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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 적은 안에 있다

작가: 유영실
last update 게시일: 2026-06-16 09:54:32

JL그룹은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안은 그렇지 않았다.

"서지안이 돌아왔다고? 고작 그 계집애가 회장 자리를?"

임원 회의가 끝난 뒤, 한 남자가 이를 갈았다. 서지안의 작은아버지, 서동철. 10년 전 후계 자리를 노리다 선대 회장에게 밀려난 인물이었다.

"형님이 죽으면서 그 자리가 내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조카가 나타나서 다 가져가?"

그의 옆에서 비서가 속삭였다.

"전무님,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회장 취임은 했지만, 아직 이사회 과반의 완전한 신임은 못 얻었습니다. 만약 회장님의 '약점'이 드러난다면…"

서동철의 눈이 번뜩였다.

"약점?"

"이혼한 전남편. 그리고 어린 딸. 언론에 '재벌가 후계자의 숨겨진 이혼과 사생활'로 흘리면… 이미지에 타격이 클 겁니다."

한편, 그 시각 회장실의 서지안은 책상 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익명의 제보 한 장. JL그룹 비자금 의혹에 작은아버지 서동철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서지안은 차분히 그것을 덮었다.

"역시 움직이는군요."

그때 문이 열리고 강도현이 들어왔다. 노크도 없이.

"여기 출입증도 없이 어떻게…"

"내가 못 들어가는 데가 있을 것 같아?"

그가 서류를 흘끗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서동철. 손대지 마. 그 인간, 생각보다 위험해."

"제 일이에요, 강도현 씨."

"네 일이니까 하는 말이야."

강도현이 한 발 다가섰다. 진지한 눈빛이었다.

"3년 전에도 그랬어. 너 혼자 다 짊어지려다 쓰러질 뻔했잖아. 이번엔 안 돼."

서지안이 그를 올려다봤다. 오랜만에,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회장실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인터넷에....."

비서의 얼굴이 새파랬다.

"회장님 기사가… 떴습니다."

서지안이 모니터를 켰다. 그리고 화면에 뜬 헤드라인을 본 순간, 그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차갑게 굳었다.

[단독] JL그룹 새 회장, 알고 보니 '이혼녀'… 일곱 살 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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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요."서지안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숨이 한 번에 나오지 않았다.글자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방에서 그것만 보였다.오늘 하루 저쪽은 남의 이름만 빌려 썼다. 이번에는 서지안의 이름이었다.형사가 옆에서 수첩을 폈다. 볼펜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회장님. 이것도 그대로 적겠습니다.""적으세요."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제가 안 했다는 말은 방금 한 번만 할게요. 그 말은 아무 힘이 없어요."형사가 서지안을 봤다."대신 어디서 들어왔는지부터 봐요. 계정은 빌릴 수 있어도 들어온 자리는 못 빌려요."서지안은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과장님. 이 줄에 들어온 자리도 같이 남아요?""남습니다. 어느 기계에서 들어왔는지 옆 칸에 찍힙니다.""그 칸 어떻게 열어요."당직 과장이 순서를 불러 주었다. 서지안은 장갑 낀 손으로 그대로 눌렀다.칸 하나가 더 펼쳐졌다."…과장님. 회장실이라고 떠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제 방 컴퓨터예요. 맞아요?""…맞습니다. 그 방 기계 번호입니다."회장실 컴퓨터에는 남이 심어 놓은 프로그램이 붙어 있었다.그래서 그 방 화면은 밖에서도 보였다. 오늘 저녁에야 그걸 찾아냈다.찾아낸 사람은 당직 과장이었다.심어진 날은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청소가 들어온 날이었다."과장님. 그러면 밖에서 그 프로그램으로 들어와서 친 거네요.""…그건 따로 남습니다. 밖에서 붙은 기록이요. 지금 같이 보겠습니다."자판 소리가 났다. 아까보다 길게 났다.서지안이 시각을 짚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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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57화 — 지워지는 중

    9시 41분이었다.서지안은 벽에 붙어서 모퉁이까지 갔다. 형사가 먼저 고개만 내밀었다.꺾인 복도는 불이 꺼져 있었다. 끝에 철문 하나가 있었다. 문 옆 카드 칸에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형사가 손잡이를 아래로 눌렀다가 손을 뗐다."잠겼습니다. 회장님은 제 뒤에 서 계십시오."형사가 철문에 귀를 댔다. 안에서는 기계 도는 소리만 났다.나갈 문은 이 하나뿐이었다.서지안은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당직 과장은 아직 끊지 않고 있었다."과장님. 저 방 안에서 지난주 금요일 기록을 없앨 수 있어요?""화면에서 지우는 건 안 됩니다. 그 방에서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입니다. 장치를 뽑아 가거나, 통째로 미는 겁니다.""통째로 미는 데 얼마나 걸려요.""…10분쯤입니다."형사가 손목을 봤다. 문 닫히는 소리를 들은 것이 1분 전이었다."과장님. 이 문 어떻게 열어요.""카드입니다. 그 카드를 가진 사람은 전산팀 넷뿐입니다."하나는 위층 당직 과장 목에 걸려 있었다. 나머지 셋은 집에 있을 것이었다. 와도 30분은 걸린다."다른 방법 말해 주세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자판 소리도 멈췄다."…전기입니다. 그 층 전기가 끊기면 문은 잠기지 않게 돼 있습니다. 불이 났을 때 사람이 안에 갇히면 안 되니까요.""서버는요. 전기 끊으면 같이 꺼져요?""서버는 따로 배터리가 붙어 있습니다. 1시간쯤은 안 꺼집니다."서지안은 철문을 봤다.지금 이 문 뒤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은 오늘 밤에 다시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과장님. 지금 회장실에 누가 있어요.""한무현 씨하고 저뿐입니다.""한 실장님은요."한무현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복도 끝 소파에 앉아 계십니다. 제 자리에서 보입니다. 아까부터 그대로 계십니다."서지안은 눈을 한 번 감았다.한무현, 당직 과장, 한 실장. 배창현이 늘려 놓고 간 셋은 지금 다 위층에 있었다. 배창현은 경찰차 안에 있었다.한무현이 본 것이 맞다면, 저 문 안에 들어간 사람은 오늘 밤 이름이 한 번도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56화 — 안쪽 계단

    서지안은 배창현을 붙잡지 않았다.경찰관이 앞장섰고, 배창현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복도 끝 비상계단 문이 천천히 닫혔다.형사가 수첩을 쥔 채 서지안을 봤다."따라가서 더 물어볼까요.""아니요. 지금 물으면 대답은 이 복도에만 남아요. 조서에 남게 해 주세요."서지안은 벽에 등을 댔다. 형광등이 또 한 번 깜빡였다.십오 년 전의 차라면 어머니 차였다. 그 차를 어디에 맡기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오늘 밤 서지안 곁에서 일한 사람은 셋이었다. 한무현, 당직 과장, 한 실장.오전에 배창현은 아는 사람을 하나로 줄이면 그 하나만 잡으면 된다고 했다.밤에는 의심할 사람을 셋으로 늘려 놓고 나갔다.셋을 한꺼번에 의심하면, 서지안 곁에는 아무도 안 남는다."형사님. 부회장님이 한 말 중에 하나만 먼저 확인해요.""어느 말씀입니까.""기록만 보면 바로 맞는지 틀리는지 아는 거요. 안쪽 계단이요."서지안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당직 과장이 첫 신호에 받았다."과장님. 부회장실 층에 계단이 둘인 거 맞아요?""맞습니다. 비상계단 하나, 안쪽 계단 하나입니다. 안쪽 계단은 부회장실 층하고 지하 1층만 잇습니다.""지하 1층 문은 어디 있어요.""경비실 바로 옆입니다. 좁은 철문입니다."서지안이 고개를 돌렸다.경비실 문 옆 벽에 폭 좁은 철문이 붙어 있었다. 문 옆에 카드 대는 칸이 있었다.배창현이 서지안보다 먼저 경비실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길이었다.서지안은 철문 앞까지 걸어갔다. 손은 대지 않았다.문틈 아래로 계단 통의 찬 바람이 새어 나왔다. 카드 칸에는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문마다 카드를 대죠?""예. 층마다 문 앞에서 댑니다.""오늘 저녁 8시 10분부터 20분까지, 그 계단 문 기록 봐 주세요."수화기 너머에서 자판 소리가 났다.형사가 서지안 옆에서 수첩을 폈다."…나왔습니다. 부회장실 층 안쪽 계단 문, 8시 12분. 부회장님 카드입니다.""지하 1층은요.""8시 15분. 같은 카드입니다."형사가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55화 — 빌린 이름 하나 더

    수첩에 적힌 이름은 배창현이었다.서지안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방 안에 한무현과 당직 과장이 있었다."감사팀장이 뭐라고 했대요.""지하 녹화기에서 저장 장치를 빼라고 한 사람, 부회장님 출입 기록을 지우라고 한 사람. 둘 다 배창현 부회장이라고 했답니다."서지안은 수첩을 밀어 놓지 않았다. 대신 한참 봤다.오늘 아침 여벌 열쇠 대장에는 정혜린 이름이 남았다.낮에 학교 방문자 칸에는 한무현 이름이 적혔다.저녁에 회사 기록은 한정우 실장 계정으로 열렸다.방금 지하에서는 차도 회선도 김선호 앞으로 돼 있었다.하루 종일 이름이 먼저 나왔고, 그 이름들은 전부 남의 것이었다."형사님. 이 이름도 빌린 걸 수 있어요.""…""저녁 8시 10분에 부회장님도 제 이름으로 문자를 받았어요. 회사 대표번호로요. 지하 경비실로 내려오라는 문자였고, 저는 안 보냈어요."형사가 수첩을 다시 봤다."한 실장님은 회사 안으로 불러들이려 했고, 부회장님은 지하로 불러냈어요. 같은 저녁에 같은 방식으로요.""그러면 감사팀장 진술은요.""그 말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에요. 팀장님도 그렇게 들었을 수 있어요. 들은 사람이 누구 목소리를 들었는지가 남아 있고요."형사가 수첩을 덮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진술 하나로는 영장이 안 나옵니다. 사람 하나가 그랬다고 말한 것뿐이라서요.""그럼 오늘 밤은 이름 말고 시각으로 봐요."서지안은 한 가지만 떠올렸다.지난주 금요일 저녁 7시. 방송이 나오던 시각. 그 시각에 이 건물 안에서 김선호에게 전화를 건 손."형사님. 임원 출입 기록 하나만 먼저 봐 주세요. 지난주 금요일 저녁이요."형사가 복도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서지안은 그동안 한무현을 봤다."한무현 씨는 당직 과장님하고 여기 계세요. 컴퓨터 봉인할 때까지요.""…예."2분 만에 형사가 돌아왔다."부회장님은 그날 저녁 6시 40분에 퇴근 기록이 찍혔습니다. 그 뒤로 들어온 기록은 없습니다."7시 방송 때 배창현은 건물 안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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