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백진아는 이유니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녀 역시 자신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하는 의심까지 들었다.그녀는 이유니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이유니는 마치 백진아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넓고 넓은 세상에는 별별 일이 다 있는 법이지요. 그리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백진아는 눈을 굴리며 계속 떠보았다.“어디에서 왔느냐?”이유니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왔던 곳에서 왔습니다.”백진아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유니가 승복을 입고 삭발한 채 목탁을 두드리는 모습을 떠올렸다.그녀는 몰래 하늘을 흘겨본 뒤 장난스럽게 다시 물었다.“그럼 어디로 갈 셈이냐?”이유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갈 곳으로 가지요.”백진아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혹시 예전에 스님이었던 게 아니냐?”이유니는 하늘을 나는 갈매기 떼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예전에 스님이었던 적이 있습니다.”“뭐?”백진아는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유니가 더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더 캐묻지는 않았다.그럴수록 그녀는 이유니라는 여자가 더욱 수상하게 느껴졌다. 십중팔구 자신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이유니가 공간을 보고도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던 일이 떠오르자, 백진아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혹시 네게도 공간이 있느냐?”이유니는 고개를 저었다.“없습니다. 그런 보물은 만나지 못했습니다.”“그래.”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무슨 질문으로 떠볼지 고민하던 순간, 고지행이 부채를 흔들며 한가롭게 걸어왔다.오늘 그는 평소 즐겨 입던 붉은색 넓은 소매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다. 흰색 테두리가 둘린 옷깃은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고, 새하얀 가슴팍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그 모습은 나른하면서도 여유로웠고, 사악하리만큼 매혹적이었다. 살짝 미소를 짓자 보조개가 패였는데, 그야말로 사람의 혼을 빼앗을
거칠고 사나운 폭풍과 파도 앞에서,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결코 맞설 수 없었다.그렇게 열흘이 넘도록 항해했지만, 일행은 여전히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고 섬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연천능과의 연락도 끊겼고, 풀어 보낸 매도 돌아오지 않았다.게다가 독으로 독을 억누르는 처방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보아가 이미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아는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에 시달리며, 고통에 몸부림치곤 했다.백진아는 결국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보아를 약밭 창고 안으로 보내는 것이었다.약밭 창고 안의 시간은 멈춰 있었기에, 보아는 마치 잠든 것처럼 그곳에 누워 있었다. 병세는 더 악화되지 않았지만, 뛰어놀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었으며, 그녀의 품에 안겨 어머니라 부르며 보챌 수도 없었다.공간의 주인인 백진아는 창고 안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그녀는 보아의 여린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보아야, 네가 고생이 많구나. 다 어미가 못난 탓이야!”“푹 자고 있거라. 어미가 반드시 천잠고치를 구해 네 고독을 없애주마.”“그때가 되면 다시 어머니라 부르며 응석도 부릴 수 있고,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거야…”백진아의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날개라도 돋아 영주도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설상가상으로 큰 배는 폭풍 속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행히 공간 안에는 예비용 큰 배가 한 척 더 있었다.상황이 위급했던 탓에 백진아는 임대해와 이유니 앞에서 공간의 존재를 숨길 겨를도 없었다. 천잠고치를 얻은 뒤 그들의 기억을 지우면 그만이었다.예비 선박은 이미 돛이 달려 있었고 보강 작업까지 되어 있어, 오히려 기존 배보다 훨씬 쓰기 편했다.그녀는 사람들의 절반을 공간에 남겨 두었다. 그들은 안에서 배를 수리하며 휴식을 취했고, 나머지 절반은 배를 몰며 항해를 이어갔다.이틀 동안 순풍을 만난 덕분에 큰 배는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배를 모는 사람들도 한결 수
그의 아름다움에, 백진아는 속으로 그가 어느 해외 왕국의 왕자쯤 되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감탄했다.그래서 말을 한다고 해도, 두 섬의 원주민들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 짐작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미남은 입을 열자마자 돌고래나 고래가 내는 소리 같은 크고 맑은 음절을 내뱉었다.“깍! 끼! 아!”고지행과 백진아, 능란 세 사람은 모두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렸다.그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백진아였다.그녀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시간을 거슬러 왔으며, 고묘까지 들어가 본 사람이었다.이상한 일은 이미 수도 없이 겪어봤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정신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백진아는 벌어진 입을 다물고 몇 번 눈을 깜빡인 뒤 어색하게 웃었다.“하하... 천천히 물어보자꾸나.”미남은 모두의 반응을 보고 겁을 먹은 듯 침상 안쪽으로 몸을 움츠렸다.그리고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두 번째로 정신을 차린 것은 고지행이었다.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면, 우선 부를 이름부터 정해야겠군요.”계속 미남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고지행이 자꾸 자신을 부르는 줄 착각할 수도 있었으니까.“흠흠.”능란도 곧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말했다.“제가 지을게요! 제가 지을게요!”백진아와 고지행은 그녀와 경쟁할 생각이 없었다.능란이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둘은 그냥 천천히 생각하게 두고 선실 밖으로 나왔다.남겨 둔 암위 두 명도 한동안 관찰한 끝에 미남이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그제야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조용히 거두었지만, 여전히 경계는 늦추지 않고 있었다.다음 날.능란의 뒤에는 미남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고 있었다.비록 말을 하지 못하고 조금 어리숙한 모습이었지만, 능란이 무엇을 말하든 무엇을 하든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그리고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은 채 따라다녔다.마치 아기 돌고래가 어미 돌고래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 같았다.고지행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백진아 역시 여자였기에 미남을 좋아했다.하지만 인생 2회차인 그녀는 지금까지 각기 다른 분위기와 각기 다른 종족의 미남들을 모두 보아왔기에, 그녀에게 있어 그는 그저 화보와 같이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었다.백진아는 그의 맥을 짚고, 겸사겸사 몸 상태까지 확인한 뒤 말했다.“그냥 굶주리고 지쳐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피로가 누적돼 쓰러진 것이니 곧 깨어날 거야.”능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눈빛을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몸에 암초에 부딪혀 생긴 상처가 많았어요. 전부 제가 치료했어요.”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고생했다.”능란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결국 머뭇거리며 얼굴을 붉힌 채 중얼거렸다.“그럼... 저도 그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백진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 계속 곁에서 돌봐줬으니 공이 아주 크구나.”능란은 활짝 웃더니 흥얼거리며 부채를 들어 약을 끓이는 아궁이에 바람을 불어넣었다.백진아는 한참 뒤에야 그녀의 속마음을 눈치챘다.그녀는 피식 웃었다.‘설마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계기로 혼인까지 이어지는 전개를 기대하는 건가?’잠시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어차피 이 사람이 깨어난 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물론 백진아 역시 능란이 행복해지길 바랐다.다만 이 남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손과 발에도 노동의 흔적이 전혀 없었기에, 귀하게 자란 귀공자일 가능성이 높았다.그런 사람의 안목이 낮을 것 같지는 않았다.하지만 이후 펼쳐진 막장 같은 전개는 백진아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밤이 되었다.능란은 미남의 곁을 지키며 행복한 표정으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그때 갑자기 남자가 살짝 몸을 움직이더니 낮은 신음을 흘렸다.능란은 급히 손에 들고 있던 바느질감을 내려놓고 다가갔다.그 순간 남자의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그리고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헉...”능란은
백진아는 보아와 적염에게 드넓은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두 사람을 공간에서 데리고 나왔다.선실 창문을 열자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섞인 해풍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보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그녀는 백진아의 목을 꼭 끌어안고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바다! 이게 바다예요? 정말 커요!”“찍찍! 찍찍!”적염도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녀석 역시 바다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두 개의 작은 머리가 선실 창밖으로 빼꼼히 나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더없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그때였다.갑자기 멀리서 상어 한 마리가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상어는 파도 위에서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르더니,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순간 흰 물보라가 높이 치솟았다.보아는 작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큰 물고기! 엄청 큰 물고기예요! 집만큼 커요!”백진아는 애틋한 눈빛으로 보아의 양 갈래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저건 상어란다. 아주 사나운 물고기야. 작은 물고기들도 잡아먹고, 사람이 물속에 있으면 사람도 공격하지. 심지어 작은 배 정도는 부술 수도 있단다.”“예?”보아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분홍빛 작은 입도 동그랗게 벌렸다.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백진아의 마음을 녹여버릴 정도였다.‘카메라가 있었다면 찍어서 바로 이모티콘으로 쓸 수 있었을 텐데.’정신을 차린 보아는 다급하게 외쳤다.“빨리 가요! 상어한테 잡아먹히면 안 돼요!”백진아는 웃으며 말했다.“보아야, 걱정하지 말거라. 우리 배는 크니까 상어가 삼킬 수 없단다.”보아는 그제야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깜짝 놀랐어요!”백진아는 웃으며 보아의 작은 뺨에 입을 맞췄다.바다는 아름다웠지만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단조롭고 지루하기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보아는 바다 구경을 다 했다며 밖에 나가 보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
처음에는 연경곤 일행이 보낸 자객들이 따라온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큰 배를 포위해 공격하고 있던 것은 50~60명 정도의 원주민들이었다.물론 그들은 백 명에 달하는 호위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쇠뇌 화살이 쏟아지자 계속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백진아 일행이 아직 섬에 있었기에, 호위들은 원주민을 죽여 괜한 문제를 만들까 우려했다. 그래서 상대를 죽이지 않고 활로 몰아내기만 하고 있었다.백진아는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그들을 포위하거라!”원주민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백진아가 8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끌고 몰려오는 모습을 보자 상황이 끝났음을 깨달았다.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식량을 받으러 따라왔던 원주민들 역시 뒤늦게 쫓아가다가, 눈앞의 상황을 보고 크게 놀랐다.일부 원주민들은 백진아 일행이 수많은 맛있는 음식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백진아 일행이 봉황 등나무를 찾으러 떠난 사이, 배에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건을 빼앗으러 온 것이었다.하지만 백진아가 배를 지키기 위해 남겨둔 사람은 무려 백 명이나 되었고, 모두 뛰어난 고수들이었다.역시 사람의 욕심은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었다.백진아는 이미 봉황 등나무를 찾았기에 더 이상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몸을 날려 배 위로 올라가 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공간에서 식량과 농작물 씨앗을 꺼내 사람들에게 나누어 들려 보냈다.그 후 곧바로 배를 출항시켰다.그녀는 연천능에게 편지를 써 어느새 훌쩍 자란 매에게 맡겨 보냈다.매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머리 위를 몇 바퀴 선회한 뒤, 곧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저 매가 과연 편지를 연천능에게 전해 줄 수 있을까?’‘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나를 생각하고 있을까?’“진아야, 보고 싶구나! 보아야, 보고 싶구나!”연천능은 산 정상에 서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 깊은 곳에는 짙은 그리움이 어려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