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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2 00:23:58

강수는 돌아보지 않은 채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 서희의 물음에 있다고 답한 뒤에도 더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직 꺼내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왜 하필 오늘 사라와 연락하는 걸 막는지 서희에게는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강수는 입을 닫았다. 설명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누구에게도 억지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서희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였다.

서희가 화면을 내려다봤다가 그대로 굳었다.

민사라

조금 전 자신에게서 걸려왔다 끊긴 전화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강수의 시선도 화면에 닿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이번에는 서희가 먼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서희야?]

사라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아까 전화했지? 나 잠깐 화장실 갔다 와서 못 받았어.]

서희의 입술이 굳었다.

오랫동안 들어온 친구의 목소리였다. 만나자고 할 때도, 맛있는 걸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 때도, 여행지에서 뜬금없이 전화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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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198화

    사라의 얼굴이 굳었다.아까까지 초코볼을 먹으며 웃고 있던 기색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희가 화를 낼 거라는 건 알았다. 언젠가 알게 된다면 자신 역시 그 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도 막상 서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했던 것보다 날카롭게 박혔다.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수의 등 뒤에 선 채 입술만 꾹 다물었다.그 순간 2302호 안에서 쪼꼬가 다시 짖었다.멍멍.조용했던 복도에 강아지 짖는 소리가 울리자 강수의 시선이 옆집으로 향했다.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여자가 바로 옆에 살고 있었다. 이대로 서희가 목소리를 높이면 문이 열리는 건 시간문제였다.강수는 다시 서희를 봤다.“들어와.”서희의 눈썹이 움직였다.조금 전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막던 남자가 먼저 몸을 비켰다.“대신 조용히 해.”“내가 왜—”“들어와.”같은 말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강수는 현관문을 조금 더 열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서희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막상 들어오라는 말을 듣자 발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문 하나를 넘는 것뿐인데 그 안은 자신이 지난 일 년 동안 전혀 몰랐던 강수의 생활이었다.그때 사라가 보였다.사라는 여전히 현관 안쪽에 서 있었다. 조금 전 강수가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끼어들지도 않았다.서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서희는 결국 안으로 들어섰다.현관문이 닫혔다.찰칵.복도의 소리가 끊겼다.그리고 처음으로 집 안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넓었다.밖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거실은 높은 층답게 시야가 탁 트여 있었고, 통창 너머로 청담동의 야경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가구는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좋은 것이라는 건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서희의 눈을 붙잡은 건 집의 크기가 아니었다.사람이 사는 흔적이었다.두 사람이.현관 한쪽에는 사라의 작은 운동화와 강수의 구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옷걸이에는 강수의 재킷이 있었

  • 불온한 정착   197화

    서희의 시선은 사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현관 안쪽으로 보이는 풍경도 이제는 눈에 들어왔다. 식탁 위에 놓인 우유와 초코볼, 아무렇게나 걸쳐진 강수의 재킷, 맨발로 서 있는 사라까지. 아래에서 옆집 주민이 두 사람을 신혼부부라고 부른 이유를 굳이 설명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들어갈게.”서희가 말했다.강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내려가.”“싫어.”“서희야.”“나도 들어가서 얘기할 거야.”서희가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강수는 비켜서지 않았다. 문을 절반도 열어주지 않은 채 현관 한가운데 서 있는 큰 몸이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내려가.”낮고 짧은 목소리였다.서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왜 내가 내려가야 하는데?”사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상황을 전부 들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희가 무엇을 알고 찾아왔는지는 조금 전 한마디로 충분했다.자신과 강수.결국 알았다.언젠가는 올 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너무 갑작스럽게 집 앞까지 와 있었다.서희가 다시 말했다.“비켜. 나 사라랑 얘기할 거야.”“오늘은 안 돼.”“왜?”강수는 답하지 않았다.사라가 그때 강수 옆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서희야.”강수의 시선이 곧바로 내려갔다.사라는 서희의 붉어진 눈을 보며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지만 강수가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는 것도 싫었다.“오빠 잘못 없어.”서희의 눈이 커졌다.강수의 미간도 동시에 좁아졌다.사라는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게 오빠 혼자—”“민사라.”낮게 떨어진 목소리에 사라의 입이 멈췄다.강수가 사라를 내려다봤다.조금 전까지 집 안에서 초코볼을 두고 실랑이하던 남자의 얼굴은 없었다.“지금 아니야.”“근데 오빠.”“방에 가 있어.”사라가 그대로 굳었다.강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화를 내지도 않았다.그런데 더 말하면 안 된다는 건 알 수 있었다.사라는 입술을 달싹였다가 닫았다.평소라면 왜냐고 물었을 것이다. 자신

  • 불온한 정착   196화

    “쪼꼬네야?”사라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강수는 현관문을 반쯤 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문밖에는 서희가 서 있었고, 등 뒤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라가 다가오고 있었다.“쪼꼬 간식 다 먹었대?”“들어가 있어.”“왜?”사라의 발이 멈췄다.조금 전부터 이상했다. 할 말이 있다며 평소보다 무거운 얼굴로 앉아 있던 것도 그렇고, 벨이 울리자 자신보다 먼저 현관으로 나간 것도 그랬다.무엇보다 지금 강수는 누가 왔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사라는 강수의 등을 빤히 바라봤다.“쪼꼬네 아니야?”“어.”“그럼 누구야?”대답이 없었다.사라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오빠.”강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어차피 말하려고 했다.서희가 모든 걸 알았다는 것도, 오늘 자신이 서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사라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다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서희가 뒤따라와 두 사람이 사는 집 앞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강수의 시선이 문밖의 서희에게 향했다.“내려가.”짧고 낮았다.서희는 움직이지 않았다.“싫어.”강수의 턱이 굳었다.“서희야.”“나 사라 만나러 왔어.”그 이름이 들리는 순간 사라의 표정이 멎었다.현관 안쪽이 조용해졌다.사라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서희.분명 서희라고 했다.아까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친구. 다시 전화했을 때는 갑자기 통화가 끊겼고 그 뒤로 휴대전화까지 꺼져 있던 서희였다.사라는 강수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서희야?”강수의 시선이 돌아왔다.사라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았다.맞았다.“비켜봐.”“사라야.”“서희잖아.”강수는 비키지 않았다.사라는 그의 옆으로 고개를 내밀려고 했다. 하지만 체격 차이가 워낙 컸고, 강수가 문 앞을 막고 있으니 밖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왜 서희가 여기 있어?”강수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이상했다.사라는 이번에는 강수의 팔을 잡았다.“오빠, 비켜봐.”강수의 눈이 내려갔다.작은 손이 자신의 팔

  • 불온한 정착   195화

    딩동.초인종이 울렸다.강수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기 직전이었다.사라는 식탁 위에 내려놓았던 숟가락에서 손을 떼고 현관 쪽을 돌아봤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다.“누구지?”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사라보다 강수의 반응이 빨랐다.“있어.”“응?”“내가 봐.”강수가 먼저 일어났다.사라는 의자에 반쯤 걸친 채 그런 강수를 바라봤다. 배달을 시킨 것도 없었고, 자신이 누군가를 부른 것도 아니었다. 정민이나 덕배라면 이 시간에 찾아오기 전에 강수에게 먼저 연락했을 것이다.“오빠 뭐 시켰어?”“아니.”“그럼 누군데?”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현관으로 향하는 걸음이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전 식탁에 앉아 있던 때와는 공기가 달라졌다.강수는 이 집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아무나 찾아올 수 있는 집도 아니었다.사라는 결국 의자에서 일어났다.“나도 볼래.”“거기 있어.”“왜?”강수가 돌아보자 사라는 이미 몇 걸음 따라온 뒤였다. 한 손에는 먹다 만 딸기우유까지 들려 있었다.“누군지만 볼 건데.”“사라야.”“알았어.”대답은 잘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강수는 그런 사라를 한번 내려다보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현관 앞에 섰다.딩동.벨이 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사라도 고개를 갸웃했다.“급한가 봐.”강수의 시선이 인터폰으로 향했다.화면을 켰다.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라는 강수의 넓은 등 뒤에 가려 화면을 볼 수 없었다.“누구야?”대답이 없었다.“오빠?”강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화면 안에는 서희가 서 있었다.2301호 현관 앞.조금 전 자신이 두고 나온 집에 있어야 할 서희가 지금 이곳까지 와 있었다.강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따라왔다는 것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편의점에서부터였는지, 아파트 입구에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서희가 결국 이 집을 찾아냈다는 사실이었다.뒤에 있던 사라가 옆으로 얼굴을 내밀었다.“왜 말 안 해

  • 불온한 정착   194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사라는 소파에서 바로 고개를 들었다.기다렸다는 듯 맨발로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달려왔다. 강수가 신발을 벗기도 전이었다.“왔어?”“어.”사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강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작은 몸이 그대로 품 안으로 들어왔다. 강수는 한 손에 편의점 봉투를 든 채 잠깐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라는 그런 강수의 표정에는 별 관심도 없는지 까치발부터 들었다.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쪽.“왜 이렇게 늦었어.”“안 늦었어.”“늦었어. 십 분이라며.”“편의점 갔잖아.”그제야 사라의 눈이 강수 손에 들린 봉투로 떨어졌다.눈이 금세 반짝였다.“샀어?”강수가 봉투를 내밀자 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받아 들었다. 현관에 강수를 그대로 두고 먼저 주방으로 향했다.“딸기우유도?”“어.”“그냥 우유도?”“어.”냉장고 앞까지 간 사라가 봉투 안을 뒤적였다. 딸기우유를 먼저 꺼내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웃더니 흰 우유까지 식탁 위에 올려놨다.그리고 다시 봉투 안을 들여다봤다.손이 멈췄다.사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초코볼은?”강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거실로 들어왔다.“있잖아.”“어디?”“위에.”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그러니까 그걸 내려달라고 했잖아.”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재킷을 벗어 소파 등에 걸쳐놓고 셔츠 소매를 한 번 걷었다. 그사이 사라는 강수를 졸졸 따라왔다.“오빠.”“왜.”“초코볼.”“알아.”“알면 줘.”강수는 결국 주방으로 향했다.사라는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강수가 수납장 앞에 서서 위쪽 문을 열었다. 사라가 의자까지 끌고 올라가도 손이 닿지 않았던 깊숙한 곳에 반쯤 남은 초코볼 봉지가 있었다.189센티미터의 강수에게는 손을 조금 뻗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봉지를 꺼내자 사라가 바로 두 손을 내밀었다.“내놔.”강수는 내려다봤다.사라는 손바닥을 위로 펼친 채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었다.강수의 시선이 초코볼에서 사라에게로 옮겨갔다.“조금만.”“응.”너무 빠른 대답이

  • 불온한 정착   193화

    잠시 뒤 다른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문이 열리자 서희는 망설이지 않고 올라탔다. 조금 전 멈춘 숫자를 이미 확인했으니 이제 층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23층.버튼을 누르자 문이 천천히 닫혔다.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서희는 올라가는 숫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몇 층인지조차 몰라 아래에서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제는 강수가 올라간 곳을 정확히 따라가고 있었다.10층.15층.20층.숫자가 높아질수록 심장이 빨라졌다.강수는 이미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사라가 기다리는 집에.편의점에서 사 온 딸기우유와 우유가 든 봉투를 들고, 너무나 익숙하게 현관문을 열었을 것이다.띵.23층에 도착했다.문이 열렸지만 서희는 바로 내리지 못했다.시야에 들어온 복도부터 예상과 달랐다.길게 이어진 복도도,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현관문도 없었다. 넓고 조용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현관은 단 두 개뿐이었다.2301호.2302호.정말 두 세대가 전부였다.서희는 천천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이제 호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어느 쪽이 쪼꼬가 사는 집인지 알면 됐다.서희는 먼저 2302호 쪽을 바라봤다.현관 옆 낮은 장식장 아래로 작은 강아지 산책용품이 놓여 있었다. 접힌 리드줄과 휴대용 물병이 보였고, 문 한쪽에는 작은 강아지 모양 장식까지 달려 있었다.누가 봐도 반려견을 키우는 집이었다.조금 전 여자는 자신을 강수와 사라의 옆집이라고 했다.그렇다면.서희의 시선이 천천히 반대편으로 움직였다.2301.아무 장식도 없는 단정한 현관이었다.서희의 발이 멈췄다.저기였다.강수가 숨기려 했던 주소.사라가 기다리고 있던 곳.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집.서희는 한동안 그 문을 바라보기만 했다.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는 찾기만 하면 곧바로 벨을 누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화가 났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그런데 막상 문 하나를 사이에 두자 손이 쉽게 움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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