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남편이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다." 클럽에서 벌어진 사고로 망나니 재벌가에 시집가는 위기에 처한 이주연. 딸을 지키려던 아버지 이창수는 자신이 오랫동안 후원해 온 청년 CEO 최재혁에게 사업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단 3년간의 계약결혼을 부탁한다. 주연은 돈 때문에 결혼까지 하는 냉혈한이라 오해하고, 재혁은 사고만 치는 철없는 재벌가 딸이라 오해한 채 결혼한다. 결혼식 직후 주연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2년 뒤 보육원을 살리기 위해 잠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남편 재혁은 변장했던 아내의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주연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하는데….
View More“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스물 세 번째 생일 아침. 이주연이 오빠에게 받은 첫 번째 선물은 축하도, 꽃다발도 아니었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잔인한 한마디였다. 이진성. 서른세 살. 태산건설의 전무이사이자, 그리고 호적상 주연의 이복 오빠이자, 그녀의 숨통을 조이는 가장 잔인한 감시자. 또각. 또각. 복합한 감정을 깨부수는 서늘하고 정제된 구두 소리가 계단 위에서부터 무겁게 떨어졌다. 집 안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아침부터 아주 가관이네." 냉소와 경멸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검은 셔츠에 완벽한 핏의 슬랙스를 차려입은 남자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언제나 한겨울의 빙하처럼 차갑고 매몰찼다. 진성은 계단 중간에 멈춰 서서 품에 안겨 있는 주연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스물셋이나 처먹고 아직도 엄마 품에 파고들어 애교를 떨고 있나? 유치해서 원." "오빠……." 주연은 떨리는 심장을 숨기며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오늘…… 내 생일이야." 진성은 손목시계를 힐끗 눈으로 훑더니, 끔찍할 정도로 무심하게 뱉었다. "그래서?" "……." "뭐, 케이크라도 사다 달라고 징징대는 거야?" 순간, 거실을 채우던 공기가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진성은 한 걸음씩 다가오며 주연의 숨을 조여왔다. "스물셋이면 다 컸잖아. 어린애 취급받는 건 그만해라." 진성의 시선이 주연의 스케치북이 놓인 책상 쪽으로 흘렀다.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그깟 건축이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취미생활은 당장 집어치워. 대학 졸업하면 적당한 가문 골라서 시집이나 가." "오빠!" "그게 이 집에 네가 유일하게 쓸모를 증명하고, 눈칫밥 안 얻어먹는 유일한 길일테니까." 주연의 얼굴이 종이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건축을 시작한 이후로, 그가 자신에게 던진 수많은 폭언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여자는 결국 남의 집 대문이나 지키다 죽는 게 숙명이다.’ ‘네가 꿈꾸는 그 모든 건 부질없는 허영이야.’ 참다못한 고미혜가 소리를 질렀다. "진성아! 말이 그게 무슨 소리니! 오늘 기쁜 날이야!" 진성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주연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박혀 있었다. "틀린 말 했습니까?" 차갑게 반문한 진성은 마침내 주연 코앞에 멈춰 섰다. 그의 입술 사이로, 주연의 23년 인생을 가두는 가장 잔인하고 흉포한 선고가 떨어졌다. "생일 축하한다, 이주연." 축하라는 단어가 이토록 뼛속까지 저릴 수 있을까. 진성은 가장 낮고, 가장 잔인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었지만." 세상의 시간이 완전히 박살 났다. 주연의 숨이 멎었고,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이진성!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미혜가 기가 막힌다는 듯 가슴을 치며 소리쳤지만, 진성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헝클어진 재킷을 툭툭 털어 입으며 무심하게 돌아섰다. "먼저 회사 갑니다." —쾅! 현관문이 지진처럼 울리며 닫혔다. 집 안에는 진성이 남기고 간 서늘한 한기만이 가득 고여 있었다. 주연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돌부처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었다. 존재 자체가 죄악인 것처럼 취급받던 그늘.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그 누구보다 축복받고 싶었던, 단 하루뿐인 그녀의 스물세 번째 생일이었다. 더 이상 미소를 지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긴 생머리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툭,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졌다. 불과 한 시간 전.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5월의 햇살이 커다란 통유리창을 깨뜨릴 듯 밀려들어 하얀 침대 위를 뒹굴었었다. 이주연. 허리까지 비단처럼 흘러내린 검은 생머리, 화장기 하나 없어도 투명한 우윳빛 피부와 오뚝한 콧날. 어릴 적부터 누구나 그녀를 보며 예쁘다고 했다.. 하지만 주연에게 그 완벽한 외모는 축복이 아니라 숨이 막히는 족쇄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늘 껍데기만 보았다. 그 안에 깃든 영혼이 무엇을 아파하고, 어떤 꿈을 꾸며 가슴 뛰는지는 단 한 사람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주연은 침대 옆 작은 달력을 바라보았다. 5월 20일. 오늘은 그녀의 스물세 번째 생일이었다. "……벌써 스물셋이네." 작게 읊조린 목소리 뒤로 가슴 한구석이 휑하게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축복받아야 마땅한 기쁜 날, 그러나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불길한 예감 그때, 조용한 방 문이 살며시 열렸다. "우리 주연이, 눈 떴니? 아침 먹자."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고미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주연은 환하게 웃으며 그 품으로 와락 안겼다. "엄마." "우리 딸, 스물세 번째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엄마……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거 같아" "왜?"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건축 공부도 더 깊게 하고 싶고……." 주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어른이 되는 게 너무 무서워, 엄마." 미혜는 피식 웃으며 딸의 등을 다독였었다. 그런데 오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주연의 가슴을 후벼 팠다. "……나 먼저 방에 들어갈게, 엄마."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작은 목소리를 남긴 채, 주연은 제 방으로 걸어 들어가 문을 쾅 닫아걸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꾹꾹 눌러 담았던 숨죽인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 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딸의 처절한 흐느낌을 들으며, 고미혜는 그 자리에 멍하니 주저앉아 눈물만 삼켰다. 당장이라도 품에 안아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그 어떤 위로도 이 잔인한 상처를 덮을 수 없음을 알기에 가슴이 찢어졌다. 창밖으로는 눈이 멀 정도로 눈부신 5월의 햇살이 온 세상을 태울 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주연에게 스물세 번째 생일은, 지옥의 문이 열린 날에 불과했다.“최진태 씨, 조사실로 들어가시죠.”경찰관의 말에 최진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병원에서 머리의 상처를 봉합하고 경찰서로 이동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머리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여전히 불쾌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경찰서에는 이미 법무법인 최&박에서 나온 변호사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최변호사님, 일단 진정하세요. 저희가 상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진태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확인할 게 뭐 있어요? 그 여자가 내 머리를 쳤다니까요!”“최진태씨, 어서 자리에 앉아서 조사부터 받으시죠?”담당 형사의 말에도 최진태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그래서요? 술 마시다가 여자랑 좀 실랑이한 게 그렇게 큰 죄입니까?”경찰관이 서류를 펼쳤다.“최진태 씨. 김지희 씨가 여러 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신체 접촉을 시도한 사실이 있습니까?”“아니요. 서로 호감이 있었어요.”“피해자는 일관되게 거절했다고 진술했습니다.”진태가 비웃었다.“여자들 원래 그러잖아요. 튕기기도 하고.”경찰관의 표정이 굳어졌다.“상대방의 거절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셨다는 겁니까?”“그런 뜻이 아니라…….”“피해자가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영상에 담겨 있습니다.”진태의 입이 다물어졌다.경찰관은 말을 이었다.“피해자를 소파로 밀어 넘어뜨리
똑똑. 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안주 추가 주문하신 것 가져왔습니다.” 진태가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뭐야!” 문이 열리고 웨이터가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짧은 순간 지희는 진태에게서 몸을 빼냈다. 그녀는 곧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 “어디 가!” 진태가 소리쳤다. 그러나 지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저 가겠습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하고 룸 밖으로 나갔다. 복도로 나온 지희는 벽에 기대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붙잡혔던 팔이 욱신거렸다. “미친 자식…….”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동혁이 다가왔다. “지희야!” 그는 동생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괜찮아?” 지희는 오빠를 바라봤다. 그리고 참았던 분노를 쏟아냈다. “오빠, 저 인간 정말 미친 거 아니야?” 동혁은 이를 악물었다.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최진태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벌써 사흘째였다. 김지희가 자신의 제안을 생각해 보겠다고 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그녀에게서는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진태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휴대전화를 다시 확인했다. “이 계집애가 정말…….”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소파에 던졌다. 견디다 못한 최진태는 결국 다시 청담동의 회원제 술집을 찾아갔다. 그는 김동혁을 룸으로 불러들여 멱살이라도 잡을 듯 험악하게 협박하며 당장 지희를 불러오라고 독촉했다. “동혁 씨.” ‘네, 변호사님.’ “내가 지난번에 무슨 말 했는지 기억하지?” 동혁은 잠시 침묵했다. ‘……네.’ “사람 일이라는 게 말이에요. 좋은 인연 하나로 잘 풀릴 수도 있고, 반대로 아주 어려워질 수도 있는 거야.” 진태는 느긋하게 덧붙였다. “동혁 씨가 취업 준비 중이라고 했지?” ‘네.’ “그럼 사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잖아.” 동혁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희한테 연락해 보겠습니다.’ “좋아.” 진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이 좋게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동혁은 이를 악물었다. “이 자식이 정말…….” 사람의 인생까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입덧이 심해 외출조차 버거운 시아를 대신해, 주연은 어머니 고미혜 여사와 함께 이진성과 시아의 결혼 준비를 발 벗고 도왔다.“주연아, 이 드레스는 어떠니?”고미혜 여사가 태블릿 화면을 딸에게 내밀었다.화면 속에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서 있었다. 어깨선을 부드럽게 감싸는 레이스와 허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퍼지는 실크 치마가 우아한 드레스였다.주연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예쁘네요, 엄마. 그런데 시아 언니한테 먼저 물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그렇지, 그래야지.”고미혜는 한숨을 내쉬었다.“요즘 시아가 입덧이 더 심해졌다더라. 어제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힘들었다고 하니.”“그 정도예요?”“응. 황장관이 걱정이 많더구나!. 병원에서도 무리하지 말라고 했고.”주연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그럼 드레스 피팅도 힘들겠네요.”“그래서 내가 웨딩숍에 부탁해 놓았어. 시아가 조금 괜찮아지면 집으로 드레스를 몇 벌 가져와서 입어볼 수 있게 해달라고.”“잘하셨어요.”주연은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엄마, 이런 스타일은 어때요? 허리를 너무 조이지 않고, 움직이기도 편할 것 같은데요.”고미혜가 화면을 살폈다.“어머, 이거 예쁘다.”“그렇죠? 시아 언니는 화려한 것보다 단정하고 우아한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맞아. 시아는 얼굴이 참 곱잖니. 굳이 장식이 많지 않아도 예쁠 거야.”고미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드레스 사진을 저장했다.“역시 딸이 있으니까 좋구나.”고미혜는 딸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우리 주연이가 이렇게 든든한 딸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엄마!”주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모녀는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주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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