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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1)

Author: 이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6 09:30:52

“모두 아홉 명.”

이도가 종이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조선 8도의 천문 자료 조사를 위해 파견된 인원들 목록이라 했다.

“하나같이 명민하고 끈질긴 자들입니다. 영실과 제가 직접 시험하고 선발했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모두가 조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고 있을 겁니다.”

“이여립 학사가 실종되었다고 하셨지요? 그 배후에 붉빛미르가 있다 하셨고.”

장영실이 심각한 얼굴로 천우를 보며 물었다.

천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촌에서 숙식하던 관리 하나를 처리했다고 붉빛미르 본인이 직접 말하였습니다.”

“이여립……. 가장 어린 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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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빛미르   대책 (1)

    “모두 아홉 명.”이도가 종이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조선 8도의 천문 자료 조사를 위해 파견된 인원들 목록이라 했다.“하나같이 명민하고 끈질긴 자들입니다. 영실과 제가 직접 시험하고 선발했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모두가 조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고 있을 겁니다.”“이여립 학사가 실종되었다고 하셨지요? 그 배후에 붉빛미르가 있다 하셨고.”장영실이 심각한 얼굴로 천우를 보며 물었다.천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반촌에서 숙식하던 관리 하나를 처리했다고 붉빛미르 본인이 직접 말하였습니다.”“이여립……. 가장 어린 축에 속했지만 그만큼 또 재기발랄한 사람이었는데.”장영실이 종이를 들춰보며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창문 밖에서 불어 들어오던 바람이 일순간 방안을 가득 메웠다.서늘한 감촉에 압도당한 세 사람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무릎 아래만 바라보았다.온갖 천문 사료와 모형 따위가 어지러이 놓여있는 곳이었다.이도가 역법 연구를 위해 궁궐 내에 따로 마련한 공간으로, 조정신료들은 물론이고 금군에 심지어 중전조차 모르는 비밀 연구실이라고 했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도에게 선택받은 이들로, 예산 또한 내탕금(內帑金)으로 충당하여 바깥에서는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른다고 하였다.“그러니 더더욱 천문 연구를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다.”

  • 붉빛미르   별을 보는 자들 (6)

    “그럼 그렇게 하라.”이도가 선선히 대답했다.그러면서 조용히 들고 있던 물조리개를 텃밭에 뿌리는데, 숙련된 농사꾼이 하는 것마냥 고랑마다 피어있는 덩이줄기들이 골고루 젖어들었다.“전하. 정말로…….”천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별좌께서 밖에 계셔도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영실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면 나도 그 얘기를 들어야지.”이도가 허리를 펴곤 이쪽을 돌아보았다.천우도, 장영실도 그런 국왕 앞에서 공손히 허리를 수그렸다.“연구하는데 있어서는 조선 8도에서 과인보다 더 고집불통이니.”“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전하.”장영실이 웃음 띤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꼭두새벽부터 의관을 정제하자마자 바로 궁궐로 찾아왔다. 마침 이도는 손수 일구는 텃밭에 가 있는 상황이었고, 그 덕에 국왕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흔치않게도 말이다.“그나저나.”장영실이 밭고랑을 둘러싼 녹색 줄기들을 돌아바보며 운을 띄었다.“이번 농사는 어떻게 잘 되어가고 있으십니까, 전하?”“그리 신통치는 않다.”이도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그러면서 옆의 천우에게 특히 알려준다는 투로 말했

  • 붉빛미르   별을 보는 자들 (5)

    “별좌 어르신께서는.”천우가 조용히 대답했다.“이미 주상전하와 십 수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수학하고, 또 교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따위가 어찌 두 분의 고결한 사정을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너무 겸손하시군. 나는 원래 노비였다오. 주상전하께서 이 몸을 발탁하시어 나라의 일을 맡기시면서 신분도 달라졌지. 주상전하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저 어디 개골창에서 송사리나 잡고, 새끼나 꼬고 있었을 거요.”장영실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지난 나날을 회상하는 듯한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숨결이었다.“그러다 언제 한 번 고향 고을에 가뭄이 들어 논밭이 다 말라가던 차에, 강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수차(水車)를 고안해낸 적이 있었소. 덕분에 고을에서는 배불리 먹지는 못하더라도 한명도 굶어죽지는 않게 되었지. 이 일이 도성에도 보고되었고, 나는 느닷없이 조정으로 불려오게 되었소. 그게 주상전하와의 첫 만남이었소.”“실로 설화같은 이야기입니다.”“나도 그리 생각하오. 말로만 듣던 한양을 다 와보고, 주상전하를 뵙게 되다니. 이 어찌 동화 같은 일이 아니겠소?”장영실이 피식 웃어보였다.“아직도 그때 처음 전하를 뵈었던 때가 생생하오.”장영실의 눈이 반짝 빛났다.“휘황찬란한 붉은빛 용포는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걸음걸이는 실로 당차시고, 목소리 또한 우레 같으신데, 여의주를 품은 용이 아니라 여의주를 품은 범과 같은 자태셨소

  • 붉빛미르   별을 보는 자들 (4)

    축시(丑時)에 이른 시각인 듯했다.밤공기는 더욱 서늘해졌고, 저 멀리 산중턱 어디에선가 부엉이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으으……”마당에 나와있던 이포교가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바들바들 떨었다.어느새 그의 눈썹 위로 새하얀 이슬이 맺어 있었다.“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는데.”이포교가 투덜거리며 작게 하는 소리였다.천우는 그 옆에서 빙긋 미소를 지어보이곤 마당 한구석에서 하늘 올려다보고 있던 장영실 쪽으로 눈을 돌렸다.벌써 저렇게 꼼짝도 않고 보고 있는 것이 두 시진(時辰)은 지난 듯했다.별의 움직임을 살피기에는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었다.혼자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우선 옆에서 지켜보고자 따라나왔는데 이렇게 뿌리내리고 선 채로 가만히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작은 종이조각과 소필(小筆)하나만 집어 든 채로, 굳은 듯이 서 있다가 갑자기 뭔가 급히 적어내리곤 다시 하늘 올려다보고. 이런 짓을 족히 서른 번은 넘게 했다.실로 대단한 체력과 사명감이었다.잠도 자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그러니 먼저 눈 좀 붙이시라 하지 않았소.”장영실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면박을 주었다.“나는 오늘 아예 밤을 샐 작정이라 미리 말을 했거늘……”

  • 붉빛미르   별을 보는 자들 (3)

    “네?”옆에 있던 이포교가 크게 놀라 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함께 갈 수 없다니요?”“말 그대로요.”장영실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내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이해하였으나, 적어도 지금은 그대들과 함께 궁궐로 갈 수가 없소. 아니, 적어도 열흘 정도는.”“대체 왜……”“나 또한 이 자리에서 천문을 읽고 있기 때문이오.”장영실이 자기 옆의 방바닥을 주먹으로 두어번 쿵쿵- 두드렸다.“나, 그리고 두 포교께서 발붙이고 있는 이 위치. 이곳에서 나 또한 한양의 천문을 살피고 있다는 말이외다. 궁궐 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별과 달의 움직임을 보면서 말이오.”“하오나 어르신……”“10일 정도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소. 딱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이 있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적어도 수십 년간은 다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오. 나도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오. 아무리 주상전하의 어명이라 하여도……”장영실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천문이라오. 그리고 아마 그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는, 나 또한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그런 말씀 마시지요.”“천문을 살피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죽고 사는 것은 결국 하늘의 뜻에 달렸다는 것이외다.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법. 슬퍼할 일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아무튼 나는 지금 대뜸 궁궐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소. 앞으로 열흘 동안은 이곳에 죽치고 앉아 밤하늘을 계속 올려다봐야 하니.”“하오나……”“주상전하께서도 이해해주실거요. 이 하찮은 노비 따위의 목숨은 이미 주상전하께서 면천(免賤)해주신 이후로 덤으로 살고 있는 것. 죽는 것은 두렵지 않소. 내가 두려운 것은 오직 한가지 뿐이외다. 주상전하께서 바라시는 연구를 끝마치지 못하는거요. 그러니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소.”장영실이 단호하게 읊조렸다.어찌 보면 어명을 거부하겠다는 무도한 말이기도 했으나

  • 붉빛미르   별을 읽는 자들 (2)

    얘기를 다 듣고 난 장영실은 잠시 말이 없더니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어디에 보관해두었을지 모를 술병 셋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받으시오.”장영실이 술병 2개를 천우와 이포교에게로 건넸다.병 주둥아리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물씬 풍겼다.꿀꺽-장영실은 사양하는 기색도 없이 대뜸 술병을 기울여 연거푸 들이켰다.턱 아래로 맑은 액체가 줄줄- 흐르는데, 그 광경 앞에서 천우와 이포교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휴우……”장영실이 술병을 깨질 듯이 쾅-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러오. 시원한 물이라도 들이켜야 될 것 같더군.”장영실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미르라니…… 그런 것이 실존하다니…… 이 조선 땅에 오래 전부터 살아왔고 물과 불을 다스리는 영물이라니…… 어떻게 그런……”“별좌께서 혼란스럽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이포교가 중얼거렸다.“저 또한 미르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주상전하께서 직접 말씀하셔도 저한테 농을 던지시나…… 그리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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