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릉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조정에 2품 관리는 첩을 네 명 둘 수 있는데 아버지는 이미 네 명이나 두셨으나 한 명 더 두는 것은 과잉이지. 비록 조정에서 조사하지는 않지만 아버지는 문관의 모범이니 당연히 자신에게 오점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어찌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제 황후는 얼굴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하면 그냥 하녀로 저택에 데려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난 후에 아버지가 그 하녀와 어떻게 지내든 상관하는 자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젠 부모의 금슬도 웃음거리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명성은 실추되었습니다.” 그녀는 두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북명왕도 참. 왜 가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신 겁니까?” 제릉서는 마음이 뒤숭숭해서 돌아가서 어떻게 아버지를 마주해야 할지 몰랐었기에 황후의 말을 듣고 말했다.“어젯밤에 황실에서는 사람을 보내 아버지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기다리시지 않고 외출을 하는 바람에 북명왕이 반 시진을 넘게 기다리다 인내심을 잃고 그냥 가버린 것이다.” 제릉서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오만하고 송석석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일부러 망신을 주려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것 아니냐? 이건 모두 자업자득인 것 같구나.” 그러자 제 황후가 반문했다. “그렇다고 남의 비밀까지 낱낱이 공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왜 그의 통지 하나면 아버지가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까?” “황후마마..!” 제릉서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일로 북명왕과 송 지휘사에게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조금의 원한이라도 산다면 두 집안은 정말로 관계가 틀어질 것이야. 북명왕은 민심을 얻었고 송 지휘사도 여자들의 모범이라고..” “여자들의 모범이라니요? 여자들의 모범은 바로 국모인 접니다.” 제 황후는 불쾌해져 말을 끊어버렸다. “네가 국모라는 것은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는 일인데 일개 신하와 비길 필요가 있니? 그러니 절대로
제씨 둘째 어르신은 제상서를 보고 멍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상서는 눈을 감고 빠르게 생각했다. “그녀를 안치한 후 내가 조사해 보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내지는 못했고 시간이 지나자 그녀를 잊어 버렸어. 내가 소홀해서 초래한 일일 뿐, 나는 사람을 시켜 그녀를 주시하라고만 했지 그녀를 건드린 적이 없다. 그곳의 하녀들이 모두 증언할 수 있다.” 둘째 어르신은 환희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형님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수상한 사람이 접근했다면 가문의 사람을 파견해서 조사할 것이고, 조사 결과가 어떻든 간에 안치하는 게 아니라 멀리 내쫓았을 것이 분명했다. “형님.” 둘째 어르신은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의 형님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다시금 물었다. “대체 왜 그러신 것입니까?” 제상서는 입술을 오므리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또한 자신이 이런 저급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여자가 고부진의 서녀라는 사실을 더욱 믿지 못했다. 둘째 어르신이 말했다. “저는 형님께서 대체 왜 그러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형님은 형수님과 금슬이 좋은 데다 형수님도 단아하고 숙덕 해서 일찌감치 형님을 위해 첩실을 마련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제상서는 미간을 문지르며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하다. 가장 젊은 첩인 환정영도 벌써 올해 마흔이 되어가고 다른 세 명은 벌써 마흔 초반이다. 헌데, 그녀는 올해 갓 열아홉밖에 안 되었다.” 이 일은 그에게 있어서 분명 난감한 일이라 그는 입을 열기가 부끄러웠지만 둘째 동생의 추궁에도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순조롭지 않았지. 허나 황제폐하께서 우리 제씨 가문을 중히 여기니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내가 어리석었지만 나도 젊은 시절의 활력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신분
제릉서는 방에 들어선 후 모두에게 나오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온 집안의 사람들이 모두 뛰쳐나와 황공한 태도로 자신의 신분을 말했다. 여인도 무릎을 꿇었다. 붉은색 드레스에 팬치색 망토를 두르고 있어 그녀의 작은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오늘 사람들이 와서 딸을 데려갈 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그전부터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었고, 장공주가 무너졌으니 이제 당연히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이 뭡니까?” 제릉서가 분노로 찬 눈빛으로 물었다. “고청묘.”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쉬었지만 꽤 매혹적이었고, 제릉서는 여전히 그녀를 노려보며 계속 물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본 게 언제입니까?” 고청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어제 오후에 상서께서 이곳에서 한 시진 정도 쉬다 가셨습니다.” 제릉서는 한 대 맞은 듯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오후에도 아버지가 왔었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이부를 장관 하시는데 점심엔 대부분 이부 후아에 계셨지. 설마..?’ “그는 항상 정오에 옵니까?” “예, 맞습니다.” 제릉서가 화가 난듯 이를 갈며 물었다. “얼마 만에 한 번 옵니까?” 고청묘는 냉정한 눈빛으로 사실대로 대답했다. “이틀에 한 번씩 오십니다.” “말도 안 돼!” 제릉서는 벌컥 화가 나서 냅다 소리쳤다. 고청묘는 고개를 들어 제릉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믿을 수 없다면 하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는 딸을 보러 자주 왔습니다.” 제릉서가 째려보자 모든 사람이 너도나도 급히 무릎을 꿇었다.방금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말했었는데, 계산해 보면 시녀 8명, 시종 3명, 유모 2명, 호위 2명, 차부 2명, 정원사 1명, 그리고 조리사 4명 정도가 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모두 그녀와 그녀의 딸을 모신다는 말인가...?’ 제릉서가 두 마마에게 눈짓을 보내자 두 마마는 즉시 고청묘를 끌고 들어갔다. 고청묘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매우 협조적이
전숙이 말했다. “그래, 네 아버지는 원래 제1여관이라 불리는 송석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네 아버지도 찾지 못한 일을 조사해 내니 네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느냐? 헌데, 그 여자에게 딸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가서 보지 못했느냐?” 그러자 제릉서가 얼른 답했다. “그거 모두 헛소리입니다. 딸은 없고 오직 그녀와 그녀를 지키는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그럼 됐다.” 전숙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제릉서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안심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조부 쪽에는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제사한테는 제사서가 직접 가서 보고했는데, 제제사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의 뺨을 후려치며 꺼지라고 했다. 제제사의 방에서 비틀거리며 나온 제상서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는 이 일은 북명왕을 탓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정에서 인덕과 겸손했지만 유독 송석석에게만 석연치 않았다. 그가 여관이라는 이유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 또한 그는 송석석에게 너무 오만하게 굴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는 대리사에 가서 설명할 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대리사에서 다시 저택으로 찾아오면 그땐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대리사에선 오늘 사온의 서건을 조사했는데, 이번엔 황제폐하의 지시대로 그녀에게 형벌을 가했다. 그녀는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심한 형벌을 받아 아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찍소리 하나 하지 않았다.도중에 아파서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난 그녀에게 허약하지만 흉악한 말투로 말했다.“다른 수단이 있다면 다 해보거라.”그녀의 말을 들은 진이도 고려하지 않고 기본적인 형벌은 모두 한 번씩 가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참아내기만 했다.사람들은 역시나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선제께서 혹독한 형벌을 취소하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한 두 명은 자백할 수 있었을 텐데.’황제도 선제가 취소했던 형벌을
제상서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야님, 황제폐하께서는 이 여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계획이십니까?” 그러자 사여묵은 다소 차갑게 답했다. “그건 송 지휘사에게 물어보십시오. 이 부분은 그녀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제 상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송 지휘사님…….” 그러자 송석석이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저는 이미 제 대인께 말했습니다. 그러니 제 씨 가문에서 직접 관리하셔도 되고 경위로 보내 통일로 관리해도 됩니다. 이건 제 상사가 결정하십시오. 제씨 가문에서 관리한다면 그녀들이 진성을 떠난다 거나 다른 사람과 접촉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역모사건의 주모자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제 상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위에게 통일로 관리를 맡긴다면 어디로 데려갈 생각 입니까?” “저희가 이미 진성 곳곳의 암자에 연락하여 그녀들을 수용할 만큼 큰 암자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수용할 비용은 고후부와 공주부를 수색해서 얻은 은전으로 지불할 것입니다.” “암자 말입니까?” 제 상서는 두 순으로 무릎을 만지며 생각하는듯 했다. “그렇다면 조건이 그리 좋지는 않겠네요.” “먹고사는 건 보장하지만 호화롭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송석석은 잠깐 멈추더니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역모사건이 종결되면 그녀들도 암자를 떠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사건이 종결하지 않으면 그녀들은 계속 암자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뜻이군요.”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맞습니다. 제 상서께서 안쓰럽다고 생각된다면 가문에 남겨두고 혼자 관리해도 됩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생긴다면 제 상서가 책임져야 하겠지요.” 제 상서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 “경위에게 맡기겠습니다.” “제 상서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다면 저희가 사람을 데려갈 것이지만요, 제 상서
그들은 고부진을 심사할 때도 형벌도구를 적지 않게 사용했다. 평시에는 찍소리도 못하던 겁쟁이가 웬일로 강인하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도 이용당한 것이라고 우겼다.형벌을 받을 때 그는 울부짖었다.“나는 피해자요. 사온이 가장 미안한 사람은 나와 부인, 그리고 내 딸들이오. 사람을 죽이고 다른 가문으로 보내다니 정말 미친 여자요. 이제 그녀도 체포되었으니 나도 드디어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소.”경조부의 공양도 직접 그를 심문하러 왔었다. 경조부는 대리사보다 형벌을 더 많이 사용하고 수단이 더 많았지만 고부진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뗐다.사건은 아침 조정에서 보고했는데 문무백관들은 모두 듣고 있었다. 모두들 불안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모두의 마음이 안정되었다.조정에 가지 않던 연왕조차도 사온과 고부진이 아무도 불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하인들이 연왕과 회왕이 공주부에 갔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그들 말고도 진왕과 녕왕, 그리고 회왕마저 갔었다. 그러니 그들이 역모를 꾸민 걸 직접 듣지 못한 이상 증거로 삼을 수 없었다.왜냐하면 오라버니나 동생으로서 누나나 동생을 면회하러 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연왕은 진성으로 돌아온 후 장공주댁에 한 번 밖에 가지 않았으니 어떤 일도 그를 끌어들일 수 없었다.이 사건도 드디어 중단되었다. 숙청제가 아침 조정에서 명령을 내렸다. 경위가 책임지고 사온을 종인부에 가두고 대리사는 계속 역모사건을 조사하고 언제 배후를 알아내면 언제 사건을 종결할 것이라고 했다.피해를 입은 여자들을 위해 고부진을 처형하고 고후부는 공범이 되어 작위를 회수하고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숙청제는 그들의 집을 수색하지 않았고 몇 년 동안 장공주의 덕에 모은 재산도 몰수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에게 은자 10만 냥을 내놓아 그 여자들을 안치하도록 했다. 첩은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서녀들은 모두 암자에 남았다. 그들이 먹고 생활하는 돈은 모두 고후부에서 냈다. 이
연왕도 무상과 이 일을 상의했다. 무상은 사람을 파견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연왕은 사온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를 폭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군주가 간교하긴. 그렇게 많은 무기와 갑옷을 조사해 내 일벌백계하다니. 사온을 종인부에 가두었으니 사건이 종결되지 않는 한 사여묵이 계속 미친개처럼 본왕을 물어뜯을 것이다. 그러니 사온이 살아있다는 건 나에게 아주 큰 위협이야.” 그러자 무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위협이긴 하지만 작전이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사온은 미친년이니 그땐 바로 당신을 폭로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왕은 구출의 명목으로 접근한 뒤 기회를 봐서 그녀를 암살할 작정이다.” 하지만 무상은 여전히 반대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왕야님은 그런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습니다. 왕야님은 매일 궁에 들어가 간호만 하면 됩니다. 다른 일은 일제 상관하지 마십시오. 이게 최상의 방법입니다.” “아무래도 모험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지 않으면 난 하루도 편한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연왕의 눈 밑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무상은 그가 결정을 내린 것을 보고 말했다. “왕야님께서 정말로 그렇게 하시겠다면 사사들을 무림 인사로 변장시켜 죄수들을 겁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황제폐하께서는 사온이 무림에서 사람들을 키운 것이라고 추측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송석석이 호성 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눈 밑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구하는 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연왕은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해 많이 초췌해졌는데 외부인들은 어머니 걱정에 지쳤다고 생각했다.그는 계속 말했다. “언제 호송할 것인지 알아보고 10명만 파견하면 될 것이다. 지금은 사온의 사람을 쓸 수 없으니 정보를 알아볼 때 회왕부의 사람을 쓰도록 하거라.” 그러자 무상은 고개를 끄덕
아니나 다를까 석연거리를 지나자 송석석은 사방에서 살기를 느꼈다. 그 살기는 매우 강해서 보통 사람이 맡을 수 없는 피비린내까지 섞여 있었다. 송석석은 이런 느낌에 너무나도 익숙했다. 바로 장군부에 나타났던 사사들의 기운이었다. ‘사부님은 예전에 송석석에게 사사를 양성하는 과정이 매우 가혹하다고 했었지. 살아남은 사람은 짐승의 시체나 사람의 시체를 밟고 나온 자들이었다. 시체가 가득한 피바다에서 빠져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공이 강하고 포악하면서도 짙은 살기와 피비린내를 뿜어내지.’ “모두 경계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소리를 뚫고 모두의 귀에 떨어졌다. 모든 사람들의 눈빛에는 경계로 가득 찼고 무기를 쥐고 주변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사거리를 자나자 공기 중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칼날이 칼집을 나와 바람을 스치는 소리였다. “멈춰.” 필명은 손을 들어 대열을 멈추게 하고 부근의 백성들을 해산시켰다. “자객이 있어 위험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장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라 많지 않았다. 그들은 필명의 말을 듣고 멍해 있다가 바로 발을 빼서 도망쳤다. 이때 장검 한 자루가 허공을 가르며 송석석을 향해 날아왔다. 송석석은 바로 말에서 날아올라 도화창으로 막자 검이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좌우에서 열 명가량의 사람이 날아왔다. 그들은 모두 얼굴을 가린 채 병기를 손에 쥐고 송석석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송석석뿐인 것 같았다. 송석석은 안색이 굳어지며 재빠르게 검 위로 날아올랐고, 도화창으로 쓸어버리자 검은 땅에 떨어져 진동을 일으켰다. “죽여라.”필명은 검을 들고 앞으로 돌격했다. 경위는 10명을 남겨 마차를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돌진했다.송석석의 도화창으로 막으며 돌진하자 자객들은 연신 후퇴했다. 금창이 땅에 부딪쳐 불꽃이 튀면서 챙그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송석석은 바람이 낙엽을 쓸어내리는 것 같이 속도가 빨랐다. 적어도 5명의 자객이 송석석과 싸우
안 백작은 왕이장에게 거절당하자 결국 소민을 보내 사정하게 해 소 세자를 구해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왕이장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누군가가 고의로 조종한 일임을 알면서도 아들이 도덕적 결함으로 약점을 잡혔으니 어쩔 수 없었다. 소민은 어머니가 지아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알고 참다가 결혼 후 따로 살 것을 제안했다. 그는 가족과 다투지 않았다. 상국 관원들이 품성을 평가할 때 효도를 가장 중시하므로 불효 누명을 쓰면 관직 길이 막힐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로 살자는 이유도 타당했다. 시험이 임박했는데 저택이 시끄러워 집중이 안 된다며, 전도를 위해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민은 본래 효심 깊은 아들이었고, 소 부인도 이번 잘못과 왕지아의 배경을 알고는 허락했다. 그렇게 일은 조용히 처리되어 다행히 큰 파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들은 원래 왕지아의 혼수 집에서 살려 했으나, 소 부인이 아들의 체면을 위해 자비로 작은 집을 마련해 주었다. 시만자는 그런 젊은 부부의 행복한 모습에 자신도 덩달아 기뻐했다. 소민은 반드시 성공할 인재였다. 총명하고 진지하며, 게다가 젊은 나이에 급제까지 했으니, 진사 시험에 떨어져도 다른 길로 출세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지아의 혼사는 왕청여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는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다. 시만자는 왕청여가 최근 몇 년간 많은 비판을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송석석이 “여자는 한번 잘못하면 남자보다 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왕청여는 크게 변했다. 이제는 자기만 생각하지 않았고, 집안을 돌보며 공방에도 나가 일을 도왔다. 공방 또한 예전의 모습과는 완전 달라져 있었다. 규모가 커졌고, 이혼 여성들을 많이 수용하였다. 왕청여는 최 씨를 따라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다. 학문이 필요 없어도 글과 계산을 배워야 훗날 공방을 떠나도 스스로 장사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청여는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예민함도 줄었지만 늘 걱정이 가득해 보
시만자는 그제야 송석석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 부인이 사람을 데리고 왕 씨 저택으로 가서 추태를 부렸으니, 당연히 사죄도 왕 씨 저택으로 가서 해야한다. 이렇게 소 세자의 일로 약점을 잡고 있으면 지아가 시집을 가더라도 감히 박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아에게는 이제 후원자도 있고 소 씨 가문의 약점도 쥔 셈이 되었다. 하시만 시만자는 오늘 화풀이를 하러 온 것일 뿐, 소 부인을 상대하러 온 것이니 쉽게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명 등 인이 모두 떠난 후에야 소 부인에게 말했다. “안백작부가 명망가라니, 정말 뻔뻔하군요.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이 양첩을 유괴하고 다른 가문으로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겠어요? 오늘 원래는 당신들의 가면을 모두 뜯어내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민이 진심으로 지아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두 아이가 민망해할까 봐 참았습니다. 하지만 지아가 당한 억울함을 계속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키운 아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꼴을 볼 순 없습니다. 당신이 백작부를 믿고 작위가 없는 왕 씨 가문을 괴롭혔으니, 다른 이가 같은 방식으로 갚아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고작 백작부 따위, 내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소 세자가 고주의 용서를 빌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지아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면 일을 크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까지 당신들의 보귀한 작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소 부인은 시만자의 말에 얼굴이 금새 붉어졌지만,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시만자는 진성에 오래 머물며 문제가 생기면 이치를 따지는 성향이었으나, 상대가 막무가내라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소 세자의 양첩 유괴는 사실이었고, 이미 경위부에 압송된 상태라 시만자가 이를 빌미로 소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소 부인도 알았다. 그러자 소 부인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고, 안 백작만 계속 사죄하며 두 아이가 원래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며, 소 부인이 다른 사람의 헛소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