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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1 23:29:27

그날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사라의 손목에서 붕대가 사라지고 상처가 옅어질 무렵.

강수가 느닷없이 말했다.

“집 옮겨.”

소파에 누워 과자를 먹던 사라가 눈만 들었다.

“왜?”

“좁아.”

사라가 제 오피스텔을 둘러봤다.

혼자 살기에는 충분했다.

“안 좁은데?”

“내가 좁아.”

“오빠가 큰 거잖아.”

정답이었다.

강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며칠 뒤 사라는 강수의 차에 실려 청담동으로 갔다.

최상층.

문이 열리자 넓은 거실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라가 현관에서 멈췄다.

“……여기 몇 평이야?”

“팔십.”

“미쳤네.”

강수는 안으로 들어갔다.

사라는 뒤늦게 따라붙었다.

“잠깐만. 여기서 나보고 살라고?”

“어.”

“혼자?”

강수가 돌아봤다.

사라도 그를 봤다.

잠시 뒤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네.”

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집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소파도 같이 골랐다.

침대도.

식탁도.

냉장고와 세탁기, TV까지 전부 둘이 돌아다니며 골랐다.

사라는 디자인을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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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167화

    사라는 딸기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그러면서도 강수를 계속 흘겨봤다.커피 머신까지 없애버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오빠.”대답이 없다.“차강수.”그제야 서류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왜.”“나 임신한 거지 환자 아니거든?”“알아.”“근데 왜 다 못 하게 해.”“뭘.”사라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구두 못 신게 하지. 커피 못 마시게 하지. 간식은 하루 종일 먹이지.”잠깐 생각하다 덧붙였다.“아침에 계단 내려갈 때 내 허리도 잡았지.”강수는 다시 서류를 넘겼다.“미끄러워.”“안 미끄러웠어.”“미끄러워.”사라가 기가 막혀 웃었다.저렇게 우기면 끝이었다.그때 책상 위 강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강수가 화면을 확인했다.정민이었다.“어.”잠깐 듣는다.“보내.”끝.사라가 딸기를 씹으며 물었다.“뭘 보내?”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후 사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정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파일 하나를 열어본 사라의 눈이 점점 커졌다.산부인과 진료 일정.정기 검진 시기부터 받아야 할 검사까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었다.“……뭐야, 이거.”강수는 태연했다.“병원.”“그건 나도 알아.”사라가 화면을 위아래로 내렸다.“이걸 왜 정민 오빠가 보내?”“내가 시켰어.”사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내 병원인데?”“어.”“내가 알아서 다닐 수 있는데?”“알아.”또 안다는 소리다.사라는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근데 왜 오빠가 다 해?”이번에는 강수의 시선이 올라왔다.“같이 갈 거니까.”사라의 입이 다물렸다.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매번?”“어.”“오빠 바쁘잖아.”“빼면 돼.”“회의 있으면?”“옮겨.”“출장이면?”강수의 대답이 잠깐 늦었다.“안 잡아.”사라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차강수 일정 하나 움직이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를 리 없었다.해외 사업부터 CH건설, 그 뒤에 있는 사뇌파 일까지.그런 남자가 산부인과 진료 날짜에 맞춰 자

  • 불온한 정착   166화

    그날 이후 달라진 건 사라보다 강수 쪽이었다. 말은 여전히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뜬 사라에게 몸은 어떠냐고 몇 번씩 묻지도 않았고, 배를 붙잡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그런데 집 안에 먹을 게 늘었다. 사라가 며칠 동안 입맛을 잃었을 때는 냉장고를 열어도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이제 조금씩 입맛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오빠. 나 복숭아 먹고 싶어.” 그날 저녁 냉장고에 복숭아가 들어왔다. 다음 날에는 출근하다 갑자기 호두과자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오후에 회장실 테이블 위에 호두과자가 놓였다. 딸기. 크래커. 치즈. 작게 포장된 견과류와 과일. 사라가 한두 번 잘 먹은 것들은 며칠 뒤에도 어김없이 채워졌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류를 들고 회장실에 들어간 사라가 책상 한쪽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작은 샌드위치와 과일 컵이 있었다. “이거 뭐야?” 강수는 서류에서 눈도 들지 않았다. “먹어.” “나 밥 먹었는데?” “알아.” “근데 또 먹으라고?” 대답은 없었다. 사라는 과일 컵을 집어 들었다. “딸기도 있네.” 포크로 하나 찍어 먹었다. 달았다. 결국 소파에 앉아 절반을 먹었다. 강수는 그제야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아침. 드레스룸에서 옷을 입던 사라가 구두를 꺼냈다. 그 순간 뒤에서 큰 손이 구두를 가져갔다. “뭐 해?” 강수는 구두를 다시 선반에 넣었다. 대신 아래쪽에 있던 운동화를 꺼내 사라 앞에 내려놨다. “이거 신어.” “왜?” 강수의 시선이 높은 굽에 한번 닿았다. “불편해.” “나 안 불편한데?” “신어.” 사라가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나 임신했지 발목 부러진 거 아니거든?” 강수는 이미 재킷을 입고 있었다. 대꾸도 없었다. “차강수.” “늦어.” 결국 운동화를 신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사라는 자기 발을 내려다봤다. 짧은 원피스에 운동화.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뭔가 억울했다. 더 황당한 일

  • 불온한 정착   165화

    “내가 말해.”강수의 대답은 거기까지였다.사라는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그리고 기다렸다.뭔가 더 말할 줄 알았다.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도 강수는 별말이 없었다.심장 소리를 들으면서도.병원에서 나오면서도.집에 돌아와 자신이 아이를 못 지울 것 같다고 했을 때도.표정 하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원래 그런 남자인 걸 안다.좋아한다는 말보다 찾아오는 게 먼저였고,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어느새 옆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말보다 행동.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사라였다.그런데 오늘은.조금쯤 달라도 되지 않나.사라의 시선이 강수의 얼굴을 살폈다.“오빠.”“왜.”“아이…… 싫어?”강수의 눈썹이 움직였다.“뭐?”“싫냐고.”“아니.”또 짧았다.사라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그런데 왜 그래?”“뭘.”그 말에 괜히 더 서운해졌다.뭘이라니.자기 배 안에 둘의 아이가 생겼는데.병원에서 심장까지 듣고 왔는데.이 남자는 평소랑 똑같았다.사라는 몰랐다.강수의 머릿속에서는 병원에서부터 단 한 순간도 생각이 멈춘 적이 없었다.여덟 주.사라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기쁨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서희에게 말해야 했다.더는 두 집을 오가며 아무 일 없는 남편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사라를 지금처럼 숨어 있게 둘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이.강수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그 사실이 무엇보다 무거웠다.사라 한 사람을 잃을 뻔했을 때도 그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바다에 뛰어들어 축 늘어진 작은 몸을 끌어안았던 감각은 아직도 선명했다.그런 사라의 몸 안에 지금은 더 작은 생명이 있었다.기뻤다.생각했던 것보다 훨씬.초음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만큼.그 작은 심장 소리를 기억해버릴 만큼.그래서 오히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좋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사라와 아이를 어디에 둘지.어떻게 지킬지.서희에게 언제, 어떻게 모든 것을

  • 불온한 정착   164화

    집에 도착해서도 사라는 한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강수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따라오지 않았다.손은 여전히 배 위에 있었다.평평했다.아무리 내려다봐도 달라진 건 없었다.그런데 그 안에 심장이 하나 더 뛰고 있었다.여덟 주.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사라야.”사라가 고개를 들었다.강수가 거실에서 보고 있었다.“왜 거기 있어.”“그냥.”그제야 신발을 벗었다.소파까지 걸어가 털썩 앉았다.평소 같으면 다리를 올리고 드러누웠을 텐데 오늘은 얌전히 앉아 있었다.강수가 물을 가져왔다.뚜껑까지 열어 건넸다.사라는 몇 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강수는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사라 옆에 앉았다.가까웠다.그런데도 사라는 그에게 기대지 않았다.한참 동안 자기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강수도 재촉하지 않았다.먼저 입을 연 건 사라였다.“오빠.”“어.”“우리 애.”말하고 잠깐 멈췄다.우리 애.병원에서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입 밖으로 직접 꺼내놓으니 이상하게 가슴이 울렸다.사라가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지워야겠지……?”강수의 움직임이 멎었다.사라는 그를 보지 않았다.“아무래도 그러는 게 맞겠지?”대답이 없었다.“오빠는 결혼했고.”손가락이 더욱 세게 꼬였다.“서희도 있고.”그제야 처음으로 현실이 또렷하게 입 밖으로 나왔다.사라는 웃으려 했다.늘 하던 것처럼 별것 아닌 일로 만들어버리려고.그런데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우리 상황이 좀 그렇잖아.”강수의 시선이 사라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그러니까…….”사라가 배를 한번 내려다봤다.“지우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강수의 손이 움직였다.꼬여 있던 사라의 손가락을 잡아 풀었다.사라가 그제야 그를 봤다.“왜.”강수가 짧게 물었다.“뭐가?”“네가 원하는 게 그거냐.”사라가 대답하지 못했다.“…….”“지우고 싶어?”또 침묵했다.이번에는 더 길었다.사라가 시선을 피했다.“그렇게 물으면 모르겠어.

  • 불온한 정착   163화

    병원 밖으로 나왔는데도 귓가에 그 소리가 남아 있었다.빠르고 작은 심장 소리.사라는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든 채 한참 내려다봤다.검은 화면 안의 작은 형체.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저게 자기 배 안에 있었다.벌써 여덟 주나.강수가 차 문을 열었다.사라는 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강수의 시선이 내려왔다.“왜.”사라는 초음파 사진을 들었다.“이게 진짜 우리 애래.”“어.”“심장도 뛰어.”“들었어.”“엄청 빨리 뛰던데.”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사라는 또 사진을 내려다봤다.신기했다.그런데 신기한 감정이 조금 가라앉자 그제야 현실이 밀려왔다.강수.자기.그리고 서희.사라의 얼굴에서 조금씩 웃음이 사라졌다.강수가 그 변화를 보고 있었다.“오빠.”“왜.”사라가 한참 입술만 달싹였다.“우리 이제 어떻게 해?”처음으로 그 질문을 했다.둘이 처음 선을 넘었을 때도 하지 않았다.연애를 시작했을 때도.강수의 물건이 하나둘 자기 집을 채우고, 어느 순간 그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게 됐을 때조차 묻지 않았다.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사라는 원래 그런 여자였다.좋으면 만났다.싫으면 돌아섰다.내일의 마음을 오늘 약속하지 않았다.그런데 이제는 달랐다.둘 사이에 하나가 더 생겼다.강수의 시선이 사라의 배로 내려갔다.아직 평평했다.겉으로는 어제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강수가 손을 뻗었다.큰 손바닥이 배 위에 조심스럽게 닿았다.사라가 그 손을 내려다봤다.“나도 모르겠어.”처음이었다.사라가 그렇게 말하는 건.“좋은 건지,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어.”강수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아까 심장 소리 들을 때는 되게 이상했어.”사라가 작게 웃었다.“진짜 내 안에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잠깐 침묵했다.“근데 나오니까 갑자기 생각할 게 너무 많아.”강수의 턱이 굳었다.사라가 그를 올려다봤다.그리고 결국 입 밖으로 꺼냈다.“서희도 있잖아.”바람이 지나갔다.강수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 불온한 정착   162화

    병원에 오는 내내 사라는 말이 없었다.조수석에 앉아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캘린더를 열었다 닫았다.다시 날짜를 세었다가 화면을 껐다.신호에 걸린 차가 멈출 때마다 강수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평소 같으면 운전하는 강수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을 사라였다.오늘은 조용했다.병원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자 사라의 다리가 작게 흔들렸다.강수가 그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움직임이 멎었다.사라가 옆을 봤다.“오빠.”“왜.”“아니면 어떡해?”강수는 가만히 바라봤다.“그럼 나오면 되지.”“그렇긴 한데.”잠시 후.“민사라 님.”이름이 불렸다.사라가 일어났다.두 걸음쯤 가다가 돌아왔다.강수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같이 가.”“어.”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와 마주 앉았다.마지막 생리일.평소 주기.최근 증상.하나씩 대답할수록 사라의 손가락이 자꾸 꼬였다.강수는 옆에 앉아 거의 말하지 않았다.검사가 이어졌다.그리고 다시 의사 앞에 앉았을 때였다.모니터를 확인하던 의사가 웃었다.“축하드려요.”사라가 눈을 깜빡였다.“네?”“임신 맞으세요.”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사라가 멍하니 의사를 바라봤다.강수도 움직이지 않았다.“지금 크기로 보면…….”의사가 화면을 조금 더 살폈다.“8주 정도 됐네요.”사라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8주요?”“네.”“두 달?”“대략 그 정도로 생각하시면 돼요.”사라가 강수를 돌아봤다.강수의 시선은 모니터에 박혀 있었다.미동도 없었다.“오빠.”그제야 강수가 사라를 봤다.사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임신했대.”“들었어.”“8주래.”“어.”대답은 평소처럼 짧았다.그런데 사라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자기 손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커다란 손.그걸 한참 보다가 다시 제 배를 내려다봤다.아무것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그 안에 아이가 있다는 말이 도무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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