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화

Author: 스매시모찌
데일리 리뷰 미팅.

주희재 팀장이 회의실 앞에 서서 담담한 얼굴로 당일 실적을 리뷰했다.

“오늘은 전반적으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 트레이딩본부도 역대급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다른 부서와 비교했을 때 리스크 관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게 이뤄졌습니다. 오늘 손실은 내일 전략 조정으로 만회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규 매매 외에 별도로 보고할 만한 트레이딩 이슈는 없습니까?”

한 트레이더가 곧바로 대답했다.

“네, 팀장님. 오늘은 지수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여서 사전에 마련해 둔 시나리오대로 주요 섹터 위주로 헤지 포지션을 운용했습니다. 위험 노출 관리 차원 외에는 특별한 대응은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이번 하락세가 며칠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내일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오늘 하루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모두 조금 일찍 퇴근하도록 합시다.”

순간 회의실 안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

‘와, 조기 퇴근이라고? 완전 개이득이지! 빨리 집 가서 레이드 뛰어야겠다. 게다가 길드장도 오늘 꼭 약속 시간에 접속하라고 문자까지 보냈단 말이야!’

소현성의 가슴이 괜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세상일은 이상하게도 모두가 깊이 잠든 사이에 터지곤 한다는 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까닭은 단순하다. 지구는 둥글고,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쪽에서 모두가 코를 골며 자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천지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 비비며 휴대폰을 열어보는 순간 지구 반대편, 당신과는 전혀 다른 시차 속에서 이미 세계 질서를 바꿀 만한 격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해가 뜨기도 전, 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불야성을 이뤘다.

뉴스를 접하자마자 잠을 포기하고 달려온 트레이더들이 모니터 앞에 둘러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얼굴은 굳어 있었고 몇몇은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해진 채 키보드를 두드렸다.

사무실 공기 전체에 불안이 짙게 내려앉아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긴장감이 사무실 안을 휘감았다.

“팀장님, 팀장님! 기사 보셨습니까? 폭탄 같은 뉴스가 터졌습니다!”

젊은 트레이더 한 명이 주희재의 사무실 문을 거의 부수듯 열고 뛰어 들어왔다. 얼굴에는 충격과 불가사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네, 봤습니다.”

주희재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평온해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은 힘줄이 두드러질 만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인니시아 정부, 미친 거 아닙니까? 이런 큰 폭의 조치를 예고도 없이 내다니. 기습도 이런 기습이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무슨 속셈이란 말입니까!”

또 다른 트레이더가 사무실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책상을 내려쳤다.

그렇다. 바로 전날 밤, 광한국 대부분 국민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그 시각,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그야말로 불시에 떨어진 폭탄과도 같았다. 아니, 폭탄이라는 비유로는 부족했다. 금융시장, 특히 최전선에서 싸우는 트레이더들에게는 예고 없는 규모 8급 대지진이나 다름없었다.

[인니시아 정부, 심야 전격 발표: 오늘부터 니켈 원자재 공급량 30% 축소. 관련 수출 통제 조치 즉시 시행.]

인니시아는 전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나라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 경제 상황과 수요 위축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단기적인 공급 과잉이 발생했고 국제 니켈 가격은 끝없이 미끄러졌다. 인니시아 역시 그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시장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예측이 있었다. 인니시아 정부가 5% 안팎의 감산이나 ‘시장 안정’ 수준의 발언 같은 상징적인 조치를 내놓을 거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이들이 갑작스레 판을 통째로 뒤엎어 버린 것이었다.

“5% 줄였다면 다들 ‘그럴 만하다’고 넘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이건 뭐... 30%라니요. 제정신입니까? 시장에 어떤 충격이 올지 알기나 하고 내린 결정일까요!”

한 트레이더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게요. 최소한 사전 시그널이라도 줬어야죠. 아무 일 없을 것처럼 가만있다가, 느닷없이 이런 기습이라니... 말이 됩니까?”

또 다른 이가 분통을 터뜨렸다.

전 세계 최대 니켈 공급국이 수출 물량의 30%를 줄인다는 것은 단순한 충격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고요한 호수에 수류탄을 던진 격이었다.

그 여파는 글로벌 니켈 공급망은 물론, 에너지와 소비재 전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폭풍으로 번져 갈 것이 뻔했다.

그만큼 인니시아 정부가 현재의 니켈 시장 상황을 더는 감내하지 못하고 결국 가장 극단적이고도 과격한 해법으로 판세를 뒤집으려 했음을 방증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번 조치의 여파는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니켈 공급망에는 대규모 공백이 발생했고 특히 니켈 의존도가 높은 이차전지 산업은 단숨에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시장의 총체적 비관론 속에 ‘끝났다’는 평가를 받던 배터리 섹터가, 이번 돌발 사태로 인해 정반대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일괄적으로 수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터리 업체라고 해서 전부 수혜 종목이 되는 건 아닙니다.”

주희재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회의실의 소란을 끊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원재료 재고가 없는 회사들은 원가가 로켓처럼 치솟는 걸 버티지 못하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할 겁니다. 반대로 창고에 니켈 원광을 쌓아둔 회사라면... 단숨에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되겠죠.”

그의 시선이 방 안을 훑자, 트레이더들의 얼굴은 한층 더 굳어졌다.

그러나 지금 방 안을 압도하는 공포의 근원은 따로 있었다. 더 이상 ‘누가 실적을 올리냐’의 문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트레이딩본부 내 상당수 팀의 트레이더들이 배터리 섹터 주가가 추가 하락할 거라 보고 이미 전날부터 대규모 숏 포지션을 깔아뒀다는 사실이었다.

즉 숏 사이드에 올인한 상황에서 판세가 뒤집힌다면 그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트레이더들에게는 곧장 ‘아웃 통보’로 이어질 만큼 치명적인 재앙이었다.

“리서치본부 쪽에서 니켈 재고 있는 회사 리스트 안 올렸습니까?”

주희재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종목이 진짜 수혜주인지!”

“네, 팀장님. 아직 정리된 리포트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서치본부와의 소통을 담당하던 트레이더가 허겁지겁 대답했다.

“리서치본부도 지금 방금 뉴스 및 각종 기사에서 데이터 긁느라 난리인 모양입니다. 다만... 방금 확인된 얘기로는 국내 니켈 원광 비축량이 가장 크게 잡혀 있는 배터리 회사가 단 한 군데뿐이라고 합니다.”

“한 군데뿐이라고?”

한 업체밖에 없다는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주희재의 혼란스러운 뇌리를 벼락같은 섬광이 가르듯 스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웃으며 앞으로는 거들떠보지도 않기로 했던 이름 하나가 지금은 뜨겁게 달궈진 낙인처럼 그의 의식 깊숙이 박혔다.

순간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아니, 설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희재의 갈라진 목소리가 바짝 마른 숨결과 함께 흘러나왔다.

“덴, 덴미안입니까?”

부하 직원이 잠시 멈칫하더니 곧 눈빛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팀장님, 역시 감이 남다르십니다. 바로 덴미안입니다. 저도 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장이 열리면 곧장 상한가 직행할 거라고 합니다. 심지어 연속 상한가를 전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

주희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허공을 멍하니 응시한 채, 굳은 동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을 가득 메운 웅성거림, 거친 숨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까지, 한순간 모든 것이 공중으로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팀장님?”

부하 직원이 조심스레 불러봤지만, 주희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순간 주희재의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건 오직 ‘소현성’이라는 이름 하나와 어제까지만 해도 ‘철부지, 망나니, 낙하산’이라 욕하며 치부했던 그 신입의 모습뿐이었다.

‘소현성... 그 도련님티 팍팍 나는 낙하산, 어제 그 신입이 모의 계좌에 있던 자금을 죄다, 그것도 어처구니없게 덴미안이라는 기피 종목에 몰방했었지.’

순간 서늘한 전율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소현성 씨가? 정말 아무런 경력도 없는 그 신입이 뭘 알고 이런 배팅을 했을까? 이런 일이 터질 거라고 예견이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그래서였구나...”

그제서야 어제 하루 동안 소현성이 보였던 반응들이 뇌리를 쳤다.

‘그래서 어제 조기 퇴근하라고 했을 때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웃고 있었던 건가? 그때는 그저 얄밉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단순히 집에 일찍 가서 좋아한 게 아니었어! 그건... 마치 제 꾀에 잔뜩 취한 족제비 같은... 진짜 승자의 웃음이었어!’

인니시아 정부의 이번 기습은 예고조차 없는 말 그대로 ‘발작’에 가까운 초강수였다.

그들 같은 평범한 트레이더는 물론 전 세계 최정상급 리서치 기관이나 소위 정보 부서조차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증권가에는 관련 풍문 한 줄조차 돈 적 없었다.

‘그런데...’

주희재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거대한 물음표가 가슴을 짓눌렀다.

‘그 낙하산... 어제까지만 해도 가장 기본적인 분산 투자조차 무시하고 허송세월하던 그 애송이가... 도대체 어떻게 미리 정보를 입수했던 걸까? 게다가 올인이라는 그 미친 확신은 어디서 나온 거지?’

머리카락이 서늘하게 곤두섰다. 차가운 전율이 척추를 타고 치솟아 두피를 파고들었다.
Patuloy na basahin ang aklat na ito nang libre
I-scan ang code upang i-download ang App

Pinakabagong kabanata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100화

    트레이딩본부 7팀 직원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졌다.숨소리는 가빠졌고 얼굴에는 극도의 충격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그 표정에는 믿기 힘든 환희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 못 하는 멍한 기색이 공존했다.눈빛마저 흐릿해져 마치 집단으로 환각제라도 들이킨 듯 반쯤 영혼이 날아가 버린 모습이었다.“티, 팀장님...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아신 겁니까?”팀원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물었다.그 시선은 마치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예언자를 바라보는 듯 경외로 가득했다.“와... 팀장님, 진짜... 신이십니다. 대박이네요.”다른 팀원은 거의 욕설에 가까운 감탄을 터뜨렸다.그리고 또 다른 팀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낮게 속삭였다.“설마... 혹시 금융위원회 쪽에... 아는 분이 있으신 겁니까?”소현성은 그 말에 순간 기침이 튀어나올 뻔했다.‘아는 분이 있냐고? 무슨 헛소리야. 나 같은 캥거루족 백수였는데, 무슨 수로 금융위 고위 인사를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그는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가볍게 기침했다.곧 일부러 의미심장한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가볍게 흔들었다.그러고는 담담하면서도 여유가 깃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옛말에 그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개나 소나 다 주식으로 돈 번다고 달려들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거품이 꺼질 때라는 신호라는 거죠.”사실 그 말은, 예전에 소현성이 투자 서적을 건성으로 넘기다 우연히 보게 된 문구였다.정확한 출처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식의 신’이라는 아우라를 덧씌우기에 충분했다.논리는 간단했다. 시장이 달아오르다 못해 주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까지 뛰어드는 수준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비이성적인 광기가 극점에 달했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붕괴가 기다리고 있다는 냉혹한 사실이 숨어 있었다.“그런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팀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표정에는 여전히 불신과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9화

    ‘전부 헛소리였지. 이런 눈사태 같은 장세라면 이번 달은 물론, 몇 달은 부서 전체가 고개 푹 숙이고 쪼들려 지낼 게 뻔하다. 다 같이 허리끈 졸라매고 연명하겠구먼...’“잠, 잠깐만! 저건 뭐지?”장준휘는 모든 희망이 끊어진 듯 체념에 잠겨 있을 무렵, 시야 끝에 걸린 모니터가 그의 동공을 단번에 조여왔다.끝없이 무너져 내리던 파란 절망의 바다. 그 지옥 같은 화면 한가운데서, 눈을 찌르는 듯 선명한 빨간색 곡선 한 줄기가 치솟고 있었다.그건 단순한 상승세 신호가 아니었다.마치 화산이 분출하듯, 불길처럼 번져 나가며 모든 한기를 삼켜버릴 듯 타오르는 역전의 불꽃이었다.‘아니... 저건 그냥 빨간색 그래프가 아니다. 저건 희망이다. 거센 역풍을 뚫고 선 자만이 붙잡을 수 있는 승리의 불꽃이야.’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시장이 끝없이 치솟을 거라고 외쳐댔다.“밀어붙여! 몰방이 답이다!”“이참에 바닷가 별장 하나 장만하는 거야!”그러나 그 광기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놀란 닭처럼 허겁지겁 소리쳤다.“팔아! 던져! 다 정리해!”그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의 팀만은 정반대 길을 걸었다.처음에는 죽으러 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던 그들이 지금은 모든 이가 눈을 감은 자리에서 홀로 눈을 뜬 예언자로 서 있었다.그는 말뿐이 아니라 무려 현금 1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움켜쥔 채, 단호하게 전부 공매도에 쏟아부었다.온 시장이 매수 버튼을 광기에 휩싸여 두드리던 그 순간,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던진 단 한 사람은 바로 소현성이었다....같은 시각 폭풍의 정중앙, 트레이딩본부 7팀 팀장 집무실.“...”소현성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기쁨도 분노도 없었다.화면 위의 숫자들은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고 캔들 차트는 절벽에서 추락하듯 곤두박질쳤다.누가 봐도 처참한 금융 재난의 도식이었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고요했다. 마치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라도 되는 듯, 마음속은 평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8화

    날카롭고 급박한 시스템 알림음이 순식간에 리스크관리본부 전체를 휘몰아쳤다.리스크관리본부 팀장 장준휘는 등골 끝에서부터 차가운 한기가 솟구쳐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순식간에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이 바닥에서 굴러온 세월이 몇 년인데, 이런 장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모니터가 파란색으로 뒤덮였다.그 파란색은 곧 시장 붕괴와 재앙을 의미했다. 번쩍이는 불길한 빛은 그 자체로 종말을 알리는 경고등 같았다.순간, 평소라면 재빨리 돌아가던 그의 머리마저 멈춰 섰다.남은 건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투박하고 무겁고 절망적인 결론이었다.‘씨X... 이제 끝장이다.’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부서 분위기는 은퇴 후의 오후처럼 한가로웠다.커피잔을 들고 잡담을 나누거나 다과를 곁들여 티타임을 즐기던 모습이었다.시장은 잔잔했고 관리할 만한 리스크도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단숨에 하늘이 뒤집혔다.금융위원회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치 수심 깊은 바다에 폭탄을 던지듯 새로운 규제 정책을 기습 발표한 것이었다.그 소식은 마치 끓어오르는 기름 솥에 한 바가지의 얼음물을 퍼붓는 듯한 충격이었다.시장은 그대로 폭발했다.투매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제방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내린 홍수처럼, 셀 수 없는 매도 물량이 무자비하게 덮쳐오고 있었다.“본부장님, 어... 어쩌면 좋습니까?”장준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나자빠지듯 반세훈 앞에 달려왔고 목소리는 너무 떨려 말 한마디조차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눈앞에 보인 건, 이미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정신마저 놓아버린 듯한 반세훈 본부장이었다.그 순간, 장준휘의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우리가 뭘 어쩌겠습니까?”반세훈은 입술을 덜덜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소리 속에는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이 배어 있었다“우리 리스크관리본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서버실에 뛰어가서 랜선을 뽑아버릴 겁니까? 거래소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7화

    양건우는 숨조차 멎은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손아귀에 힘주어 움켜쥔 마우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덜덜 떨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단순한 클릭조차 쉽지 않았다.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주신의 신이 환생하여 인간 세상에 개입해 만들어낸 기적 같은 대역전이었다.‘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트레이딩본부 신설팀을 맡은 지 겨우 일주일 남짓 된 팀장이, 무슨 근거로 이런 사태를 예측할 수 있었단 말인가? 소현성... 저 사람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양건우는 그 순간 200% 확신했다.광한국의 금융 중심지는 물론,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타이밍에 이런 방식으로 시장의 붕괴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그 사람은 바로 트레이딩본부 7팀의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 팀장 소현성이었다.‘설령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괴물 같은 천재가 있어 이번 폭락을 예상했다 해도, 과연 누가 우리 팀장님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누가 감히 모든 이가 매수 버튼을 광기에 가까운 열기로 눌러대던 그 순간에 홀로 반대편에 설 수 있었겠는가? 조롱과 의심, 질타와 비웃음을 정면으로 감수하면서 가진 자금을 몽땅 내던져 시장을 거스르는 그런 베팅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단순한 통찰의 영역이 아니야. 그건 배짱이고 광기이며 동시에... 선택받은 자만이 감히 할 수 있는 도박이야.’그건 절대 대수롭지 않은 소액의 시도가 아니었다. 수십만 원, 수백만 원 단위의 소액 투자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무려 100억 원, 중견기업 하나 부도나게 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양건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얇은 유리 칸막이 너머로 향했다.회사 전체가 종말 같은 혼돈과 공포에 휩싸인 순간에도 소현성은 바른 자세로 흔들림 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양건우는 단 한 번의 눈 깜박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이며 소현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6화

    “이 썩을 놈들, 개 같은 것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송이고 신문이고 전부 나서서 당장 주식 사라고 부추겨대더니...”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에는 배신감에 짓눌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다니! 젠장, 진짜 비열하고 파렴치하잖아요!”“빨리 팔아요! 지금 당장 다 팔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들고 있는 포지션 전부 박살 납니다! 어서요!”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흡연구역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성과급으로 최신형 수입차를 뽑을지, 아니면 휴양지로 떠날지를 두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절망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고함, 광기에 가까운 키보드 두드림, 눈앞에서 자산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광경에 억눌린 소리 없는 비명들로 뒤덮었다.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빨리 손실을 끊고 빠져나가길 원했다. 그것만이 이 돌발적인 참사를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매도 물량만 산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셀 수 없이 겹겹이 쌓여 올라가는 매도 호가 속에서 이를 받아낼 매수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바로 그 시각, 사모펀드는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팀은 종말을 맞은 듯한 혼란과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오직 7팀만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마치 거센 강물 건너편에서 불시에 터진 거대한 불꽃놀이를 차갑게 지켜보는 듯했다.물론 그것이 진정한 평온일 리는 없었다.7팀 구성원들 또한 심장이 벌렁거렸고 마찬가지로 거대한 또 다른 충격에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정말... 정말 팀장님 예언대로 주식시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겁니까?”한 선임 트레이더는 눈앞에 펼쳐진 차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5화

    “방금... 방금 전입니다. 몇 분 전쯤이었어요.”이수호는 온몸의 힘을 짜내듯 겨우 말을 이었다. 이미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금융위원회에서 긴급 정책 조정 발표문을 냈습니다. 앞으로 신용거래, 특히 레버리지를 동반한 공매도 거래를 전면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뭐라고요?”양건우는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듯 새하얘졌고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어붙는 듯 뻣뻣해진 감각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었다.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단기 과열을 차단하겠다는 가장 강경하고도 명확한 메시지이었다. 지금까지 증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밀어 넣던 ‘신용거래 자금’, 일명 빚투의 동맥을 정면으로 끊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그러니까... 그래서 다들 이렇게 아우성치는 거군요.”이수호의 얼굴은 거의 오열 직전처럼 일그러졌다.“양 수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장에 들어와 있는 자금의 절대다수는 사실상 본인 돈이 아니라, 몇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불린 신용거래 자금입니다. 전부 빚이지요. 그런데 그걸 오늘 당장 막아 버리겠다고 하니...”그의 목소리는 끝내 갈라졌다.사무실을 짓누르는 정적은 곧 닥쳐올 시장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침묵 같았다.불과 짧은 시간 안에 주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강력히 밀어붙인 신용거래 제도가 있었다.쉽게 말해 투자자가 자기 계좌에 가진 소액의 자금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를 통해 그 몇 배, 심지어 열 배 가까운 돈을 추가로 빌려 주식 거래에 나설 수 있었다.예컨대 2천만 원밖에 없더라도 신용거래를 활용하면 최대 2억 원을 굴릴 수 있는 셈이었다.이 제도는 사실상 ‘재테크용 흥분제’였다.순식간에 부를 불릴 수 있다는 환상은 개인 투자자들을 불나방처럼 끌어들였고 시장은 ‘돈이 돈을 부르는’ 불길로 달아올랐다.그러나 바로 오늘, 금융당국이 태도를 돌연 뒤집었다.그동안 무제한으로 열어 두었던 자금의

Higit pang Kabanata
Galugarin at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Libreng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sa GoodNovel app. I-download ang mga librong gusto mo at basahin kahit saan at anumang oras.
Libreng basahin ang mga aklat sa app
I-scan ang code para mabasa s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