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의 얼굴은 먹구름이 내려앉은 듯 어두웠다. 형수는 피식 냉소를 지으며 비꼬듯 말했다.“했다. 어쩔래?”진동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젠장. 진짜 했어?”형수는 일부러 진동성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듯 말했다.“그래. 했어. 그 사람 사이즈가 네 것보다 훨씬 컸어. 네 건 이쑤시개 같지만.”나는 이 상황에서도 사람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형수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그건 진동성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안 그래도 그곳이 선천적으로 작아 매번 형수를 만족시켜 주지 못해 점점 자신감을 잃었었다.그동안 진동성과 함께 지내왔기에 형수는 그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닥쳐. 고태연, 낙 계속 몰아붙이면 나도 최우의 카드를 꺼낼 거야.”형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그건 형수의 치명적인 약점이 맞았다.진동성은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정수호, 너도 들었지?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이런 여자야. 남자를 밝히는 천것이라고!”나는 진동성이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의심 많은 것도 모자라 상상력도 풍부하고 열등감에 찌든 데다 예민하기까지 하고. 그런 주제에 남의 부러움을 받기를 원하는 허영심 많은 인간이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진동성, 아프면 치료해. 정신과에 좀 가 봐.”말을 마친 나는 고개를 돌려 형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형수, 진동성 손에 형수에 관한 영상이 많지 않나요? 그 영상 인터넷에 올리라고 해요. 사람들이 형수를 비웃을지 아니면 짧고 기술도 없는 진동성을 비웃을지 보자고요.”다행히 방금 형수의 말이 나에게 이런 영감을 안겨줬다.진동성이 형수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는 하지만 형수도 진동성의 약점을 알고 있다.형수가 무서워하는 건 영상이 유출되면 사람들이 제 몸을 볼까 봐 걱정되어서다.하지만 영상에 진동성도 나오는데, 진동성의 가장 큰 약점은 사이즈가 작은 거다. 그렇다면 진동성 역시 그걸 다른 사람한테 들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런데 진동성이 형수의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형수한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니 형수도 더 이상 걱정될 게 없었다.“고태연, 너...”진동성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너’만 한참을 반복하다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형수는 방으로 들어가 짐을 정리했다.“오늘부터 다시는 나 협박할 생각하지 마. 수호 씨, 나 짐 정리 좀 도와줘요. 오늘 바로 여길 떠날 생각이에요.”형수의 말에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달려갔다.그러자 진동성이 나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네가 감히! 우리가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거 잊었어? 내가 동네 주민들한테 널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나는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싸늘한 표정으로 진동성을 바라봤다.“말해. 난 상관없어.”“네가 상관없다고 네 부모도 그럴까? 마을 사람들이 네 가족을 욕해도 괜찮아?”나는 진동성의 멱살을 잡았다.“그렇게 해 봐. 날 벼랑 끝으로 몰면 난 뭐든 할 수 있어.”진동성은 무서워하기는커녕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고태연한테 이제 약점이 없다 해도 넌 달라. 정수호, 넌 나 대시 고태연을 여기 남도록 설득해야지. 예전처럼 내 말이면 무조건 복종하란 말이야.”“내가 왜 너 같은 쓰레기를 도와야 해?”진동성은 내 손을 뿌리치고 피식 웃었다.“내가 모를 줄 알아? 두 사람 진작 붙어먹었잖아.”진동성은 이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역시나 나와 형수가 했던 추측이 맞았다. 진동성은 나더러 왕정민을 모함하라고 할 때부터 나와 형수를 함께 모함할 작정이었다.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진동성을 바라봤다.“난 안 도와줄 거야. 하지만 마을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면 절대 가만 안 둬.”말을 마친 나는 진동성을 무시한 채 형수를 도와 짐 정리를 시작했다.우리가 떠나려 하자 조급해진 진동성은 형수 앞을 막아섰다.“고태연, 잘 생각해. 네 동생도 지금 이혼소송 하는 마당에 너까지 이혼하면 네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겠어?”짝!말이 떨어진 순간 형수는 진동성의 뺨을
“형수...”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제가 형수를 찾아가겠다는 건 다른 일 때문이에요. 몸만 노리는 건 아니에요.”형수는 이내 입을 삐죽거렸다.“이제 최남주가 있다고 난 거들떠도 안 본다 이거예요?”나는 얼른 형수의 손을 잡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주 누나는 남주 누나고, 형수는 형수예요. 형수는 제 마음속에서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요.”그 말을 들은 후에야 형수의 표정은 조금 풀리는 듯했다. 곧이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바라봤다.“최남주는 방금 만족시켜 줬으면서 난 언제 만족시켜 줄 거예요?”형수의 몽롱하고 매혹적인 눈빛만 봐도 형수는 나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럴 수 없었다.나는 다급히 시동을 걸었다.“형수, 형수 동생네 집으로 데려다줄게요.”형수는 내가 일부러 피하는 모습에 나를 덥석 잡았다.“거짓말. 분명 수호 씨도 느끼고 있으면서...”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방금 남주 누나와 몸을 섞었는데, 왜 또 이렇게 된 건지?형수는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수호 씨는 운전해요. 내가 도와줄게요...”“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나는 다급히 거절했다.하지만 형수는 이미 나에게 손을 뻗었다.“사람 없는 곳에 차 세우면 안 돼요?”30분 뒤.형수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닦았다.“역시 수호 씨는 대단하다니까요. 나 결심했어요. 진동성과 이혼하면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그냥 남자 만나 애만 낳을 거예요. 수호 씨가 이렇게 잘하니까 나 좀 도와줄래요?”“형수, 농담하지 마세요. 지금 제 아이를 낳아주겠다는 거예요?”나는 도저히 내 기를 믿을 수 없었다.형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안 돼요? 난 애만 원해요. 그러니 상대가 누구든 괜찮거든요.”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안 돼요. 애교 누나가 알면 어떻게 설명하라고요? 애교 누나가 동의해도 누나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형수는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째려봤다.“그럼 애교한테 비밀로 하
고수연은 소파에 기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누가 정신을 못 차린대? 난 그냥 남자가 고플 뿐이야.”“크흠...”그 말에 나는 난감하고 어이없어 헛기침했다.‘고씨 자매는 뭐 다 이렇게 개방적이지?’“형수, 휴식해요. 전 이만 갈게요.”나는 얼른 핑계를 대 떠났다.내가 떠난 뒤 형수는 고수연 옆에 앉아 위로했다.“남자가 고프면 나가서 찾으면 되지. 진용진도 여자를 만나는데 너라고 왜 못해?”“내가 언니인 줄 알아? 언니는 자식이 없어 걱정할 거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내가 언니처럼 하면 우리 애들은 어떡해?”형수는 끝까지 부인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난 네 언니야. 말조심해.”고수연은 헤실 웃었다.“내숭은. 언니 정수호 씨랑 뭐 있잖아. 진동성이 언니를 만족시켜 주지도 못하고 언니한테 잘해주지도 않으니 따로 언니한테 잘해주는 남자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잖아. 사실 난 가끔 언니가 부러워. 여자가 아이를 안 낳으면 참 편해. 그러니 언니도 앞으로 낳지 마.”“난 아이가 갖고 싶어. 아이가 없는 게 나한테는 한이야.”고수연은 형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한은 무슨 고민만 늘어나. 언니가 진짜 아이가 생기면 남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 매일 아이 옆에 붙어있어야 해. 내 말 믿어, 언니. 여자는 혼자 자유롭게 살 때가 제일 좋아. 절대 아이 낳지 마.”말을 마친 고수연은 하품을 하더니 자러 방으로 돌아갔다.형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동생이 한 말을 되새겼다.고수연이 겪은 걸 직접 겪어보기 전에 형수는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여전히 아이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적어도 나중에 기댈 곳 하나는 있어야 하니까.나는 형수의 생각을 알 리가 없었다.형수를 바래다준 뒤 나는 월세방으로 향했다.방에는 아직도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현성은 주선영의 방에 눌러붙어 조잘조잘 뭔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선영아, 내가 난 말이지. 학교 다닐 때 성
내가 말한 건 현성을 도와 주선영의 마음을 얻겠다는 뜻이지 상대의 감정을 갖고 놀라는 뜻이 아니었다.현성은 내 말에 흥분해서 날아갈 듯 대답했다.“당연하지. 수호야, 민우 말을 들어 봤더니 너 여자 엄청 잘 꼬신다며? 내가 주선영 꼬시는 거 도와주면, 내가 널 아버지라고 부를게.”“헐. 누가 너 같은 아들 갖고 싶대?”“수호야, 도와줘. 나 좀 도와주라.”현성은 내가 지푸라기라도 되는 듯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나는 우선 현성을 침착하게 하고 입을 열었다.“내가 이러는 건 너랑 주선영이 어울릴 것 같아 하는 말이야. 그런데 네가 만약 선영이한테 상처 주면...”현성은 얼른 맹세했다.“걱정하지 마. 난 절대 선영이한테 상처주지 않아. 내가 선영이를 상처 주면 평생 고자로 살게.”‘각오가 이 정도라고?’보아하니 현성도 진심인 모양이었다.하긴, 그동안 현성은 한번 빠졌다 하면 모든 걸 올인해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다만 운명의 장난인지 상대는 항상 현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현성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왔지만 외모가 평범하고 키와 몸무게 모두 175다.요즘 젊은 애들은 외모지상주의라 현성처럼 빼어나지 않는 외모는 당연히 득을 보기 어렵다.하지만 현성이 얼마나 사람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졸업도 하기 전에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H시까지 갔을 리 없다.비록 마지막에 상대가 현성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현성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때문에 나는 현성과 민우처럼 사랑에 올인하는 스타일과 비교하니 내가 너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인생은 참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난 예전에 수줍음을 많이 타고 내성적인 사내였는데 지금은 두 연애고수의 멘토 노릇을 하고 있다.“그래. 그런 각오만 있다면 도와줄게. 하지만 오늘은 늦었으니 우선 자자. 나 진짜 피곤해.”나는 오늘 하로 너무 피곤했던 터라 연신 하품했다.나와 민우가 방에 들어오자 순간 케케한 냄새가 우리 코를 찔렀다.현성은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
“오늘 올 수 있어요?”사모님의 말에 나는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당연히 가야죠. 지금 1단계 치료가 끝났으니 몸조리가 엄청 중요해요. 절대 중도에 포기하면 안 돼요.”“하하.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에요.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미 보냈어요.”사모님은 달콤한 말투로 말했다.듣기 좋은 목소리에 나는 순간 마음이 두근거렸다.사모님은 지금껏 나한테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이토록 가벼운 말투로 말한 적은 더더욱 없다. 때문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나중에야 사모님이 왜 이런 태도로 나를 내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제 치료를 끝낸 후 사장님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던 모양이다. 사장님 상태가 좋아지니 사모님도 따라서 기뻤던 거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좋아졌던 거였다.하지만 아직 몰랐던 나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나는 속으로 사모님한테 두근대면 안 된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며 마음을 다잡았다.“그럼 이따가 아침 식사하고 갈게요.”“그래요.”사모님과의 통화가 끝난 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오늘 유독 늦게 깨어나는 바람에 이 시각 나는 혼자 남아 있었다.나는 아래층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곧장 사모님 댁으로 향했다.사모님은 오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보였다. 오랜만에 예쁘게 화장한 것도 모자라 평소 가장 즐겨 입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면모를 보여주었다.나는 순간 인터넷에서 봤던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강남시 여자는 한 폭의 섬세한 수묵화처럼 온화하고 조용하며 청순하고 우아하다. 얼굴은 마치 봄날의 햇살 같고 눈매에 걸린 은은한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이 세상에 아마 사모님보다 더 온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사장님도 참 복이 있는 듯싶다.사모님은 사장님의 병세가 호전된 게 기분이 좋아 자신을 정성껏 꾸민 것일 거다. 역시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꾼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이것만으로도 사모님이 사장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나는 급히 구석진 곳에 몸을 숨겨 변석훈의 명함을 꺼냈다.며칠 동안 요양한 덕분에 내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때문에 이제 변석훈을 찾을 때도 됐다.하지만 나는 양동준과 했던 열흘간의 약속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내가 양동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지켜야 할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우선 양동준에게 먼저 전화해 현재 상황을 말할 생각이었다.“동준 형님, 지금 어디예요?”“백조의 후수.”그 대답에 나는 일순 멍해졌다.백조의 호수라면 사장님과 사모님이 살고 계신 동네다.나는 다급히 물었다.“형님도 백조의 호수에서 사세요?”“아니요.”“그럼 이곳에서 뭐 하세요?”“임천호 쪽 사람을 감시 중이에요.”그 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방금 임천호 쪽 사람이 나를 미행하는 걸 발견한 것도 놀라운데 그 뒤에 양동준까지 있다니 너무 충격이었다.이건 말하지 않아도 윤지은의 명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윤지은이 일부러 동준 형님을 보내 나를 지켜주려는 건가?’“동준 형님, 정확한 위치가 어디예요? 제가 찾으러 갈게요.”나는 양동준을 찾아가 정확히 묻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찾으러 갈 테니까.”얼마 뒤, 양동준의 그림자가 나 시선에 들어왔다.양동준을 본 순간 나는 순식간에 안심이 되었다.“동준 형님, 혹시 윤지은 씨가 형님을 여기에 보냈어요?”나는 양동준을 보자마자 다급히 물었다.양동준은 워낙 냉담한 성격이라 말하는 것도 조급하지 않았다.“네.”정말 윤지은이라니.“지은 씨가 정말 동준 형님을 보내 저를 지켜주라고 할 줄은 몰랐네요.”“김칫국 그만 마셔요. 아가씨는 나더러 수호 씨를 지키라고 한 게 아니라 임천호가 뭘 하려는 건지 지켜보라고 한 거예요.”비록 그렇다지만 난 이것조차 나에 대한 보호라는 걸 알고 있었다.때문에 속으로 윤지은에게 고마웠다.“동준 형님, 열흘이 흘렀는데 형님이 말한 수준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만약 양동준이 갑자기 나한테 웃어준다면 난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고 느꼈을 거다.“실력이 되면 그때 얘기해요.”“동준 형님, 그럼 볼일 봐요. 전 더 방해하지 않을게요.”나는 양동준 앞에서 배알이 조금도 없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졌다.양동준과 헤어진 뒤 나는 변석훈에게 전화해 얼른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그래.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변석훈은 나한테 주소를 보냈다.나는 그 주소를 적어 둔 후 이따가 찾으러 가기로 결심했다.사모님과 사장님은 한참 동안 산책했다. 그러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나는 얼른 사장님을 안으로 밀고 갔다.사장님은 너무 더워 땀을 흘렸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슬립으로 갈아입었다.사모님이 걸어 다닐 때마다 사모님 다리에 있는 날개를 활짝 편 나비가 자꾸만 내 눈에 들어왔다.나비가 움직이는 모습은 그날 내 눈앞에서 하늘거리던 나비와 똑같았다. 거기에 사장님이 전에 사모님이 용천 호텔에 다녀온 후로 사람이 변한 것 같다던 말을 연상하니 나는 그날 밤 나랑 산 사람이 사모님이 아닐까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결국 나는 사모님께 살짝 떠보기로 했다. 나는 일부러 화장실에 가 사모님 가까이로 다가갔다.“사모님,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사모님은 내가 화장실로 들어와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뭔데요?”“사모님이 용천 호텔에 다녀오신 뒤로 이상해졌다고 사장님이 그러셨는데, 혹시 그날 제 그런 모습을 봐서 그래요?”나는 너무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사모님이 또 나를 무시할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은 그 말에 얼굴이 화르르 타올랐다.“그, 그런 말 하지 마요. 내가 수호 씨 거기를 본 걸 우리 그이가 알면 얼마나 난감해요.”사모님은 고개를 숙인 채 내 눈을 피했다. 하지만 사모님의 백옥처럼 투명하고 흰 피부는 한번 보니 도저히 시선을 옮길 수 없었다.나는 그날 밤 그 나비를 본 것 외에 상대의 피부가 사모님처럼 하얀지 기억을 더듬었다.하지만 그날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