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제52화 — 기댈 수 있는 어깨집으로 돌아온 것은,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서지안은 잠든 서아를 제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그녀는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작은 가슴이 오르내릴 때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 아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이.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어 주는 그녀의 손끝이, 뒤늦게 파르르 떨렸다. 별장에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서영애를 몰아붙였지만, 사실 그녀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만에 하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엄마 곁에 있어, 서아야. 이제, 아무 데도 안 보내."아이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서지안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거실에는, 강도현이 서 있었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아는?""자요. 다행히, 겁먹은 기색도 없이."서지안이 옅게 웃어 보이려 했지만, 그 미소는 채 완성되지 못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다리에서 힘이 스르르 빠지며, 그녀의 몸이 휘청였다."…서지안!"강도현이 재빨리 다가와, 쓰러지려는 그녀를 붙들었다. 넓은 품에 안기는 순간, 서지안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억눌러 온 감정이, 둑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무서웠어요."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가슴팍에서 잘게 부서졌다."별장 문을 열기 전까지… 서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그 생각에, 숨이 안 쉬어졌어요. 저, 사실은… 하나도, 안 괜찮았어요."늘 강했던 여자였다. 누구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혼자 모든 걸 짊어지던 사람. 그런 서지안이, 처음으로 제 약한 속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강도현은 아무
最終更新日: 2026-07-03
Chapter: 제51화 — 되풀이되는 밤별장으로 향하는 어두운 국도 위. 서지안은 운전대를 잡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똑같았다. 15년 전 그날과, 소름 끼치도록.핸들을 쥔 손끝이 떨려 왔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그 밤의 기억이, 헤드라이트 불빛을 타고 천천히 되살아났다.***15년 전, 주주총회를 며칠 앞둔 어느 밤.열다섯의 여울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어머니의 서재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안에서, 낯선 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장주련과, 고모 서영애의 목소리였다."언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서영애의 목소리는, 겉으로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서늘한 칼날이 숨어 있었다."나를 해임하겠다니. …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여울이. 그 아이 앞날이, 과연 순탄할 것 같아요?"여울은, 제 이름이 나오자 숨을 죽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이 무언가 끔찍한 뜻을 품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지금, 그게."장주련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그게, 고모라는 사람이 할 소리니..? 감히… 내 딸을 입에 담아?""협박이 아니에요, 언니. 그냥… 세상이 무섭다는 거죠. 어린애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여울은 문틈으로, 어머니의 등을 보았다. 그 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협박 앞에서, 세상 그 어떤 어미가 흔들리지 않을까.그러나 다음 순간, 장주련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울이는, 내가 지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고 내 남편 회사도,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군 이곳도… 네 손에 넘어가게 두진 않
最終更新日: 2026-07-03
Chapter: 제50화 — 가장 약한 곳물류창고의 밤이 지나고, 판세는 분명 서지안 쪽으로 기울었다.붙잡힌 사내들 중 하나가, 결국 입을 열었다. 서영애 측 중간 관리책에게서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이었다. 물론 서영애는 그 관리책과의 연결을 완전히 잘라 낼 것이 뻔했지만, 적어도 '증인을 없애려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만은, 이제 영상과 음성으로 또렷이 남았다."이걸로, 유언장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았어요."법무팀장이 모처럼 밝은 얼굴로 보고했다."상대가 증인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 했다는 정황은, 재판부의 심증에 결정적입니다. '떳떳한 사람은 증인을 죽이려 들지 않는다'… 이 한 줄이면 충분하죠."서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서영애는, 궁지에 몰릴수록 더 위험해지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다른 칼을 갈고 있을 터였다.그리고 그 예감은, 오래지 않아 최악의 형태로 들어맞았다.***이틀 뒤, 늦은 오후.회장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서지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집안일을 돌봐 주는 가정부였다."사모님. 저… 서아가, 하원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집에 오질 않아서요. 통학 차량은 벌써 다녀갔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순간, 서지안의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곧장, 유치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아, 서아 어머님. 서아는 아까, 아버님이 오셔서 데리고 가셨는데요?"교사의 태연한 목소리에, 서지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아버님이요?""네. 친권자시고, 서류도 다 갖추고 계셔서… 저희는 당연히, 사모님과 얘기가 된 줄로만 알았어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쿵. 심장이, 발밑으로 떨어졌다."…강민호가."이혼한 전남편. 서아의 친아버지. 유치원이 그를 막을 명분 따위, 애초에 없었다. 바로 그 허점을, 그가 파고든 것이다."…선생님. 그 사람, 저와는 아무 얘기도 없었어요. 지금 당장 CCTV 확인하시고, 경찰에도 신고해 주세요. 제가, 곧 갑니다."전화를
最終更新日: 2026-07-02
Chapter: 제49화 — 미끼"…죽은 줄 알았던 쥐새끼가, 아직 살아 있었구나."서영애의 낮은 목소리가, 텅 빈 집무실에 서늘하게 깔렸다.15년 전, 그녀는 분명 한무현을 끝장냈다고 믿었다. 협박 한 번에 짐을 싸 들고 사라진 겁쟁이. 그런 자가 다시 기어 나와, 하필 지금 조카의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그 인간이 쥐고 있는 자료가, 어디까지지."서영애의 손끝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유언장은 표식 하나에 발목이 잡혔고, 이제 15년 전 비자금의 산증인까지 살아 돌아왔다. 종이로도, 돈으로도 완벽했던 판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오래 흔들리지 않았다. 곧 입가에, 익숙한 냉소가 번졌다."…뿌리를 뽑으면 그만이지."15년 전에도 그랬듯이. 방법은, 언제나 같았다.***한편, 서지안의 회장실.강도현은 한무현과의 만남을 전해 듣고,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창밖을 응시하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위험해. 서영애가 한무현이 살아 있다는 걸 알면, 15년 전처럼 손을 쓸 거야. 이번엔, 협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저도, 알아요."서지안은 담담했다. 오히려 그 담담함이, 강도현을 더 불안하게 했다."한무현 씨는, 15년을 숨어 살았어요. 이제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왔죠. 그런 분을, 다시 위험 속에 방치할 순 없어요.""그래서, 어쩌려고."서지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에는,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한무현 씨를, 가장 안전한 곳에 숨길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서영애가 그분을 찾아 움직이도록, 미끼를 던질 거예요."강도현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미끼라니.""한무현 씨가 '결정적 자료'를 들고 특정 장소로 움직인다는 정보를, 일부러 흘리는 거예요. 서영애는 분명, 그 자료를 없애려고 사람을 보내겠죠. 그 손을 잡으면… 서영애가 한무현 씨를 노렸다는 증거가 돼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15년 전, 서영애는 완벽하게 빠져나갔어요. 증거를 남기지 않았으니까. 하
最終更新日: 2026-07-02
Chapter: 제48화 — 15년 전의 목격자약속 장소는, 도심에서 한참 벗어난 한적한 찻집이었다.손님이라곤 거의 없는 구석 자리. 그곳에,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가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단정한 회색 정장에, 세월이 깃든 차분한 눈매. 서지안이 다가가자,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여울 아가씨군요. 많이, 컸습니다."순간, 서지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울'.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남지 않았다."…저를, 아세요?"노신사는 옅게 웃으며,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앉으시죠. 저는, 한 무현이라고 합니다. 오래전… 사모님 밑에서, 자금을 관리하던 사람입니다."장주련.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자, 서지안의 심장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사모님은, 보기보다 훨씬 꼼꼼하고 치밀한 분이셨습니다."한무현이, 식은 찻잔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회장님 곁에서 늘 한 발 물러나 계셨지만… 회사의 돈줄이 어디서 새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계셨죠. 그게, 사모님의 무서운 점이었습니다."그는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15년 전. 사모님은 제게, 은밀한 일 하나를 맡기셨습니다. 서영애 부회장이 빼돌리는 돈의 흐름을… 전부 추적해 달라고."서지안의 손끝이, 찻잔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그래서… 찾으셨나요.""찾았습니다."한무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서영애 부회장은, 단순히 회삿돈을 조금씩 빼먹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유령 회사를 몇 개나 세우고, 바다 건너로 돈을 빼돌려… 제 것으로 키우고 있었죠. 사모님은 그 증거를, 거의 다 손에 쥐셨습니다. 주주총회에서, 그걸 터뜨릴 작정이셨고요.""…그런데."
最終更新日: 2026-07-01
Chapter: 제47화 — 움직이는 그림자며칠 사이, 시장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JL 주가가, 까닭 모를 출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큰 악재가 터진 것도 아닌데, 누군가 매일 일정한 양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외국계 펀드 이름으로."회장님. 아무래도, 정상적인 매집이 아닙니다."자금팀장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긴장된 목소리로 보고했다."이름은 다 다른데… 매수 패턴이 똑같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서지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고모님이군요."유언장 위조가 들통날 위기에 몰리자, 서영애가 전혀 다른 칼을 빼 든 것이다. 법정에서 종이로 안 되면, 시장에서 지분으로.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우호 지분을 끌어모으려는 속셈이었다.문제는, 그 자금의 규모였다."팀장님. 저 펀드들… 어디서 돈이 나오는지, 추적이 됩니까."자금팀장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그게… 조세 회피처를 몇 단계나 거쳐서, 끝이 안 보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회장님 개인 자금이라기엔… 규모가 너무 큽니다. 이건, JL 부회장 한 사람이 굴릴 수 있는 돈이 아니에요."서지안은 알고 있었다. 그 돈의 정체를.수십 년간, 서영애가 JL의 살을 갉아먹으며 빼돌린 비자금. 그것은 이미 오래전, 바다 건너 정체불명의 거대한 투자회사로 자라나 있었다. 표면의 서영애는 그저 지분 12퍼센트의 부회장이었지만, 그림자 속의 그녀는 굴지의 대기업에 견줄 자본을 손에 쥔 사람이었다.***같은 시각, 서영애의 집무실.서영애는 여러 대의 모니터 앞에 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있었다. 각각의 화면에는, 서로 다른 펀드 명의로 들어가는 매수 주문이 실시간으로 깜
最終更新日: 202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