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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Penulis: 서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22 00:23:15

강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서희가 원하는 건 주소 하나였다. 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이미 관계도 들켰고, 따로 지내는 집이 있다는 사실까지 말한 뒤였다. 그러나 그곳의 위치를 알려주는 건 강수에게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집에는 사라가 있었다.

자신이 돌아가는 곳이었고, 지난 일 년 동안 두 사람의 생활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높은 수납장 앞에서 초코볼을 내려놓으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자까지.

강수가 짧게 말했다.

“나중에.”

서희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나중에?”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소 하나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오늘은 안 돼.”

“왜?”

또 침묵이었다.

서희는 그 침묵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부터 똑같았다. 사라를 만나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고, 집을 알려달라고 하면 대답을 피했다.

자신에게서 사라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제는 감출 것도 없었다.

지키고 있는 거였다.

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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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193화

    잠시 뒤 다른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문이 열리자 서희는 망설이지 않고 올라탔다. 조금 전 멈춘 숫자를 이미 확인했으니 이제 층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23층.버튼을 누르자 문이 천천히 닫혔다.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서희는 올라가는 숫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몇 층인지조차 몰라 아래에서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제는 강수가 올라간 곳을 정확히 따라가고 있었다.10층.15층.20층.숫자가 높아질수록 심장이 빨라졌다.강수는 이미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사라가 기다리는 집에.편의점에서 사 온 딸기우유와 우유가 든 봉투를 들고, 너무나 익숙하게 현관문을 열었을 것이다.띵.23층에 도착했다.문이 열렸지만 서희는 바로 내리지 못했다.시야에 들어온 복도부터 예상과 달랐다.길게 이어진 복도도,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현관문도 없었다. 넓고 조용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현관은 단 두 개뿐이었다.2301호.2302호.정말 두 세대가 전부였다.서희는 천천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이제 호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어느 쪽이 쪼꼬가 사는 집인지 알면 됐다.서희는 먼저 2302호 쪽을 바라봤다.현관 옆 낮은 장식장 아래로 작은 강아지 산책용품이 놓여 있었다. 접힌 리드줄과 휴대용 물병이 보였고, 문 한쪽에는 작은 강아지 모양 장식까지 달려 있었다.누가 봐도 반려견을 키우는 집이었다.조금 전 여자는 자신을 강수와 사라의 옆집이라고 했다.그렇다면.서희의 시선이 천천히 반대편으로 움직였다.2301.아무 장식도 없는 단정한 현관이었다.서희의 발이 멈췄다.저기였다.강수가 숨기려 했던 주소.사라가 기다리고 있던 곳.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집.서희는 한동안 그 문을 바라보기만 했다.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는 찾기만 하면 곧바로 벨을 누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화가 났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그런데 막상 문 하나를 사이에 두자 손이 쉽게 움직이지

  • 불온한 정착   192화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서희가 공동현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안쪽을 살피고 있을 때,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문이 열리고 닫히기까지는 길어야 몇 초였다.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서희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밖으로 나오는 사람과 스치듯 지나쳐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일부러 서두르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문이 등 뒤에서 닫히고 나서야 작게 숨을 내쉬었다.로비 한쪽 벽면에 은은한 조명과 함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LE VERT르베르.서희는 그 글자를 잠깐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이제 문제는 몇 층인지였다.엘리베이터는 두 대였다.서희는 호출 버튼을 누르고 위쪽 숫자를 확인했다. 한 대는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다른 한 대는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순간 서희의 시선이 멈췄다.지하.강수의 차가 조금 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혹시.서희는 숫자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봤다.B3.B2.B1.그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서희가 돌아보자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안은 연세 지긋한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강아지는 품 안에서 얌전히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입주민인 모양이었다.여자는 서희를 한번 보고는 별다른 관심 없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서희는 다시 숫자를 봤다.곧 1층이었다.심장이 조금 빨라졌다.띵.문이 열렸다.그리고 서희의 눈이 커졌다.강수였다.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었다.서희는 생각할 틈도 없이 옆으로 몸을 피했다. 엘리베이터 정면에서 벗어나 로비 벽 뒤쪽으로 바짝 붙었다.다행히 강수의 시선은 휴대전화에 잠깐 내려가 있었다.강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게 아니었다.지하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잠시 문을 연 것이었다.그대로 타고 올라가려는 모양이었다.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반갑게 웃었다.“어머, 우리 옆집 신혼부부네 신랑이네.”강수의 시선이 들렸다.여자는 품에 안은 강아지를 한번 추켜안으며 웃었다.“퇴근하는 길이에요?”강수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네.”그게

  • 불온한 정착   191화

    몇 동인지는 알 수 있었다.강수의 차가 단지 안으로 들어간 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직전 방향을 틀었고, 서희는 멀리서 그 동의 위치를 눈으로 좇아두었다. 건물 앞에 붙은 숫자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시선을 거뒀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서희는 운전석에 앉은 채 한참 아파트 입구를 바라봤다.“어떻게 들어가지…….”세대수가 많지 않은 곳이었다.한 층에도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외부인이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차량은 입구에서부터 통제됐고 공동현관 역시 입주민이 아니면 쉽게 들어갈 수 없어 보였다.무작정 찾아가 벨을 누를 수도 없었다.몇 동인지만 알았지 몇 층인지, 몇 호인지 모른다.사라에게 전화하면 가장 간단했다.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된다.하지만 지금 전화해서 주소를 물으면 사라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조금 전 자신이 먼저 전화했다가 통화가 끊겼고, 다시 걸려온 전화도 강수가 받아 끊어버렸다.그 뒤 곧바로 집이 어디냐고 묻는 순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무엇보다 강수가 이미 도착했을 가능성이 컸다.사라에게 전화하는 순간 옆에 있는 강수가 받을 수도 있었다.그러면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끝이었다.서희는 휴대전화를 쥐었다가 내려놓았다.여기까지 왔는데.바로 눈앞에 있는데.집 하나를 찾지 못해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서희의 시선이 다시 아파트로 향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가 먼저였다. 그런데 막상 강수가 들어간 건물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떨렸다.저 안에 사라가 있다.그리고 지금은 강수도 함께 있다.두 사람이 거의 일 년 동안 자신에게 숨겨온 공간.강수가 돌아간다고 너무도 당연하게 말했던 곳.막상 그 문 앞까지 가게 된다면 자신이 무엇을 물어야 할지 서희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왜 그랬냐고?언제부터 좋아했냐고?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고?머릿속에는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그래도 만나야 했다.강수에게 들은 이야기만

  • 불온한 정착   190화

    앞서가던 검은 차가 속도를 줄였다.서희도 자연스럽게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다. 강수의 차는 청담동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더니 대로변을 벗어나 조용한 주택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익숙한 동네였다.자신도 청담동에 살고 있었으니까.하지만 이쪽으로 올 일은 거의 없었다. 높은 담장과 고급 빌라, 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들이 드문드문 자리한 조용한 구역이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차량도 많지 않았다.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서희는 거리를 조금 더 벌렸다.잠시 후 강수의 차가 한 아파트 입구 앞에서 멈췄다.서희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생각했던 것과 달랐다.사라 혼자 살 만한 작은 오피스텔도,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도 아니었다. 멀리서 봐도 규모부터 달랐다. 동마다 세대 수가 많지 않았고, 넓게 떨어진 건물 사이로 조경과 진입로가 여유롭게 펼쳐져 있었다.작은 평수가 섞여 있는 곳도 아니었다.애초에 큰 평수들만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서희의 손이 핸들 위에서 굳었다.“……여기?”강수의 차가 입구를 통과했다.외부 차량이라면 확인 절차가 필요했지만 강수의 차는 멈추지도 않았다. 차단기가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갔다.처음 오는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당연했다.강수의 집이니까.서희는 곧바로 따라붙지 못하고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정면으로 따라 들어갔다가는 방문 목적부터 확인받을 게 뻔했다.운전석에 앉은 채 아파트를 올려다봤다.사라가 살고 있다.강수가 사준 집.그리고 강수 역시 사실상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그 사실은 이미 들었다.그런데 직접 눈앞에서 보니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서희는 막연히 생각했었다.사라가 혼자 지내기 편한 집 하나를 마련해줬을 거라고. 강수에게 돈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 좋은 집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아파트 규모만 봐도 알 수 있었다.잠깐 머물라고 마련한 집이 아니었다.둘이 생활하기 위해 선택한 공간에 가까웠다.문득 강수의 말이 떠올랐다.이

  • 불온한 정착   189화

    서희는 앞차와 거리를 두었다.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신호 하나 정도를 사이에 두면서도 검은 차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강수가 뒤를 확인하면 금방 들킬 것 같아 차선을 바꾸는 것도 조심스러웠다.다행히 강수는 자신이 따라오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얼마쯤 달렸을까.앞서가던 검은 차의 방향지시등이 켜졌다.서희는 긴장하며 속도를 늦췄다.강수의 차가 도로 옆 편의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서희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운 뒤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운전석에 앉아 편의점 쪽을 바라봤다. 잠시 후 운전석 문이 열리고 강수가 내렸다.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서희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담배를 사러 들어간 건 아닐 것이다.강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그렇다면 뭔가 필요한 게 있는 모양이었다.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자동문이 열리고 강수가 나왔다.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서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봉투가 완전히 불투명하지 않아 안에 든 것들이 어렴풋이 비쳤다. 우유처럼 보이는 팩이 있었고, 강수의 다른 손에는 봉투에 미처 넣지 않은 작은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분홍색.서희의 눈이 멈췄다.딸기우유였다.너무 익숙해서 잘못 볼 수도 없었다.사라가 가장 좋아하는 것.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매점에 가면 다른 음료를 한참 구경하다가도 결국 딸기우유를 골랐고, 성인이 된 뒤에도 편의점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하나씩 집어 들었다.서희도 수도 없이 사줬었다.사라 거구나.생각보다 먼저 알았다.조금 전 강수가 받았던 전화까지 떠올랐다.사라는 강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수는 그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굳이 차를 세워 편의점에 들렀다. 그러고는 사라가 좋아하는 딸기우유와 무언가가 든 봉투를 들고 나왔다.아마 사라가 사 오라고 했을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서희의 가슴 안쪽이 이상하게 조여들었다.거창한 선물도 아니었다.꽃도, 명품도 아니었다.고작

  • 불온한 정착   188화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 강수는 곧장 청담동으로 향했다.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도 켜지 않았고, 평소처럼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앞만 봤다. 조금 전까지 서희와 마주 앉아 있었던 시간이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더는 숨길 수 없게 된 건 오히려 단순했다.서희가 알았다.자신과 사라의 관계도, 그게 작년부터 이어졌다는 것도, 따로 지내는 집이 있다는 사실까지.이제 남은 건 사라에게 말하는 일이었다.오늘 있었던 일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서희의 감정이 가장 격해진 순간에 두 사람을 마주 세울 생각도 없었다. 자신이 먼저 정리할 것이 있었고, 사라에게도 자신이 직접 말해야 했다.신호가 바뀌었다.차가 다시 움직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가 울렸다.강수는 차량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어.”[오빠, 어디야?]“가는 중.”[얼마나 걸려?]강수가 내비게이션을 한번 봤다.“십 분.”[그럼 오는 길에 편의점 들러.]“왜.”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딸기우유랑 그냥 우유 사 와.]강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둘 다?”[응.]“왜.”[딸기우유는 내가 먹을 거고.]잠시 뜸을 들인 사라가 아주 당연하게 덧붙였다.[그냥 우유는 초코볼에 타 먹게.]강수의 턱이 굳었다.며칠 전 소파에서 초코볼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쉴 새 없이 집어 먹던 사라가 떠올랐다. 절반쯤 남았을 때 겨우 빼앗아 가장 높은 수납장 안쪽에 올려놓았는데, 기어코 찾아낸 것도 모자라 이제 우유에 말아 먹겠다는 소리였다.“안 돼.”[왜?]“많이 먹었어.”[며칠 전이잖아.]“그래도.”[내 초코볼인데?]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전화기 너머로 사라가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아니,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내가 내 돈 주고 산 초코볼을 오빠가 뺏어서 내가 못 닿는 데 올려놨잖아. 이건 횡포 아니야?]“시끄러워.”[그리고 우유에 말아 먹으면 맛있어.]“안 궁금해.”[오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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