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내가 쓴 소설 《불온한 정착》 속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남편과 절친에게 배신당해 끝내 무너지는 김서희가 되어. 다행히 아직 스물한 살. 차강수와의 사랑도, 비극도 시작되기 전이다. 이번에는 다르게 살 거다. 차강수와 민사라는 원작대로 사랑하게 두고, 김서희에게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차강수에게서 멀어질수록, 그는 원작과 다르게 나를 붙잡기 시작한다. “당신이 사랑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내가 만든 남자 차강수가, 원작이 아닌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Lihat lebih banyak민지는 회장실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머릿속으로 행동 수칙을 정했다.차강수를 보지 않는다.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시키는 일만 하고 나온다.무엇보다 저 인간과 엮이지 않는다.민지는 문틈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눈 마주치지 마. 눈깔 깔자.”“…….”민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완벽했다.못 들었을 거다.회장실이 넓기도 했고 강수는 책상 쪽에 앉아 있었다.“뭘 깔아요.”민지의 걸음이 뚝 멈췄다.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강수가 서류에서 눈을 들어 그녀를 보고 있었다.들었다.씨발.“아, 씨부랄탱!”이번에도 입 밖으로 나왔다.강수의 눈썹이 꿈틀했다.민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최민지.’오늘만 벌써 몇 번째냐.마흔하나 먹도록 회사생활을 어떻게 했나 싶었다.아니.원래 회사에서는 이 정도까지 입 밖으로 안 나왔다.이세계에 떨어진 충격이 문제였다.민지는 눈을 뜨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죄송합니다.”강수는 말이 없었다.“욕은 회장님께 한 게 아닙니다.”“그럼.”“저한테 했습니다.”강수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왜.”“제가 자꾸 실수해서요.”강수는 더 묻지 않았다.민지는 속으로 안도했다.역시 과묵한 인간은 이럴 때 편했다.“앉아요.”“네.”민지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그리고 강수를 보지 않았다.책상.서류.볼펜.화분.볼 게 많았다.굳이 차강수를 볼 필요가 없었다.“김서희 씨.”“네.”“나 봐요.”민지의 미간이 아주 살짝 구겨졌다.‘왜.’그래도 직장 상사다.민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강수와 눈이 마주쳤다.검은 눈이 그대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민지는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남자 아니다.’회장이다.직장 상사다.그리고 미래의 김서희 남편이지만 지금은 아니다.절대 아니다.강수가 물었다.“아까부터 왜 그래요.”“제가요?”“어.”“멀쩡합니다.”“안 그래 보이는데.”민지가 입을
민지의 머릿속에서 숫자가 빠르게 맞춰졌다.스물한 살.입사 한 달.그렇다면 차강수와 연애하기도 전이다.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민사라가 강수 앞에 나타나지도 않은 시점.자기가 본격적으로 써 내려간 비극에서 무려 3년이나 앞이었다.피할 수 있다.전부.“하, 씨부랄탱!! 와.”정민의 눈이 커졌다.민지도 동시에 놀랐다.“……!”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복도에 정적이 흘렀다.‘미친.’속으로 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왔다.정민은 손에 파일을 든 채 민지를 빤히 바라봤다.“서희 씨.”“……네.”“방금 뭐라고 했어요?”민지는 입을 가린 채 눈만 굴렸다.“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했습니다.”“잘못 들으신 거 아닐까요?”“씨부…….”“아아악!”민지가 갑자기 소리를 내며 정민의 말을 덮었다.정민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다.민지는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죄송합니다.”“뭐가요?”“그냥 전부요.”“…….”“저 물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도망치듯 탕비실로 향했다.문을 닫자마자 민지는 싱크대를 양손으로 짚었다.거울처럼 비치는 유리장에 김서희의 얼굴이 보였다.스물한 살.진짜 스물한 살이다.마흔하나였던 자기가 하루아침에 스무 살이나 어려졌다.“미쳤네.”이번에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민지는 자기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봤다.탱탱했다.눈가도 매끈했다.주근깨도 없다.극성 곱슬 단발도 사라졌다.오른팔을 걷어보니 역시 타투도 없었다.“와…….”기분이 이상했다.좋다고 해야 할지 무섭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젊어진 것만 생각하면 로또보다 대박이었다.하지만 이 몸은 자기 몸이 아니었다.김서희였다.그리고 여기는 자기가 쓴 소설 속.민지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정신이 조금 들었다.‘생각하자.’일단 돌아가는 방법은 모른다.왜 들어왔는지도 모른다.어젯밤 술 처먹고 김서희한테 미안하다고 한 것밖에는 없다.그렇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CH건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민지는 걸음을 조금 늦췄다.‘와.’진짜 크네.자기가 설정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다.높은 천장과 대리석 바닥, 바쁘게 오가는 직원들까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소설 속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사람들의 구두 소리가 들렸고 안내데스크 직원은 전화를 받았으며, 출입 게이트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전자음이 울렸다.민지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앞서 걷던 강수가 멈췄다.하마터면 등에 부딪힐 뻔했다.“앞 봐요.”“아, 네.”짧았다.강수는 다시 걸었다.민지는 그 뒤를 따라가며 입술을 삐죽였다.‘성격 더럽게 없는 건 똑같네.’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만들었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강수를 발견하고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회장님, 다녀오셨습니까.”강수는 고개만 한번 움직였다.민지는 그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회장님.역시 차강수는 이미 CH건설 회장이다.그건 시간대를 알아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강수가 먼저 들어갔고 민지도 따라탔다.문이 닫혔다.둘뿐이었다.민지는 거울처럼 비치는 벽을 보다가 그대로 굳었다.처음으로 김서희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중단발.고양이처럼 살짝 올라간 눈매.깨끗한 피부.자기 얼굴과 전혀 달랐다.민지는 눈을 한번 깜빡였다.거울 속 여자도 똑같이 깜빡였다.‘미친.’진짜 김서희다.손으로 볼을 만지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강수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민지는 대신 눈동자만 굴려 자기 모습을 살폈다.‘젊긴 한데.’정확한 나이는 모르겠다.스물넷이라고 해도 충분히 저 얼굴일 것 같았다.띵.문이 열리자 강수가 내렸다.민지도 황급히 따라나갔다.복도를 걷는데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큰 키에 단정한 정장 차림.민지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걸음을 멈출 뻔했다.‘한정민.’차강수의 오른팔.CH건설 비서실장.자기가 만든 또 다른 인간이었다.정민이 강수에게 자연스럽게 다
민지는 숨을 멈춘 채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아무리 봐도 자기 손이 아니었다.평생 공구를 잡아온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손톱도 늘 짧게 깎았고, 자잘한 상처가 사라질 날도 별로 없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손은 희고 매끈했다.오른팔도 마찬가지였다.없다.레터링 타투가.민지는 황급히 팔을 뒤집었다가 다시 손등을 확인했다.뭐야.진짜 뭐야.어젯밤까지 분명 자기 집이었다.차도현이랑 술을 마셨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그리고 완결 낸 《불온한 정착》을 보면서 김서희한테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그다음은 잤다.그런데 눈을 떠보니.민지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차강수.말도 안 된다.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남자인데 모를 수가 없었다.자기가 만들었으니까.오른쪽 얼굴의 흉터.구릿빛 피부.큰 체격.하드 투블럭컷.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압박하는 저 눈까지.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그렸던 차강수였다.‘뭐야!!’소리는 속에서만 질렀다.민지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미쳤다고 여기서 이세계니 소설이니 떠들 수는 없었다.자기가 쓴 소설 속에 들어왔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나.정신병원부터 알아보겠지.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김서희.민지는 자신을 가리키며 김서희냐고 물었던 조금 전의 행동을 떠올리고 속으로 욕했다.‘씨부랄탱.’이미 이상하게 봤겠다.강수는 말없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민지가 슬쩍 눈을 굴렸다.셔츠 어깨에 젖은 자국이 보였다.침.자기가 흘렸다.‘하필 차강수한테.’원작에서 그토록 무섭게 써놓은 인간의 어깨에 침을 처흘리면서 등장했다.작가 빙의 첫 장면 한번 아름다웠다.민지는 조심스럽게 몸을 떼고 허리를 세웠다.“……죄송합니다.”강수의 시선이 어깨를 한번 훑었다.“됐습니다.”끝이었다.민지는 오히려 더 긴장했다.저게 차강수였다.쓸데없는 말 안 하는 인간.화를 내도 길게 떠들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한다.자기가 그렇게 만들었다.문제는 지금이었다.‘언제야?’민지는 창밖
Ulasan-ula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