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여묵이 손수건을 꺼냈다.그리고 그녀의 눈가를 살살 닦아 주었다.“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권은 과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병권을 어떻게 당신과 비교하겠습니까. 제가 병권을 가지고 있으면 그저 시기 질투의 대상만 될 뿐입니다. 그리고 구도 명령이 없었어도 병권을 포기했을 겁니다.”심지어 당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만약 구도 명령이 없었다면 어떻게 청혼을 했을지 모릅니다.후궁이 되는 선택과 저라는 선택지에서 분명히 저를 선택하셨지 않습니까.그분이 도와주신 것과 다름없습니다.”송석석이 그를 노려 보았다.“좋습니까? 남한테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그녀의 애교 섞인 불만은 그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괜찮습니다. 이렇게 소원이 이루어졌지 않습니까.”송석석이 눈을 아래로 내렸다.사실 마음이 간질거렸다.그녀는 그제야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왕야는 각각 다른 반찬을 그녀에게 집어 주었다.“배가 많이 고프셨지요?”송석석이 답했다.“오늘 제가 먹은 건 국수가 다 입니다. 저는 양 마마께서 가져다주시기라도 했지,당신은 그저 빈속이 아닙니까.”왕야가 답했다.“하객들을 접대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없었습니다.”“제 사부가 그런 겁니까?”송석석이 연근을 집어 입으로 넣었다.부드러운 식감에 간도 잘 배었다.마치 연근처럼 부부의 마음이 연이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녀는 왕야에게도 연근을 집어 주었다.사랑하는 여인이 집어 준 반찬은 입에서 녹아내렸다.이렇게 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즐겼다.당연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하지만 혼인하고 처음 하는 식사 자리인 만큼 신중한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송석석은 우아하다 못해 규수처럼 밥을 먹었다.한편, 사여묵은 무언가 생각난 건지 계속 미소를 짓고 있다.그때는 이리성을 공격했을 당시였다. 송석석이 국수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던 적이 있다.심지어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었다.
목욕방에는 사여묵의 침의를 미리 준비해 있었다. 붉은 색 침의이다. 부드러운 재질이 편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구름 자수를 제외하고 다른 도안은 들어가지 않았다.송석석과 같은 색깔의 침의이다.사실 침의에는 도안 말고 수놓은 글자가 있었다.옷깃 한쪽에는 백년해로, 다른 쪽에는 다남다자라는 글자다.사여묵은 몸은 씻었지만 머리는 씻지 않았다.오늘 힘들 것을 알고 어젯밤에 미리 씻어 두었기 때문이다.곧이어 그가 목욕방에서 나왔다.붉은 색 침의가 그의 얼굴을 더욱 환하게 비춰 주었다.게다가 진성에서 관리 한 덕에 피부가 많이 깨끗 해졌다.송석석은 전투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얼굴에는 수염이 잔뜩 나서 엉망진창을 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사람 같았다.한편, 화촉이 붉은색의 이불을 비추었다.곧이어 사여묵이 송석석의 손을 잡고 침대로 향했다.송석석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살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이 있었나.’하지만 사여묵이 그녀보다 더 긴장하고 있다.그는 모든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큰 소리로 묻고 싶다. 청혼하고 싶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절망에 빠졌을 때,자신의 곁으로 와서 아내가 된 적이 있었는 가.그의 흥분과 기쁨을 아는 자가 있는가.이어서 사여묵이 실수로 송석석의 침의 치마를 밟아 버렸다. 그 바람에 그녀가 앞으로 넘어지려고 하자 서둘러 그녀를 덥석 안았다.“미안합니다.”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에 사여묵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곧이어 세상이 또 한 번 더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동시에 머릿속에서 천둥이 내려치는 것 같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편, 송석석이 떨리는 손으로 사여묵의 침의를 벗기고 있다.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상대방과 눈을 절대 마주치지 않았다.그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마치 사과를 연상케 했다.그의 침의는 반쯤 열러 가슴팍이 드러났다.송석석은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손을
오전 7시가 다 될 무렵.양 마마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침실은 안쪽과 밖으로 나누어져 있다.밖에는 문이 배치되어 있고, 안은 장막으로 분리되어 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깼다.송석석이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잠시 멈칫했다.옆에 있던 사여묵 뿐만 아니라 자신도 헐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둘러 이불로 몸을 감쌌다.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뜨거웠다.사여묵은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부실한 실력 탓에 송석석을 당당히 바라볼 수 없었다.게다가 헐벗은 몸도 아직은 습관이 되지 않았다. 서둘러 이불 안으로 들어가 침의로 갈아입었다.그리고는 헛기침을 한번 내쉬었다.“제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낭자는..낭자께서는 침의를 다 입으시고, 사람을 부르시는 게 좋겠습니다.”신방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사여묵은 여전히 송석석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하지만 흘깃 보기는 했다.금방 일어난 얼굴에도 불구하고 청순하고 예뻤다.오늘은 대비에게 다례를 올리는 날이다.대비의 성격대로라면 송석석을 괴롭힐 게 분명하다.사여묵은 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할 생각이었다.그가 먼저 가서 문을 열었다.양 마마가 하녀들을 데리고 문밖에 서있다.고 씨 유모도 옆에 있었다.“왕야를 뵙습니다.”사여묵은 그들의 인사에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왕비의 옷을 갈아 입혀 주게나.”한편, 고 씨 유모는 다른 이유에서 그를 찾아왔다. 그녀는 태비 마마의 명을 받들어 거사를 치루 었는 지에 대한 검사를 하러 온 것이다.침실로 들어가자 송석석이 침의를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씨 유모는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노비, 왕비를 뵙습니다.”“편히 하세요.”그녀의 시선이 양 마마에게 향했다. 곧이어 벌겋게 변한 목을 침의로 가리기 바빴다.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평온한 태도로 사람들을 맞이했다.“다 온 건가? 세수하고 환복을 하도록 하지.”사여묵의 시중을 드는 하인도 있다.하지만 신방에 들어 오지 말라고 지시했다.사
사여묵도 조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하지만 너무 복잡한 탓에 혼자 입지는 못했다.결국 조북을 밖으로 가지고 와서 노 집사와 하인을 불렀다.머리에는 익선관을 쓰고,단령을 입었다.단령 어깨에는 용 무늬가 수놓아 있다. 그리고 허리에는 붉은색 비단으로 묶여 있다. 허리의 양쪽으로 옥, 용 무늬, 옥주, 금이 달렸다.리본은 붉은색, 흰색, 회청색, 녹색으로 엮어져 있다. 왕야의 큰 키 덕에 조복의 위엄이 한층 높아 보였다.한편, 송석석은 눈썹을 그리고 분을 칠하고 있다.외모가 뛰어난다고 해서 민낯으로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곧이어 화장이 끝났다.송석석은 양 마마와 하녀들에게 둘러싸여 나갔다.그녀는 그들에게 송서우의 안부를 물었다.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는 점,서주에서 보살피고 있다는 점이 그녀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주었다.밖을 나가자 조복으로 갈아입은 사여묵과 눈이 마주쳤다.어쩌면 오늘의 용모가 뛰어난 탓일까.두 사람은 어젯밤의 일을 모두 잊은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 민망함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사여묵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송석석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그에게 주었다.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갔다.이때, 양 마마는 뒤에서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그녀는 울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한편, 혜 태비는 이미 정청의 태사 의자에 앉아 있다.그 의자는 일부로 사람을 시켜 특별 제조한 의자다.정청이 외원에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적다.만약 송석석이 문안을 하려면 직접 방으로 찾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은 어떻게든 그 위세를 눌러야만 한다. 이때, 염구진이 두 사람의 길을 막았다. 오늘은 혼수를 창고로 가져가는 날 이다.만약 진주가 몇 알 빠졌어도 무조건 보고를 올려야 한다.그는 혼수가 관청에서 준비해 준 사실을 알고 있다.심지어 예물 목록도 모두 적혀져 있다.조금 확인만 하면 금방이라도 알
두 사람이 들어오는 장면은 아름다웠다.준수한 외모의 아들과 송석석의 예쁜 외모가 눈에 띄었다.게다가 두 사람에게 풍기는 위엄과 합이 맞았다.방금 전,고 씨 유모가 빠르게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송석석이 처녀였던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왕야에게 그녀의 처음을 준 것이 확실했다.혜 태비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처음을 주었다는 것 빼고, 이혼을 한 여자라는 사실은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단정한 태도로 앉아 살짝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사여묵은 화를 꾹 참았다.송석석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혜 태비에게 문안을 올렸다.“신부는 태비에게 차를 올리셔야 합니다.”고 씨 유모가 찻잔을 들고 옆에서 말했다.송석석은 차를 받아 들고 혜 태비에게 건넸다.“태비 마마, 차를 대령하겠습니다.”혜 태비는 서둘러 받지 않았다. 사여묵이 화를 내기 일보 직전에 손을 내밀어 찻잔을 건네받았다.몇 입 마시고는 말했다.“상을 올려라.”혜 태비의 목소리에는 교만함이 잔뜩 들어 갔다.고 씨 유모는 용과 봉황이 그려져 있는 팔찌를 꺼냈다.곧이어 송석석의 손목에 채워다 주었다.“태비 마마께서 신부께 상을 주셨으니,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표하셔야 합니다.”송석석은 규칙대로 머리를 조아려 감사 인사를 표했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혜 태비가 자신의 목을 쓰다 듬었다.“어제 잠을 많이 못 잔 탓에 머리가 좀 아프구나. 저에게 안마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이때, 사여묵의 말이 들렸다.“잠시만요. 모친께 묻고 싶습니다. 어젯밤, 제 아내의 혼수에 손을 댄 게 사실입니까?동주를 몇 알 가져가서 장공주에게 준 것도 사실입니까?”혜 태비는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그의 눈빛을 피하기 바빴다.하지만 눈을 피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대체 누가 입을 함부로 놀리는가. 궁이 그놈의 혀를 잘라버릴 것이야!”사여묵이 물었다.“사실입니까? 맞으면 맞다고, 틀리면 틀리다고 말씀해주세요.”혜 태비는 아들이 화 내는 모습이 제일 무
송석석이 웃음을 터뜨렸다.동시에 이빨까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곧이어 다정한 말투로 답했다.“태비 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원래 장사라는 것이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는 법입니다. 아, 맞습니다. 금경루는 반반씩 책임지고 계시는 게 맞습니까? 계약서는 쓰셨는 지요? 장부는 보신 적 있으십니까?”이어서 혜 태비가 교만한 태도를 보였다.“본궁을 무시하십니까? 계약서는 당연히 썼지요. 반반이 아니라 7은 저의 소유입니다.장부는 당연히 보고 있습니다. 매 계절마다 보낸 장부를 확인하여 득실을 확인하지요.”“네? 태비 마마께서 꽤 큰 지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손해가 클수록 결국 마마께서 은을 쓰셨을 테지요. 몇 년 동안 얼마를 쓰셨는 지에 대한 장부는 확인 하셨습니까?”“당연한 소리.은을 쓸 때마다 항상 확인하지요.”송석석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그렇다면 지금까지 은이 얼마 정도 나가셨습니까?”혜 태비는 그녀의 질문에 기분이 상했다.“누가 그걸 기억하고 있겠습니까?장부를 확인하면 적어도 몇 만 은냥은 썼을 겁니다.”“그렇습니까!”송석석은 어두운 얼굴을 한 사여묵을 한번 바라 보았다.그녀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태비 마마께서는 금경루에 가보셨습니까?”혜 태비는 차갑게 답했다.“본궁은 궁 안에서만 지내는 거 모르십니까? 두 사람의 혼인을 위해 잠시 나간 적은 있습니다.하지만 본궁이 가든 말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금경루는 관리자가 직접 관리합니다. 게다가 본궁과 장공주의 신분은 감히 공개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매 계절마다 받는 장부가 있으니, 저희가 두려울 건 없지 않겠습니까.”송석석은 진성의 곳곳에 권력층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직접 운영하지 않고, 모두 관리자를 찾는다는 점이다.그리고 관리자들이 장부를 보내온다.감시자를 보내거나 직접 한번 찾아와 검사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없다.혜 태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저희’ 라는 말만 빼면 말이다.사여묵은 듣는
태후는 자신의 동생이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곧이어 사여묵과 송석석이 황제와 황후를 보러 갔다.자리에는 자신을 포함한 혜 태비와 고 씨 유모가 남았다.먼저 고 씨 유모에게 말했다. “관아는 사람들 간의 신뢰가 제일 중요하네.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북명 황실에 먹칠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지. 언행에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네. 자네가 모시는 공주가 자네의 손으로 키웠다고 할지라도 틀릴 때는 바로잡아야 하는 게 옳은 일이야.”고 씨 유모가 대답했다.“노비, 명 받들겠습니다.”혜 태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언니,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그리고 황실 일은 거의 제가 관리합니다. 게다가 고 씨 유모랑 집사뿐만 아닌 염구진도 같이 있습니다. 어떻게 문제가 생기겠습니까?”“네가 황실을 맡고 있다고?”태후가 손을 휘저었다.동시에 머리도 절레절레 흔들었다.“안돼. 너는 그냥 가만히 황실에 있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거야. 그냥 네 주위 사람들이나 관리해.”혜 태비가 답했다.“언니. 저는 여묵의 모친입니다. 제가 황실을 신경 쓰지 않으면 누가 신경 쓴 답니까.설마 송석석에게 맡기라고 하실 거는 아니죠? 그저 계집 일 뿐입니다.”태후는 혜 태비를 혼냈다.“아무리 계집이라도 너보다 아는 것이 많아. 모친이 장부 보는 법도 알려 주려고 했는데, 네가 싫다고 했었잖아. 금방 궁에 들어 와서 량소 한테도 졌잖아. 내가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해. 여묵이가 한 살도 안 되었을 때, 독으로 죽을 뻔 했던 건 기억하지?”혜 태비는 순간 민망해졌다.“이미 다 지나간 일을 왜 다시 꺼내십니까. 그때는 실수였다고 말씀드렸잖아요.량소가 유이식에 약을 타서 여묵이 토를 했던 겁니다. 그 악독한 년은 벌써 내쫓으셨지 않습니까.”“내쫓았어. 근데 내가 없었으면 량소가 한 짓 이라는 거 몰랐을 거야. 그리고 량소가 왜 약을 탔을 것 같아? 다 네 탓이잖아. 예쁘다고 질투하면서 매일 밤새 화풀이 대상으로 대했잖아. 네 성격에 무슨 황실을 관리해?
황제와 황후가 의전을 나와 사여묵과 송석석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인사를 끝내고 황제가 자리에 앉았다. 황후는 가벼운 화장을 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궁에 들였다면 후궁 자리는 송석석이 앉게 될 것이 분명하다.그녀의 청순한 외모는 궁에서 이길 자가 없다.황후는 자연스럽게 황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송석석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에 잠시 긴장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다면 의미심장한 눈빛을 내보내곤 했기 때문이다.그녀는 또 다시 송석석이 사여묵과 결혼한 사실에 안도했다.그 당시, 황제가 내린 구도 명령에 황후는 몇 날 밤을 자지 못했다. 전쟁에서 죽은 송석석의 부모 형제가 황제의 마음에 깊게 남아 있는 모양 이었다.게다가 그녀의 외모도 빼어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하지만 황후가 겁내던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훗날 송석석은 자신의 동서가 되었다.오늘 날, 송석석을 향한 황제의 웃음은 진심이다.감추고 있는 마음이 무엇이든 간에 동생의 아내를 뺏을 수는 없다.게다가 황후도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황제는 과거 사여묵과 송석석을 결혼 시켜서 병권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나.’즉, 황제는 처음 부터 송석석을 궁을 들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이제와서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사실 송석석이 궁에 들어온다고 하여도 그녀의 후위는 변함이 없다.하지만 후궁은 전쟁터와 다름없다.만약 황후가 후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무능을 뜻하는 것이다.아내이기 때문에 황제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이 갈까 두려웠다.규칙상 후궁을 아껴 할 수 있지만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보다도 자신의 명성이 떨어 질까 봐 두려웠다.한편, 황제는 송석석을 몇 번 보고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혹시 송석석에게 마음이 간다고 한들, 나라의 안정, 형제의 평화 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그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황제 자리에 앉고 나면
왕청여는 벌써 성릉관에 온 지 한 달이 되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왕청여는 명의상 전북망의 부인일 뿐, 그와의 교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는 대부분 군영에서 지냈기 때문에, 가끔씩만 왕청여를 찾아왔다. 그래서 왕청여에게는 생업을 꾸릴 만한 여가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성릉관은 왕청여의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변경 지역이라 춥고 물자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보석이나 운단 같은 귀중품은 예외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귀한 물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런 물건들은 구입 후 보관해 두었다가 서경으로 보내 권세 있는 이들에게 팔아야 했다. 성릉관 백성들은 장신구를 고를 때도 예쁜 것을 선택할 뿐, 값비싼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왕청여는 어떤 사업을 시작할지 고민하다가, 무엇을 하든 우선은 가게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인을 데리고 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적합한 가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왕청여가 이번에 성릉관에 갔을 때 형수님께서 은화를 주셨고, 둘째 형수와 시만자도 조금 도와주었다. 게다가 저축한 금액도 어느 정도 있어서 가게 한두 채 정도는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하녀의 이름은 춘상이며, 14세의 현지 소녀이다. 그녀는 일곱 살 때 어느 집안에 며느리로 팔려갔었는데, 그 집 아들, 즉 남편의 병이 심각해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인이 된 것이었다. 그녀도 팔자가 참 사나운 사람이었다. 왕청여는 하녀를 데리고 거리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정말로 가게를 사서 생계를 꾸려야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결심했다. 그렇게 살구꽃 골목을 지날 때, 그녀의 시선이 버려진 한 집에 꽂혔다. 그 집은 꽤 컸고, 적어도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곳보다는 훨씬 넓었다. 닫혀진 문 앞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문은 썩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입구에서 보면 풀의 높이가 사람 키만큼이나
안 백작은 왕이장에게 거절당하자 결국 소민을 보내 사정하게 해 소 세자를 구해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왕이장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누군가가 고의로 조종한 일임을 알면서도 아들이 도덕적 결함으로 약점을 잡혔으니 어쩔 수 없었다. 소민은 어머니가 지아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알고 참다가 결혼 후 따로 살 것을 제안했다. 그는 가족과 다투지 않았다. 상국 관원들이 품성을 평가할 때 효도를 가장 중시하므로 불효 누명을 쓰면 관직 길이 막힐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로 살자는 이유도 타당했다. 시험이 임박했는데 저택이 시끄러워 집중이 안 된다며, 전도를 위해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민은 본래 효심 깊은 아들이었고, 소 부인도 이번 잘못과 왕지아의 배경을 알고는 허락했다. 그렇게 일은 조용히 처리되어 다행히 큰 파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들은 원래 왕지아의 혼수 집에서 살려 했으나, 소 부인이 아들의 체면을 위해 자비로 작은 집을 마련해 주었다. 시만자는 그런 젊은 부부의 행복한 모습에 자신도 덩달아 기뻐했다. 소민은 반드시 성공할 인재였다. 총명하고 진지하며, 게다가 젊은 나이에 급제까지 했으니, 진사 시험에 떨어져도 다른 길로 출세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지아의 혼사는 왕청여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는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다. 시만자는 왕청여가 최근 몇 년간 많은 비판을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송석석이 “여자는 한번 잘못하면 남자보다 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왕청여는 크게 변했다. 이제는 자기만 생각하지 않았고, 집안을 돌보며 공방에도 나가 일을 도왔다. 공방 또한 예전의 모습과는 완전 달라져 있었다. 규모가 커졌고, 이혼 여성들을 많이 수용하였다. 왕청여는 최 씨를 따라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다. 학문이 필요 없어도 글과 계산을 배워야 훗날 공방을 떠나도 스스로 장사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청여는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예민함도 줄었지만 늘 걱정이 가득해 보
시만자는 그제야 송석석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 부인이 사람을 데리고 왕 씨 저택으로 가서 추태를 부렸으니, 당연히 사죄도 왕 씨 저택으로 가서 해야한다. 이렇게 소 세자의 일로 약점을 잡고 있으면 지아가 시집을 가더라도 감히 박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아에게는 이제 후원자도 있고 소 씨 가문의 약점도 쥔 셈이 되었다. 하시만 시만자는 오늘 화풀이를 하러 온 것일 뿐, 소 부인을 상대하러 온 것이니 쉽게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명 등 인이 모두 떠난 후에야 소 부인에게 말했다. “안백작부가 명망가라니, 정말 뻔뻔하군요.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이 양첩을 유괴하고 다른 가문으로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겠어요? 오늘 원래는 당신들의 가면을 모두 뜯어내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민이 진심으로 지아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두 아이가 민망해할까 봐 참았습니다. 하지만 지아가 당한 억울함을 계속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키운 아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꼴을 볼 순 없습니다. 당신이 백작부를 믿고 작위가 없는 왕 씨 가문을 괴롭혔으니, 다른 이가 같은 방식으로 갚아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고작 백작부 따위, 내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소 세자가 고주의 용서를 빌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지아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면 일을 크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까지 당신들의 보귀한 작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소 부인은 시만자의 말에 얼굴이 금새 붉어졌지만,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시만자는 진성에 오래 머물며 문제가 생기면 이치를 따지는 성향이었으나, 상대가 막무가내라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소 세자의 양첩 유괴는 사실이었고, 이미 경위부에 압송된 상태라 시만자가 이를 빌미로 소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소 부인도 알았다. 그러자 소 부인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고, 안 백작만 계속 사죄하며 두 아이가 원래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며, 소 부인이 다른 사람의 헛소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