔. 증거도 없이 모함하면 무고죄로 고소할 거야.”“고소는 무슨.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나는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서윤기는 내가 거의 따라붙자 곧장 엘리베이터 안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놈이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사모님과 윤지은이 달려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아버렸다.이윽고 윤지은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나와. 폭력 쓰게 하지 마.”순식간에 3대 1인 상황이 되니 더 승산 없어진 서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