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손씨 가문과 혼인하게 되면 연재영은 손여준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상당한 시간과 힘을 써야 해. 지금 자기 앞가림도 바쁜 사람이 다른 사람까지 도울 여유가 어디 있겠어? 연재영에게 필요한 건 바로 힘을 보태 줄 수 있는 사람이야. 지금 몇몇 명문 가문 중에는 연재영에게 맞는 상대가 없어. 그러니 결국 해외의 가문에서 찾아야겠지. 헤이서 가문은 M국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집안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고지후는 하지율의 창백하고 말끔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넋을 놓았다.2년 전만 해도 하지율은 직접 고지후를 위해 음식을 만들던 사람이었다.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대 위에 올라 누구보다 빛나기 시작했다.그리고 지금의 하지율은 고지후의 앞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만큼 실력이 단단해졌다.하지율은 큰일을 겪을 때마다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지후는 문득 이제 자신이 하지율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점심을 마친 하지율은 더 머물지 않고 곧바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유소린도 연재영이 헤이서 가문과 정략결혼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알아봤다.“지율아, 내가 헤이서 가문을 조사해 봤어. 지금 가주는 외동딸 하나 말고는 마땅한 후계자가 없더라. 게다가 가주가 나이도 많고 몸도 안 좋아. 그 사람이 죽고 나면 다른 친척들이 헤이서 아가씨의 몫까지 전부 빼앗으려고 달려들 가능성이 커. 그래서 지금 가주가 딸한테 데릴사위를 들이려고 하나 봐. 딸이 집안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줄 남자를 찾고 있는 것 같아.”유소린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연재영이 데릴사위로 들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평소 보면 연재영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고집도 세고 권위적인 데다가 남존여비 사상까지 엄청 강하잖아. 그런 사람이 남의 집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진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무서운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안 가린다는 거잖아. 체면까지 다
고지후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이번에 M국에 온 건 널 보러 온 것도 있지만 사실 단서현 씨를 피하려는 이유도 있어.”하지율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단서현 씨가 왜?”고지후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얼마 전부터 S시에 와서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있어. 너무 귀찮게 굴어서 잠깐 피할 겸 여기 온 거야.”하지율도 단서현이 오랫동안 고지후를 좋아해 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단서현은 여전히 마음을 접지 못했다니 의외였다.그때 하지율이 말했다.“원래 지후 씨의 개인적인 연애 문제에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아니야. 하지만 단서현 씨는 연정미와 아주 가까운 사이잖아. 지금 나와 연정미의 관계나 단보현의 상황을 생각하면 단서현 씨도 나를 많이 미워할 거야. 만약 지후 씨가 단서현 씨와 만나게 되면 그 감정이 윤택이한테까지 갈 수도 있어.”그러자 고지후는 곧바로 대답했다.“난 그 여자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어. 절대 만날 일도 없고... 지율아, 걱정하지 마. 누구든 윤택이한테 해가 되는 일은 못 하게 할 거야.”하지율이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화면을 확인하니 강원희에게서 온 전화였다.하지율이 전화를 받자 강원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지율 씨, 연재영 쪽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그러자 하지율이 물었다.“무슨 움직임이요?”“최근 연재영이 헤이서 가문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헤이서 가문이라...”하지율이 다시 물었다.“다른 움직임은 없나요?”“아직은 없습니다.”하지율은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그러자 고지후가 물었다.“무슨 일이야?”하지율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연재영이 깨어났대.”연재영이 왜 의식을 잃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고지후도 연재영이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몰랐다.“지율아, 내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어?”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괜찮아. 지후 씨는 윤택이만 잘 지켜 줘.”고지후가 대답했다.“연재영이 깨어났다면 절대 가만
그날, 하지율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유소린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지율아, 고지후 씨가 네 몸이 회복됐다는 얘기 듣고 한번 만나고 싶대.”유소린은 하지율의 안색을 살피며 덧붙였다.“고지후 씨도 M국에 온 지 좀 됐어. 한번 만나 볼래?”하지율이 단종건의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유소린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고지후도 몇 번이나 찾아오고 싶다고 했지만 그때마다 하지율이 거절했다.결국 고지후는 일단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그러다가 최근 유소린에게서 하지율이 다시 연경 그룹에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M국으로 날아온 것이다.주용화의 일로 고지후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만큼 하지율도 이번에는 만나기로 했다.“알았어. 만나자.”...하지율이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는 고지후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율이 다가가 말했다.“미안해. 오래 기다렸지?”고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빼 주었다.“예전에는 늘 네가 날 기다렸잖아. 이제부터는 내가 널 기다릴게.”하지율은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처럼 고맙다고만 말한 뒤 맞은편에 앉았다.“한동안 계속 아파서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했네. 그동안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 참, 윤택이는 잘 지내?”그러자 고지후가 대답했다.“잘 지내. 이번에 나 올 때도 널 보러 오겠다고 계속 졸랐어. 아직 네 몸이 완전히 괜찮은지 걱정돼서 이번에는 안 데려왔어. 윤택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바로 데려올게.”그러자 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왔다.두 사람이 각자 음식을 주문한 뒤, 고지후는 여전히 창백한 하지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낮게 물었다.“지율아, 주용화 씨는 정말... 최면에 성공한 거야?”하지율은 잠시 침묵하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고지후는 원래 남을 위로하는 데 능한 사람이 아니었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겨우 말을 꺼냈다.“주용화 씨가 네 마음속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알아. 그래도 사람은 결국 앞날을 봐
그렇지 않으면 연정미는 연상진처럼 아무 쓸모 없는 버린 카드가 될 뿐이었다.연재영은 연정미를 조금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의 연정미는 온갖 추문에 휩싸인 데다 지분까지 회수당했고 임신한 몸이기까지 했다.자신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지분을 내놓는 건 쉽지만 다시 되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연재영은 연정미가 자신의 손안에서 무슨 큰일을 벌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때 연재영이 물었다.“네 생각에는 우리가 다음에 어떻게 움직이는 게 좋겠어?”그러자 연정미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하지율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써 보면 돼. 하지율도 오빠를 병원에 누워 있게 만들어서 연경 그룹 일에 신경 쓸 수 없게 했잖아. 우리도 하지율이 다른 일에 정신을 쏟게 만들면 돼.”연재영이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깨어나자마자 하지율이 또 사고를 당하면 너무 티 나잖아. 하이현 쪽의 주주들은 물론이고 아버지 쪽의 주주들도 받아들이기 힘들 거야.”그러자 연정미가 대답했다.“교통사고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당연히 안 되지. 하지만 하지율이 회사에 신경 쓸 여유가 없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연재영이 눈썹을 올렸다.“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연정미는 탁자 위의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오빠는 하지율의 약점이 뭐라고 생각해?”연재영은 잠시 생각해 봤지만 딱히 뚜렷한 약점이 떠오르지 않았다.지금의 하지율은 예전처럼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연재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 생각하자 연정미는 더 끌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금 하지율에게 남은 약점은 하나뿐이야. 바로 고윤택이지.”연재영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버지께서 윤택이를 아주 예뻐하셔. 우리가 섣불리 윤택이한테 손을 댔다가는 아버지의 선을 넘게 돼. 잘못하면 아버지께서 화가 나서 아예 하지율의 편으로 돌아설 수도 있단 말이야.”그러자 연정미가 웃으며 대답했다.“오빠, 걱정하지 마. 윤택이는 우리 조카잖아. 누구를 건드려도 윤택이한테 직접 손댈 생각은 없어.”
그 말을 들은 연재영의 얼굴에는 굴욕감이 떠올랐다.연재영은 연씨 가문의 장남으로 어릴 때부터 후계자로 길러졌다.연경 그룹에서든 연씨 가문에서든 연태훈 다음으로 강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다.하이현 쪽의 주주들조차 연재영에게는 어느 정도 양보해야 했다.이전에는 하지율도 연경 그룹에서 절반가량의 지지를 얻었지만 의사 결정권이나 실제 집행 권한에서는 여전히 연재영이 우위에 있었다.‘이제 와서 하지율의 눈치를 보며 움직여야 한다니...’줄곧 연경 그룹의 실권을 쥐고 살아온 연재영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연재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통 후계자였고 출생 때문에 뒷말이 따라붙는 사생아도 아니었다.평소에도 연재영은 일 처리나 처신도 늘 당당하고 떳떳했다.그런 자신이 굴욕을 참고 하지율의 밑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건 차라리 죽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었다.연정미는 연재영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오빠,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 조금만 참아.”그러자 연재영이 차갑게 말했다.“하지율은 석 달 뒤면 손형원의 지분까지 넘겨받아. 그때가 되면 더 손쓸 수 없을 텐데 앞으로도 계속 참고만 있으라는 거야?”그 말에 연정미는 오히려 웃으며 대답했다.“오빠, 주용화는 이미 하지율과 헤어졌어. 지금은 M국까지 떠났고 앞으로 하지율을 도와줄 일도 없을 거야. 주용화만 없으면 하지율이 빼앗아 간 걸 되찾는 건 어렵지 않아. 설령 형원 오빠의 지분을 넘겨받는다고 해도 손씨 가문이 얼마나 복잡한데... 하지율 같은 외부인이 쉽게 장악할 수 있겠어?”연정미는 불러온 배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세상에 영원한 적은 없어. 영원한 건 이익뿐이지. 예전에 하지율이랑 형원 오빠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잖아. 그런데 결국 형원 오빠의 지분은 받기로 했잖아. 하지율이 그 지분을 받는 순간, 자연스럽게 손여준과는 반대편에 서게 돼.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잖아. 우리는 손여준과 손잡으면 돼.”그 순간, 연재영이 미간을
연정미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연재영의 몸이 거의 다 회복된 뒤였다.그 사실을 알게 된 연정미는 낮게 웃으며 혼잣말했다.“아버지가 나한테까지 숨기셨네... 결국 나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는 거군. 하지율만 경계하는 게 아니라 나도 똑같이 경계하고 있었네.”그러자 옆에 있던 단성훈이 말했다.“정미야,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뭐든 말해. 무슨 일이든 도와줄게.”그러다가 단성훈의 시선이 연정미의 아랫배로 향했고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리고 이 아이가 내 아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내 아이처럼 키울 거야.”연정미는 입꼬리만 살짝 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형원을 제외하면 단성훈이 자신에게 가장 진심인 사람인 건 맞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성훈은 능력이 부족했고 그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었다.손형원은 처음부터 입지가 불안정했지만 그래도 단성훈보다는 훨씬 나았다.연정미는 이제 와서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그때 형원 오빠와 완전히 선을 긋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그랬다면 연정미는 지금도 손형원을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하지율에게 틈을 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지금은 단보현마저 거의 몰락했고 예전의 손형원보다도 못한 처지가 됐다.심수현 역시 연정미에게 진심이기는 했다.하지만 심수현은 부모와 가족까지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연정미를 위해 가문 전체를 걸 정도는 아니었다.연정미는 단성훈의 능력이 성에 차지 않았지만 손형원의 일로 한 번 심하게 덴 만큼 이번에는 완전히 선을 긋지 않았다.“성훈 씨, 고마워.”단성훈은 진지하게 연정미를 바라봤다.“이제 재영 형님도 깨어났고 주용화도 하지율과 헤어진 뒤 M국을 떠난 것 같아. 주용화의 도움만 없으면 하지율 혼자서는 우리를 못 이겨.”그러자 연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의 연정미에게는 그나마 유일하게 좋은 소식이었다.연정미가 연재영을 만나러 갔을 때는 그의 몸도 거의 90퍼센트 이상 회복된 상태였다.연정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몸은 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