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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괴물, 영웅이 되다 2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8 16:09:02

그때, 바닥에 엎드려 있던 최가가 눈치를 보며 끼어들었다.

​"저, 저기... 대장님..."

​"뭐야. 아직도 안 갔냐?"

​내가 인상을 쓰자 최가가 바닥에 머리를 쾅 박았다.

​"형님! 아니, 대장님! 저희를 받아주십쇼!"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똥을 푸라면 풀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겠습니다!"

​뒤에 있던 빚쟁이 놈들도 덩달아 절을 했다.

​"저희도 받아주십쇼! 어제는 저희가 눈깔이 삐었었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놈들을 내려다보았다. 한심한 작태였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들.

​내치려 했다. 이런 놈들을 데리고 있어 봤자 밥만 축낼 게 뻔하니까.

​하지만 서백설이 내 팔을 툭 쳤다.

​"일손 필요하지 않아요?"

​"일손?"

​"저 큰 걸 누가 해체해요? 당신이 할 거예요? 아님 내가 해요?"

​아.

맞다. 도축.

​호랑이는 잡는 것도 일이지만, 해체하는 건 더 큰일이다.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내고, 뼈를 추려내야 한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서백설이 턱짓으로 놈들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 원래 백정 출신 왈패들이에요. 칼 쓰는 건 기가 막히죠. 마침 제 발로 기어 들어왔으니 부려먹으면 딱이겠는데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공짜 인력을 발견한 악덕 고용주의 눈빛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이 여자는 물건이다.

​"야, 니들."

​내가 부르자 놈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살고 싶다고 했지?"

​"네! 무조건 충성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밥값은 해야지."

​나는 호랑이를 발로 툭 찼다.

​"지금 당장 이거 작업해. 가죽 벗기고 고기 분류하고. 털 하나라도 상하게 하면..."

​나는 옆에 있던 장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가볍게 으스러뜨렸다.

​빠직.

​"니들 뼈도 이렇게 분리될 줄 알아.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놈들은 군말 없이 품에서 칼을 꺼내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내 주먹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눈치였다.

​최가가 능숙하게 칼을 놀렸다. 가죽과 살이 매끄럽게 분리되었다. 역시 전직 백정답게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마을 사람들이 담장 너머로 구경을 했다.

​"우와, 저 고기 좀 봐."

"호랑이 고기를 먹으면 힘이 솟는다던데."

​사람들의 눈빛에 탐욕과 동경이 서려 있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서백설이 내어준 시원한 식혜를 들이켰다.

​"밑천은 이걸로 됐고. 이제 다음 단계네."

​"다음 단계요?"

​서백설이 장부를 정리하다 말고 물었다.

​"재물만 있다고 전쟁을 막을 순 없잖아. 사람이 있어야지."

​나는 대문 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마당에 들어와 호랑이를 해체하고 있는 최가 패거리 외에도, 소문을 듣고 몰려온 동네 장정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힘 좀 쓴다는 짐꾼, 할 일 없는 건달, 심지어는 옆 마을 청년들까지.

​그들의 눈빛은 뜨거웠다.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은 괴물 밑에 줄을 서면, 적어도 굶어 죽거나 맞아 죽지는 않을 거라는 본능적인 판단.

​"당신, 아주 구름 같은 추종자들을 몰고 다니네요."

​서백설이 킥킥거렸다.

​"저 사람들 다 먹여 살릴 수 있겠어요? 식비가 장난 아닐 텐데."

​"걱정 마. 밥값은 하게 만들 거니까."

​나는 빈 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구경만 하지 말고 들어와!"

​내 고함에 밖에서 눈치만 보던 사내들까지 우르르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당이 꽉 찼다. 대충 세어봐도 서른 명은 넘어 보였다.

​개중에는 꽤 쓸만해 보이는 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합지졸이었다. 배만 나온 놈, 비쩍 마른 놈, 눈치만 보는 놈.

​하지만 상관없다.

재료가 안 좋으면 요리법으로 커버하면 된다. 나에게는 21세기 대한민국 육군이 남겨준 위대한 유산이 있지 않은가.

​한 사내가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왔다.

​"형님! 제자로 받아주십쇼! 저도 호랑이 잡는 무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제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무협지 찍냐? 나는 제자 같은 거 안 키워."

​사내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대신."

​나는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군대(軍隊)를 키울 거다."

​"구, 군대요?"

​"그래. 너희들을 인간 병기로 만들어주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관군도 아닌데 군대를 만든다니. 자칫하면 역모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내 눈빛이 너무나 진지해서,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1년 뒤면 왜놈들이 쳐들어온다. 그때가 되면 너희 처자식, 부모 형제 다 죽어 나갈 거야. 관군? 그놈들은 도망치기 바쁠 거고."

​나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살고 싶으면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내가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주마. 호랑이도 때려잡고, 왜놈들 목도 벨 수 있게."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거절이 아니었다. 피 끓는 사내들의 가슴에 불이 붙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결정타를 날렸다.

​"오늘 저녁은 호랑이 고기 국밥이다. 배 터지게 먹게 해 주지."

​"와아아아!"

​함성이 터졌다.

이념이고 나발이고, 당장의 고기반찬이 더 중요한 법이다.

​최가가 피 묻은 칼을 든 채 벌떡 일어났다.

​"대장님! 평생 따르겠습니다! 충성!"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어설픈 거수경례를 했다. 나머지 놈들도 따라 했다. 엉망진창이었다.

​서백설이 옆에서 혀를 찼다.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네요. 근데 저 밥값, 진짜 다 낼 거예요?"

​"투자라고 생각해. 나중에 저놈들이 다 재산을 불려 줄 거야."

​나는 마당 가득한 사내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것이 시작이다.

조선의 역사를 바꿀 사설 부대, '익호군(翼虎軍 - 날개 달린 호랑이 부대)'의 전설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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