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거대한 태풍 속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붙잡아준 남녀의 치열한 생존기와 목숨을 건 로맨스. 현장의 영웅들(해경,의사, 소방관,구조대들)이 마주하는 두려움과 사명감,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사랑을 그린다.
Lihat lebih banyak하늘과 바다가 구별되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32년 전의 그날은 대한민국 기상 관측 사상 가장 잔인한 괴물로 기록된
초대형 태풍 ‘라합’이 한반도를 난도질하던 때였다.
시속 200킬로미터가 넘는 미친 바람이 남해안의 연실항을 집어삼켰고,
집들은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갔다.
“으아아아악!”
사정없이 흔들리는 연실 주민센터의 임시 대피소 구석.
만삭의 임산부가 비명을 질렀다.
양수가 터진 지 이미 수 시간이 지났지만,
외부와 연결된 도로는 전부 침수되어 구급차는커녕 헬기조차 뜰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조금만 더 힘주세요! 산모님, 제 목소리 들리시죠? 저 보세요!”
산모의 손을 부서져라 맞잡은 이는 다름 아닌
파견 나온 응급구조대원, 임연숙이었다.
그녀 역시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가를 적시고 있었지만,
결코 손을 놓지 않았다.
주민센터의 창문이 굉음을 내며 깨져 나갔고,
비바람이 칼날처럼 실내로 들이쳤다.
정전으로 암흑이 된 공간을 비추는 건 손에 쥔 손전등의 희미한 불빛뿐이었다.
“연숙 씨!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있어! 철수해야 해!”
밖에서 동료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으나 현숙은 소리쳤다.
“머리가 보여요! 지금 안 받으면 둘 다 죽어! 나 여기 있을 테니까 먼저 대피해!”
그것은 사명감 이전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리겠다는 처절한 본능이었다.
지옥 같은 폭풍우의 중심,
기적처럼 태풍의 눈이 연실군 상각을 지나며 잠시 바람이 가라앉은 그 찰나의 순간.
“으앙-! 으아아앙!”
찢어지는 천둥소리를 뚫고,
세상에서 가장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대피소 가득 울려 퍼졌다.
연숙은 땀과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갓 태어난 핏덩이를 품에 안았다.
“살았다……. 살았어.”
산모는 힘겹게 눈을 뜨며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연숙의 손을 잡으며 마지막 숨을 쥐어짜 냈다.
“이 아이…… 이름은…… 태풍으로…… 해 주세요.
이 지옥에서도 살아남았으니…… 평생 지지 말고…… 강하게 살라고…….”
태풍 속에서,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태어난 아이.
32년 후, 그 아이는 해양경찰청 특수구조대의 전설적인 1인자가 되어 있었다.
경남 소속의 해경 구조 본부 훈련장.
십 미터가 넘는 다이빙대 위에서 한 남자가 거침없이 차가운 풀장으로 몸을 던졌다.
자로 잰 듯한 완벽한 입수.
물 위로 떠오른 남자의 얼굴은 조각처럼 굳건했고, 눈빛은 깊고 시린 바다를 닮아 있었다.
해양경찰청 특수구조대 경장, 강태풍(32).
“강 경장! 또 지옥 훈련이냐? 징하다, 징해.”
동료가 수건을 던져주며 혀를 내둘렀다.
태풍은 묵묵히 물기를 닦아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훈련장 벽면에 걸린 대형 모니터의 기상 예보에 고정되어 있었다.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해 무서운 속도로 북상 중인 열대저압부.
태풍 <제우스>.
모니터를 바라보는 태풍의 커다란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20대 시절, 태풍 구조 현장에서 자신의 손을 놓치고
거친 파도 속으로 사라졌던 동료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이번 놈은 장난이 아니라던데. 중심기압이 역대급이래.”
“…….”
태풍은 떨리는 손을 꽉 쥐어 감췄다.
무뚝뚝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비해야지. 그 놈이... 오고 있으니까.”
그의 이름은 태풍이었으나,
그에게 태풍은 지독한 저주이자 반드시 이겨내야 할 숙명이었다.
남해 연실군의 아침은 언제나 조용하고 푸른 숨을 내쉬며 시작된다.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천천히 솟아오르며 바다 위로 금빛 비늘 같은 윤슬을 흩뿌릴 때,남해 병원과 파출소, 그리고 소방서와 해경 계류장에는어김없이 활기찬 아침 기상이 찾아왔다.강태풍은 일찍이 일어나 해경 정복의 매무새를 다듬었다.어깨 위의 계급장과 가슴께에 빛나는 수많은 훈장보다 그에게 더욱 소중한 것은,툇마루에서 아이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있는 아내 서나래의 따스한 눈빛이었다.서울 00대학병원의 스카우트 제의와 화려한 미래를 뒤로하고이곳 시골 병원의 파수꾼으로 남기를 자처한 강서나래.그녀는 여전히 청진기를 가슴에 품은 채 마을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피고,강태풍이 바다로 나갈 때마다 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는 단단한 버팀목이었다."태풍 씨, 오늘 바다 파도가 조금 센 편이래요. 출동할 때 항상 조심해요."서나래가 다가와 강태풍의 카라를 바르게 정돈해주며 미소를 지었다.강태풍은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걱정 마요, 강 선생. 나에게는 반드시 돌아와야 할 이유이자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있으니까."같은 시각, 관사 옆집에서는 차도훈과 민수아가 출근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붉은 소방 방화복을 챙겨 입은 도훈과 짙은 경찰 제복을 갖춰 입은 수아는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서로의 복장을 점검해주었다.화염 속을 주저 없이 뚫고 들어가는 베테랑 소방관과,주민들의 안전을 철통같이 지켜내는 당찬 경찰관.두 사람은 서로의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동료이자,서로의 영혼을 안아주는 단 하나의 연인이었다."차 반장님, 오늘 소방서랑 파출소 합동 점검 있는 거 잊지 않았죠? 농땡이 치면 제가 제일 먼저 과태료 끊을 겁니다."장난스레 눈짓을 보내는 수아의 말에 도훈이 껄껄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넘겨주었다."민 순경 지시라면 목숨 걸고 준수해야지. 오늘도 우리 서로 무사히 퇴근해서 맛있는 저녁 먹자고."네 사람은 각자의 일터
잔잔한 남해 밤바다 위로 은빛 달빛이 보석처럼 흩뿌려지는 연실군 언덕.네 청춘과 아이들의 든든한 보금자리인 관사 앞마당에은은하고 따스한 찻향이 감돌았다.첫째들인 태평이와 도아, 그리고 둘째들인 태린이와 수훈이까지네 아이가 각자의 방에서 곤히 잠든 조용한 밤.모처럼 차도훈과 민수아, 강태풍과 서나래 네 사람이툇마루에 둘러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수아는 따스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수평선 너머 칠흑 같은 남해 바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가끔은 정말 꿈만 같아요. 서울 강남의 숨 막히는 빌딩 숲과 매연 속에서 하루하루 범인 쫓고 불길 잡으러 정신없이 달리던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남해 연실군에 터를 잡고 모두가 한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요."수아의 감회 어린 말에 도훈이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맞아, 민 순경. 처음 연실군으로 내려오기로 결심했을 때는 과연 우리가 시골 현장에서도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참 많았지. 하지만 강태풍 대장님을 만나고 서나래와 강 팀장님 두 사람의 삶과, 이 마을 어르신들을 보고 부딪히면서 깨달았어. 생명을 구하고 주민을 지키는 사명은 서울이든 이곳 연실군이든 똑같이 뜨겁다는 걸 말이야."차도훈의 말에 강태풍은 찻잔을 내려놓으며지난날의 수많은 현장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집대성된 거대한 해일 속으로 로프 하나에 의지해 뛰어들었던 일,연실군 일대를 위협하던 역대급 태풍 '제우스'와 '퍼펙트 스톰'이 들이쳤을 때밤을 새우며 구조 작업을 펼쳤던 사선의 순간들.그리고 그 거친 폭풍우 속에서 태어난 첫째 태평이와 도아,둘째 태린이와 수훈이의 앙증맞은 얼굴까지.그 모든 기억이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 필름처럼 네 사람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강태풍이 곁에 앉은 서나래의 따뜻한 손을 굳게 쥐며묵직하면서도 감격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가 지나온 날들은 결코 쉽지 않은 폭풍우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곁에는 천사
화려한 서울의 00대학병원과 서울의 빽빽한 빌딩 숲을 뒤로하고 처음 이곳 남해 연실군으로 내려왔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낯선 시골의 적막함과 끝없이 펼쳐진 낯선 바다 풍경 앞에, 사실 저는 과연 내가 이곳에서 한 사람의 의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제 역할을 다해낼 수 있을지 깊은 두려움에 떨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거친 파도를 주저 없이 뚫고 들어가는 해경 기동대장 강태풍이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단숨에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생명의 존엄함 앞에 타협하지 않는 당신의 진실한 눈빛은, 제가 청진기를 든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최고의 처방전이었습니다. 태풍 씨, 제 곁에서 가장 단단한 바다가 되어주고, 우리 태평이와 태린이의 다정한 아빠로서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일궈주어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연실군으로 내려와 우리의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도훈이와 수아 씨. 첫째 도아와 둘째 수훈이를 키우며 육아의 매콤함을 함께 나누고, 소방관으로서 붉은 화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차 반장의 용기와 열혈 순경으로서 주민들의 등 뒤를 당차게 지켜주는 수아 씨의 따뜻한 사명감이 없었다면 우리 연실군의 이 평화는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육상과 해상, 그리고 병원을 잇는 우리의 완벽한 파트너십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자랑거리입니다.또한 저 하나만을 믿고 서울에서 이곳 남해 시골 마을까지 흔쾌히 따라 내려와 준지은이와 방사선과 김 선생님, 마취과 최 선생님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딸아이의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내려온 김 선생님의 선택이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밝게 뛰어놀아 주는 아이를 볼 때마다제 마음도 함께 치유되는 것만 같습니다.어르신들의 복약 지도에 온 힘을 다하는 지은이와응급 상황마다 내 손발이
어느덧 연실군에 완벽하게 정착한 차도훈과 민수아 부부의 삶은 매일매일이 뜨거운 열정과 다정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서울의 빌딩 숲을 떠나 시원한 바다 내음이 가득한 남해 시골 마을로 내려온 선택은 두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강태풍·서나래 부부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날개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연실군에 찾아온 변화는 네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울 00대학병원 시절부터 서나래의 곁을 지키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오랜 친구이자 약사 지은이 연실군 남해병원 약국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너 혼자 이 오지에서 어르신들 약 짓고 진료 보느라 고생하는 꼴을 어떻게 보냐" 지은은 이렇게 말하며 툴툴거렸지만, 막상 내려온 뒤에는 연실군 어르신들의 복약 지도와 건강 상담을 특유의 야무진 손길로 챙기며 냠해병원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 의료진의 합류도 이어졌다. 딸아이의 극심한 소아 천식 때문에 깨끗한 공기가 절실했던 방사선과 김 선생은 강서나래의 멋진고 아름다은 삶을 보며 연실군으로 내려와 남해 병원의 엑스레이와 영상 장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시원한 남해의 바닷바람과 산자락 덕분에 딸아이의 기침 소리가 잦아들자, 김 선생은 연실군으로 내려온 결정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강서나래에게 몇 번이고 감사함을 전했다. 또한 00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호흡을 같이 맞추었던 마취과 최 선생이 중홪실의 숨막히는 스트레스에 지쳐가다가 역시 서나래의 든든한 조력자로 내려와 긴급 수술과 응급 처치 현장을 수호했다. 서나래를 중심으로 모여든 정예 의료진은 순식간에 연실군의 의료 수준을 대도시 병원 못지않게 끌어올렸다. 어느 청명한 주말 오후. 연실군 해안가 언덕 위 남해 병원 앞마당에 네 부부와 동료들이 모였다. 첫째들인 태평이와 도아, 둘째들인 태린이와 수훈이, 그리고 김 선생의 딸아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을 잡고 동네 산책을 나간 사이, 모처럼 찾아온 짧은 휴식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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