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서백부도 매우 분주했다. 왕표가 북명군을 맡고 있는 덕에 요즘 평서백부 댁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내일이 대혼일이었지만, 오늘부터 이미 시작되었다.왕청여가 이혼서를 들고 방씨 가문에서 나올 때 그들은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수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은전을 보태주었다. 심지어 방시원이 전사한 후 받은 위로금도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토지도 따로 떼어주었다. 방씨 가문은 무장세가였다. 그들은 그녀가 홀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때 왕청여는 절대로 재혼하지 않겠다고 말했기에 방씨 가문은 친정에서 남은 생을 보낼 그녀를 위해 많은 것을 주었다.왕청여는 그 재산으로 새로운 혼수를 준비했고 많은 물건들은 새롭게 장만했다. 그렇게 총 68개의 혼수 상자가 마련되었다. 그녀는 송석석이 왕부로 시집갈 때 혼수로 가져간 상자가 64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보다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이혼한 송석석이 궁으로 들어가 얼마나 화려하게 살게 될지는 그녀 일이지만 출가하는 날 만큼은 반드시 송석석에 뒤처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군부에서 체면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여겼다.듣기로, 심청화는 이미 진성을 떠났고, 송국공부에서는 친인척들만 참석할 거라고 들었다. 그들이 초대하지 않은 것인지, 초대받았지만, 손님들이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송석석이 왕부로 시집가는 모습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오직 그래야만 내일 대혼식 때, 그녀의 체면이 송석석을 능가할 것이다.북명왕은 친왕이기 때문에 직접 맞이하러 오지 않겠지만, 전북망은 직접 올 것이다. 그렇게 왕청여는 또 한 번 송석석을 짓눌렀다.송석석과 경쟁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송석석이 먼저였고 그녀가 뒤에 가는 사람으로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게다가 그녀는 그날 전소환이 와서 한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믿지 말라고 하셨다. 연로한 어머니는 내실 일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일에 대해 잘 모르신다.송석석이 전북
음력 12월 24일, 아침에 눈이 내렸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차가운 바람은 칼날 같았다. 양마마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오늘 우리 아가씨께서 시집가는 날입니다. 그동안 너무 가혹하게 대하셨으니, 오늘은 맑은 날씨를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앞으로 매일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드리겠습니다."송석석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야 했다. 묘의각의 양인들이 찾아와 그녀의 얼굴을 정돈하고 피부 관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반죽 같은 것을 그녀의 얼굴에 바르고는 조용히 누워 말을 말라고 했다.어젯밤 복잡한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그녀는 오늘 침상에 눕혀져 눈을 감고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려니 자꾸만 잠이 몰려왔다.어젯밤이 되어서야 그녀는 완전히 단념했다. 스승과 다른 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고 시만자 또한 그럴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잠시 눈을 붙인 사이, 묘의각 소진이 그녀의 얼굴에 바른 반죽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손 까딱할 필요 없었지만, 잠에서 깨어났고 그저 그대로 누워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맡겼다. 옆에서 거들고 있는 그들은 모두 서른 살 남짓했고 눈처럼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 관리 실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시녀들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유독 즐거워 보이는 서우를 데려욌다. 고모가 아름다운 신부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단다.서우는 고모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서우의 발음이 이제 꽤 많이 유창해진 것 같다.“서우도 친정 사람입니다. 제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요.”송석석은 서우가 보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감정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다. 그녀는 서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고모에게 당연히 친정이 있어. 고모는 지금 아주 기쁘단다. 서우가 좋아하는 아저씨와 함께 우리 이제 궁에서 살게 될 거야. 새 옷으로 입어 볼까? 고모가 한번 보고 싶구나.”"네!" 서우는 힘차게 대답했다. 보주는 미소를 지으며 서우와 함께 옷방으로 갔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서우가 다가왔다.몇 달 동안 키가 훌쩍 자란 서우는 맞춘 옷이 몸에 딱 맞았다. 빨간 비단에 토끼가 수 놓여 있었고 겉에는 가죽 안감을 덧댄 작은 망토를 걸쳤다. 망토의 모자는 겉은 검고 안은 붉은 색으로 되어 뒤로 늘어뜨리면 협객이 다름없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아증맞은 리본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어쩜 이리 귀엽고 잘생겼을까?” 송석석은 서우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방금전 시술 때문에 얼굴이 조금 따끔거렸지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모가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정말 멋지구나.”서우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이모, 그런 말은 어린애들한테나 하는 말입니다. 저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란 말입니다.”“어린아이가 아니라니? 고모에게 너는 언제나 어린아이란다.” 그를 품에 안은 송석석은 가족의 온기를 느꼈다.옆에 있던 소진도 미소를 지었다.“서우 도련님, 참 잘생겼네요. 나중에 커서도 반드시 용맹하고 늠름한 사내대장부가 될 겁니다.”평소 자신을 사내대장부라고 부르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서우는 몰래 간직하고 있던 사탕 하나를 소진에게 선뜻 내밀었다.“이모, 사탕 드세요. 고생하셨어요.”사탕을 한입에 넣은 소진이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 사탕 너무 달콤합니다.”보주는 서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제 우리 밖에 나가서 놀아요. 아가씨께서 혼례복을 입으면 다시 보러 옵시다.”신시에 혼례물이 나갈 예정이었고, 혼례물이 나간 뒤 세 경이 지나면 신부가 출발할 예정이었기에, 지금은 혼례복을 입고 화장을 해야 했다. 결혼식은 유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지금은 겨울철이므로 유시쯤이면 왕부에 도착해 하늘과 땅에 예를 올려야 하니,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지만 눈 오는 날씨이기에 일찍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다행히도 양마마의 기도가 통했는지, 정오가 되자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햇빛이 비추고 대지가 눈부시게 반짝여 너무 아름다웠다.정오가 지나자, 송석석도 혼
양마마가 묘의각의 여인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식사가 차려졌다. 그들은 미리 배를 불려야 했다. 신시 이후가 되면 신부는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췬 뒤에도 묘의각의 여인들은 곧바로 떠나지 않고, 그중 한 명이 왕부까지 동행하였다. 합근주를 마신 후, 신랑과 신부는 차를 올리는 예를 갖추어야 했기에, 한 명이 신부의 화장을 고치기 위해 따라가야 했다. 왕부에는 손님이 많아 자주 차와 술을 권해야 했으므로, 화장이 쉽게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신시가 되어 혼수가 출문했다. 징이 울리고 경쾌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송씨 가문의 자제들이 직접 혼수를 메고 길을 나섰다. 육십사 가마의 혼수에는 값지고 귀중한 물건들이 가득했고, 그중 하나는 심청화의 그림으로,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평서백부와 국공부는 두 개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그들도 신시에 혼수를 내보냈다.왕청여도 가례 복을 입고 혼수가 출문한 후, 유시에 전북망이 맞이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국공부의 혼수가 출문하였는지 확인하게 하고, 육십사 가마가 맞는지 세어 보게 하였다. 시녀 유월이가 나가서 세어보니, 육십사 가마가 맞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국공부의 공주가, 혼수는 나 같은 백부의 딸보다 못하구나.” 그녀는 송석석의 혼수가 얼마나 값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왕청여가 조금 우쭐해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징과 북을 울리며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남 시씨 가문에서 송 장군께 혼수를 더 드리나이다. 금사오십필, 금상옥 머리장식 세 세트, 옥여의 한 쌍, 용봉 팔찌 십팔 쌍을 더합니다.” 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다니, 가짜겠구나?’ 바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려 할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청옥방에서 국공부 송 장군께 혼수를 더 드리나이다. 현철검 두 자루, 장창 한 자루, 금옥도 한 자루, 금은보석 한 상자.”그 소리는 내공을 사용한 듯, 징 소리보다 더 높
적염문 후에는 진성에 위치한 약왕당이었고, 각종 귀중한 약재와 백년삼, 설연 등을 보내왔다. 약왕당의 보고 후에는 동해파였으며, 동일하게 희귀한 보배를 보내왔고, 그중 동주가 가장 귀한 것에 속했다. 그들은 마치 적염문을 압살하려는 듯했고, 동주 외에도 각종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가 무려 세 개가 있었다.왕청여는 들으면 들을수록 온몸이 떨려왔고, 송석석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온몸을 떨며 예단을 거의 듣지 못하고 문파의 이름만 들릴 뿐이었다. 많은 문파들이 그녀와 전혀 접촉이 없는 곳이었는데, 어떻게 예물을 보내올 수 있단 말이지? 사부가 그들에게 알려준 것이 틀림없다. 마침내 예닐곱 문파를 더 들은 후, 송석석은 다섯 사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종문 문주께서 따님을 시집보내시니, 혼수 108 짐과 수도 내 상점 열 채, 매산 아랫집 두 채와 황금 만 냥을 바치겠나이다.”그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고, 인근 10개의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종문에서 딸을 시집보낸다고? 송석석이 만종문의 제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냥 제자는 아니지 않은가? 이 혼수의 무게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안겨주었다. 왕청여는 묘의각의 낭자에게 화장을 부탁했는데, 그녀의 흰 피부에 주근깨가 몇 개 있었기 때문에 화장은 조금 두꺼웠지만, 연지도 발라주니 화장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여러 거리를 뒤흔드는 외침을 들었을 때, 화장을 한 그녀의 낯빛이 심하게 어두워졌다. 뭐라고? 만종문에게 혼수 108짐과 수도 내 상점 열 채, 매산 아랫집 두 채와 황금 만 냥을 보내다니? 이럴 리가 없다, 황금 만 냥이면 무게가 얼마나 되는데, 게다가 그렇게 많은 혼수라니, 이는 가짜임에 틀림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게 얼마나 천 탈의 금이냐고요? 어떻게 들어 올리나요? 가짜임이 틀림없다.“유월, 빨리 나가서 살펴보거라.”그녀가 소리쳤다. 국공부에서 송석석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미친 듯이 눈물을 흘렸다. 아, 사부님은
혼수가 이미 나왔기 때문에, 반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혼인이 성사될 것이다. 사여묵은 이전에 신부를 맞이하겠다고 했으니, 그녀가 울어서 망가진 화장을 또다시 묘의각의 낭자에게 부탁해야 했다. 하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사부님과 첫째 사형의 어깨를 두드렸고, 둘째 사저는 도무지 칠 수가 없어서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둘째 사저, 저는 사부님과 사형, 사저들이 안 오는 줄 알고 너무 괴로웠습니다,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 줄 알았어요.”그러자 둘째 사저 평무종은 웃으며 그녀의 눈물을 서툴게 닦아주었다. 사매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고,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졌던가. 평무종은 가슴이 미어지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자, 이제 울지 말자. 오늘은 가장 기쁘고, 가장 예뻐야 하는 날인데 이렇게 울어서 되겠어?”평무종은 몸매가 늘씬하고 용모가 수려했으며, 언뜻 보기에는 대갓집 규수처럼 보였다. 그녀의 경공은 매우 뛰어났고, 은폐와 위장술은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한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녀는 현재 무림 제일의 정탐원이며, 만종문의 둘째 사저일 뿐만 아니라 운익각의 각주이기도 했다. 다만 그녀는 운익각을 부각주에게 맡겼고, 그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에 익숙했다. 오늘 온 사람도 운익각 사람이었고, 그녀가 단독으로 운익각 이름으로 혼수를 보낸 것이다. 묘의각의 낭자도 큰판을 본 셈이며, 갑자기 무림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왔고, 게다가 보통 강호의 사나이들처럼 옷차림도 평범하지 않고 화려하게 입었기에 처음 본다면 호족 대가인 줄 알았을 것이다. 소진은 송석석의 화장을 고쳐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여전히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옆에 서서 그녀가 이야기를 다 끝내고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송석석은 눈물을 닦아내고, 사숙이 첫째 사형의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또 한바탕 억울한 듯 말을 꺼냈다. “사숙, 저는 우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겁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벌하시면 안 됩니다.”
이때, 진복이 눈물을 닦으며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꽃가마가 곧 도착하니 서둘러 화장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송석석은 사부님과 사형들을 만나 몇 마디밖에 나누지 못하고 바로 떠나려 하니, 섭섭한 마음에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한 시진만 더 늦출 수는 없느냐?”“안 됩니다 아가씨, 반드시 길시에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그러자 평무종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가거라, 가서 화장을 잘 고치고. 이렇게 기쁜 날에 울고불고하는 것이 말이 되니? 우리는 널 시집보내러 온 거고, 곧 너와 같이 갈 거야. 북명 황실에 우리의 자리도 있을 거고 혼인 잔치에도 참석할 거다.”송석석은 눈을 깜빡였고,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릿한 채로 말했다. “그 말은 왕께서 여러분이 온 걸 알고 계셨다는 건가요?”“그래, 하지만 왕께서는 네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셔.”그렇다면 왕이 알고도 보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송석석은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자신을 축복하러 온 문파 장문들과 제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려 했다. “됐다, 가서 화장을 고치거라.”임양운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송석석은 돌아서며 속으로 사부는 정말 예의 하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화장을 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징과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누군가 다급하게 와서 보고했다. “신부를 맞이하는 북명왕의 행렬이 도착했습니다. 왕께서 친히 맞이하러 오셨습니다!”사숙 무소위는 이런 호들갑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말했다. “뭐지? 장가를 가서 직접 신부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더냐? 그런데 왜 이런 호들갑을 떠는 것이지? 그가 감히 오지 않으면, 내가 그의 귀를 잘라 버리겠다!”사숙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본 문지기는 순식간에 황당한 얼굴로 물러났다. 왕청여는 현재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는 전북망이 직접 와서 아내를 맞는 것이고, 친왕인 사여묵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여묵이 신부를 맞이하는 행렬을 데리고 일찍 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 자리에
송석석은 무의식적으로 사부의 손을 잡았지만, 다른 손 하나가 다가왔다.그 손바닥은 넓고 길었으며, 굳은살이 가득했고 손톱은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바닥에서 조금 위로 가면, 용무늬가 수놓아진 예복이 있다는 것이다. 친왕의 예복은 용무늬를 사용해도 되고, 조복도 가능하지만 오조구룡 무늬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사여묵, 그녀의 남편이었다.잠깐의 침묵 후 그녀는 손바닥을 뻗었고, 그는 손을 잡아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는 손바닥을 모아 그녀의 손을 잡았고, 몇 번이고 손을 돌려 위치를 잡은 후 마침내 그녀의 열 손가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송석석은 가슴이 북처럼 뛰었고, 그 소리에 고막까지 떨려왔다. 그녀가 가슴이 뛰지 않았다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상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심지어 현기증까지 느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사여묵은 그녀의 손을 잡고 꽃가마로 향해 걸어갔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규칙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듯했다.신부의 시중을 드는 자가 등에 업고 꽃가마로 가는 것이 규칙에 맞았지만, 그런 규칙은 개나 줘버리고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란히 걸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그는 그녀보다 훨씬 크지만, 누가 상관이나 하겠는가?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솜을 밟는 듯했고, 이 광경은 꿈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그는 예전에 슬프고 절망적이었지만, 하늘이 그를 이렇게 구원해 주며 그에게 이런 복을 내려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부는 그를 노려보았고, 그것은 그가 규칙을 따르지도 않고, 문안드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누가 그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는 벌을 마땅히 받을 수 있었고, 몇 번의 채찍질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오직 그의 아내이자, 왕비인 송석석만 보였다. 그 자리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눈에는 자신의 낭자만 들어왔다. 그는 기절할까 두려워 호흡을 가다듬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꽃가마를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