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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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에빌Updated jus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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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러게. 그런데 왜 지금 와서 그게 마음에 안 들지?” 사랑 없는 결혼이었다. 서로의 야망을 위해 손을 잡았고, 각자의 목표를 이루는 날 미련 없이 헤어지기로 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좋았다. 서로의 침실에 누가 드나들든 상관없었다. 분명 그렇게 약속했는데. “네가 다른 남자 품에 안기는 꼴은 못 보겠어.” “…당신 미쳤어?” “그래. 네 남편이 된 날부터 미쳐 있었나 봐.”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혼보다 먼저 끝내야 할 것이 생긴 것 같다. 서로를 향한 이 지독한 욕망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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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계약 위반

“…당신 미쳤어요?”

한서윤이 물었다. 제 입술을 당장이라도 집어 삼킬 듯한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남자를 향해서였다. 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물러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듯이.

“강도윤.”

“이름 부르지 마.”

“뭐?”

“지금 그 목소리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서윤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오늘 여자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만났어.”

“나도 남자 만났고요.”

“알아.”

“그럼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제야 도윤이 웃었다. 아주 짧고,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러게.”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네가 다른 남자한테 웃어 주는 걸 보고 있으니까, 내가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는 새끼더라고.”

“…….”

“이런 건 계약서에 없었잖아, 한서윤.”

그 말에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계약서. 그래. 그들은 계약으로 맺어진 부부였다.

서로의 사업이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서로의 연애 상대에 관여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면 합의하에 이혼한다.

간단하고 명료했다. 사랑은 없고, 손익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가.

“이거 놔요.”

서윤이 말했다. 도윤은 곧장 손을 놓았다.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에 오히려 서윤의 속이 뒤틀렸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제멋대로 선을 넘을 것처럼 굴다가도, 막상 그녀가 거부하면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물러났다. 마치 정말로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후회할 텐데.”

“뭘요?”

“오늘 나 밀어낸 거.”

서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이야말로 후회하지 마요.”

“내가 왜?”

“나한테 마음이라도 생긴 것처럼 굴었잖아.”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착각하지 마.”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나도 당신한테 관심 없어요.”

“다행이네.”

“너 정말 재수 없어.”

“너도.”

서로를 향한 감정이라고는 고작 이 정도였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끝내 서로에게서 물러나지 못했다.

“이러지 마요.”

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도윤의 가슴을 밀어내지 못했다. 손바닥 아래로 뜨겁고 단단한 체온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여유로운 무표정 대신 낯선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강도윤이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언제나 한발 먼저 계산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만들지 않으며,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마치 무언가를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왜.”

도윤이 물었다.

“네가 싫다고 하면 그만둘게.”

서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한마디만 하면 물러날 사람처럼.

그 사실이 이상하게 더 화가 났다.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요.”

“어떤 식으로?”

“내가 선택하는 것처럼 굴지 말라고요.”

도윤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네 선택 아니야?”

“…….”

“한서윤. 네가 싫으면 여기서 끝내.”

그녀는 그를 노려보았다.

이 남자는 끝까지 이런 식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굴면서, 모든 결정의 책임을 그녀에게 넘겼다. 마치 자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듯이.

서윤은 그의 셔츠 깃을 움켜쥐었다.

“당신은 정말 재수 없어.”

“알아.”

“잘난 척은 혼자 다 하고.”

“그것도 알아.”

“……진짜 최악이야.”

“그런데도 안 밀어내네.”

서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윤은 더는 웃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밖으로는 늦은 밤의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 화려한 도심 한가운데, 서로의 이름으로 묶인 두 사람만이 자신들이 세운 규칙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서윤이 먼저 그의 셔츠 깃을 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후회하지 마요.”

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후회는 내가 결정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윤이 먼저 그에게 입을 맞췄다. 순간 도윤의 몸이 굳었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던 모양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한 발짝씩 밀어내던 여자가 먼저 거리를 좁혔다는 사실이 그를 잠시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도윤은 그녀의 뺨을 감싸 쥐고 입맞춤에 응했다. 처음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를 떠보던 입맞춤은 이내 숨을 고를 틈조차 주지 않는 입맞춤으로 바뀌었다.

서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실수였다. 분명 실수였다.

저 남자는 그녀가 사랑할 사람도,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계약서에 이름을 나란히 적은 남자였다. 사업이 목표에 도달하면 헤어질 사람. 각자의 연애에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한 사람.

그런데 왜. 왜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때보다 이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이 더 신경 쓰이는 걸까. 왜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하나에 이토록 예민해지는 걸까.

서윤은 생각을 멈췄다. 지금은 이유를 찾고 싶지 않았다.

도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윤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런 자신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오늘 저녁 그녀가 다른 남자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속이 불편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얼마나 오래 만났는지, 서윤이 그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얼굴을 보여 주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서윤이 다른 남자에게 웃어 주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토록 간단한 약속이 우스울 만큼 어려워졌다.

“한서윤.”

그가 낮게 불렀다.

“…왜요.”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어.”

서윤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당신은요?”

“뭐가.”

“그만두고 싶어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솔직했다. 서윤은 희미하게 웃었다.

“거짓말은 못 하네, 강도윤.”

“너한테까지 잘 보일 생각 없어.”

“다행이네요. 나도 당신한테 잘 보일 생각 없으니까.”

“그럼 됐네.”

“그러게요.”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끝내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서로를 끌어당겼다.

도윤의 입술이 서윤의 입술에 겹쳐졌다. 방금 전까지 날카롭게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집요한 입맞춤이었다. 서윤은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고, 도윤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을 것처럼.

숨이 모자랄 만큼 입을 맞추고서야 두 사람은 잠시 떨어졌다. 그러나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 짧은 틈마저 견디지 못했다.

“……정말 후회 안 해?”

서윤이 흐트러진 숨을 고르며 물었다.

도윤은 대답 대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누구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을 여자였다. 자신 앞에서도 늘 여유롭게 웃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던 여자.

그런 서윤이 지금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쓸었다.

“그 질문, 아까도 했어.”

“대답은 안 했잖아요.”

“네가 듣고 싶은 대답이 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네 마음을 모르겠으니까.”

서윤은 헛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그런 말도 다 하네요.”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더 묻지 마.”

그 말에 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도윤의 이마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숨결이 뒤섞였다. 평소라면 한마디쯤 비꼬았을 서윤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황을 정리했을 도윤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지금의 감정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그럴 생각은 없었다.

서윤이 먼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도윤은 짧게 숨을 내쉬더니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서로를 향한 감정을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입맞춤에 더 깊이 매달렸다.

마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계약도, 약속도, 각자의 연인도. 내일 아침이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주 앉을 두 사람의 관계도.

그 밤만큼은 전부 잊기로 한 것처럼. 창밖의 불빛이 하나둘 희미해졌다.

몇 번이나 서로를 밀어내려 했고, 몇 번이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잠시 떨어져 있으면 어느 한쪽이 먼저 상대를 바라봤고, 시선이 마주치면 결국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누구도 먼저 끝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끝내자는 말을 꺼내는 순간, 정말로 멈춰야 할 것 같았으니까. 새벽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침묵만 쌓여 갔다.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다.

좋아한다는 고백도 없었다.

그런데도 서로를 끌어안은 손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계약서에 적힌 모든 조항이 무색해질 만큼 가까워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둘 중 누구도 먼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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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계약 위반
“…당신 미쳤어요?”한서윤이 물었다. 제 입술을 당장이라도 집어 삼킬 듯한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남자를 향해서였다. 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물러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듯이.“강도윤.”“이름 부르지 마.”“뭐?”“지금 그 목소리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서윤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당신, 오늘 여자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요?”“만났어.”“나도 남자 만났고요.”“알아.”“그럼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그제야 도윤이 웃었다. 아주 짧고,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그러게.”그가 고개를 기울였다.“그런데 네가 다른 남자한테 웃어 주는 걸 보고 있으니까, 내가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는 새끼더라고.”“…….”“이런 건 계약서에 없었잖아, 한서윤.”그 말에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계약서. 그래. 그들은 계약으로 맺어진 부부였다.서로의 사업이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서로의 연애 상대에 관여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면 합의하에 이혼한다.간단하고 명료했다. 사랑은 없고, 손익만 있었다.그런데 지금 이 남자가.“이거 놔요.”서윤이 말했다. 도윤은 곧장 손을 놓았다.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에 오히려 서윤의 속이 뒤틀렸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제멋대로 선을 넘을 것처럼 굴다가도, 막상 그녀가 거부하면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물러났다. 마치 정말로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후회할 텐데.”“뭘요?”“오늘 나 밀어낸 거.”서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당신이야말로 후회하지 마요.”“내가 왜?”“나한테 마음이라도 생긴 것처럼 굴었잖아.”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착각하지 마.”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나도 당신한테 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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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한서윤과 강도윤에게는 그랬다.두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된 선택이었다. 어느 한쪽이 절박해서 매달린 것도 아니었고, 집안의 강요에 굴복한 것도 아니었다.오히려 양가 모두 두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문제는 두 사람이 그 선택권을 거절하는 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이다.세 달 전, 한서윤은 아버지의 서재에 앉아 결혼 제안서를 읽고 있었다. 제안서의 첫 장에는 강명그룹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강명그룹. 국내 유통과 금융, 부동산, 투자 사업을 아우르는 대기업이었다. 그중에서도 최근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계열사가 강명인베스트먼트였다.그리고 그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 바로 강도윤이었다.“싫으면 거절해도 된다.”아버지가 말했다. 서윤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왜요? 조건이 별로예요?”“조건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결혼은 사업 계약과 다르니까.”“저는 사업 계약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너는 꼭 그렇게 말해야겠느냐?”“그럼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말씀드릴까요?”서윤이 고개를 들었다.“제가 강도윤 씨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저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잖아요.”“…….”“그럼 남는 건 서로에게 필요한 조건뿐이죠.”그녀는 다시 서류를 내려다봤다.양가의 사업적 협력. 신사업 진출을 위한 자본과 네트워크의 공유. 장기적인 경영 안정성. 그럴듯한 말들이었다.하지만 서윤에게 중요한 건 그럴듯한 명분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업이었다.한서윤은 한경그룹 장녀라는 이름만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일군 회사를 물려받아 적당히 관리하는 후계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키우고, 자신의 판단으로 시장을 움직이고, 누구도 자신을 누군가의 딸이라는 이유로 평가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자본도, 인맥도, 경영권을 둘러싼 내부의 신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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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질투라도 해?
집에 들어온 서윤은 곧장 방으로 향했다.도윤은 거실에 남았다. 평소처럼 각자 방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처럼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잠시 후, 서윤이 다시 거실로 나왔다. 편한 셔츠에 짧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손에는 물컵이 들려 있었다.도윤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왜요?”서윤이 물었다.“뭐가요?”“아까부터 왜 그렇게 봐요?”“내가 언제요.”“지금도 보고 있잖아요.”도윤은 시선을 돌렸다.“착각입니다.”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강도윤 씨.”“왜.”“혹시 질투해요?”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서윤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설마.”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진짜예요?”“헛소리하지 마.”“그럼 왜 자꾸 물어보는데요?”“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지.”“아까는 대화라면서요.”“한서윤.”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적당히 해.”서윤은 오히려 더 즐거워 보였다.“왜요? 찔려요?”“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그건 제가 할 말 같은데요.”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계약서에 사생활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당신 사생활 따위에 관심 없어요.”“잘됐네요.”“네. 아주 잘됐죠.”서윤은 돌아서려다가 문득 생각난 듯 덧붙였다.“아, 그리고.”도윤이 그녀를 바라봤다.“태하한테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태하?”“아까 그 사람 이름이요.”“내가 그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한다고.”“모르죠. 대표님은 가끔 말투가 사람 기분 나쁘게 하니까.”도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걱정 마세요. 그쪽 연애 상대에게 관심 없습니다.”“그럼 다행이고요.”서윤은 물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았다.“잘 자요.”그녀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도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태하. 이름까지 알려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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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남편의 자격
도윤은 한참 동안 방문 너머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헛웃음을 흘렸다. 우스웠다.자신이 먼저 결혼을 제안한 것도 아니고, 한서윤이 결혼을 원한다고 했을 때 조건을 검토한 뒤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서로의 사업을 위해 필요한 결혼이었고, 각자의 연애를 허용하는 것에도 동의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그녀의 사생활을 신경 쓴단 말인가. 도윤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세린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와 있었다.[대답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그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그래. 그럼 다음에 봐.]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하던 중, 서윤의 방문이 열렸다. 잠옷 차림의 서윤이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복도로 나왔다.“응. 나도 보고 싶어.”도윤의 발걸음이 멈췄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니, 목소리보다 그 표정이 낯설었다.서윤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웃고 있었다. 상대방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내일은 꼭 보자. 약속.”잠시 후 통화가 끝났다. 서윤은 휴대전화를 내리다가 그제야 복도에 서 있는 도윤을 발견했다.“…아직 안 잤어요?”“아직.”“아.”서윤은 별다른 반응 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도윤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얼굴이었다.“태하 씨?”서윤이 물을 마시다 말고 돌아봤다.“네?”“통화한 사람.”“그걸 왜 물어요?”“그냥.”서윤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맞아요.”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윤은 컵을 내려놓고 그를 향해 돌아섰다.“그런데 강도윤 씨.”“왜.”“자꾸 이러는 이유가 뭐예요?”도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내가 뭘.”“태하 얘기만 나오면 묘하게 기분 나쁜 사람처럼 굴잖아요.”“착각이야.”“그래요?”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행이네요.”그녀는 컵을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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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서로 궁금해하지 말죠
“이쪽은 윤태하 씨예요. 오래된 친구.”서윤이 소개했다.태하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처음 뵙겠습니다. 윤태하입니다.”도윤은 그 손을 바라보다가 맞잡았다.“강도윤입니다.”“알고 있습니다.”태하가 웃었다.“서윤이 남편분이시잖아요.”남편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태하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낯설었다.도윤은 상대의 손을 놓았다.“한서윤 씨와는 오래 알고 지내셨나 봅니다.”“네. 꽤 오래요.”태하가 서윤을 바라봤다.“서윤이가 저한테는 가족이나 다름없거든요.”서윤은 작게 웃었다.“무슨 가족이야. 오글거리게.”“왜. 틀린 말도 아닌데.”태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된 친밀함이 있었다.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눈빛, 익숙한 농담,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동.도윤은 그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불쾌할 만큼 명확하게 깨달았다. 자신은 한서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피곤하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말에 웃는지. 그런 것들을 알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알려고 하지 않았다.반면 저 남자는 달랐다. 서윤이 무심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순간, 태하는 그녀의 귀걸이가 조금 돌아간 것을 알아차리고 손을 뻗었다.“가만있어. 귀걸이 돌아갔어.”“어디?”“여기.”태하는 익숙한 손길로 귀걸이를 바로잡아 주었다. 서윤은 가만히 기다렸다.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고마워.”“별걸 다.”태하가 웃었다.“네가 이런 거 잘 못 챙기잖아.”“내가 언제?”“지금도.”두 사람은 또 웃었다. 도윤은 더는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두 분이 상당히 친하신가 봅니다.”태하가 그를 바라봤다.“네. 오래전부터요.”“그렇습니까.”"서윤이가 어떤 사람인지도 꽤 잘 알고 있습니다.”태하의 미소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러나 다음 말에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적어도 제가 아는 한, 서윤이는 억지로 웃는 걸 좋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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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내 아내가 아닌 척하지 마
집에 도착한 뒤, 서윤은 먼저 차에서 내렸다.“저 먼저 들어갈게요.”“한서윤.”그녀가 멈췄다.“왜요?”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늘 태하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 남자가 그녀를 잘 안다고 말했을 때 왜 그렇게 신경이 쓰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그토록 자연스럽게 제 아내라고 말해 버렸는지.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내일 아침 회의 잊지 마.”서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그 말 하려고 불렀어요?”“응.”"역시 당신은 재수 없어.”“당신도.”서윤은 그대로 돌아섰다.현관문이 닫히고, 도윤은 한동안 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세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오늘 행사 사진 봤어. 둘이 정말 잘 어울리더라.]도윤은 화면을 바라봤다. 곧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그런데 당신, 오늘 표정이 재미있던데.]그는 답장하지 않았다. 세린은 더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했다. 자신은 오늘 하루 종일 한서윤을 신경 쓰고 있었다.그녀가 누구와 웃는지. 누구의 손을 잡는지. 누구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지.전부 신경 쓰였다.문제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사랑은 아니었다. 그런 감정이 생길 리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지나치게 가까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도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그날 밤.서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오늘 예뻤어.]서윤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아까도 말했잖아.][몇 번을 말해도 부족한데.]잠시 뒤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그리고 미안해.]서윤의 손이 멈췄다.[뭐가?][오늘 네 남편 앞에서 조금 짓궂게 굴었어.]서윤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태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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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당신의 여자, 나의 남자
“내 아내가 아닌 척하지 마.”서윤은 문고리를 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간섭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내 아내가 아닌 척하지 말라니.대체 어디까지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걸까.“…강도윤 씨.”“왜.”“혹시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어요?”“알아.”“아니요. 모르는 것 같은데.”서윤은 헛웃음을 지었다.“우리가 결혼한 이유가 뭔데요? 서로의 사업을 위해서잖아요. 서로의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않기로 했고요.”“알아.”“그런데 왜 자꾸 이상하게 굴어요?”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서윤은 그의 손을 문에서 떼어 냈다.“당신이 내 남편인 건 법적으로만 그래요. 나도 그 사실을 잊은 적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도 잊지 마요.”문이 닫히기 직전, 서윤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내가 당신 아내인 건 계약 때문이지, 당신 소유물이어서가 아니니까.”찰칵. 문이 닫혔다.도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애초에 소유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더러워졌을까.도윤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는 결국 돌아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한서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루기 어려운 여자였다.문제는 그 사실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다음 날 오전.서윤은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 위에는 오늘 처리해야 할 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첫 번째 서류를 펼쳤다.그러나 휴대전화가 울리는 바람에 집중이 끊겼다.[정세린입니다. 잠깐 뵐 수 있을까요?]서윤은 화면을 바라봤다. 예상하지 못한 연락은 아니었다. ,어제 행사에서 세린과 짧게 인사를 나눴을 때, 그녀는 언젠가 따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서윤은 잠시 생각하다 답장을 보냈다.[네. 오늘 점심 괜찮습니다.]답장은 곧바로 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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