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은 더욱 수줍어하며 내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나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수호 씨랑 무슨 사이인 것도 아니고.”하긴, 사모님은 나와 아무 사이도 아니기에 내가 누구랑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휴식해요. 난 이만 가볼게요.”아까 전 일을 떠올릴수록 너무나도 난처했다.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다행이자만.나는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숨 푹 자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꿈나라에 들어섰다.오후까지 쭉 잤더니 형수와 애교 누나가 나를 깨우러 왔다.이제 여기를 떠나려는 모양이었다.“시간 참 빠르네요.”어느덧 이곳에서 사흘이나 있었다. 그런데 떠나자니 아쉬웠다.이렇게 고급스러운 곳을 올 기회가 앞으로 더 있을지 모르니까. 게다가 이렇게 예쁜 누나들과 함께 있는데, 미련을 두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형수와 애교 누나는 나를 도와 옷을 입혀주었다.두 사람이 함께 시중을 들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세 사람이 오랜 부부인 것처럼.애교 누나는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형수가 나를 도와주는 건 의외였다.전에 분명 삐졌는데 이런다는 건, 형수가 여전히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두 사람을 협조해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누나들이 왔다.모두가 함께 하산할 모양이었다.윤지은은 그 여의사도 데리고 왔다.그게 약간 의아했다.“하산하면 병원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 않나요? 왜 저 사람도 데려가요?”윤지은은 쌀쌀맞게 말했다.“수호 씨 상태를 가장 잘 아니까. 데려가는 건 다 수호 씨를 위해서야. 하산하면서 무슨 사고가 있으면 안 되니까 생각해 주면 그냥 좀 얌전히 받아.”“네, 알았어요. 받을게요. 고마워요. 참, 저 의사 쌤 이름은 뭐예요? 아직 이름도 모르네요.”“뭐 하려고? 또 흑심 품은 거야?”나는 황급히 억울함을 호소했다.“나를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지 말아줄래요? 그냥 이름 좀 알면 나중에 인사할 수 있잖아요.”“하긴, 파렴치한 사
무엇보다 양동준이 윤지은과 함께 용천 호텔에 남아, 그와 이대로 헤어지면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간단해요. 앞으로 임천호를 만나면 나 대신 말만 전해줘요.”여러 가지 가능성은 모두 염두에 뒀지만, 이 여자가 임천호와도 접점이 있을 거란 건 몰랐다.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말인데요?”나는 여의사와 손을 잡아도 될지 다시 고민했다.‘왜 위험한 것 같지?’여의사는 나를 보며 말했다.“나 서지예가 언젠가 그놈 고자 만들 거라고.”“컥...”나는 하마터면 내 침에 사레가 들뻔했다.그도 그럴 게, 이 여자가 임천호한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나는 임천호를 피하지 못해 안달인데, 그런 말은 더더욱 할 리 없다.나는 얼른 도리질했다.“안 돼요. 그건 못 도와줘요. 다른 사람 알아봐요.”“찌질하긴.”서지예가 나를 째려봤다.나는 그 말에 기분이 확 상해 반박했다.“이건 찌질한 것과 상관없거든요. 내가 내 실력을 아니까 그러는 거예요. 임천호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그런데 나더러 임천호한테 그런 말을 하라니, 죽으라는 뜻이에요?”서지예가 팔짱을 끼며 쌀쌀맞게 말했다.“진짜 남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양동준을 봐요, 두려워하는 게 있나.”“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양동준 형님은 용병 출신이니까 진짜 실력이 있고, 난 평범한 일반인이에요.”“흥, 그래도 찌질한 건 변함없으니 변명하지 마요.”서지예가 아예 결론을 내버렸다.그 평가를 들으니 왠지 억울했다.내가 겁많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찌질한 건 아닌데.특히 여자한테 이 정도로 미움받으니 한 대 맞은 것처럼 얼굴이 아팠다.나는 결국 승복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임천호와 무슨 사이예요? 왜 고자로 만들려는 거예요?”“임천호의 아내가 내 친언니거든요. 우리 언니를 버리고 불여시랑 붙어 다니는데,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려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나는 너무 놀라 어안이벙벙했다.‘이 여자의 언니가 임천호의 아내라면, 소여정
“한때 만났어요. 이 답이면 충분해요?”“그렇다면 지금은 헤어졌다는 뜻이겠네요? 왜 헤어졌는데요? 누가 먼저 찼어요?”“그런 건 왜 묻는 거예요?”“당연히 물어봐야죠. 만약 안 좋게 헤어졌으면 동준 형님이 그쪽 말 들어줄 리 없잖아요. 난 속고 싶지 않아요.”나는 잔뜩 경계하면서 말했다.서지예는 나를 휙 째려봤다.“참 딱히 잘하는 게 없지만 잔머리 하나는 인정해요. 그 정력을 다른 데 쏟았으면 이 꼴 나지 않았을 텐데.”그 말에 동의할 내가 아니었다.“난 아직 기회를 만나지 못한 거거든요. 기회만 있으면 분명 큰일을 할 거라고요.”서지예는 더 이상 논쟁하기 귀찮은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그러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그냥 평화롭게 헤어졌어요. 그런데 양동준이 아직도 나한테 마음이 있으니 당신을 제자로 받으라고 충분히 설득할 수 있고요.”“정말요? 그럼 왜 헤어졌는데요? 그렇게 훌륭한 사람과?”이 문제는 역시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서지예는 한숨을 푹 쉬었다.“사람이 너무 올곧다 못해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같이 있는 3개월 동안 손도 못 잡아 봤어요. 가끔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니까요. 전에 몰래 맥을 짚어 봤더니 모두 정상이었는데, 심지어 본인도 수요가 있으면서 내가 은근슬쩍 흘려도 협조를 안 해줘요. 뭐 처음은 신혼 첫날밤에 치르고 싶다나?”“젠장, 남자한테서 그런 말 들은 내가...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알아요?”그게 뭐가 어이없다고? 그렇게 인내심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찾기 어려운데,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세상 참 변했어. 날따라 못해지네.’‘이제는 여자들이 이렇게 개방적이라고? 그쪽 수요가 그렇게 큰가? 좋은 남자가 저평가될 만큼?’‘신민우도 그렇더니, 양동준 형님도 똑같네. 오히려 나처럼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사람이 더 인기가 많다니.’‘역시 여자는 나쁜 남자한테 끌린다는 게 맞나?’양동준이 우상이었기에 나는 그의 편을 들었다.“동준 형님이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양동준을 스승님으로 모셨는데, 서지예가 양동준을 좋아한다면 내 사모님이나 다름없다.그런데 어떻게 이 여자가 내 스승님을 두고 바람피우게 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서지예는 이미 내 몸 위로 올라와 유혹했다.“우리 해볼래요?”나는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동준 형님은 제 스승님이에요. 그런데 내가 그쪽이랑 썸 타고, 그 사진을 동준 형님께 보내면, 형님이 나를 어떻게 스승님으로 받아주겠어요?”“얼굴 가리면 되죠.”서지예는 이미 내 앞에 다가와 나에게 몸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밀쳐냈다. 나라는 사람이 이토록 정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서지예는 나한테 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아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봤다.“무슨 뜻이에요? 내가 그렇게 매력 없어요?”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지예 씨는 내 미래 사모님인데, 우리 이러면 안 돼요.”“흥, 아직 제자로 받아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제자인 척하기는.”서지예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그걸 보니 왠지 난처했다. 방금 힘 조절을 하지 못해 상대가 아프지는 않나 걱정되었다. 나는 결국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상관 마요.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네 도움도 바라지 마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했다.“그러지 마요. 임천호 일은 정말 내 능력을 벗어났어요. 그런데 스승님과 지예 씨 일은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어요.”“무슨 방법인데요? 말해 봐요.”서지예는 기세등등해서 물었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내 방법을 말했다.“남녀 사이는 분위기가 중요해요. 우리 스승님과 러브호텔에 가는 건 어때요?”“그 사람 성격에 절대 안 갈 거예요. 소용없어요.”“속여서 불러내면 되죠. 섹시한 속옷을 입고 기다리면 절대 못 버틸걸요. 그래도 안 되면 그 전에 술 좀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남자는 알코올이 들어가면 참지 못하거든요.”서지예는 내 말에 예쁜 눈을 반짝였다.“괜
“스승님을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땡중으로 생각해요. 그런 사람을 홀려 규율을 어기게 만들어야 한다고요.”나는 서지예한테 예를 들었다.그러자 서지예는 바로 내 뜻을 이해했다.“아, 알았어요. 양동준은 보통 남자랑 달라서 꼬시려면 특별한 수단을 좀 써야 한다, 이 말이죠? 그런데 무슨 수단이요? 잘 모르겠는데.”‘어... 이걸 어쩐다?’‘여자가 어떻게 매력 발산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는데.’“아니면 백연우 씨를 따라 배우는 건 어때요?”“미쳤어요? 어떻게 그런 시킬 수 있어요?”서지예는 나를 한바탕 호되게 꾸짖었다.백연우를 제외하고 형수가 떠올랐지만, 형수는 하산하기 전에 진동성이 뭐 하나 봐야겠다며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그런 사람더러 가지 말고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다.머리를 쥐어 짜내며 적임자를 떠올렸지만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서지예가 말했다.“정 안 되면 그쪽이 가르쳐주던가요.”“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꼬셔 봤어야 알죠.”“아는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보고 배웠을 거 아니에요? 됐어요, 수호 씨가 가르쳐 줘요. 내가 양동준을 자빠뜨리면 그쪽을 제자로 받으라고 설득해 줄게요. 약속할게요!”서지예는 아주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게다가 양동준과 그런 사이이니, 서지예를 도우면 양동준의 제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동준 형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지.’결국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해보죠.”“그럼 이제부터 말하는 대로 하면 돼요?”나는 나를 소여정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을 유혹하는 면에서 소여정을 따라올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나는 서지예더러 양동준인 척하게 하고, 남자의 욕망을 어떻게 자극해야 할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하하하... 하하하...”서지예는 아예 웃음을 터뜨렸다.‘사람 머쓱하게.’“뭘 웃어요?”서지예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방금 그거 너무 웃겨서요. 됐어요, 안 웃을 테니 다시 한번 보여줘요.”
“그렇게 직접적으로요?”“네, 그래야 해요. 정식하고 올곧은 사람일수록 빙빙 에돌아 가면 작전 실패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지예는 한참 생각하다가 미간을 좁혔다.“어떻게 갖다 대요? 안에 넣어요? 아니면 겉에 대요?”‘어...’“시범 보여줄래요?”‘어...’‘왜 이 여자가 나한테 흑심 있는 것 같지?’“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마요.”나는 경계 가득한 눈으로 서지예를 보며 물었다.그러자 서지예가 잔뜩 화난 얼굴로 말했다.“나 아무것도 몰라요. 왜요? 내가 다 알면 가르쳐달라고 했겠어요?”“그런 사람이 내 바지를 벗기려 했어요? 난 또 아주 능수능란한 줄 알았죠.”나는 왠지 큰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서지예는 팔짱을 꼈다.“궁금해서 그런 거잖아요. 당신 그곳이 얼마나 대단하면 여자들이 주위에 끊이질 않나 해서요.”나는 어색하고 낯 간지러웠다.“그 얘기는 그만해요. 부끄럽잖아요. 나도 내 인생이 로또 맞은 기분이에요.”“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실용적인 거나 가르쳐 줘요.”서지예는 강경한 태도로 말했지만 얼굴은 살짝 발그스름했다.나는 서지예의 치맛자락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말했다.“그러면... 그쪽한테 손해 아니에요? 조금 부끄러운데요?”“나도 괜찮은데, 그쪽이 안 괜찮을 거 뭐 있어요? 그만 우물거리고 얼른 손 이리 줘요.”“서지예는 말하면서 내 손을 자기 치마 밑으로 쑥 밀어 넣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예쁜 눈매가 찡그러졌다.서지예는 잘 숨겼지만 나는 바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뜨뜻한 무언가가 울컥 흘러나왔다.그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렇게 민감하다고?’하지만 서지예는 여유 있는 모습인 척해서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협조하는 것뿐.“맞아요. 이렇게 하면 돼요. 보통 이 정도 하면 보통 남자들은 참지 못해요.”서지예의 얼굴은 점점 빨개졌고 목소리도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그럼 다음은... 바로 본론으로 가면 돼요?”“네, 자연스러운 거 아니에요?”나는 말하면서 얼른
“뭐가요?”“서 쌤이 시크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여자를 상대로, 아주 대단해요.”나는 다급히 해명했다.“흑심 품고 뭘 해보려는 건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차나 몰 것이지 뭘 그렇게 상관해요?”문득 운전기사 주제에 뭔 말이 그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말할수록 상대가 서지예한테 흑심 품고 눈요깃거리로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를 태웠다.나는 차에서 서지예를 기다렸다.하지만 30분이 다 되어 가는데 서지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약간 걱정이 된 나는 얼른 그녀에게 연락했다.[다 됐어요?]서지예는 빠르게 답장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 뭘 그리 재촉해요?”‘헐. 황폐한 산속에서 위험할까 봐 그러지. 걱정해 줘도 난리야.’‘됐어. 마음대로 하라지. 상관 안 해.’나는얼른 소설 사이트를 열었다.한참 뒤, 서지예는 겨우 돌아왔다.얼굴이 붉고 색스러운 게 딱 봐도 홍수가 터진 모양이었다.서지예는 자리에 돌아와 기사한테 말했다.“됐어요. 출발해요.”나는 핸드폰을 거두고 서지예를 바라봤다.“내 가르침 어땠어요?”“나쁘지 않네요.”“그럼 성공하면 스승님한테 꼭 나를 스승으로 받아주라고 설득해 줘요.”“네.”서지예의 대답은 뜨뜻미지근했다.상대가 나를 상대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형수와 애교 누나는 이미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백연우와 사모님도 갈 곳으로 갔다.서지예는 나에게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어봤다.나는 아직 팔에 깁스를 하고 있고, 갈비뼈가 채 아물지 않아, 사모님은 하산하기 전에 집에서 잘 휴식하라고 당부했다.하지만 지금 집에 가기 싫어 서지예한테 말했다.“할 일 없으면 얼른 계획을 실행에 옮겨요.”“지금요?”“네, 빨리 실행해야 스승님을 빨리 차지하죠. 나도 하루빨리 스승님 제자가 될 수 있고요.”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하루빨리 양동준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서지예는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기사한테 말했다.“기사님, 부근에 있
“부끄러울 거 뭐 있어요? 본인 입으로 그랬잖아요. 성인이 이런 곳 오는 거 정상이라고.”서지예가 쑥스러워하는 걸 알았기에,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사람은 누구나 풋풋한 시절로부터 점차 성숙해져 가는 거다. 나도 그렇게 겪어 왔고. 때문에 서지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서지예는 마음을 다잡더니 말했다.“알았어요. 이제 전화하면 돼요?”“네. 합리적인 이유를 대서 먼저 여기로 불러내요. 하지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절대 말하지 마요.”“알았어요.”소지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양동준한테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전화는 빠르게 연결되었다.서지에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양동준, 나랑 술 마셔줄 수 있어? 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 여기로 좀 와줘. 기다릴게. 안 오면 죽도록 마실 거야.”서지예는 상대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제 양동준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나는 대충 할 일을 끝낸 것 같아 입을 열었다.“난 먼저 가볼게요.”“어디 가게요?”그 질문에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당연히 떠나야죠. 이따가 두 사람이 꽁냥거리는데 내가 끼어 있겠어요?”서지예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잔뜩 긴장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나 너무 떨려요. 망치면 어떡하죠?”“헐, 나를 상대할 때는 이러지 않았잖아요.”“그거야 그쪽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쪽 앞에서는 부담이 없는 거죠. 하지만 양동준은 좋아한단 말이에요. 내 몸과 마음을 다 줄 걸 생각하니 설레고 불안해요. 거절당할까 봐 두렵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내가 또 욱해서 싸움 날까 봐 걱정이기도 하고.”사람은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는 쩔쩔매게 돼 있다.예전에 애교 누나 앞에서 나도 이랬으니까.나는 서지예 앞에 다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긴장할 거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어떻게 몰입해서 서로에게 좋은 추억을 남길지만 생각해요.”“될까요? 아니면 가지 마요.”“그건 무리한 요구라는 생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