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강도희는 성실하고 조용한 인턴이었다. 그런 도희가 모시는 하시경 대표는 타고난 매력으로 사람을 홀리는 남자였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J시 여자들이 가장 탐내는 남자이자 부동의 1위라고 했다. 도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저 잘난 얼굴에 훤칠한 몸, 거기에 능력까지.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도 아직 한창때였으니까.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고 능력 있는 남자에게 끌리는 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물론 어디까지나 눈으로만 즐겼다. 매일 칼같이 선을 지키며 성실하게 출근했다. 목표는 단 하나. 무사히 정규직이 되는 것. 그것만 이루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밤. 도희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경 역시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정말 하룻밤뿐이고, 그 뒤에 제 업무에는 영향이 없는 거죠?” “없어.” “그럼 좋아요.” 더없이 만족스러운 밤이었다. 흐트러진 치마를 다시 챙겨 입을 때까지만 해도, 그날의 일은 그저 둘만 아는 비밀로 남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경은 도희가 생각했던 것처럼 가벼운 남자가 아니었다. 자꾸만 마주쳤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남자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도희는 당황한 채 한 걸음씩 물러났다. 그러다 결국 번번이 달아나고 말았다. “대표님, 그날 밤 일은 그냥 잊어 주시면 안 돼요?” “내가 금붕어도 아니고. 잊으라고 한다고 그게 바로 잊힐 수 있어?” ... 도망치는 토끼와 끈질기게 뒤쫓는 늑대. 그러나 이 쫓고 쫓기는 관계의 진실을 아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늑대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과정이라는 것을. 그녀와 자신 사이에 놓인 벽을 하나씩 허물기 위한, 길고도 은밀한 기다림이었다는 것을. ... 자신을 버린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 나가는 여자. 그런 여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한결같이 믿어 주는 남자. 앞을 가로막는 대신 길을 열어 주고, 붙잡아 두는 대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곁을 지켜 주는 남자. ... 사랑은 상대를 통제하거나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믿으면서, 때로는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되어 주는 것. 그렇게 기꺼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일이다.
Lihat lebih banyak도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두 손을 세차게 내저었다.“아니에요, 아니에요! 대표님 이제 겨우 28살이시잖아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성공도 하셨고, 한창이신데 무슨 아저씨예요!”시경이 작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소리에 오히려 도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도희는 조심스럽게 거울처럼 반짝이는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시경의 얼굴을 살폈다.“대표님, 진심이에요.”“그런데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그게...”도희는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밖에 햇빛이 좀 강해서요. 하하...”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도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같이 달아났다.시경은 그런 도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매번 도망가네. 내가 그렇게 무섭나?’도희는 몇 걸음이나 달려서 시경과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겨우 속도를 늦췄다.그런데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었다.갑자기 튀어나온 남자와 정면으로 부딪혔다.“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부딪친 충격에 도희의 몸이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머리에 쓰고 있던 야구 모자도 바닥으로 떨어졌다.팔이 몹시 아팠다.도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상대를 올려다봤다.남자도 당황한 얼굴이었다.“미안합니다. 많이 아프세요?”그 모습을 본 시경이 다가왔다.“괜찮아?”도희는 아픈 팔을 살짝 움직여 보면서 대답했다.“네, 괜찮아요.”시경은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들었다.그러고는 남자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앞 좀 보고 다니지?”남자가 억울하다는 듯 대꾸했다.“인서 피하느라 그랬지. 오늘은 여기까지 쫓아왔어!”“다음엔 앞 좀 잘 봐.”그때 뒤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백지헌, 거기 안 서! 잡히면 넌 죽었어!”남자의 얼굴이 순간 그대로 굳어졌다.“나 가야겠다! 친구분한테는 다음에 제대로 사과할게!”그 말을 남긴 채 남자는 바람처럼 달아났다.뒤이어 예쁘장한 여자가 뛰어나왔다.여자는 시경을 발견하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오빠! 왜 백지헌 안 잡아 줘!”그러더니 대답을 들을 새도
“잠깐 쉬었다 가시겠다는 거예요, 아니면 자고 가시겠다는 거예요?”늦은 밤, 단둘이 저녁을 먹고 집 앞까지 온 남녀였다.도희도 더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아니었다.시경이 다시 한번 자신에게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시경이 웃으면서 되물었다.“어느 쪽 같아?”“어느 쪽이든 곤란해요. 그런 건 다른 분이랑 푸세요.”시경의 외모가 무척 매력적인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상사와 직원 사이였다.한 번 즐겼으면 그걸로 충분했다.계속 얽혀 봤자 자신의 앞날에 지장만 생길 게 뻔했다.시경 정도의 남자라면 주변에 여자가 넘쳐날 터였다.도희는 자신만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오늘 두 번째 밤을 보내면 세 번째, 네 번째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그러다 서로에게서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 뒤에도 자신이 하양그룹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그럴 리 없었다.생각만 해도 번거로웠다.시경은 도희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꿰뚫어 본 듯했다.“문제가 생기는 게 그렇게 싫어?”“대표님은 안 싫으세요?”“생기면 해결하면 되지. 난 참는 건 싫어. 그렇다고 강요할 생각도 없고.”“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들어갈게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희는 쏜살같이 차에서 내렸다.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고생하셨어요, 대표님. 운전 조심하세요!”그 말을 남기고 도희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모습이 그리 우아하지는 않았다.시경은 도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봤다.조금 아쉬웠다.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아쉬움마저도 나쁘지는 않았다.함께 밤을 보내지 못한 건 분명 아쉬운 일이었다.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지켜야 할 선을 확실히 아는 도희가 기특했다.집으로 돌아온 시경은 샤워부터 했다.샤워를 마친 뒤, 거울 앞에 서서 마른 수건으로 짧은 머리를 털었다.아직 젖어 있는 머
도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잠시 후, 도희가 입을 열었다.“그럼 길거리 포장마차로 모실게요. 드실 거예요?”“싫어.”“그럼 마음만 전한 걸로 할게요.”시경이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강도희답네.’회사에서는 늘 잔뜩 긴장해 있으면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표정도 말투도 훨씬 풍부해졌고, 마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시경은 도희의 그런 생기가 좋았다.10분쯤 뒤, 두 사람은 한 식당에 도착했다.시경이 자주 찾는 곳인 모양이었다.“하 대표님, 어서 오세요.”직원들은 시경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그런데 시경이 여자를 데리고 들어온 것을 보자, 여사장의 미소가 살짝 옅어졌다.“여자친구예요?”시경은 맞다는 말도,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조용한 룸 하나 주세요.”“북극성 룸 비어 있어요.”시경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2층에 올라갔다.식당 전체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안내를 받은 별실 역시 세련되게 잘 꾸며져 있었다.도희는 자리에 앉아서 영어가 함께 표기된 메뉴판을 펼쳤다.메뉴는 무척 다양했다.하지만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은 없었다.도희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음식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그럴 때는 뭘 먹어도 다 비슷하게 느껴졌다.괜히 비싼 음식을 주문해서 시경에게 돈을 많이 쓰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결국 도희는 비교적 저렴한 연어 샐러드를 골랐다.불을 사용할 필요도 없는 음식이라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나왔다.시경은 도희의 앞에 놓인 접시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저녁에도 풀만 먹어?”“네. 밤에 고기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잖아요. 소화가 안 되면 지방으로 변해서 뱃살로 쌓이고요.”“운동해서 빼면 되지. 샐러드는 맛도 없는데.”시경은 접시에 담긴 연어 조각들을 내려다봤다.양도 얼마 되지도 않았다.그나마 나머지는 대부분 양상추와 적양배추였고,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 몇 개가 곁들여져 있을 뿐이었다.보기만 해도
그 뒤로 시경한테서는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았다.도희도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그렇게 10분쯤 지난 후, 시경에게서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모래성이 그렇게 매력적일까?]도희는 잠시 생각한 뒤 답장을 보냈다.[아이들이 모래 파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얕보시면 안 돼요. 어린아이든 좀 큰 아이든 다 좋아해요. 한번 파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도 파면서 놀거든요.]이번에도 시경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도희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남은 업무를 마무리했다.수정한 파일을 수진에게 메일로 보내고, 컴퓨터까지 껐다.이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그런데 책상 조명을 끄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잠깐 들어와.]시경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대표실 안에서 시경은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도희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대답이 들렸다.도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대표님, 부르셨어요?”“응. 앉아.”도희는 책상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시경을 똑바로 바라봤다.시경이 입을 열었다.“왜 놀이공원보다 캠핑장에 모래성을 만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네 의견을 좀 듣고 싶어.”도희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그리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캠핑장의 주요 고객층은 젊은 사람들이에요.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즐기려는 거예요.” “텐트에서 하룻밤 자고, 야외에서 바비큐도 해 먹으면서 여유롭게 주말을 보내는 거죠.”도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 이어갔다.“그런데 이 고객층은 생각보다 폭이 좁아요. 젊은 사람들의 취향은 금방 바뀌기도 하고요.”“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캠핑장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면서 서비스의 질도 떨어졌어요. 그러니 점점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도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그렇다면 다시 인기를 얻고 싶은 캠핑장은 우선 새로운 고객층부터 찾아야 해요.”그러고는 시경에게 되물었다.“대표님은 어떤 사람들이 새로운 고객이 될 수 있을 것 같으세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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