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지러워 쓰러지려던 그때, 다행히 친절한 청소부 누님이 나에게 방향을 안내했다.방문을 열고 들어가 세 사람의 짐을 하나둘 차곡차곡 놓은 나는 참지 못하고 주위를 빙 돌아다녔다.이곳은 아주 커다란 로열스위트 룸이었다.방마다 개인용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욕조도 있었으며 창밖에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그야말로 환경이 너무 좋아 나는 또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내가 한평생 이런 곳에 올 기회가 얼마나 될까?나는 베란다도 한번 기웃거렸다.베란다는 쉴 수 있는 공간과 다과를 즐기는 공간도 있었다. 게다가 방안에 각종 신선한 과일과 와인이 구비되어 있었다.그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내 손에 쥐고 있던 초록색 카드키를 바라봤다. ‘내 방은 어떻지?’당장 가보고 싶었다.내 방 번호는 819라서 세 사람과 같은 층에 있지만 방향이 정반대였다.이번에는 노하우도 있었기에 단번에 내 방을 찾았다.바로 카드키를 긁고 안으로 들어갔다.놀랍게도 내 방도 꽤 컸다.물론 로열 스위트룸처럼 화려하지 않은데 보통 호텔보다는 훨씬 좋았다.심지어 안에는 여러 가지 와인과 신선한 과일 그리고 욕조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발코니가 조금 작았다.하지만 나한테는 이미 너무 큰 기쁨이었다.나는 내 방에 대고 찰칵찰칵 몇십 장의 사진을 찍어 몇 장은 애교 누나에게 보냈다.[애교 누나, 도착했어요. 이게 제 방이에요. 앞으로 기회 되면 누나도 데리고 올게요.]애교 누나는 나에게 짤막한 답변을 해 왔다.[제대로 즐겨요.]나른한 침대에 누운 나의 기분은 전례 없이 설렜다.내가 살아생전 이토록 화려한 호텔에 묵을 줄이야. 잠시 누워있다가 나는 소여정에게 문자를 보냈다.[물건은 이미 방에 넣어뒀어요. 그다음에 저는 뭘 하면 되죠?]소여정이 나에게 200만 원이나 주고, 여기에서 무료로 놀게 해줬으니, 나는 당연히 세 사람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여정의 답장을 받았다.[이젠 수호 씨가 할 일은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해.]‘이제 내
어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무척이나 아꼈다.내 말에 어머니는 당연히 아주 기뻐하셨다.[우리 아들 능력자네. 엄마는 참 기뻐.]“엄마,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어머니랑 아버지 꼭 강북에 데려와 부자의 생활을 누리게 해줄게요.”[나랑 니 아버지는 됐다. 네 그 효심만 있으면 만족한다. 우리 같은 촌구석 양반들은 그런 곳에 가도 편히 못 있는다. 수호야, 너만 잘 지내면 나랑 네 아버지는 만족한다.]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성실하고 평범한 농부이며, 농부의 순박하고 진솔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한참 수다를 떨다가 대화 주제는 결국 나에게로 왔다.[수호야, 너도 일만 넘 신경 쓰지 말고, 시간 나면 여자 친구도 좀 만들고 그래. 나랑 네 아버지가 지금은 아직 젊으니 내도 봐줄 수 있잖아...]시골 사람들은 결혼을 일찍 한다, 때문에 어머니가 이리도 나를 재촉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나는 애교 누나의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릴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말하기로 했다.애교 누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했기도 했으니, 일찍 말하든 늦게 말하든 똑같았으니까.“엄마, 사실 저 여자 친구 있어요.”어머니는 그 말에 무척 좋아하셨다.[정말이야? 너무 잘됐네. 어떤 여자야?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데?]나는 어머니를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제 여자 친구가 저보다 나이 좀 많아요. 이혼도 한 번 했고요. 하지만 사람은 엄청 좋아요. 저도 정말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고요.”[이혼했었다고? 뭐 별거 아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다 오픈 마인드잖아. 두 사람만 좋으면 우리는 의견 없다. 시간 날 때 여자 친구 데려와 봐. 우리도 좀 보게.]역시 어머니가 이런 일로 나를 나무라지 않을 줄 알았다.나는 너무 기뻤다.“그래요. 며칠 뒤 마침 휴가인데, 그때 데려갈게요.”우리 부모님은 비록 시골 토박이지만 모두 깨어 있는 분들이시고, 나에 대한 태도도 느슨하신 분들이다.어머니와 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좋
“혼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그런 쓰레기와 평생 같이 살 수는 없잖아요.”애교 누나는 미간을 좁혔다.[수호 씨는 우리 가족 몰라요. 특히 우리 아버지는 체면을 엄청 중요시하는 분이거든요. 이혼한 게 아버지 얼굴에 먹칠했다고 생각해 앞으로 딸로도 받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정 안 되면 시간 날 때 제가 같이 가서 대신 말해줄게요.”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그 말에 애교 누나는 끝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무섭지 않아요?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려 우리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난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새파랗게 어른 청년이다. 때문에 세상에 아직 두려울 게 없다.나는 오히려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듯 가슴팍을 퍽퍽 치며 말했다.“모든 건 저한테 맡겨요. 제가 누나 부모님 설득할게요.”[좋아요, 그럼 언제 시간 괜찮은지 말해줘요. 생각해 볼게요.]애교 누나는 결국 동의했다.그때, 소여정의 전화가 걸려 왔다.나는 누나에게 얼른 설명하고 통화를 끊고는 소여정의 전화를 받았다.“소여정 씨, 무슨 일이에요?”나는 항시 내 신분을 명심하고 있었다.그때 소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천으로 와. 나 어깨가 아프니 와서 좀 주물러 줘.”“온천이 어디 있는데요?”[위치 보내줄게.]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소여정이 보낸 위치를 확인했다.그걸 받아 보니 이곳이 참 넓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사람 찾는 것도 위치 정보를 공유해야 할 정도라니.하지만 위치 정보 덕분에 사람 찾는 건 매우 수월했다.그때 소여정의 문자가 또 도착했다. 이번에는 세 사람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오라는 문자였다.이곳 아이스크림은 뭐가 그렇게 비싼지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나에 1만 천 원이었다.그걸 사는 내내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하지만 상대는 내 물주인데, 서비스 잘해야지 어쩌겠나?아이스크림을 산 뒤, 나는 지도 어플을 따라 온천에 도착했다.이곳 온천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온천이었는데,
그 시각.S시.60이 넘은 늠름한 중년 남자가 흰색 한복을 입고 별장에서 태극권을 하고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나를 겁에 질리게 했던 임천호다.임천호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바로 태극권의 팔단금다.심지어 옆에는 태극권 고수가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임천호가 하고 있는 태극권 팔단금은 제법 그럴싸했다. 그의 팔단금이 끝나자 옆에 있던 태극권 선생이 연신 손뼉을 쳤다.“아주 좋습니다! 역시 재능을 타고나셨나 봅니다. 팔단금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네요.”임천호의 무뚝뚝한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번지더니 동작을 마무리 지으며 짧고 굵게 말했다.“상을 내려라.”그 말에 선생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임천호는 손을 휙 젓더니 뒤돌아 의자에 앉았다.그러자 고용인 한 명이 얼른 온도와 습도가 딱 적당한 수건 한 장을 건넸다.임천호는 자연스레 수건을 받아 땀을 닦았다. 하지만 핸드폰을 들어 확인한 순간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안색과 눈빛이 단번에 변해 어디론가 전화했다.그 시각.소여정은 한창 내 마사지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폰을 들어 임천호의 전화라는 걸 확인한 순간 소여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나를 향해 손을 휙 저으며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냈다.하지만 나는 그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마침 옆에 있던 유미 사모님이 내 팔을 잡아당기기 전까지는.“얼른 가요.”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어리둥절했다.‘뭐지? 한창 마사지 잘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쫓아내고 그래?’하지만 세 사람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순순히 떠났다.내가 떠나자 소여정은 겨우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또 얼른 오라고요? 하루라도 재촉하지 않으면 괴로운가 봐요?”임천호는 여전히 차갑고 덤덤했으며 얼굴에는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깊은 눈동자는 매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롭고 무서웠다
“흥, 나를 부러워하는 여자들이 나만큼 예뻐요? 나만큼 몸매 좋아요? 나를 깎아내리려면 저들도 나처럼 예쁘던가.”임천호는 리클라이너에 기댄 채 느긋하게 말했다.[네가 가장 특별하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 여자 천 명을 갖다 놔도 너 같은 여자는 찾을 수 없지. 내가 널 아끼고 사랑해 주는 건 당연해. 하지만,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는 건 딱 질색이라는 건 알아 둬.]소여정은 심장이 덜렁 내려앉았지만 끝까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내가 또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요? 친구들과 온천욕 하는 것도 함부로 하는 거예요?”[정말 온천욕만 한 거 맞아? 젊은 놈 끼고 마사지 받은 거 아니고?]임천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소여정은 순간 임천호가 제 죄를 따져 물으려고 전화한 거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방법은 있었다.소여정은 입을 삐죽 내밀며 일부러 화난 척 말했다.“에이, 이젠 젊은 남자한테 마사지 좀 받는 것도 안 돼요? 정말 저를 새장 안의 새처럼 키우게요?”임천호는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더니 눈에서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용납 못해. 강북 삼성에 네가 나 임천호의 여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이건 소여정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내가 당신 여자라고? 당신 여자는 당신 아내 아닌가? 난 당신이 자랑하고 다니는 물건일 뿐이고.’하지만 그 한마디 때문에 강북 삼성에서 임천호를 아는 사람들은 소여정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소여정은 밖에서 바람피울 배짱이 있다 한들, 상대는 절대 그럴 배짱이 없다.그 때문에 소여정은 이토록 강렬한 반항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새장 안의 새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임천호가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는 물건이 되고 싶지 않았으며 고분고분 말만 듣는 토끼는 더더욱 되기 싫었다.소여정도 사람이다. 자기만의 생활이 있다. 때문에 자꾸만 반항심이 생기곤 한다.임천호가 하지 말라고 하면 기어코 하려 하고. 그래야만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소여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자를 너무 잘 안다. 상대가 명령조로 말할 때는 애교를 부려봤자 소용없다.임천호는 지금 마지막 인내를 갖고 경고하는 거다. 만약 아직도 눈치 없이 굴면 소여정에게는 폭풍우가 닥칠 거다.소여정은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뭐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이틀 정도 더 있어도 된다고 했으면서 왜 또 당장 오라고 전화하는 건데? 내가 진짜 하라는 대로 하는 애완동물인 줄 아나?”소여정은 핸드폰을 내동댕이쳤다.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고 화가 났다.그와 동시에 반항심은 점점 강해졌다.그때 유미 사모님이 소여정의 팔을 잡으며 좋은 말로 달랬다.“딱 보니까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데. 돌아가. 가서 기분 풀어주고 나중에 다시 오든 말든 얘기해.”백연우도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분석했다.“그 남자 소유욕 엄청 강하잖아. 얼른 돌아가. 아니면 정말 강북에 쳐들어올지도 몰라.”소여정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임천호가 강북에 쳐들어오는 것만은 싫었다.그 남자는 분명 강북에 있는 동안 소여정의 행적을 뒤질 거고, 그녀와 접촉한 적 있는 남자들은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려 들 거다.소여정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안절부절못했다.“그럼 이제 어떡해? 정말 임천호 말대로 순순히 돌아가라고? 그러면 내가 애완동물과 뭐가 달라?”소여정은 너무 싫었다.그때 유미 사모님이 얘기했다.“아니면 먼저 전화해서 애교 좀 부리고 잘 설득해 보는 건 어때?”“소용없어. 임천호는 절대 애교부린다고 결정을 번복할 사람 아니야. 그 사람은 남을 명령하고 남이 제 말에 복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백연우의 정확한 분석에 소여정도 동의했다.“연우 말이 맞아. 임천호는 그런 사람이야. 내가 전화하면 내가 정말 자기를 못 떠나는 줄 알 거야. 절대 먼저 전화하면 안 돼.”“그럼 정말 강북으로 와서 너 찾으면 어떡해?”임유미가 물었다.“직접 오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계속 안 돌아가면 사
나는 백연우 곁으로 다가가 마사지하기 시작했다.왠지 모르겠으나 이 여자는 조금 무서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마치 학창 시절 선생님을 두려워하던 것처럼.나는 온몸이 불편했다.백연우도 그런 내 뻣뻣함을 느꼈는지 물었다.“마사지하는 게 좀 뻣뻣한데, 긴장했어요?”“아, 왠지 모르게 긴장되네요.”나는 솔직히 말했다.“긴장할 거 없어요.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내가 수호 씨 어떻게 한대요?”이 여자는 말투마저 학과장 같았다.하지만 학교를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연우 씨, 무슨 뜻이에요? 제가 이제 갓 졸업한 학생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이제 갓 졸업한 학생인 것도 알고 강북 한의원 다녔던 것도 알아요.”나는 더 놀랐다.“소여정 씨한테 들었어요?”‘아닌데? 소여정은 내가 어느 학교 졸업했는지 모르는데?’물론 이 여자가 뒤에서 나를 몰래 조사했을 수도 있다.‘그런데 이건 내가 너무 자뻑이 심한 거 아닌가?’‘이 여자도 소여정도 할 일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나를 왜 뒷조사하겠어?’그때 옆에 있던 사장 사모님이 말을 보탰다.“수호 씨 몰랐어요? 연우 수호 씨 학교 학과장이었어요. 백 쌤.”“네?”난 이건 정말 모른다.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에만 관심이 있어 학과장 쌤이 누구 건, 교장이 누구 건 관심이 없었다.하지만 백 학과장 쌤이 있었던 기억은 있다.나는 그 순간 바짝 긴장했다.아무리 졸업해도 학과장이라는 직업이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나는 쩔쩔매며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하하, 내가 그렇게 무서워요?”백연우는 나를 보며 웃었다.‘당연한 거 아닌가? 학교장이라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긴장할 거 없어요. 이미 졸업했잖아요. 내가 수호 씨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백연우는 계속해서 마사지를 요구했다.워낙 학과장처럼 생겼는데 정말 그렇다고 하니 나는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내가 그렇게 무서워요? 뭘 그렇게 겁먹었어요?”백연우는
“정수호 씨, 내가 안경 낀 모습이 예뻐요? 안경 벗은 모습이 예뻐요?”백연우가 갑자기 물었다.안 그래도 가슴이 두근댔는데,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니 나는 마음이 찔려 사실대로 답할 수 없었다.결국 대충 얼버무렸다.“다 예뻐요.”“그래요? 그럼 내가 예뻐요? 아니면 유미가 예뻐요?”‘어...’‘이 질문은 참...’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한 명은 가르침을 잘 받은 양반댁 규수처럼 온화하고 우아한 스타일.한 명은 무뚝뚝하고 무섭지만 몸매는 화끈한 학과장.이걸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가?이 둘은 비교할 수 없다.하지만 정복욕으로 볼 때, 백연우를 내 여자로 만드는 게 더 성취감이 있을 거다.‘몸매가 화끈한 여 학과장이라...’‘생각만 해도 스릴 넘치네.’“왜 대답 없어요? 어떻게 우리를 기쁘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니면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백연우는 내 배에서 태어난 회충처럼 내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나는 결국 아무 말이나 지어냈다.“두 분 다 예뻐요. 모두 미녀세요. 두 분과 결혼하는 분은 참 복 받은 것 같아요.”“그런 아부는 우리 앞에서 떨 필요 없어요. 이미 지리도록 들었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물어볼게요. 한 사람을 정복하라면 누구를 더 정복하고 싶어요?”나는 질문을 들은 순간 더 의문이 생겼다. 이 여자가 독심술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느 여자가 더 정복욕 있는지를 생각했는데, 바로 그런 질문을 하다니.게다가 눈빛도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듯 이상했다.나는 마음이 찔려 얼굴마저 빨개졌다.“그런 생각은 할 배짱도 없어요. 대답은 더더욱 못 하고요.”나는 거짓말했다.그러자 백연우가 싱긋 웃으며 여전히 나를 꿰뚫어 볼 것 같은 눈빛으로 물었다.“그래요? 상상한 적 없다고요? 한 명은 사장 사모님이고, 한 명은 대학 시절 학과장인데, 누구를 정복하든 성취감이 대단할 텐데, 정말 생각한 적 없어요?”나는 마구 도리질하며 찔리는 마음을 애써 숨겼다.“정말 아니에요. 저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