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말이 끝난 순간.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창문이 벌컥 열렸다.쾅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자 두 고양이는 깜짝 놀라 곧바로 소파 밑으로 숨어버렸다.창밖의 빗물이 거센 바람을 타고 안으로 들이쳤다.한여름의 무더운 8월인데도, 지금 방 안에는 서늘한 한기만 감돌았다.연지아는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갑자기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두 다리가 저릴 정도가 되어서야 연지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손에 든 봉투를 챙겨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두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연지아가 들어오자 성유원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강현수는 들어오는 연지아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맛이 다른 걸로 몇 종류 사 왔어. 너무 많이는 안 샀으니까, 일단 애들이 어떤 걸 더 좋아하는지 봐.”연지아는 가볍게 대답했다.“네.”그러고는 TV 옆에 있는 수납장으로 향했다.그 안에는 고양이 용품들이 들어 있었다.연지아는 사 온 고양이 캔을 하나씩 꺼내 수납장 안에 가지런히 정리했다.강현수는 창가로 가 창문을 단단히 잠갔다.순간 거센 바람 소리가 차단되며 집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연지아는 서랍을 닫았다.성유원에게 등을 보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한참 뒤.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연지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몸을 돌렸다.성유원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심장이 저도 모르게 세게 조여들었다.연지아는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고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성유원, 우리...”말을 끝내기도 전에.성유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끊고 들어왔다.“무슨 말 하려고?”연지아는 그를 바라보았다.성유원이 차갑게 말했다.“내가 서명도 안 했는데 무슨 이혼이야? 이혼증명서에는 가정 법원 인장까지 찍혀 있어.”성유원은 비웃음을 흘렸다.“연지아, 너 머리 어디 부딪혔어?!”그 말을 듣자 연지아의 얼굴빛이
연지아는 눈을 내리깐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강현수는 시선을 거두고 휴지 두 장을 뽑아 손을 닦았다. 구긴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에는 빈 그릇을 가져다 밥을 한 공기 뜨고 자연스럽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었다.“다음엔 아주머니한테 조금만 하시라고 해도 되겠어.”식탁 위의 음식은 줄어든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연지아는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 얌전히 앉아 나직이 대답했다.“네.”자신을 산 채로 잡아먹을 듯 사나운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그때 귀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연지아는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봤다. 성유원은 의자를 거칠게 빼고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검은 눈동자는 더없이 음산했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창밖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보다도 숨 막혔다.연지아는 무릎 사이에 내려놓은 손을 자꾸만 움켜쥐었다.“고양이들은 어디 있어?”강현수가 문득 물었다.연지아는 잠시 멈칫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소파 밑에 있을 거예요.”누가 자신들을 부르는 걸 알아듣기라도 한 듯, 치즈 고양이와 고등어무늬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소파 밑에서 기어 나왔다. 강현수의 발치로 다가가는 녀석들의 울음소리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강현수는 두 고양이를 내려다보다 연지아에게 말했다.“얘들 주려고 산 캔을 깜빡하고 안 가져왔네. 트렁크에 있는데, 지아야, 가서 좀 가져와 줄래?”연지아가 그를 바라봤다.강현수는 바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다녀와.”연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손을 뻗어 열쇠를 받았다.“네.”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집을 나선 뒤에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연지아는 몸을 돌려 벽에 기댄 채 잠시 서 있었다. 집 안은 숨 막힐 만큼 조용했다.한참 뒤 그녀는 안쪽을 한번 돌아보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가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집 안에는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식사를 마친 강현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휴지 두 장을 뽑았다. 느긋하게 입가를
한 달 남짓 못 본 사이 성유원은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이목구비는 한층 깊고 날카로워졌고 입가에는 수염이 거뭇하게 자라 있었다. 눈두덩은 움푹 꺼졌고 눈 밑에는 푸른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성유원은 평소 외모와 옷차림에 무척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연지아는 그의 밥을 챙긴 뒤 자기 밥도 한 공기 떴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말없이 반찬을 집어 먹었다.성유원은 긴 다리를 벌리고 의자 등받이에 느슨하게 몸을 기댄 채 맞은편에서 조용히 밥을 먹는 여자를 어두운 눈으로 응시했다.연지아가 눈을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숨을 내쉬고 물었다.“밥 먹고 왔어?”성유원이 비꼬듯 말했다.“날 위해 준비한 것도 아니잖아.”연지아는 꾹 참고 물었다.“그럼 뭐 먹고 싶은데? 도우미한테 다시 해 달라고 할게.”“널 잡아먹고 싶은데.”그 말에 연지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야릇한 뜻이 담긴 말이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자신을 잡아먹겠다는 소리처럼 들렸다.그녀는 젓가락을 꽉 쥐었다.“사람 잡아먹으면 범죄야.”남자는 그저 코웃음을 쳤다.연지아는 더는 그를 보지 않고 다시 밥을 먹었다. 혼자 반찬을 집어 먹는데도 맞은편 남자는 정말 젓가락을 들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도살을 기다리는 사냥감이라도 보듯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연지아는 까닭 모를 불안에 휩싸였다.“국수 끓여 줄게.”성유원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래도 연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와 떨어져 있기만 해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녀는 물을 올리고 냉장고에서 면을 꺼냈다.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조용히 기다리는 일 분 일 초가 숨 막히게 느껴졌다.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냄비에 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저었다. 면이 익자 그릇에 건져 담았다. 저녁에 만든 토
남자는 검은 옷을 입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온몸에서 냉기가 흘렀고 연지아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는 차가운 못처럼 깊었다.연지아는 아이보리색 실내복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느슨하게 틀어 올린 모습이었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 같았다. 하지만 그를 발견한 순간 입가에 걸려 있던 부드러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누구 기다려?”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움켜쥔 듯 숨이 막혔다.연지아는 옆구리께의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꽉 움켜쥐었다.불안할 만큼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그녀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어떻게 왔어?”성유원은 그녀를 응시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연지아가 흠칫했다.“너...”그녀의 눈에 어린 거부감을 본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차가워졌다.“안에 들키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연지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성유원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현관에 놓인 남자 슬리퍼 한 켤레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치즈 고양이와 고등어 태비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현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문가의 분위기를 감지하자 곧바로 털을 곤두세우고 문밖의 남자를 향해 하악질했다.성유원이 두 고양이를 훑어보자 녀석들은 털을 더욱 바짝 세우고 뻣뻣해진 다리로 뒷걸음질 쳤다.연지아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도 아무 말 없이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허리를 굽혀 품에 안았지만 두 녀석은 품 안에서도 계속 낮게 으르렁거렸다.그녀가 캣타워에 내려놓자 두 고양이는 남자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곧바로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었다.성유원은 거실에 들어서서 주위를 훑어봤다. 그러더니 곧장 침실이 있는 쪽을 찾아 성큼성큼 걸어갔다.연지아는 그가 어디로 가려는지 알아차리고 서둘러 뒤따라가 소리쳤다.“성유원, 뭐 하는 거야?”성유원은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안에는 여자 옷뿐이었다.현관에 놓인 남자 슬리퍼를 제외하면 집 안에는 의
앞으로 걸어가려던 송나겸은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응, 예쁘네요.”손재인은 무덤덤한 표정의 그를 바라보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내가 직접 꽂은 꽃인데, 반응이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에요?”송나겸은 손에 든 꽃다발을 다시 한번 보고, 실망한 표정의 손재인도 바라봤다.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예쁘다고 했잖아요?”손재인은 그를 빤히 바라보며 눈을 흘기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됐어요. 예쁘다니 그걸로 됐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돌아갔다. 곧장 길가에 세워진 롤스로이스를 향했다. 송나겸을 데리러 온 차라는 건 당연히 알아봤다.손재인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송나겸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안 갈 거예요?”송나겸은 시선을 거두고 앞으로 걸어갔다. 손재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를 따라 차에 올랐다.“곧장 주성시로 지아를 보러 갈 줄 알았는데.”송나겸이 대답했다.“며칠 뒤에 갈 거예요.”손재인이 물었다.“성유원은 자기가 지아와 이혼한 걸 알고 어떤 반응을 보였어요?”“아직 몰라요.”손재인은 순간 굳었다. 막 무언가를 물으려던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한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응, 지아 씨.”“재인 선배, 언제 올 거예요? 저도 미리 준비해 두게요.”손재인이 말했다.“그건 지아 씨 오빠한테 달렸어요!”그 말을 들은 송나겸의 신경이 저도 모르게 팽팽해졌다. 손재인은 곁눈질로 그의 반응을 살폈다.연지아는 잠시 멈칫했다가 물었다.“두 사람 지금 같이 있어요?”“네. 오늘 막 경원시로 돌아왔거든요. 지금 돌아가는 길이에요. 내가 휴가까지 내고 공항에 마중 나왔거든요. 꽃다발 포장하는 법도 미리 인터넷에서 배웠고요.”연지아는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손재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을 거예요.”“그래요?”손재인은 송나겸을 바라봤다.“나겸 씨 동생이 나겸 씨가 속으로 좋아하고 있을 거래요. 맞아요?”송나겸
“너도 잘 생각해 봐.”송나겸은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성유원은 무겁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턱선은 팽팽하게 굳어 있었고 잘생긴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그렇게 얼마나 침묵하고 있었을까. 그는 휴대전화를 들어 이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서연은 이틀 전 혼자 귀국했다. 성유원의 이번 사고 이후 성씨 가문에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그녀는 지금 본가에 있었다.이서연은 성유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유원아.”성유원이 말했다.“어머니,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아들의 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에 이서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성유원이 물었다.“그동안 정말 지아를 찾아간 적 없어요?”이서연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네가 그렇게 큰일을 당했는데 내가 그 애한테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었겠니? 유원아, 넌 예전엔 절대 이러지 않았어. 여자 하나 때문에 그렇게 마음 쓸 게 뭐가 있어?”성유원의 목소리가 유난히 낮게 가라앉았다.“어머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길 바라요.”전화가 끊겼다.이서연은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을 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성한민이 그녀를 보고 물었다.“왜 그래? 방금 유원이 전화 같은데, 무슨 말 했어?”이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이제는 연지아를 꽤나 신경 쓰는 모양이에요. 또 그 애에 관해 묻잖아요. 아직 자기가 연지아와 이혼한 것도 모르는데, 이걸 유원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죠?”그녀도 난감하기만 했다.방금 전 성유원의 태도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걱정스러웠다.성한민이 눈빛을 가라앉혔다.“그동안 둘이 연락도 안 했는데 연지아도 말하지 않았다고?”그 점은 의외였다. 그렇게 이혼하고도 연지아는 따지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고 성유원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낼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이서연이 말했다.“유원이 성격을 몰라서 그래요? 연지아가 병문안조차 오지 않았는데 자존심을 굽혀 먼저 연락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