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요.”나는 단번에 거절했다.“누나, 안 그래도 저 고작 마사지사인 데다 나이도 어리고, 이룬 성과도 없어요. 그런데 이대로 아버님 도움까지 구한다면, 아버님은 저를 더 무시할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함께 있는 걸 더 허락할 리 없고.”이것 때문이라도 나는 절대 누나의 집에 가지 않을 거다.애교 누나가 내 손을 잡고 나를 위로했다.“수호 씨 마음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이잖아요. 우선 안전부터 보장해야 하지 않겠어요?”“저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요. 믿어줘요!”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무엇보다 누나에게 나도 이젠 남자라는 걸, 그래서 모든 일에서 누나가 돌봐줄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다.애교 누나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수호 씨도 참, 나한테까지 그렇게까지 내외할 거 없어요. 난 그런 거 상관 안 해요...”“누나, 그런 말 하지 마요. 저 이미 결정했어요.”나는 애교 누나의 말을 잘랐다.그제야 애교 누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알았어요. 정 그렇다면 강요하지 않을게요. 만약 정말 상대하기 벅차면 꼭 말해야 해요.”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 저녁에 경험한 일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철렁할 일이지만, 그만큼 도움도 많이 됐다.특히 민우의 기술은 너무 도움됐다. 정태곤 같은 사람한테도 먹혔으니까.‘그 기술 잘 연습해야지. 아주 익숙해져서 민우보다도 강해질 거야.’그러면 나중에 정태곤을 다시 만나더라도 너무 놀라서 넋을 잃은 일은 없을 테니까.침대에 누운 내 머릿속에는 온통 정태곤과 싸우던 모습뿐이었다.그대로 열심히만 연습하면 분명 실력이 크게 늘 거란 확신도 들었다.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사모님이 사장님께 내가 다쳤다고 얘기한 덕에 집에서 몸조리하라는 사장님의 연락을 받게 됐다. 때문에 당분간은 출근할 필요가 없어 원하는 시간에 깨어날 수 있었다.내가 깨어났을 때, 애교 누나는 이미 아침상을 차려 놓고
“내 딸이 왕정민과 이혼한 게 자네 때문인가?”이태웅은 다시 물었다.수간 너무 불안해졌다.아무리 봐도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불안해서 얼른 설명하려고 할 때, 애교 누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아버지, 그런 거 아니에요. 왕정민이 바람피웠어요. 그 인간이 먼저 잘못했다고요.”“그렇다고 똑같이 구는 거니?”이태웅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애교 누나를 향해 호통쳤다.그 목소리에 놀란 애교 누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물을 그썽거렸다.애교 누나가 아버지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나도 무서웠지만 애교 누나가 억울하게 꾸중을 듣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서 두고 볼 수가 없었다.“아버님, 이 일은 애교 누나 잘못 아닙니다. 탓하려면 저를 탓하세요...”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태웅은 차갑게 내 말을 끊었다.“자네를 탓하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 내 딸과 왕정민이 어떻든 두 부부 사이의 일인데, 자네가 무슨 자격으로 참견하나? 내 딸과 왕정민이 이혼하자마자 내 딸 집에 얹혀사는 건 무슨 속셈이고?”그 질문에 얼떨떨해져 나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했다.“나쁜 마음으로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애교 누나랑 같이...”“그 입 다물게!”이태웅은 또 차가운 목소리로 내 말을 잘랐다. 그 목소리에 놀란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나는 이토록 불안한 적도, 겁먹은 적도 없다. 이토록 내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도 처음이고.이태웅은 아직도 나를 혼내고 있었다.“내 딸과 만나고 싶다고? 무슨 자격으로? 왕정민 같은 사람도 내 눈에 안 차는데, 자네가 내 눈에 찰까?”이태웅의 싸늘한 눈초리가 내 마음을 쿡 찔렀다.나는 소매 안에서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이태웅이 나를 설교하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입을 열었다.“네, 저 지금 아무것도 없어요. 신분도 백도 아무것도요. 그래서 애교 누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도 제가 평범하다는 걸 인정해요.
애교 누나는 아버지 말에 경악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아버지, 제가 왜 본가로 가야 하는데요?”“왕정민과 이혼한 것도 모자라 이젠 하다 하다 이런 기생오라비 같은 놈을 만나? 이 동네에 내 지인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 사람들이 내 앞에서 너를 어떻게 말하는지 아냐고?”이태웅이 노호했다.애교 누나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대꾸했다.“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무슨 상관인데요? 설마 평생 남 눈치만 보며 살아야 해요?”“뭐라고?”이태웅이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애교 누나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누나가 겁에 질린 모습에 나는 다급히 끼어들었다.“아버님, 제가 갈게요. 지금 당장 갈게요. 그러니까 애교 누나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나는 더 이상 애교 누나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얼른 짐을 챙겨 누나의 집에서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수호 씨, 어디 가요?”“누나, 걱정하지 마요. 저도 손발이 있는데, 어디라고 못 가겠어요? 그리고 저 일자리도 있으니 벌어먹고 살 수 있고, 제 몸 건사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요.”말을 마친 나는 이태웅을 한번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그 표정 때문에 방 안 전체에 먹구름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애교 누나의 집에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그 순간 기분은 나락으로 가라앉았다. 너무나도 괴로웠다.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누나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 하니까.형수네 집을 지날 때 나는 일부러 잠깐 멈칫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 본능인 것 같았다.그 뒤로 나는 얼른 건물을 빠져나와 지하 차고로 향했다. 차에 앉은 순간 눈앞이 막막했다.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빨았다. 하지만 이 시간에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그렇게 한 대, 또 한 대 입에 물다 보니 몇 대를 피웠는지 목이 뻑뻑했다.나는 평소에 담배를 별로 피우지 않는다. 이
“내가 용천 호텔에서 이틀 지내면서 적어도 40만 원은 썼거든. 그건 왜 정산해 주지 않는데?”나는 하정현의 손을 뿌리치며 화를 냈다.“용천 호텔은 그쪽 친구네 가업인데, 왜 친구한테 돈 받지 말라는 말은 안 해요?”나는 귀를 세게 문질렀다.‘귀 떨어지는 줄 알았네. 무슨 여자가 손힘이 이렇게 세?’‘가슴은 평평한 게, 손힘은 세네.’하정현은 팔짱을 끼며 억지 부렸다.“내 친구가 무료고 해주든 말든, 그건 내 친구 자유지. 하지만 당신이 나더러 용천호텔까지 찾아가게 한 건, 당신 탓이잖아. 몰라, 배상해. 배상하기 싫으면 내 가슴 커지게 하던가.”대화할수록 화가 나 나는 이를 갈았다.“말했잖아요. 가슴 커지고 싶으면 임신하라고. 그쪽 가슴 작은 건 타고난 거라 아무리 마사지해도 소용없어요.”“소용없으면 전에는 왜 거짓말했어? 내 가슴 만지려고 그랬지? 나쁜 자식, 때려죽일 거야...”하정현은 말하면서 나에게 손찌검했다.‘진짜 미치겠네. 내가 이렇게 다쳤는데 나한테 폭력을 행사해?’게다가 윤지은과 이영미는 옆에서 웃으며 보고 있었다. 딱 봐도 도와줄 마음은 조금도 없는 듯했다.“됐어요. 마지막이에요. 만약 소용없으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요.”나는 너무 시달리다 못해 결국 타협했다.하정현은 양손으로 허리를 잡으며 씩씩거렸다.“진작 그럴 것이지. 하지만, 가슴 키울 방법 찾아내, 안 그러면 끝장 볼 거니까.”“작으면 작았지. 작은 걸 좋아하는 남자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왜 커지게 하려고 애써요?”나는 구시렁거리며 차에서 내려왔다.하정현은 가슴을 쑥 내밀며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가슴이 커야 옷태가 살잖아. 탱크탑, 튜브탑, 그롭탑도 입을 수 있고... 지금처럼 꽁꽁 싸맬 필요 없잖아.”“이게 보기 얼마나 좋아요.”나는 귀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하정현이 갑자기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럼 나랑 사귀자. 그러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알 거 아니야.”“미쳤어요? 나 기분 안 좋으니까 건드리지 마요.”“왜 기분 안
“네 아빠도 나 상관 안 하는데, 네가 왜 상관해?”이영미는 원망하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바로 강조했다.“아빠가 상관 안 하는 건, 엄마를 믿는 거죠. 제가 상관하는 건, 엄마가 함부로 하는 걸 막는 거고.”“내가 언제 함부로 했다고 그래? 내가 저 젊은 총각을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 나 그렇게 가리지 않고 다 만나는 사람 아니야.”“아무튼 안 돼요. 불편하면 제가 해줄게요.”“네가 할 줄 알아?”“왜 몰라요? 저도 한의사예요.”“그럼 안 아파. 나 휴식하러 갈게. 됐지?”이영미는 말을 마친 뒤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 모습에 윤지은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한편, 객실에서 하정현은 자기 가슴을 보며 원망스러운 듯 투덜거렸다.“왜 난 가슴이 이렇게 작은 거지? 다른 사람은 다 큰데. 튜브톱을 입어도 가슴이 받쳐주지 않고. 시멘트 바닥의 껌딱지잖아.”“하느님, 이럴 거면 남자로 태어나게 해주시지, 왜 이런 시련을 안겨주십니까?”하정현은 본인 몸매를 아주 싫어하는 듯했다.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다 난감할 지경이었다.“사실 이 정도면 괜찮아요. 적어도 a컵이잖아요. a도 안 되는 사람도 많아요.”“에이, 설마. 나도 평평한데, 어떻게 이것보다 더 평평할 수 있지?”“진짜예요. 그 정도로 평평한 여자들 정말 있어요.”“나보다도?”“네.”“그런 여자들은 어떻게 결혼한대?”윤지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 질문이 너무 어이없어 나는 머리를 저었다.“그건 저도 모르죠. 사람마다 이상형이 있으니까요. 어떤 남자는 정말 가슴 작은 여자를 좋아해요.”“또 나 위로하는 거지? 내가 남자는 아니지만, 나도 안다고. 남자들은 모두 쭉쭉빵빵한 여자만 좋아하잖아. 나처럼 나뭇가지 같은 몸매는 남자들이 싫어한다고.”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싫어하는 게 확실하다.사실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적 충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물론,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가정했을 때, 가슴이 작은 줄 몰랐다가 알게
‘헐, 이 정도 눌렀는데도 아직 안 느껴진다고?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가슴이 커졌을 텐데.’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결론을 내렸다.“그렇다면 확실히 유전이 맞아요. 이건 방법 없어요. 수술해야 해요.”“우리 엄마는 몸매 좋은데, 왜 나만 이래?”“정현 씨 어머니 몸매가 좋다고 정현 씨 몸매도 좋으리란 보장은 없죠.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수도 있으니까요.”“그럴 수도 있어?”“부모님 중에 한 분이라도 선천적으로 날씬한 분이 계시면, 정현 씨 몸매에도 영향 줄 수 있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가슴 키워준다는 마사지숍은 절대 믿지 마요. 선천적인 건 바꿀 수 없으니까요.”“됐어요. 할 얘기도 끝났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만 가볼게요.”하정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아예 무시했다.내가 방에서 나왔을 때, 이영미도 마침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뒤를 흘긋 보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달려와 물었다.“이봐, 솔직히 말해. 내 딸과 무슨 사이지?”나는 고개를 저었다.“전 윤지은 씨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런데 우리 지은이 왜 저렇게 이상해?”“어머님, 다른 일 없죠?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잠깐만, 있어.”사실 나는 진작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 타이밍에 이영미가 나를 불러 세울 줄은 몰랐다.‘역시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그런데 이미 말을 꺼냈으니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이에요? 만약 마사지를 원하는 거라면 해드릴 수 없어요.”“아무 문제 없는데 마사지는 무슨, 그런 거 필요 없어. 사실은 다른 목적이 있어. 수호 씨 잘하지? 우리 남편 좀 봐줄 수 있어? 그 방면에 문제 있는 게 아닌지?”이영미는 겉으로는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척 신경 쓰고 있었다.특히 매번 찔러 봐도 반응 없는 윤해철이 이상해, 안 되는 건데 부끄러워 말 못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남편 상태 봐달라는 게 목적이었다고?’이영미가 나를 붙잡아 세우고 남편 상태를 봐달라는 부탁을
“뭘 도와주면 돼?”“저 사실 양동준 형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데, 혹시 설득해 주실 수 있어요?”양동준 형님이 윤씨 가문을 위해 일하니까 어머님 도움을 받으면 일이 쉽게 해결될 게 뻔하다.이영미는 그 말을 듣더니 싱긋 웃었다.“그게 뭐 별거라고. 간단하네. 수호 씨가 나 도와주면 양동준은 내가 설득해 주지.”동의를 얻어내고 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그럼 약속한 거예요, 어머님? 지금 가요.”“난 됐어. 수호 씨 혼자 가.”“네? 제가 어떻게 혼자 가요?”“내가 요즘 그이랑 싸우고 있어서 돌아가면 안 돼. 그리고 내가 그런 병 보게 했다는 거 비밀로 해야 해.”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런데 저 아버님을 모르고 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병은 어떻게 봐 드려요?”“내 남편 스케줄을 알려줄 테니까, 기회는 수호 씨가 만들어. 병 다 보면 결과도 나한테 알려주고.”‘그러면 되는구나.’하지만 이건 나에게 테스트나 다름없었다.‘물론 어렵지만, 양동준 형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기 위해서라면, 까짓거 해보지 뭐!’“좋아요, 아버님 스케줄 알려주세요.”나는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그건 이따가 알려줄게. 그리고, 지은한테 비밀로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이영미가 귀띔해 주지 않아도 절대 윤지은한테 알리지 않을 작정이었다.이영미와 대충 상의를 마친 뒤, 나는 윤지은 집을 떠나 다시 차로 돌아왔다.이번에는 더 이상 전처럼 우울하지 않았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걱정되었다. 누나의 아버지는 보기에도 무서운 분이니 애교 누나가 본가로 잡혀갔을 게 뻔했다. 그걸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누나에게 문자라도 보내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또 꾸중을 들을까 봐, 나는 망설여졌다.그렇다고 상황을 물어보지 않기에는 너무 걱정되었다.결국 고민 끝에 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누나, 지금 어때요? 아버님이 누나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죠?][난 괜찮아요. 그래도 내가 친딸이라 너무 몰아붙이지는 않았어요. 그러는 수호 씨는
[나한테도 그래요?]형수의 물음에 나는 양심에 찔렸다.전에 용천 호텔에 있을 때, 형수가 나를 무시한다고 껌딱지처럼 졸졸 쫓아다녔으면서, 형수가 마음을 여니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다니.순간 내가 너무 나쁜 놈처럼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형수를 갖고 논 셈이니까.형수한테 너무 미안했다.“형수, 미안해요. 제가 너무 무능해서 애교 누나한테도 상처를 줬는데, 더 이상 상처 주기 싫어요.”형수는 나를 탓하기는커녕 한숨을 푹 쉬었다.[나도 수호 씨 이해해요. 탓하지 않아요. 적어도 함께했던 시간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지낸다니 아쉽기는 하네요.]나도 형수와 떨어져 지내기 아쉬웠다. 애교 누나도 마찬가지고.하지만 애교 누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다시 마음이 확고해졌다.나는 더 이상 이 동네에 있을 수 없다. 만약 애교 누나 아버지가 알면 내가 누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니까.아직은 능력도 없고 내 잠재력도 보여줄 수 없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동네를 떠나는 거다. 미련 없는 사람처럼.“형수, 진동성 그 인간은 요즘 집에 안 들어와요? 두 사람은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나는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무엇보다 형수의 현황이 걱정되었다.그러자 형수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상관없어요. 이제 신경도 안 써요. 나만 잘 살면 되지, 그 인간이 뭘 하든 관심 없어요. 수호 씨, 지낼 곳은 찾았어요?”형수는 다시 주제를 돌렸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직이요. 방금 핸드폰으로 찾고 있었어요.”[우선 찾지 마요. 잠깐 내 둘째 동생 집에서 지내요. 지난번 용천 호텔에서 내 둘째 매제가 바람피우던 거 기억 나죠?]“네, 왜요? 두 사람 이혼한대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형수가 한숨을 푹 쉬었다.[어디 그것뿐이게요? 그것보다 더 지저분해요. 진용진이 우리한테 본모습을 들키니 아예 내 동생한테 이혼 얘기를 꺼낸 것도 모자라, 내 동생을 빈털터리로 내쫓으려 하고 있어요.][그동안 애들 돌보랴, 시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