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찰리는 수년 동안 엘레나를 증오했다.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을 망가뜨렸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 첫사랑은 다름 아닌 엘레나의 친여동생이었다. 잔인한 정략결혼 속에서 모욕과 냉대를 견뎌야 했던 엘레나는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묵묵히 감내했다. 그러다 마침내 찰리가 이혼 서류 한 장을 내밀며 그녀를 버린 그날, 그녀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5년 후, 엘레나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CEO로 돌아왔다. 그녀의 곁에는 누구보다 특별한 어린 아들이 있었고, 그녀의 마음은 더 이상 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과거에 감춰졌던 충격적인 진실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찰리는 자신이 평생 사랑이라 믿었던 여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잔인하게 짓밟았던 엘레나야말로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 준 단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끝없는 후회에 사로잡힌 찰리는 엘레나에게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엘레나는 더 이상 그의 여자가 아니었다.
View More연회장 한쪽을 감도는 침묵이 몇 초 동안 이어졌다. 엘레나 빅토리아는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윌리엄 밴가드의 표정을 살피려 했다. 남자가 레오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그의 개인 저택에 대해 묻는 방식은, 그가 평범한 비즈니스 파트너에게는 있을 수 없는 수준의 친밀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레오는 잘 지내고 있어요, 윌리엄 씨." 엘레나가 마침내 대답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학교생활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윌리엄이 낮게 웃었다. 잘생긴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부드럽게 번졌다. "다행이군. 네가 지난 몇 주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고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걱정했어. 알잖아, 엘레나... 넌 늘 너무 열심히 일해서 정작 네 몸을 돌보는 건 잊어버리잖아."남자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뒤 몸을 살짝 틀어 유리 벽에 비친 엘레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관심이 담겨 있었다. 어떤 여자라도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큼 완벽하게 만들어진 시선이었다.하지만 기억을 잃어 텅 빈 엘레나의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분석적인 본능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윌리엄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눈앞의 남자는 원숙한 매력과 뛰어난 말솜씨를 지녔으며, 밴가드 가문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윌리엄과 마주하고 있을 때는 가슴속에서 그 어떤 낯선 떨림도 일어나지 않았다.그것은 어시스턴트 찰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이 보이는 반응과는 완전히 달랐다. 찰리는 그저 그녀의 직원에 불과했지만, 이상하게도 늘 그녀의 심장을 불규칙하게 뛰게 만들었고,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윌리엄이 나와 레오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라면... 왜 내 마음은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거지?' 엘레나는 손에 쥔 클러치백을 힘껏 움켜쥐며
초인종 소리가 스위트룸의 적막을 깨뜨렸다.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잠시 셔츠를 정돈한 뒤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문 앞에는 스테바니 뱅가드가 우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짙은 버건디색 이브닝드레스가 그녀의 몸매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문이 활짝 열리자 스테바니는 곧장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두 팔을 뻗은 그녀는 찰리의 목을 감싸며 따뜻하게 끌어안으려 했다.그러나 찰리는 차가운 반사적 움직임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스테바니의 손끝은 결국 허공만 움켜쥐었다.방 안에는 레이가 보이지 않았다. 찰리는 스테바니를 들여보내기 전에 자신의 개인 비서에게 잠시 안쪽 서재 구역에 숨어 있도록 지시해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스테바니는 비꼬는 듯한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안으로 들어섰다. 날카로운 시선은 곧장 방 한가운데 놓인 유리 테이블로 향했다. 그 위에는 두꺼운 서류철 여러 개가 펼쳐져 있었다.그녀의 아름다운 이마에 희미하게 주름이 잡혔다. 스테바니는 잠시 서류 더미를 바라보다가 이내 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베인 씨... 이 서류는 뭐죠?» 그녀가 캐묻듯 물었다.«앉아.»찰리는 짧게 대답하며 맞은편 소파를 차갑게 가리켰다.스테바니는 드레스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린 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그러나 첫 페이지에 적힌 제목과 조항을 읽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애써 억누르던 짜증이 서서히 얼굴 위로 드러났다.스테바니가 항의하기도 전에 찰리가 먼저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어서 그 공장 건물 매입 취소서에 서명해.»찰리는 협상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은 채 명령했다.«이번 거래는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어.»스테바니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턱을 굳게 다물었다.«일방적으로 인수를 취소하겠다고? 찰리, 당신 미쳤어요?»«이 공장 거래 뒤에 숨겨진
해 질 무렵의 빛이 서서히 어둑해지기 시작할 때, 찰리가 운전하는 차가 B시의 복잡한 교통을 가르며 그가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묵고 있는 특급 호텔을 향해 달렸다.호텔에 도착하자 찰리는 당당한 걸음으로 웅장한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에는 천장에 매달린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불빛이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로비 중앙의 기둥 근처에 회색 정장을 입고 꼿꼿하게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멈췄다.취리히에서 온 그의 개인 비서, 레이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찰리는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자신이 신뢰하는 남자가 나타난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레이, 오래 기다렸나?"찰리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레이는 극도로 절제된 동작으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괜찮습니다, 베인 씨. 요즘 당신의 일정이 무척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여기 오기 전에 왜 먼저 연락하지 않았지?"찰리는 손목시계의 위치를 바로잡으며 물었다."갑작스럽게 연락드리면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엘레나 부인의 개인 비서로 위장하고 계신 당신의 신분까지 위험해질까 우려했습니다."레이는 경계심이 가득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찰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중하게 판단한 비서의 생각에 동의했다."위에서 이야기하지."두 남자는 곧 그들을 위층의 스위트룸으로 데려다줄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탁 트인 도시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위트룸 앞에 도착했다.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찰리는 고급스러운 재킷을 벗어 소파 등받이에 던져 놓은 뒤, 스위트룸의 거실 공간에서 레이와 마주 앉았다.레이는 지체하지 않고 가져온 가죽 가방을 열어 법적 도장이 찍힌 공식 서류 뭉치를 꺼냈다."어떻게 됐지? 그 서류들의 취소 초안은 전부 마무리됐나?"찰리는 유리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더미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애교가 섞인 목소리였지만, 찰리의 귀에는 그 목소리의 억양 하나하나가 오히려 차갑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자신의 약혼녀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데, 왜 그렇게 긴장하는 거예요, 베인 씨?"그녀는 일부러 비웃는 듯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찰리는 발코니의 철제 난간을 손가락으로 꽉 움켜쥔 채, 에이텔 코퍼레이션 상층부에서 B시의 드넓은 마천루 풍경을 내려다보았다."스테바니, 나 지금 바빠."찰리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며 한 음절 한 음절에 단호한 힘을 실었다."중요하게 할 말이 없다면, 지금 당장 전화를 끊겠다.""아, 바쁘다고?"스테바니가 전화기 너머에서 비꼬듯 속삭였다."그 불쌍한 전처를 돌보고 챙기느라 바쁜 건가?"찰리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그는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재벌가 여자의 질투에 일일이 반응해 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는 긴 말다툼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베인 씨, 잊은 척하지 마세요."스테바니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당신은 일부러 우리 가족 전체와의 공식 만찬 초대를 계속 미루고 있잖아요. 이제 제가 직접 와서 당신이 스스로 한 약속을 받아내려는 거예요."찰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몇 초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머릿속에는 깊은 거부감이 가득했다. 엘레나의 회복을 순조롭게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지금, 스테바니의 야망에 상대하는 것은 그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엘레나는 이제 병원에서도 퇴원했고,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잖아요."스테바니가 다시 몰아붙였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에는 교묘하게 감춰진 협박이 배어 있었다."이제 무슨 핑계를 대려고요, 찰리? 아니면… 그 영상이 모든 언론에 널리 퍼져서 당신들의 명예를 짓밟는 헤드라인이 되기를 기다릴 건가요?"그 협박은 정확히 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그의 눈빛이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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