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이 장대성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라고 하자 장대성은 이해할 수가 없어 몰래 물었다. “우 선생, 왕야님께서 송석석과 결혼하고 병권을 내놓지 않으면 되지 않소?” 그러자 우금은 그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이런 멍청한 놈을 보았나? 병권을 넘기지 않으면 황제폐하께서 바로 태비마마를 내세워 이 혼사를 반대할 거 아니야?” 장대성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태비마마께서 막을 수 있잖아.” 태비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누가 시켜서 막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우금은 더 이상 해명하지 않고 재촉했다. “얼른 가서 편지나 전해주고 와.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말고.” 장대성이 말을 끌고 나가는 것을 본 우금은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왕야님께서 효도하지만 뒤에 황제의 지지만 없다면 태비마마께서 반대를 해도 송 씨 아가씨와 결혼했을 거야.) 국궁부에서 북명왕의 편지를 받은 송석석은 약간 의아했다. (북명왕께서 군무가 있다면 사람을 보내 나보고 오라고 하면 그만인데 왜 직접 방문해서 미리 편지까지 보내주셨을까? 이건 분명히 군무 때문에 보낸 게 아니야.) 송석석은 원수께서 실직을 맡지 않겠냐고 물어보려고 쓴 편지라고 생각하고 집사에게 내일 북명왕을 대접할 준비를 하라고 한 후 마음속으로는 단신의에게 연왕비의 몸상태가 어떤 지 물어볼 생각을 했다. 연왕 가문의 영지는 진성에서 백 리 떨어진 연주였는데, 애초에 전북망과의 혼사 역시 그녀가 중매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혼할 때 연왕비가 소식을 전해오지 않은 걸 보아 이 일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단신의의 여제자인 국춘이 연주에서 연왕비를 돌보고 있어 송석석은 단신의께서도 연왕비의 병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리고 단신의가 자신의 일을 국춘에게 말했지만 국춘이 연왕비에게 전하지 않은 것을 보아 병이 심각해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송석석은 보주에게 약왕당에 다녀오라고 했다. 왜냐하면 직접 나섰다가는 사람들에게 쫓기기 마련이기
약물로 목욕을 했더니 온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취침 전 명주가 발을 담그는 약물을 가져와 매일 발까지 담가야 한다고 했다. 송석석은 순순히 발을 담그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를 마셨다. 이것 또한 단신의가 처방한 약인데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방금 돌아왔을 땐 너무 피곤해서 이틀 동안 기절한 듯 잠을 잤지만, 피곤이 사라지자 송석석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설령 잠이 들었다고 해도 악몽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 오빠 그리고 모든 살아있던 가족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그녀의 앞에 나타나 놀라서 깨어나면 다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문이 멸문당했을 때 그녀는 후사를 치르고 장군부로 돌아갔을 때도 매일 안정제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단신의가 그녀의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약을 다 마시자 명주는 약과 한 알을 주며 말했다. “보주 언니가 아가씨께서 쓴 약을 먹는 것을 거부해서 약을 먹은 후에는 반드시 약과 한 알을 드셔야 한다고 했어요.” 송석석이 약과를 입으로 넣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서 풍겼다. 사실 그녀는 이제 쓴 약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릴 땐 쓴 약이 두려워서 약을 먹은 후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면 온 가족이 달래 줬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쓴 약을 먹어도,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받아줄 사람이 없잖아.) 순간, 입안의 단 맛은 사라지고 약의 쓴맛과 시큼한 맛만 남아 마치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그녀의 기분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감정을 억누르는데 익숙해 얼굴에 털끝만큼도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세심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가 기분이 나쁜 것을 알아채고 모두 마음 아픈 표정을 짓기 때문이었다. 진복은 약을 가져다 드리고 태공이 직접 그린 서화도 가져왔다.태공은 수십 년 동안 그림을 연구한 결과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송 씨 가문은 매년 은화를 기부하여 가난한 이들이 각자 꿈을 펼칠
미혼 남녀가 단둘이 한 방에 있겠다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진복이 무조건 보주나 명주를 남겨 송석석의 옆에 있으라고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원수와 장군이라는 호칭에 진복은 두 사람이 군무에 대해 말하려는 것을 알아채고 차를 한 잔 더 드리고 바로 모든 사람을 데리고 나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사여묵은 찻잔을 들고 긴 손가락으로 잔에 그려진 꽃무늬를 만지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말을 하지 않자 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수님, 혹시 남강 전쟁터에서…….” “그런 거 아니야!” 사여묵은 그녀의 말을 끊고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내려놓고 말했다. “나는 오늘 개인적인 일로 온 것이지 군무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사적인 일? 나와 원수 사이에 무슨 사적인 일이 있지?) 사여묵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당신에게 3개월 내에 시집가라고 하셨지. 그렇지 않으면 궁에 들어가 황비가 되라고 하셨고, 그렇지?” 송석석은 사여묵이 이 일을 알고 있는 것에 조금도 놀라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혹시 입궁해서 마마가 되고 싶어?” 사여묵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송석석은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혹시 황제폐하께서 보내신 건가요?” “아니, 이 문제는 내가 묻는 거야.” 송석석은 그의 맑은 눈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또 물었다. “그럼 마음에 둔 사람은 있어?”그는 송석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녀 얼굴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 “아뇨, 없어요.” “그럼 관심 가는 사람은?” “그것도 없어요.” 사여묵은 송석석의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관심 있는 남자가 없다고 하니 마음이 벌에게 쏘인 것처럼 살짝 아팠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모든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니까. 송석석은
감동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송석석은 거절했다. “황제께서 저에게 3개월 안으로 남편감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후계자를 내정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원수와 위장 혼인을 한다하면 황제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사여묵은 그녀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줄 몰랐다. 아직 황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고민한 뒤 손에 힘을 주었다. “그건 자네가 걱정할 필요 없네. 폐하께는 내가 말씀드리지. 후계자를 고민하시는 이유는 아마 전북망처럼 제멋대로에 난폭한 사람일까봐 걱정하셔서 그런 것일 세.”전임자를 비하하는 것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송석석은 전북망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원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국공의 지위를 차지하고 뒤로는 송씨 가문의 군대를 두는 것이니, 후계자 선정은 신중해야 한다.예전에 아버지가 황제로부터 추봉 되었을 때, 훗날 그녀의 사위가 그 직위를 계승할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그녀가 전쟁에 참여해 송씨 가문 군대로부터 인정을 받을 줄 몰랐던 모양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아무나 선택할 수는 없다.3개월 동안 그녀에게 남편감을 알아보라고 하기는 했지만, 사실 황제는 그녀가 적절한 사람을 고를 수있도록 돕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후계자로써 적합한 지만을 고려할 뿐, 그녀와 맞는 사람인지, 그녀의 인생을 함께 할만한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다.사여묵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채고 말했다. “짐은 사모하는 여인이 혼인한 뒤부터아내를 들일 생각이 없었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혼인을 원하시고 짐은 폐하의 동생이니, 그 명을 따를 수밖에. 다른 여인과 혼인하는 것보단 당신과 혼인하는 편이 나을 걸세.”송석석은 그의 깊은 눈빛을 마주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원수님, 소인이 혼인하여도 사모하시는 분이 따로 있다면 저는 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인 그런 건 원치 않습니다. 소인은 이미 이
사여묵이 떠난 뒤, 진복과 두명의 유모가 들어왔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숨기지 않고 사여묵이 혼인을 원했으며 그녀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진복과 두 유모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말을 잇지 못하다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일세.” 송석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와 원수 사이에는 어떠한 애정도 없네. 있는거라곤 전우애뿐이지. 그러니 혼인을 한다면 그자와 하는 것이 최선이야.”두 유모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말을 삼키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마음 단단히 하셔야 해요. 첩을 두지 않는 황실 남자들은 본적이 없어요.”같은 날 북명왕이 청혼하러 왔지만 부인이 그를 거절했다. 부인은 딸을 황실에 시집보내는 것을 원치않았다. 부인은 첩까지 여럿이 있는 집안은 일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두 유모는 차마 아가씨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부인이 반대하긴 했지만, 북명왕의 청혼을 그녀가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상관없네.” 송석석이 말했다.“상관없으시다고요?” 양씨 유모가 의아해했다. “하지만 장군이 평처를 들이는 건…”송석석이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랑은 얘기가 다르네. 전북망은 모친 앞에서 첩을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나는 그쪽 집안을 책임지며 그가 이기고 돌아올 때까지만을 기다렸지. 하지만 그자는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이방을 첩으로 들였어. 나와 모친과의 약조를 어기고 나래에 대한 남편으로써의 책임을 어긴 것이지. 나는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했지만 그 사람은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다른 여자에게 헌신한 거야. 그런 주제에 나에게 그런 무정한 말까지 했으니 나로써도 당연히 참을 필요가 없네.”이 말에 진복과 두 유모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래, 아가씨가 이렇게 진심을 다했는데 그런 대접을 받다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있겠나?송석석이 이어서 말했다. “나와 원수는 서로의 필요를 위해 혼인하는 것임을 서로 합의했네. 우리는 서로 애틋할 필요도, 잘 맞아
그는 오 대반이 건네준 호부를 바라보았고, 그는 여전히 오묘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송씨 가문 군대의 호부 절반을 꺼내 사여묵이 건넨 것과 합쳤다. 이로써 북명군의 호부가 완성되었고, 아바마마는 그날 그에게 북명군 호부를 그에게 주어 계속해서 북명군을 이끌고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이것을 상납하지 않아도 되었고,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북명군 호부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그의 손끝 사이로 이상한 감각이 전해졌다. "송석석이 동의했다고 하였느냐?"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폐하, 동의하였사옵니다."사여묵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동생처럼 기뻐하며 말했다."그날 소인이 출정하기 전에 청혼을 하러 갔고, 송 부인께서 그녀를 전북망과 혼인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돌고 돌아 결국 저의 곁으로 올 것이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개를 들었고, 그의 입가에는 달콤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인은 폐하께서 내리신 3개월 간의 칙령이 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황제는 재빨리 얼굴의 흐릿함을 떨쳐 버리고 매우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강요하지 않으면 또 한 번 더 그녀를 내줄 작정인겐가? 짐은 네 기질을 잘 알고 있고, 과거에는 청혼을 할 수도 없었고, 지금은 또 천천히 감정을 기르려고 하고 있지. 하지만 여자는 세월을 지체할 수 없고, 그녀의 가문도 작위가 계승되어야 하네."그러자 사여묵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소인이 겁이 많은 탓입니다."황제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그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송석석이 정말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폐하, 소인이 오랫동안 그녀를 흠모해 왔던 것을 폐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사여묵은 한쪽 의자에 앉아 이어서 말했다. "본래 구휼과 보상이 끝난 후, 병부를 상납하고 천천히 그녀와 함께 지내며 감정을 키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폐하의 칙령으로 인해 저는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빼앗
용춘궁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 북명왕비가 되고 싶거든 내가 죽지 않는 한 꿈도 꾸지 말라고 전하거라!"사여묵은 혼란에 빠진 혜 태비를 침착하게 바라보았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 우렁찬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다.하지만 송석석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두려운 건 사실이었다. 혜 태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손을 뻗었고, 그녀의 긴 갑옷은 사여묵의 코끝에 닿았다. "나는 며칠 후에 황실에 가서 오래 거주할 것이다, 그녀가 황실 문을 한 발짝이라도 들어오려 한다면 난 그 다리를 끊어버릴 테야!"그러자 사여묵은 약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예, 다리를 끊어버리십시오. 저는 그녀가 적의 두 다리를 자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칼은 번개처럼 빨랐고, 사람을 세 동강을 내버리는 것을 보고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요."혜 태비가 손을 번쩍 들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가 송씨 가문의 적녀든, 무술이 강한 장군이든 내 눈에는 장군부에서 쫓겨난 버려진 여인이다! 넌 친왕이고, 진성의 얼마나 많은 순결한 귀녀들이 네 황실 문을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넌 헌신짝이나 고르다니! 단단히 돌아버린 게지?!"그러자 이때, 사여묵의 눈이 번쩍였다. "이런 말은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어마마마께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황실에 살지 않고 이 궁에서 보살핌을 받으시면 되겠네요."혜 태비는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뭐라고? 네가 그…… 그 혼인을 한 번 한 여인 때문에 나를 황실에서 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야? 사여묵, 이 불효막심한 놈!"불효막심한 놈이라는 말은 태산이 머리를 내리누르는 것과 같았고, 사여묵을 숨이 막히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확실히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백 번, 이백 번을 넘어 수없이 들은 후에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말은 사여묵에게 그저 어머니가 화가 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 모자 관계가 겉으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은
그녀는 귀비탑에 누워 마음속으로 송석석에게 몹시 화가 났고, 고 씨 유모가 옆에서 말을 건넸다."태비마마, 슬퍼하실 필요 없습니다. 왕야님께서는 항상 생각이 있으신 분이지만, 지금은 잠시 송석석의 외모에 현혹되었을 뿐입니다. 듣자니 그녀의 용모가 진성에서 최고라고 하며, 송 부인께서 그녀를 시집보내려 했을 때 얼마나 많은 귀공자들이 청혼하러 왔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송 부인이 그녀를 전북망에게 시집보냈는지 정말 의문입니다."그녀는 손수건으로 혜 태비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그런 중고품 하나 때문에 이렇게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왕야님께서 굳이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면 결혼하라고 하십시오. 미인은 멀리서 보면 눈이 즐겁지만, 날이 갈수록 지겨워질 게 뻔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질투하고 심술궂은 짓을 저지르면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습니까? 황실에서도 그녀 혼자만 있는 것은 불가능하고, 후궁 미녀들이 줄줄이 들어온다면 그녀의 흉측한 얼굴이 드러나게 될 테고, 그때가 되면 왕야님께서는 그 여자를 싫어하시겠죠."그러자 혜 태비가 한탄하며 말했다."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가 그토록 당당하게 버림받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니, 내가 어찌 후궁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그녀는 항상 강했고, 선황의 모든 후궁에서 언니를 제외하고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날의 덕 귀비도, 지금의 덕 귀태비도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덕 귀태비의 진왕은 황후 친정의 조카딸과 혼인하였고, 황후의 친정인 제상서는 사족 출신으로 집안 전체가 조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딸 한녕 공주 역시 혼사를 논하고 있으며, 제나라 가문의 여섯째 도령이 명단에 올랐다. 여섯째 도령은 제씨 가문의 삼취였고, 비록 적출이었지만 셋째 어르신이 어렸을 때 쓰러져 머리가 망가진 탓에 마흔 살의 나이이지만 정신 연령은 칠팔 세의 어린아이와 같았다. 다행히 온화한 아내를 얻었기에 그를 자식과 같이 총애했고, 아들 하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