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 사람...”왕정민의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윤미화가 눈웃음 치며 물었다.“왜? 아는 사람이야?”“그렇다고 할 수 있죠.”“마침 잘 됐네. 그럼 이번 일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이건 수호 씨가 탐정 사무소에 들어와서 처음 맡는 임무니까 잘해 봐. 만약 결과가 좋으면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줄게.”“됐거든요. 저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않으면 땡큐예요.”나는 지난번 계약서에 사인하던 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사인했더니 인신매매 계약서였다.그때 단번에 1000만 원을 주지 않고, 평소에 팁을 줄 때 관대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면 나는 진작 그만뒀을 거다.“이 자료들은 돌아가서 잘 연구해 봐. 사흘 내로 고객이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으면 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윤미화는 갑자기 테이블에 엎드려 가슴을 쭉 내밀었다.“한동안 나 못 봤는데, 보고 싶지 않았어?”“...”“사장님, 좀 진지해지면 안 돼요?”나는 너무 어이없었다.윤미화는 테이블 밑에서 하이힐로 나를 걷어찼다.“내가 언제는 뭐 안 진지했어? 누나도 아직 매력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 거잖아.”“네, 매력 있어요. 됐죠?”말을 마친 나는 얼른 자료를 챙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윤미화가 나를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무서웠다. 정말 윤미화의 유혹에 넘어가 아랫도리가 반응하면 나만 고생 아닌가?나는 커피숍에서 나온 뒤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원래는 유미 사모님께 연락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바쁠 것 같아 문자를 남겼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그 문자를 보낸 뒤 나는 얼른 집으로 향했다.시간이 늦어 나는 집에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자료를 살펴봤다.솔직히 나는 왕정민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그 인간이 얼마나 계략적이고 간사하고 악랄한지만 알뿐.자료에 나온 내용은 한정적이어서 철저히 조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내가 자료를
어쩐지, 방 2개에 거실 하나 딸리고 이렇게 깨끗한 집이 한달에 22만 원일 리가 있나?“젠장.”나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고는 당장 집주인한테 전화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주선영은 전전긍긍하며 나를 봤다.“선배, 나랑 같이 사는 게 싫으면 내가 나갈게요. 그런데 오늘 밤만 우선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주선영의 불쌍한 모습을 보니 도저히 쫓아낼 수 없었다.이건 집주인 잘못이지 주선영 잘못이 아니었으니.게다가 주선영은 애교 누나 사촌동생이고, 단순하고 여린 아이인데, 혼자 밖에서 지내다가 사기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런 게 바로 인연인가 보다.“됐어. 그냥 여기서 지내. 마침 방도 2개니까 하나씩 나눠 쓰면 되지. 넌 낮에 학교 가고 나는 출근해야 하니까 밤에만 지낼 거잖아.”말을 마친 나는 소파에 앉아 물 한 잔을 들이켰다.주선영은 약간 쭈뼛하게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왜 그래? 또 무슨 일 있어?”주선영은 입을 오므리고 약간 겁먹은 듯 물었다.“선배, 우리 언니랑... 정말 결혼할 거예요?”“꼬맹이는 어른 일에 신경 꺼.”나는 마치 인생 대선배라도 되는 듯 나이를 내세워 위세를 부렸다.“그리고, 우리도 서로 아는 사이인데 내 앞에서 그렇게 눈치 볼 거 없어. 너도 돈 내고 이 집 구한 거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선영이 어색하게 구니 나도 덩달아 어색해졌다.마치 나 때문에 주선영이 긴장한 것 같아서.나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결국 물 한잔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거실에 없으면 주선영이 그나마 편히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얼마 뒤, 밖에서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뭐야? 남자를 무서워하기라도 하나?’나는 별 생가 없이 계속 자료를 훑었다.그렇게 한참 훑어 보다 보니 갑자기 애교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누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한참 생각하던 나는 결국 애교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런데 의외로 애교 누나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수호 씨,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다. 심지어 눈시울이 뜨뜻해지더니 촉촉히 젖어 들었다.나는 쓰라린 마음을 애써 참으며 애교 누나에게 답장했다.[누나, 그런 말 하지 마요. 저 아직 노력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에요. 아직 우리 사랑을 위해 분투해보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겠다니요? 안 돼요!]내가 사랑에 목매는 스타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애교 누나를 이미 선택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니 애교 누나한테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난 누나 아버지가 가해오는 압력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누나가 그만두자는 말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그러면 모든 동력을 잃게 될 테니까.그때 애교 누나가 답장을 보내왔다.[그런데 난 수호 씨가 고생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떡해요? 내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수호 씨도 이런 압력 견딜 필요 없는데, 우리 아버지 신분이 워낙 특수하잖아요.]나는 얼른 문자를 적었다.[전 무섭지 않아요. 제가 꼭 노력해서 아버님 동의 받아낼게요. 누나, 앞으로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요. 그러면 저 진짜 노력할 동력도 잃어요.]애교 누나는 나에게 짤막한 답장을 보내왔다.[바보.]그 두 글자를 보니 왠지 마음이 달콤해졌다.나는 애교 누나가 이런 말투로 말하는 게 좋다. 그런데 지금 이런 말투를 다시 들으니 누나가 마치 내 옆에 있는 것만 같았다.그 뒤로 한참 더 얘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누나가 갑자기 어머니가 식사하자고 부른다며 다음에 얘기하자고 했다.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다녀와 잘 준비를 하려고 했다.방에서 나와 보니 거실은 어두컴컴했고 주선영도 없었다. 보아하니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나는 곧장 화장실로 걸어갔다.밖에서 볼 때 화장실도 어두컴컴했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화장실 불을 켰다.그런데 다음 순간, 뽀얀 나체가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젊고도 활력이 넘치는 몸은 누나들
“방금 전 일은 너랑 나만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몰라. 걱정하지 마. 무조건 남자 친구 사귈 수 있을 거야.”주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만 더 난처해졌다.“저기, 너 먼저 씻어. 난 먼저 방에 가 있을게. 이따가 다 씻으면 말해 줘. 화장실 가고 싶으니까.”말을 마친 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혼자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화장실 가는 것도 기다려 줘야 한다니.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주선영의 풋풋하면서도 예쁜 몸이 떠올랐다.‘어린 여자는 또 이런 매력이 있구나.’‘젊어서 그런지 생기가 넘치고 피부도 유독 좋았었지...’‘이래서 나이든 남자들이 그렇게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거구나.’온몸을 꽉 채운 콜라겐은 나이 든 여자들이 따라올 수 없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아랫도리가 괴로웠다.나는 얼른 헛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썼다.주선영은 누나들처럼 내가 괴로워한다고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상대는 아직 어린 소녀라 연애 경험도 없다. 그런데 이 난감한 아랫도리 상황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보기 흉할까?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가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밖에서 문이 활짝 열렸다.나는 얼른 담요를 당겨 내 아래를 덮었다.그런데 목까지 빨개진 주선영 얼굴을 보니, 그녀가 이미 모든 걸 봐 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나는 순간 화가 났다.“왜 갑자기 내 방에 들어와?”주선영은 다급히 뒤로 물러나더니 전전긍긍하며 말했다.“아, 아까 다 씻으면 화장실 가겠다고 알려달라면서요.”“그래, 알았어. 넌 이만 가 봐.”왜 그런지 주선영 앞에서는 상냥해질 수가 없다. 다정함보다는 카리스마 있고 남자다운 모습을 자꾸만 보여주고 싶다.주선영은 홍당무가 된 얼굴로 뒤돌아서더니 쪼르르 도망쳤다. 아마 난처하고 부끄럽겠지.나는 마음을 추슬렀다. 어찌 됐든 간에 화장실은 가야 하니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거실로 나왔을 때 주선영도 마침 방에서 나왔다.심지어 거실 불은 이미 환하게 켜져 있었다.나는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벌거벗은 채로 뻣뻣하게 서 있었다.주선영도 내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그 표정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다만 주선영의 시선은 내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눈을 떼지 못하는 것처럼.흠칫 놀란 나는 얼른 손으로 그곳을 가리며 사과했다.“미안해. 자는 줄 알고...”이 순간 내가 등신처럼 느껴졌다.나는 말을 하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너무 쪽팔리고 난처해 미칠 것만 같았다.아까는 실수로 상대 몸을 다 봐 버리고, 이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상대 앞에 나타나다니.‘주선영이 설마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나는 생가 할 수록 화가 나, 스스로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왜 팬티 한 장 걸치지 않았어? 이제 쪽팔려서 어떡해?’내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주선영은 이미 방으로 돌아갔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른 내 방으로 숨어 들었다.어찌 됐든, 지금 상황에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 어색하니까.나는 숨을 죽이고 주선영 방 쪽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 기척이 없는 걸 봐서는 주선영도 겁을 먹고 잠든 모양이다.결국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그날 너무 피곤했는지, 나는 해가 중천에 뜬 뒤에 깨어났다.오늘 임무가 있기에 나는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집 아래에서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다.어제처럼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는 꽁꽁 가리고 나왔다.내가 나왔을 때 주선영은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었다.주선영은 깜찍한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 각도에서 보니 그렇게 사랑스럽고 앳되 보일 수가 없었다.순간 나는 또 마음이 흔들려 얼른 시선을 돌렸다.‘내가 왜 자꾸 이러지? 왜 자꾸 어린 여자애 몸을 떠올리는 거야? 여자친구도 있는 사람이.’나는 스스로 나를 꼬집으며 헛된 생각을 하지 말라고
전승빈은 왕정민이 그동안 환심을 사려고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왕정민은 자기가 그동안 한 짓을 장인어른이 이미 눈치챘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이러고 보니 애교 누나가 왕정민과 이혼하고, 쓰레기한테서 빨리 벗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지 않으면 지금 상처받은 사람은 오히려 애교 누나였을 테니.내가 왕정민 회사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인데, 회사 규모가 의외로 꽤 컸다.사실 회사 직원은 고작 2, 30 명 정도가 끝인데 왕정민이 회사를 너무 으리으리하게 장식한 탓이었다.나는 외진 곳에 차를 세워 두고 회사 방향을 계속 관찰했다.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지만 왕정민의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왕정민의 현 아내 전소희가 모습을 드러냈다.전소희는 확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꽤 예쁘장했다. 전소희가 불룩한 배를 감쌈 회사에서 나오자 나는 얼른 그녀의 뒤를 밟았다.물론 왕정민의 행방을 아는 건 아니지만 전소희를 따라가다 보면 왕정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그렇게 한참 미행하다가 도착한 곳은 병원 산부인과였다. 그렇다는 건 내가 헛걸음을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하지만 내가 떠나려고 할 때,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품에 미녀 간호사를 안은 채.그 간호사는 늘씬하고 훤칠했으며 얼굴은 전소희를 압살했다.그 순간 왕정민이 전에 동성 형과 여자를 서로 바꿔서 놀자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왕정민 품에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동성 형의 바람상대 진소민이었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연거푸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조용히 왕정민 뒤를 밟았다.왕정민은 그 간호사와 함께 근처 호텔로 향했다.나는 두 사람이 들어간 방 번호를 확인한 뒤 곧장 병원 산부인과로 돌아갔다.나는 이 사실을 진소희한테 알려줘, 그녀더러 왕정민을 상대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진소희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호텔로 돌아가 문 밖에서 지켰다.아까 두 사람이 함께 호텔로 들어가는
윤미화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아까는 그저 왕정민한테 복수할 생각에 눈이 멀어 다른 건 고려하지 못했다.‘역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네.’나는 얼른 말했다.“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다음 번에는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게요.”[그래. 지난 경험을 교훈으로 삼을 줄 알면 됐네. 목표물 잘 주시해. 될수록 증거 더 수집하고.]그 말에 나는 문득 의아했다.“증거는 이미 손에 넣었잖아요?”[고작 사진 몇 장으로 뭘 설명할 수 있는데? 상대가 변호사를 고용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잡아서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걸 증명해야 해.][예를 들면 두 사람이 콘돔을 산다거나, 아니면 침대 위에 있는 사진이면 더 좋고. 직접적 증거는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자기가 직은 건 그냥 간접적 증거지.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어.]‘이 바닥에도 뭔 요령이 이렇게 많아?’윤미화는 말을 이었다.[이혼 소송은 쉽지 않아. 특히 한쪽이 바람 피운 상황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증거를 채택하면 오히려 역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어. 시간 날 때 관련 영상 많이 봐 둬. 여기 물 깊어나는 속으로 감개했다. 그래도 애교 누나와 왕정민이 이혼할 때는 깔끔하게 끝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만약 왕정민이 계속 애교 누나에게 질척거리면 애교 누나는 얼마나 고생해야 할지 모른다.“알았어요. 왕정민 뒤는 계속 밟을게요.”통화가 끝난 뒤 나는 차에 올라 또 다시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그때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다름 아닌 유미 사모님이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무슨 일이예요? 혹시 사장님한테 무슨 일 있어요?”[아니에요. 호섭 씨는 방금 잠들어서 나 혼자 밖에 앉아 있어요.]사모님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깜짝 놀랐어요. 또 무슨 일 있어서 전화했나 하고.”[수호 씨, 호섭 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한약관 일은 수호 씨가 좀 신경 써 줘요. 사실 호섭 씨한테 자꾸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민우한테 모든 걸 설명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됐다. 다른 건 몰라도 민우가 또 싸움은 꽤 하니까.왕정민 쪽 증거도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수집하여 한의관에 빨리 복귀할 생각이었다.정 사장님이 평소에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는데, 사장님한테 일이 생긴 마당에 별 도움이 되진 못하더라도 한의관만은 잘 지켜 주고 싶었다.왕정민의 회사 밖에서 한참 동안 진을 치고 기다렸지만 아무 수확이 없었다. 게다가 그 간호사가 떠나자 왕정민은 또다시 애처가 이미지로 돌아왔다.나는 마음이 다급했으나, 일을 시작했으면 완벽하게 할 생각이었다.나는 항상 이렇다.그날 주구장창 회사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더니 저녁때가 되어서야 왕정민의 차가 회사를 떠났다.하지만 왕정민은 곧장 병원으로 가지 않고 그린 파크에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몰래 왕정민을 따라 한 별장 문 앞에 도착했더니, 별장 문이 열리면서 그 간호사가 나타났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고 연달아 사진을 찍어댔다.‘오호라. 그 간호사한테 별장까지 사줬어?’‘이러면 빼도 박도 못 하겠지.’하지만 나는 서둘러 떠나지 않고 두 사람이 들어간 뒤 별장 가까이 다가갔다. 창문을 통해 더 자극적인 장면이라도 촬영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두 사람은 며칠을 굶주린 사람 같았다. 두 사람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가 급기야 옷까지 모두 벗어 던졌다. 그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전에 윤 사장님이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마침 잘된 셈이었다. ‘온통 증거네. 아주 굴러들어 오는구먼.’나는 일처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동영상까지 찍었다. 하지만 영상을 고작 1분 찍었을 때, 왕정민은 시들어 버렸다.그 순간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고작 이 정도면서 집에 여자를 숨겨?’‘몇억짜리 별장에 내연녀를 숨겼는데,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분이라니. 대체 뭘 바라고 이러나 몰라.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