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꼭두각시 신부의 가면을 쓰고 북강에 들어간 희대의 책사 온보요가, 계산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남자 삭왕 진묵의 곁에서 옥좌를 갈아엎는 이야기. 사랑을 약점이라 부정하던 그녀가 계산을 버리는 순간, 그 사랑이 판의 마지막 수였음이 드러난다.
View More유앵아가 못 끝을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널판은 기울지 않았다. 밤새 머문 사람들의 젖은 겉옷 아래로 새 방값이 보였다. 한 방을 나누어 쓰면 각자 낼 몫도 그 밑에 작게 적었다. 말먹이는 방값에 넣지 않았다."왕부에서 길러 준 아가씨가 이제 방값을 받으시오?"옛 하인이 마루에 올라서며 말했다. 뒤에 업힌 노파의 발이 문설주를 쳤다. 앵아는 문을 더 열어 주고 그의 신발에서 흐르는 물에 헌 무명을 밀어 넣었다."가진 돈과 묵을 날부터 말씀하세요.""이 꼴을 보고도.""제가 저 방을 거저 받지 않았어요."그녀가 벽을 가리켰다. 경성에서 나온 통행패와 북강 관아의 도착 인장 아래 일 년 임차글이 걸렸다. 북문 통행패에는 떠난 날, 관인에는 보름을 건너 도착한 날이 찍혔다. 첫 달 방세를 받은 주인의 수결도 있었다.하인은 노파를 의자에 앉히고 글을 가까이 보았다."그동안 경성에 계셨던 게요?""문초가 끝난 뒤에도 머물렀어요. 향 가게 사람들이 주고받은 봉을 다시 대야 했고, 그 뒤에는 바느질 삯을 모았고요.""왕비께서 데려오라 안 하셨소?""제 이름으로 통행을 청했어요."노파가 허리춤에서 동전 두 닢을 꺼냈다. 앵아는 받지 않고 작은 잔에 데운 물부터 부었다. 보리 냄새와 젖은 솜 냄새가 마루에서 섞였다."두 분은 공동방에 드세요. 오늘 모자란 값은 여기 빚으로 쓰겠습니다. 숯은 하루 한 바구니, 더 때시면 내일 말씀하시고요."하인이 붓을 받았다. 앵아는 왕부에서 쓰던 이름 대신 그의 호패를 달라고 했다. 손때 묻은 나무에 아내와 살던 골목의 글자가 남아 있었다.보요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젖은 치맛단 대신 짙은 무명 치마를 입었다. 뒤따른 진묵은 앵아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문밖 아이들의 젖은 신을 발로 가지런히 모았다. 보요가 그의 어깨에서 작은 무명 보퉁이를 받아 앵아 앞에 놓았다."장시에서 공용방 세 칸을 빌릴게요. 값은 써 붙인 대로요."앵아는 바로 돈을 받지 않았다."왕비의 서랍에서 글을 베꼈어요. 배에서도, 경성에서도.
문고리를 당기자 눅은 쌀겨 냄새가 얼굴을 덮었다.허연교는 첫 자루에 손을 댔다. 아래쪽만 무겁고 차가웠다. 곡물전 주인은 마른 자루부터 밖으로 밀었다. 문 앞에 댄 널빤지가 사람 무게를 받을 때마다 물이 갈라졌다.그녀는 저울 기둥에서 가져온 장부를 품 안으로 더 깊이 밀었다. 유족에게 나눠 준 쌀과 갚을 곡식이 다른 먹으로 적혀 있었다. 물을 먹은 종이 가장자리가 손톱 아래서 일어났다."하나만 더!"밖에서 여인이 외쳤다. 연교가 몸을 돌리는데 작은 누런 소매가 물 위를 스쳤다. 곡물전의 어린 딸이 널빤지에서 미끄러졌다. 어머니가 팔을 뻗었으나 자루를 지던 사내의 어깨에 막혔다.연교는 품을 누른 손을 폈다. 장부가 물로 떨어졌다. 그녀가 아이의 옷깃을 잡자 목둘레 매듭이 손가락을 죄었다. 한 손을 겨드랑이 아래로 옮기며 무릎을 세웠다. 물이 치마를 뒤에서 잡아당겼다.문밖의 밧줄이 팽팽해졌다.허 도위가 수레 바퀴에 발을 걸고 버티고 있었다. 성치 않은 팔에 감긴 줄 아래로 피가 배었다. 아이를 널빤지 위에 올린 뒤에도 줄은 풀리지 않았다. 곡식 자루 둘이 뒤에서 밀려왔다."이제 놓으세요!"연교가 외쳤다. 그는 고개만 저었다. 수레가 한 번 더 밀리고 병사 둘이 반대편 바퀴를 붙들었다. 그제야 감긴 줄이 느슨해졌다. 그의 손가락은 펼쳐지지 않았다.연교는 아이를 어머니에게 넘겼다. 곡물전 안주인은 아이의 젖은 머리칼을 입술로 누르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숨이 목에 걸려 기침만 났다. 연교는 아이의 풀린 옷매듭을 다시 묶어 주고 몸을 돌렸다.수레 옆에서 병사의 누이가 장작을 내려놓았다. 군량창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연교에게 해마다 다시 읽게 하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허 도위의 피 묻은 팔을 보고 수레 고삐를 그의 성한 손에 걸었다."저 위까지만 맡으시오. 물이 빠지면 내가 가져갈 테니."그가 고개를 숙였다. 여인은 기다리지 않고 아이들 쪽으로 갔다.높은 헛간에 놓인 약상에는 한철 의원패가 달려 있었다. 심유화가 자기 이름 아래 묶
노강의 발이 솥받침 옆구리를 걷어찼다.검은 솥이 회랑 밖으로 떨어졌다. 뜨거운 죽이 눈 섞인 마당에 퍼지며 흰 김을 뿜었다. 보요는 온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둥 쪽으로 물러났다. 진묵은 상 아래로 기어들던 예관의 아들을 건져 다른 팔로 문짝을 받쳤다."이쪽으로."노강이 아이들을 목소리대로 모았다. 갈족 아이는 알아듣고도 신발 쪽으로 달려갔다. 노강이 맨발을 들어 보여야 그제야 돌아왔다. 수행관의 딸이 젖은 신 두 짝을 품에 안은 채 그 뒤에 붙었다.문턱 아래로 흙탕물이 솟았다. 배움터 뒤의 낮은 물길에서 얼음 조각들이 서로 등을 탔다. 흑수 뱃사공이 긴 장대로 떠밀었지만 좁아지는 강목에서 쌓인 얼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밑의 물만 둑 옆 골목으로 밀려왔다."말시장으로 올리시오! 거기가 높소!"사공의 말을 노강이 세 번, 세 말로 외쳤다. 진묵이 문짝을 다른 사내에게 넘겼다. 보요의 젖은 소매가 그의 손에 붙었다가 떨어졌다."온이는 내가 안을까.""이 아이 발부터 보세요."그녀가 예관 아들의 붉게 쓸린 발을 가리켰다. 진묵은 아이를 자기 겉옷으로 감쌌다. 보요는 온이의 얼굴을 남편 쪽으로 돌려 보이고 먼저 비탈을 올랐다.말시장 기둥에는 방수진 이름으로 맺은 점포 임차글이 걸려 있었다. 바로 아래 첫 거래의 말 귀표와 매도인의 수결이 묶였다. 수진은 글이 젖지 않게 기름종이를 씌우고 못을 더 깊이 박았다.갈족 여인이 그녀의 손에서 망치를 빼앗았다."지금 집문서를 지킬 때요? 저 말 둘을 내놓으시오.""왼쪽은 어제 팔았어요. 오른쪽은 새끼를 뱄고요.""그래서 우리 집 것만 물에 넣으라고?"수진은 젖은 머리칼을 귓뒤로 넘겼다. 뒤의 사내가 수레 멍에를 당기자 말이 발을 굴렀다. 그녀는 뒤칸에서 제 여행말을 끌어내 사내에게 넘기고, 새끼 밴 말의 고삐는 기둥에 남겼다."이 말이 다치면 제 빚으로 적으세요. 팔린 말은 새 주인에게 묻고요. 그 댁 말 한 필도 빌려 주세요. 삯을 같은 줄에 쓰겠습니다."여인이 수진의 임차글을 보았다. 주인
사발 밑바닥이 아이의 붉은 바지 위에서 돌아갔다.보요는 굴러오는 상보를 손으로 막았다. 온이는 빈 사발을 놓지 않았다. 옆의 아이가 바닥을 두드리자 자기 손으로도 두드렸다. 두 소리가 자꾸 어긋났다.종친부 사자가 비단에 싼 주판을 내왔다. 수행관은 문무의 물건을 고루 놓아야 한다며 작은 붓과 검끈을 보탰다. 상엄이 가져온 왕부 열쇠까지 가운데 놓이자 상이 비좁아졌다."병부도 한 조각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삭왕가의 첫 자손이시니."진묵이 팔을 뻗어 병부를 싼 보자기를 되돌렸다."그것은 아이 물건이 아니다."보요는 열쇠를 상엄의 손에 쥐여 주었다. 묵직한 쇠가 늙은 손 안으로 사라졌다. 상엄은 잠깐 아이를 보다가 열쇠를 허리에 찼다."잡을 것이 너무 많아도 성가시겠지요."그가 빈자리에 작고 흰 떡을 놓았다. 방어멈이 떡을 잘게 떼어 물에 적셨다. 온이는 그것보다 붓의 붉은 자루를 먼저 잡았다. 검끈이 손가락 사이에 함께 딸려왔다."글을 잡으셨으니……"사자가 입을 열자 보요가 식힌 떡을 아이 앞에 두었다."먹부터 치워 주세요. 입에 넣겠어요."진묵이 벼루를 들었다. 온이는 붓과 검끈을 엉켜 쥔 채 예관의 아들 쪽으로 빈 사발을 내밀었다. 아이는 제 만두를 넣으려다 어머니의 눈을 보고 잘게 찢었다. 갈족 아이는 그 옆에 떡 부스러기를 보탰다."우리 것도 넣어야지."수행관의 딸이 사발을 받쳐 주었다. 온이가 손을 놓자 그릇이 곧장 엎어지지는 않았다. 보요는 뻗었던 손을 자기 무릎에 내려놓았다.진묵이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다. 손톱 아래에 반죽이 굳어 있었다. 그가 제 엄지로 떼어 내자 그녀는 고개를 숙여 웃었다."오늘은 아무 뜻도 붙이지 마세요.""배가 고프다는 뜻쯤은 알겠군."그는 아내 앞으로 만두 접시를 밀었다. 보요가 먼저 한 입 베어 물자 뜨거운 파 냄새가 올라왔다. 진묵은 아이들이 차지한 상을 보며 그녀가 남긴 반쪽을 집어 먹었다.문밖의 작은 가마에서 황색 요가 꺼내졌다. 보요는 그것을 빨아 배움터에 남겨 두게 했다.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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