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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속삭임 (2)

Penulis: 이온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06 09:10:19

어리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더 이상 미르가 필요 없음을 천지신명께 증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순차적으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그 작업은 행해지고 있지요. 착실하게.”

“그게 무슨……”

“사람들도 애초부터 우리를 노리고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벌이는 일이 우연찮게도 미르를 몰아내는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지요.”

“무슨 일입니까, 그게? 정확히 말 좀 해주시오!”

천우가 답답한 심정에 목소리를 크게 냈다.

엄청난 고함소리였다.

미르의 그것과도 같았다.

산 전체가 우르릉- 울리는 듯했다.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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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빛미르   불의 속삭임 (3)

    “뭐라 하셨소?”천우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반촌에 있던 관리를 없앴다? 내가 맞게 들은거요?”“네. 조선 땅의 역법을 연구하던 관리였습니다. 강원도 산속에 들어가 일몰, 일출 시각을 적어서 정리하고 있더군요. 그러다 한양에 자료를 제출하러 돌아왔고.”어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모골이 송연해진 천우가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없앴다는 말은… 설마 살해했다는 뜻입니까?”“……”“대답해보시오.”천우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재촉했다.눈앞에 서 있는 여인이 무자비한 살인귀가 아니기를 바랐다. 그 순간만큼은.“그저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치운 것뿐입니다.”어리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그 관리가……”천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반촌에서 실종되었다는 그 사람입니까? 오늘 오며가며 얘기 들었던 그 사람?”“네. 포청에서 이미 살피고 갔다는 그 사람입니다.”“포교 앞에서 자기가 관리를 죽여 없앴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구려. 낭자께서는.”“그 자의 역법 연구가 미르의 생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니까요.”“역법을 공부한다고 해서 미르가 소멸한다는 것을 어찌 증명할 수 있단 말이오?”“증거는 필요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신명의 뜻에 따라…”“설령 천지신명께서 그리 정해놓았다고 해도, 당신이나 나나 그것을 거스르려 사람 명줄을 해할 권리는 없소. 오늘 불타버렸던 반촌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죄 없는 그 관리도.”천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어리는 그 앞에서 한쪽 눈살을 찌푸린 채로 듣고 있었다.“사람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소.”천우는 믿고 있는 바를 그대로 쏟아냈다.“그리고 나는 낭자가 이번 일의 범인이라 자백한 이상,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거요. 포교로서, 그리고 또 자식으로서 낭자는 내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소. 내가 사랑하는 분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갈라놓았소. 난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물빛미르이니 숙적인 붉빛미르를 막아내겠다

  • 붉빛미르   불의 속삭임 (2)

    어리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더 이상 미르가 필요 없음을 천지신명께 증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순차적으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그 작업은 행해지고 있지요. 착실하게.”“그게 무슨……”“사람들도 애초부터 우리를 노리고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벌이는 일이 우연찮게도 미르를 몰아내는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지요.”“무슨 일입니까, 그게? 정확히 말 좀 해주시오!”천우가 답답한 심정에 목소리를 크게 냈다.엄청난 고함소리였다.미르의 그것과도 같았다.산 전체가 우르릉- 울리는 듯했다. 나뭇잎 우수수 흩날리던 소리가 끓어올랐다가 다시 잠잠해졌다.“제 짐작에는.”어리가 진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다 말했다.천우의, 미르의 면모를 보아서 그런 것일까? 얼굴에 은근한 미소와 어려 있었다.“사람들 더 이상 미르의 권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붉빛미르에게는 더 이상 무찌를 적이 없고. 물빛미르에게는……”“돌보아야 할 것이 없다?”“물빛미르는 올바른 곳에 물과 비를 내려 농사지을 땅을 융성케 하고, 풍성한 소출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용. 즉, 이 땅의 천문(天文)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이로울 수 있게 보조해주는 것이지요. 비와 물에 젖은 땅에서 자라난 곡식으로 모두가 먹고 사니까.”&l

  • 붉빛미르   불의 속삭임 (1)

    일순간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흘렀다.바람조차 놀란 것인지 밤중의 산속임에도 나뭇잎 하나 흔들리는 소리 하나 들리질 않았다. 세상 만물이 모두 이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그, 그게……”천우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시오?”“지금 이 조선 땅.”어리가 발을 들어 딛고 서 있던 바닥을 쾅쾅 구르며 말했다.“이 조선 땅에서, 물빛께서 고향이라고 여기시는 이 땅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심상찮은 일?”“우리 두 미르의 생존을 담보로 하는 일이겠지요. 이미 시작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생명과 권능을 좀먹어가고 있습니다.”“그게 무슨……”“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입니다.”“말도 안 되오.”천우가 딱 잘라 말했다.“나조차도 미르라는 짐승이 실존하는 것을 알지도, 실감하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없앤다니? 그게 가능하단 말씀이오?”“그러합니다.”“당최 뭘 어떻게 한다는 얘기입니까? 창칼을 들어 미르를 사냥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오?”“창이나 칼, 화살 따위로는 우리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보시지 않았습니까?”

  • 붉빛미르   두 미르의 재회 (7)

    “무엄하오.”천우가 지친 와중에도 주의를 주었다.“왕을 바꾸다니. 그리고 그것이 하찮다니. 백성으로서 품을 수 없는 참람한 사상이오.”“백성으로서?”어리가 되물었다.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천우를 노려보는 것이 조금 발끈한 것 같기도 했다.“물빛께서는 진정으로 당신이 이 땅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당연한 것 아니오?”천우가 콧김을 뿜었다.“이 땅에서 나는 작물을 먹고, 이 땅에서 통하는 언어를 말하고, 이 땅에서 보내는 시간을 누리고 있소이다. 또한 이 땅에서 만난 사람들과 웃고 울며 살아왔소. 그것이 이 땅의 백성이 분명하다는 증좌(證左)가 아니오?”“사람들과 웃고 울며 살아왔다. 그것이 증거라는 말씀이십니까?”“그렇소.”“사람이 아닌, 미르의 몸인데도 진정 그리 생각하십니까?”“나는 아직도 내가 물빛미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천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일평생을 팔다리가 달린 사람으로 살아왔소.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너는 미르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어쩌라는 것입니까? 솔직히 처음 주상전하께 미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주상전하라.”어리가 피식 웃으며 말허리를 잘랐다.

  • 붉빛미르   두 미르의 재회 (6)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불과 물의 미르가 어쩌고, 사람의 몸으로 환생을 했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며 당장 관가를 찾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그러나 불을 다루는 사람이 있고, 물을 다루던 자신을 압도하였으며 주상전하로부터 미르가 실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그리고 본인을 붉빛미르. 붉은색 빛깔을 띈 용이라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더 이상 의심할 수 있을 리 없었다.나는 물빛미르고.너는 붉빛미르다.“용이라는 것은 본디 그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짐승이다……”천우는 지난번 주상전하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가만히 읊조리며 눈앞의 어리를 가만히 쳐다봤다.어폐가 있는 것이, 눈앞의 여인은 용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눈썹 긴 두 눈과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 가느다란 목, 달덩이 같은 얼굴…… 이게 그냥 사람이지, 어찌 흉악한 미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미르에 대해 나름 알고 계시는 듯합니다.”어리가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불빛에 비친 눈망울에 날카로운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아니면. 누구한테서 들었다거나.”“……”“물빛께 미르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까? 누구입니까?”“대답하지 않을 것이오.”천우가 단호

  • 붉빛미르   두 미르의 재회 (5)

    “으음……”천우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상자 안에 넣고 마구 흔들어진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머리는 지끈거리고,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으며 속도 울렁거렸다.무엇보다,일어설 마음이 들지 않았다.너무나도 지쳐버린 탓인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감각의 통제력을 상실한 듯한 기분이었다.‘여기는……’천우는 바닥에 늘어붙은 듯한 느낌을 억지로 젖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실내에 들어와 있는듯 어두컴컴했고,약간 물에 젖은 흙냄새가 났다.바닥이 차갑고 등도 젖어 있었는데,천우는 지금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혼절해 있던 참이었다.진흙을 발라 세운 벽 안쪽에서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어디지?여기가……’당최 어디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인지가 되질 않았다.끼익-앞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들어보니,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사람?사람이 맞는 듯했다.팍-일순간 한덩이의 불길이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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