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백설공주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질투와 악의 이름으로만 남았던 왕비. 디즈니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도 그녀는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돌에 깔린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 노파의 몸으로 숨이 막혀가던 그녀가 떠올린 것은 증오도, 저주도 아니었다. 아직 왕비가 아니었고, 아름다움으로 평가받지 않던 시절. 귀족 가문의 하녀로 살아가며 순종과 인내만을 배워야 했던 이름 있는 한 소녀의 기억이었다. 아름다워야 했던 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 요구였고, 조건이었고, 끝내 벗어날 수 없는 규칙이었다. 이 이야기는 '가장 아름다워야 했기에'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의 마지막 회상이다.
View More주요 등장인물 소개
그림 하일드 : 고아원 출신의 귀족가 하녀, 훗날 사악한 왕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온 소녀. 고아원에서는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부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웠다. 쓸모 없는 아이는 남겨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항상 마지막에 손을 내밀었고, 항상 조용히 있었고, 항상 문제되지 않는 존재로 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귀족가에 들어온 뒤, 그 규칙은 더 정교해진다. 틀리지 않는 법. 말보다 먼저 표정을 읽는 법. 상대의 기분을 어긋나지 않게 맞추는 법. 이곳에서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세상은선택의 공간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림 하일드는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것. 생각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워내는 것. 욕망은 애초에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그렇게 살아온 그녀에게 엘로이즈의 곁은 처음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명령이 아닌 말. 평가가 아닌 시선.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는 태도. 하지만 그 경험은 그녀를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순간, 그녀의 방식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감정을 버려야 했던 아이가 이제는 감정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자신이 아니라 중요한 누군가를 향해. 그녀는 점점 누군가를 대신하는 존재가 되고,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틀리지 않기 위해 시작한 삶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로 이어지고, 그 끝에서 그녀는 되찾는 대신 완전히 지워버리는 쪽을 택한다. 이름. 감정. 선택. 모든 것이 바뀐 뒤에 남는 건 단 하나. 살아남은 결과. 그리고 그 결과로 존재하는 사람. 훗날, 그녀는 더 이상 그림 하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그림자였던 아이는 스스로 하나의 중심이 되고,그 자리에 서기 위해 수많은 것을 밀어낸 끝에, 동화 속에서 가장 잔혹하게 기억될 존재, 사악한 왕비로 남게 된다. 엘로이즈 드 로베르 : 궁정 대신의 딸, 완벽하게 길들여진 귀족 영애, 왕비가 될 수도 있었던 소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자리에 놓인 아이. 좋은 가문, 완벽한 교육, 흠집 없는 태도. 그녀의 삶은 선택이 아니라 배치였다.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어떻게 침묵해야 하는지까지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고, 말은 표현이 아니라 상대를 조율하는 도구였다. 엘로이즈에게 세상은 단순했다. 모든 것은 질서와 위치로 나뉘어 있었고, 사람은 그 자리에 맞게 존재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그날 전까지는. 동생의 죽음. 우연이라 불린 사고, 그러나 끝내 지워지지 않는 기억. 자신이 살아남았고, 동생이 대신 죽었다는 사실. 그날 이후, 엘로이즈는 무너지지 않았다. 더 완벽해졌을 뿐이다. 감정은 더 깊이 숨겨졌고, 표정은 더 단정해졌으며, 실수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깨달았다. 흔들리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밀려난다는 걸. 그래서 그녀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대신, 모든 것을 통제한다. 자신의 말,자신의 표정, 자신의 곁에 두는 사람까지. 그림 하일드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아이. 자신을 지우는 데 익숙한 아이. 그건 연약한 것이 아니라 형태가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가장 다루기 쉽다. 그래서 그녀는 그 아이를 곁에 둔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깊이. 자신의 세계 안으로. 그녀는 믿는다. 운이 아니라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고. 그리고 그 습관은 길들일 수 있다고. 훗날, 그녀는 왕비가 되지 못한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저녁빛이 그녀의 얼굴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흔들리던 커튼 끝이 천천히 가라앉고, 방 안에는 아주 옅은 바람 소리만 남았다.엘로이즈는 아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오래전의 햇빛이 다시 떠올랐다.몇 년 전.드 로베르 저택의 정원.햇빛이 눈부시게 맑던 오후였다. 테라스 한쪽에는 작은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식어가는 차와 펼쳐진 책 한 권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엘로이즈는 테라스 의자 위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세는 이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을 곧게 세운 채,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조차 조용했다.정원에는 바람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때,"언니이이!!"멀리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엘로이즈의 눈썹이 움직였다. 곧이어 작은 발소리가 잔디를 가로질러 빠르게 가까워졌다.타다닥. 그리고 다음 순간,"언니!! 이것 좀 봐!!"클레르가 그대로 테라스까지 뛰어 올라왔다.엘로이즈는 책에서 눈을 들었다. 잠시 말이 없었다."...클레르."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드레스. 연한 크림빛 드레스 자락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치맛단은 흙투성이였고, 소매 끝에도 풀잎이 엉겨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에도 작은 잎사귀 하나가 걸려 있었다.엘로이즈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이미 익숙하다는 듯한 체념이 묻어 있었다. 클레르는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나 후레지아 꺾어왔어!"그녀가 양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번쩍 들어 보였다. 노란 후레지아 꽃들.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클레르의 눈도 그 꽃만큼 반짝이고 있었다."엄청 예쁘지?!"엘로이즈는 꽃다발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너 또 정원사 아저씨 몰래 꺾어온 거야?"클레르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아닌데?"대답이 너무 빨랐다. 엘로이즈는 가만히 그녀를
살롱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는 것 같았다. 엘로이즈는 그림 하일드의 손을 천천히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아주 낮게 울렸다.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 있었다. 단정하고, 우아하고, 흐트러짐없는 미소. 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아까와 달랐다.엘로이즈는 천천히 이네스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급하지도 않았고, 화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더 숨 막히는 걸음.엘로이즈는 이네스의 앞에 멈춰 섰다.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하인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이 넘치시는 우리 영애께서..."말은 웃으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끝음은 아주 얇게 차가웠다."왜 제 하녀에게 사과하라는 말에는 그렇게 당황하시는 걸까요?"이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엘로이즈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주 조용히 웃었다."아, 아니에요."그녀는 손끝으로 자기 드레스 소매를 아주 가볍게 정리했다."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부드러운 말투.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서늘했다."하인, 평민들을 향한 영애의 사랑은 이미 유명하니까요."엘로이즈는천천히 이어갔다."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신다는 얘기는 저도 자주 들었습니다."살롱 안 공기가 순간 흔들렸다. 다른 영애들의 시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이네스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엘로이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이번 달만해도... 일자리 없는 평민들을 위해 직접 하인들을 3명이나 들이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다 남자로요."순간. 이네스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귀 끝이 먼저 붉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 위로 열이 번졌다.살롱 안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다른 영애들도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인을 들였다.'귀족 사회에서는 때때로 다른 뜻으로도 쓰이는 말.특히 젊은 남자
살롱 안에는 은은한 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도 지나치게 커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귀족 영애들의 다과 시간. 하지만 왕의 양쪽 팔이라 불리는 두 가문의 외동딸이 마주 앉아 있는 이상, 이 자리는 단 한 번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적이 없었다.엘로이즈 드 로베르. 그리고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 이네스 드 몽브랑.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언제나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얇은 칼날 같은 긴장이 숨어 있었다.그래서인지 같이 차를 마시러 온 다른 영애들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찻잔을 괜히 더 천천히 들었고, 누군가는 시선을 애매하게 창밖으로 돌렸다.한 영애가 아주 작게 한숨을 삼켰다.또 시작이구나.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을 쥔 손끝에 들어간 힘만이 보이지 않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유지된, 그러나 완벽하게 흐트러지지 않은 미소였다."...글쎄요..."엘로이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렇게까지는..."말끝은 부드러웠다.하지만 이네스는 그 틈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제가 영애였어도... 저 아이에게 잘해줬을지도 모르겠어요..."이네스는 천천히 이어갔다."아무리 고아원 출신의 하녀라지만... 동생분과 얼굴이 닮았다면..."이네스의 눈이 조금 휘어졌다."돌아가신 동생에게 속죄한다는 생각으로... 저 아이에게 잘해주시는 것도 이해가 되거든요."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다.다른 영애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네...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겠죠."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
저택 안.문이 열리자, 바깥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밀려왔다. 조용하고, 정돈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유지된 공간.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뒤를 귀족 부인이 따랐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림 하일드가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덜컥. 소리와 함께, 바깥의 일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인들은 멀리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복도는 여전히 정숙했다.귀족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엘로이즈."부드러운 목소리였다.엘로이즈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네, 어머니."짧은 대답.부인은 그녀를 한 번 더 살폈다. 얼굴. 숨. 걸음. 그리고 묘지에서의 일. 사과나무. 떨어진 가지.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부인의 손이 아주 가볍게, 엘로이즈의 어깨에 닿았다."괜찮니."짧은 질문. 하지만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약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단정했다.부인은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많이 놀랐을 텐데."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여전히 부드럽게, 하지만 조금 더 낮게."들어가서 쉬렴."그 말은 배려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결정이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 번도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엘로이즈의 걸음이 방향을 틀자마자— 한 발 먼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뒤로 붙었다. 반 걸음. 항상 유지하던 그 거리. 숨도, 발걸음도 맞춘 채— 조용히 그대로 따라갔다.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다. 묻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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