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하지율이 교통사고를 꾸며 재영 오빠를 죽이려 했을 때는 가족 생각 같은 거 안 했잖아. 정미야, 네 약혼식 날에 삼각지대의 소씨 형제들을 데려왔을 때도 가족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하지만 연정미는 고개를 저었다.“서현아, 지금의 하지율은 우리가 건드리고 싶다고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율은 지금 연경 그룹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어. 무슨 추문이 터지든 회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덮으려고 할 거야. 하지율은 지금 회사의 안정과 직결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건드리는 건 연경 그룹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단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하지율은 네 추문을 그렇게 거리낌 없이 퍼뜨려 놓고 왜 이제 하지율의 차례가 되니까 다들 겁부터 내? 하지율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것도 전부 주용화 덕분이잖아. 내가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얼굴 말고 하지율한테 뭐가 있어? 예전에는 지후 씨한테 기대고 살더니 이혼하고 나서는 주용화의 도움만 받아 왔잖아. 설마 다들 주용화한테 겁먹은 거야?”연정미는 속으로 짜증이 치밀었다.멍청한 사람과 대화하는 건 정말 피곤했다.단서현은 사업에 관여해 본 적이 없으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연정미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설명했다.“좋아. 네 말대로 하지율이 여기까지 온 게 전부 주용화 덕분이라고 치자. 그래도 나와 하지율은 상황 자체가 달라. 하지율은 연경 그룹에서 나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고 핵심 업무까지 맡고 있어. 이제 하지율의 추문은 개인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회사 전체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야.”단서현이 다시 반박하려 하자 연정미가 말을 끊었다.“서현아, 네가 사업을 모르니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야. 어쨌든 하지율의 문제는 나랑 오빠가 알아서 할게. 너는 지후 씨만 확실히 잡으면 돼.”단서현은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더 이상 연정미와 말다툼하지 않았다.이야기를 모두 마친 뒤 연정미는 연재영과
최근에 연재영은 기분이 꽤 좋았다.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연재영의 개인 저택 거실에는 연재영과 연정미, 단서현, 단성훈이 함께 앉아 있었다.도우미가 차를 내오고 자리를 비우자 연정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 그쪽 일은 지금 어떻게 돼 가고 있어?”그러자 연재영의 얼굴에는 드물게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아주 순조로워. 헤이서 아가씨가 먼저 몇 번이나 만나자고 연락해 왔어.”연재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물었다.“아직도 만나러 가면 안 되는 거야?”연정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오빠도 괜찮은 여자들 많이 만나 봤잖아. 헤이서 아가씨도 마찬가지야. 좋은 조건의 남자들을 수도 없이 봤을 거야. 특히 지금 헤이서 가문의 상황을 생각하면 먼저 접근하는 유명 가문의 자제가 한둘이 아닐 거야. 다들 헤이서 아가씨와 결혼하면 사실상 헤이서 가문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말이야. 오빠의 조건도 물론 훌륭하지만 헤이서 아가씨의 특별한 관심과 진심까지 얻으려면 지금의 조건만으로는 부족해. 요즘은 먼저 달려들어서 비위를 맞추는 남자들을 워낙 많이 봤을 테니 그런 호의에도 이미 질렸을 거야. 그런 상황에서 오빠가 나타난 거잖아.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말이야. 별것 아닌 남자가 무심하게 굴면 괜히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빠는 달라. 오빠는 집안이나 지위가 헤이서 아가씨한테 전혀 밀리지 않잖아. 애초에 자세를 굽히고 들어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헤이서 아가씨도 다른 구혼자들처럼 오빠를 가볍게 대하지 못할 거야. 급하게 굴 필요는 없어. 조금만 헤이서 아가씨가 더 애타게 하는 게 효과가 더 좋을 거야.”여자 마음을 읽는 데는 연재영도 연정미만큼 세심하지 못했다.연정미의 말을 들은 연재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연정미는 이번에는 단서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서현아, 너는 어떻게 돼 가고 있어?”그러자 단서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지후 씨가 너무 차갑게 굴어
유소린은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역시 네가 나보다 훨씬 꼼꼼하게 생각하네. 내 계획대로 했다가는 오히려 두 사람 사이만 더 밀어줄 뻔했어. 하마터면 연재영의 좋은 일만 시켜 줄 뻔했네.”하지율의 눈에 서늘한 웃음이 스쳤다.“헤이서 아가씨한테 제대로 미움을 사면 연재영은 해외 사교계에서 평판이 완전히 망가질 거야. 그 뒤에 다른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려고 해도 어느 해외의 명문 가문이 딸을 연재영한테 시집보내고 싶겠어?”하지율은 유소린을 바라봤다.“원희 씨랑 현우 씨한테 연재영과 연정미가 헤이서 아가씨를 속인 증거를 전부 확보해 두라고 해. 아무리 깔끔하게 처리해서 증거를 찾지 못하더라도...”하지율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그러면 우리가 증거를 만들면 돼. 그리고 헤이서 아가씨의 주변 인간관계도 전부 조사해. 친구뿐 아니라 경쟁 상대나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까지 포섭할 방법을 찾아봐.”유소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친구들을 포섭해서 옆에서 계속 이야기하게 만드는 건 알겠는데 경쟁 상대나 원수까지 왜 포섭하려는 거야?”하지율은 담담하게 말했다.“때로는 친구의 충고보다 조롱이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 더 잘 먹힐 때가 있어. 연재영이 새로운 방법을 찾겠다면서 여자를 이용하려고 했잖아. 이번에는 헤이서 아가씨 때문에 제대로 한번 크게 넘어지게 해 줄 거야.”그 말에 유소린의 두 눈이 단숨에 반짝였다.“지율아, 바로 준비할게!”...그날, 하지율이 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임연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임연자는 오래전부터 하지율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하지율이 M국으로 온 뒤 몇 년 동안 먼저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하지율은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아주머니, 갑자기 전화하신 걸 보니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요?”임연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요즘 윤택의 상태가 좀 이상해요.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아 있고 기운도 없어요. 집에만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고요. 무슨 일
연재영이 깨어났다는 사실은 아직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고 연경 그룹 주주들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연경 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길러진 만큼 연재영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지금 연경 그룹으로 돌아가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연재영은 오히려 이 시간을 이용해 하나씩 판을 짜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제 연정미라는 카드는 예전처럼 쓸 수 없었다.연상진은 이미 몰락했고 연상준은 연재영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결국 연재영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예전의 연재영이라면 이런 떳떳하지 못한 수법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연재영이 계속 자존심만 세우고 있다가는 더 처참하게 질 뿐이었다....유소린은 강원희와 나현우가 일주일 동안 지켜본 결과를 하지율에게 전했다.“지율아, 진짜 네 예상대로였어. 이번 일주일 동안 연재영이 일부러 우연을 가장해 마주친 것도 모자라 뻔한 연극까지 꾸몄더라.”유소린은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연재영은 진짜 음흉한 놈이야. 무슨 짓까지 꾸몄는지 알아?”하지율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설마 헤이서 아가씨한테 약을 먹여 놓고 자기가 때맞춰 나타나 구해 준 건 아니지?”유소린은 일부러 뜸을 들이며 말하려다가 하지율이 단번에 맞히자 멍해졌고 잠시 뒤에야 물었다.“지율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하지율은 담담하게 말했다.“여자로서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절망감이 가장 크게 들 수밖에 없어. 연재영이 짧은 시간 안에 헤이서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려면 강한 충격을 줘서 자신에게 빨리 호감을 느끼게 만들어야 했을 거야.”유소린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의아해했다.“그런데 빨리 헤이서 아가씨를 자기 여자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그 틈을 타서 관계를 맺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 그런데 연재영은 그러지 않고 병원에 데려다줬대. 왜 그런 걸까?”하지율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소린아, 두 가지 방법은 다 헤이서 아가씨
“손씨 가문과 혼인하게 되면 연재영은 손여준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상당한 시간과 힘을 써야 해. 지금 자기 앞가림도 바쁜 사람이 다른 사람까지 도울 여유가 어디 있겠어? 연재영에게 필요한 건 바로 힘을 보태 줄 수 있는 사람이야. 지금 몇몇 명문 가문 중에는 연재영에게 맞는 상대가 없어. 그러니 결국 해외의 가문에서 찾아야겠지. 헤이서 가문은 M국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집안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고지후는 하지율의 창백하고 말끔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넋을 놓았다.2년 전만 해도 하지율은 직접 고지후를 위해 음식을 만들던 사람이었다.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대 위에 올라 누구보다 빛나기 시작했다.그리고 지금의 하지율은 고지후의 앞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만큼 실력이 단단해졌다.하지율은 큰일을 겪을 때마다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지후는 문득 이제 자신이 하지율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점심을 마친 하지율은 더 머물지 않고 곧바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유소린도 연재영이 헤이서 가문과 정략결혼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알아봤다.“지율아, 내가 헤이서 가문을 조사해 봤어. 지금 가주는 외동딸 하나 말고는 마땅한 후계자가 없더라. 게다가 가주가 나이도 많고 몸도 안 좋아. 그 사람이 죽고 나면 다른 친척들이 헤이서 아가씨의 몫까지 전부 빼앗으려고 달려들 가능성이 커. 그래서 지금 가주가 딸한테 데릴사위를 들이려고 하나 봐. 딸이 집안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줄 남자를 찾고 있는 것 같아.”유소린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연재영이 데릴사위로 들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평소 보면 연재영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고집도 세고 권위적인 데다가 남존여비 사상까지 엄청 강하잖아. 그런 사람이 남의 집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진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무서운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안 가린다는 거잖아. 체면까지 다
고지후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이번에 M국에 온 건 널 보러 온 것도 있지만 사실 단서현 씨를 피하려는 이유도 있어.”하지율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단서현 씨가 왜?”고지후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얼마 전부터 S시에 와서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있어. 너무 귀찮게 굴어서 잠깐 피할 겸 여기 온 거야.”하지율도 단서현이 오랫동안 고지후를 좋아해 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단서현은 여전히 마음을 접지 못했다니 의외였다.그때 하지율이 말했다.“원래 지후 씨의 개인적인 연애 문제에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아니야. 하지만 단서현 씨는 연정미와 아주 가까운 사이잖아. 지금 나와 연정미의 관계나 단보현의 상황을 생각하면 단서현 씨도 나를 많이 미워할 거야. 만약 지후 씨가 단서현 씨와 만나게 되면 그 감정이 윤택이한테까지 갈 수도 있어.”그러자 고지후는 곧바로 대답했다.“난 그 여자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어. 절대 만날 일도 없고... 지율아, 걱정하지 마. 누구든 윤택이한테 해가 되는 일은 못 하게 할 거야.”하지율이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화면을 확인하니 강원희에게서 온 전화였다.하지율이 전화를 받자 강원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지율 씨, 연재영 쪽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그러자 하지율이 물었다.“무슨 움직임이요?”“최근 연재영이 헤이서 가문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헤이서 가문이라...”하지율이 다시 물었다.“다른 움직임은 없나요?”“아직은 없습니다.”하지율은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그러자 고지후가 물었다.“무슨 일이야?”하지율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연재영이 깨어났대.”연재영이 왜 의식을 잃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고지후도 연재영이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몰랐다.“지율아, 내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어?”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괜찮아. 지후 씨는 윤택이만 잘 지켜 줘.”고지후가 대답했다.“연재영이 깨어났다면 절대 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