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대단하네. 이걸 다 정리했어?""정보가 곧 돈이고 힘이니까요. 아, 그리고 이거."미령이가 별도로 분류된 서류 뭉치를 가리켰다."명나라 장수들 뒷조사한 거예요. 특히 감군(監軍)으로 오는 양방형이란 놈, 아주 구린내가 진동하더라고요.""오, 준비성 철저하네."[역할 분담]서백설: 돈줄, 외실 (상무).주홍련: 가사, 내실 (전무).미령: 첩보, 정보 (정보국장).완벽했다.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의병 부대가 아니었다.조선이라는 난세의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항공모함이었다."좋아. 그럼 이제 사업 확장을 해볼까."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가 지도를 펼쳤다."본점은 여기 담양. 하지만 물건을 팔려면 시장이 넓어야지."나는 붓을 들어 지도 위에 점을 찍었다."진주, 나주. 여기에 지점을 낸다.""지점이요?""어. 진주는 이번 전투로 폐허가 돼서 재건 수요가 넘쳐날 거야. 나주는 서해안 물류의 중심이고. 이 두 곳에 익호 상단의 깃발을 꽂으면, 남부 지방의 상권은 우리 손바닥 안이야."서백설의 눈이 반짝였다."역시 대장님. 배포가 다르네요. 안 그래도 진주성 복구 사업 때문에 목재랑 석재 값이 뛸 조짐이 보이는데, 우리가 미리 선점하면...""돈은 네가 알아서 벌어. 나는 힘을 보태줄 테니. 관아 놈들이 시비 걸면 내 이름 대고.""알겠어요. 아주 뼛골까지 빼먹어 주죠."서백설이 장부를 챙겨 들고 씩씩하게 나갔다. 뒷모습에서 돈 냄새가 났다.나는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곳에서는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하고 있었다.쾅! 쾅! 쾅!나대용 형씨가 웃통을 벗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그의 앞에는 현무 4호기가 해체된 채 누워 있었다."형씨! 뭐 하십니까? 멀쩡한 걸 왜 뜯어놨어요?""아, 대장! 왔소?"나대용이 땀을 닦으며 고글을 벗었다."이번 진주성 전투에서 자료를 좀 얻었소. 현무가 평지에서는 무적이지만, 시체 더미를 넘거나 진흙탕에서는 바퀴가 헛도는 문제가 있더구먼
돈 썩는 냄새가 났다.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진짜로 쌀과 비단 등이 창고에 너무 많이 쌓여서 습기를 머금고 곰팡이가 필 지경이었다."대장님! 3번 창고 꽉 찼습니다! 더 이상 넣을 데가 없습니다요!"망루에서 내려온 춘식이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그는 꼼꼼한 성격 덕분에 창고 재고 파악이나 순찰 업무에는 도가 터 있었다.담양 객주 뒷마당. 원래는 연병장으로 쓰던 넓은 공터가 이제는 거대한 물류 센터가 되어 있었다. 진주성 전투에서 노획한 군량미 5만 석, 왜군이 호남 진출을 위해 비축해뒀던 은자 궤짝, 그리고 각종 무기류와 명나라 상인들에게서 뺏은 비단들까지.이걸 다 현물로 환산하면, 아마 지금의 조선 조정 1년 예산보다 많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나라를 구했더니, 덤으로 재벌이 되어 돌아왔다."마당에 천막이라도 쳐서 쌓아라. 비 맞으면 썩는다."나는 툇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지시했다.옆에서는 서백설이 산가지(계산 막대)를 튕기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타닥, 탁.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쌀 5만 석... 호남 지역 1년 치 세곡이랑 맞먹네요. 이걸 지금 시장에 한꺼번에 풀면 쌀값이 똥값이 될 테고... 조금씩 풀어서 가격 방어를 해야겠어요."그녀는 중얼거리며 장부에 붓을 놀렸다."그리고 일본도랑 조총. 상태 좋은 건 최가 부장한테 넘겨서 익호군 무장시키고, 나머지는 녹여서 농기구로 만들면... 내년 봄까지 임대 수익만 은자 3천 냥 예상."그녀의 눈동자가 엽전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다. 전쟁통에 다들 죽네 사네 하는데 혼자만 딴세상에 사는 여자였다."서 행수. 돈 세다가 날 새겠다.""새도 좋아요. 이게 다 우리 피땀 눈물인데. 아, 그리고 대장님. 결재해 주세요."서백설이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이게 뭔데?""조직 개편안이요. 이제 구멍가게 수준이 아니잖아요. 체계적으로 굴러가려면 부서를 나눠야죠. 저 혼자 다 하려니 머리가
한양, 경복궁(은 불타서 없고 임시 행궁).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선조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그의 손에는 진주성에서 올라온 장계가 구겨진 채 들려 있었다.[익호장군 김덕령, 왜군 10만 대파. 적장 가토와 고니시 패주. 호남 방어 성공.]보통의 왕이라면 춤을 추며 기뻐했을 소식이다.하지만 선조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10만... 10만을 막았다고? 고작 의병 나부랭이가?"선조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관군도 못 막은 걸, 명나라 군대도 무서워서 도망친 걸, 그놈 혼자서 막았단 말이냐? 그게...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냐?"그의 머릿속에서 김덕령은 더 이상 충신이 아니었다.왕보다 더한 권위를 가진,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었다.백성들이 왕인 자신보다 김덕령을 더 따르고 칭송한다는 보고가 비수처럼 꽂혔다."전하, 진정하시옵소서."도승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선조는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느냐! 그, 그놈은 칼도 안 들어가고 힘은 산을 뽑는다지 않느냐! 저놈이 마음만 먹으면... 한양으로 쳐들어오는 건 일도 아닐 게다!"의심병.임진왜란 내내 이순신을 괴롭혔던 그 지독한 의심병이, 이번엔 김덕령을 향해 발작하고 있었다."잡아들여야 한다.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해."선조의 눈에 광기가 서렸다."금부도사를 보내라! 아니, 암행어사를 보내! 그놈의 뒤를 캐서 털끝만한 죄라도 나오면 당장 잡아들이라고 해!""전하!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그때, 밖에서 류성룡이 들어왔다. 비에 젖은 관복을 입은 채였다."영상! 경도 들었지 않소! 그놈이 사병을 3천이나 거느리고 왕 노릇을 하고 있다오!""전하. 김덕령은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지금 그를 건드리면 민심이 요동칩니다. 호남의 백성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류성룡이 엎드려 읍소했다.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김덕령을 치는 건, 벌집을 건드리
1593년 7월.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담양으로 들어오는 길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오신다! 장군님이 오신다!"망루에서 보초를 서던 이가 목청껏 소리쳤다.그 외침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빗속을 뚫고 꽹과리와 징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저 멀리, 빗줄기 사이로 거대한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선두에는 붉은 누빔옷을 입고 흑단목 방망이를 찬 거구의 사내가, 그 뒤로는 위풍당당한 현무 6대와 3,000명의 익호군이 따르고 있었다.나였다.진주성에서 10만 대군을 갈아마시고 돌아온, 조선의 적귀(赤鬼)."만세! 김덕령 장군 만세!""우리 아들 살아서 왔구나!"비에 젖은 백성들이 진흙탕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그들의 눈빛은 단순한 존경을 넘어, 마치 구세주를 영접하는 광신도에 가까웠다.마을 어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마을 사람들의 입담이 빠질 수 없었다."워메, 저 기세 좀 보소. 10만 대군을 혼자서 다 때려잡고 오셨다는데,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지 않소? 저게 사람이야, 신령이야?"마을 사람이 침을 튀기며 감탄하자, 옆에 있던 아낙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맞장구를 쳤다."그것뿐인가! 내 듣자 하니 장군님이 소리 한 번 지르니까 왜놈들 수만 명이 오줌을 지리고 기절했다드라! 그리고 장군님이 휘두르는 저 검은 방망이에 맞으면 뼈도 못 추리고 가루가 된다던데?"구석에서 곰방대를 빨던 촌로 하나가 혀를 끌끌 차며 끼어들었다."어허, 이 사람들이 겉만 보고 속은 모르네. 그게 다 장군님 양기(陽氣)가 하늘을 찌를 듯해서 그런 거여. 내가 저번에 공용 뒷간에서 볼일 보시는 걸 옆 칸에서 슬쩍 봤는데... 어우야. 오줌발이 어찌나 센지 뒷간 항아리가 깨지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 다리 사이에 달린 거시기가 전쟁터에서 기를 받았는지 더 묵직해졌드라! 아주 흉기여, 흉기! 저런 대포를 달고 있으니 왜놈 기집애들도 다리가 풀려서 꼼짝 못 하는 거제.""......!!"현무 위에
진주성 관아 앞.나는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논개가 헝클어진 머리와 피 묻은 옷차림으로 관아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나으리! 접니다! 주 씨입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잠시 후, 문이 열리고 최경회 현감의 친척들과 하인들이 나왔다.논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싸늘했다."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오느냐?"집안의 어른으로 보이는 노인이 호통을 쳤다."아버님...""시끄럽다! 왜놈들 술판에 제 발로 들어간 년이, 무슨 낯짝으로 살아 돌아와? 정절을 잃은 계집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어, 억울합니다! 저는 몸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그걸 누가 믿느냐! 왜놈들 틈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멀쩡하다고? 네가 정녕 가문을 생각한다면 혀를 깨물고 죽었어야지! 살아 돌아온 게 치욕이다!"노인이 소금을 뿌렸다.하인들이 달려들어 논개를 밀쳤다."나가라! 왜장과 투신하여 조선의 의기(義妓)를 세웠다 생각할 것이니, 썩 나가거라. 이름을 버리고 살아라. 본처도 아닌 것이. 에잉, 쯧쯧. 화냥년은 필요 없다!"논개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믿었던 가족,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가문. 그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그녀는 멍하니 닫힌 대문을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그녀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터벅, 터벅.그녀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논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붉은 누빔옷을 입은 거구의 사내. 김덕령이었다."말했잖습니까. 후회할 거라고."나는 쭈그리고 앉아 그녀와 눈을 맞췄다.동정도, 조롱도 없었다. 그저 덤덤한 눈빛."세상은 당신 같은 여인을 감당할 그릇이 못 됩니다. 정절이니 열녀니 하는 껍데기만 찾지, 그 안에 담긴 진짜 용기는 볼 줄 모르니까요."논개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냈다."저는...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차라리 죽겠습니다...""죽긴 왜 죽습니까? 당신을 버린 놈들 보
논개가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이건... 사람인가 곰인가? 아니면 산신령인가?' 하는 눈빛이었다."언니, 비켜 봐. 이 오빠는 내 취향이야. 크기가 딱 맞잖아."나는 게야무라 앞으로 걸어갔다.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마루가 찌지직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오, 오지 마라! 저리 가! 에이, 퉤! 재수 없게!"게야무라가 침을 뱉으며 칼을 뽑으려 했다.나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열 손가락에 끼워진 투박한 무쇠 가락지가 달빛을 받아 살벌하게 번뜩였다.우두둑. 우드득.나는 깍지를 끼고 손가락을 풀었다. 뼈 부딪히는 소리가 쇠파이프 구부리는 소리처럼 났다."오빠. 내 이름이 왜 번개인 줄 알아?"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쇠 가락지가 너클처럼 도드라졌다."내 손에 한 방 처맞으면, 대가리가 번개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번개야.""히, 히익!""오빠도 느껴볼래? 거기 딱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해줄께."나는 도약했다. 치맛자락이 휘날리며 내 튼실한 허벅지 근육을 드러냈다."뿌잉뿌잉이다! 이 새끼야!"콰아앙!내 오른 주먹이 게야무라의 안면을 강타했다.퍼억!둔탁한 타격음이 아니었다. 맷돌로 옥수수를 가는 소리였다.무쇠 가락지의 위력은 절륜했다. 게야무라의 앞니, 송곳니, 어금니가 팝콘처럼 허공으로 흩뿌려졌다."끄아아악!"게야무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나는 놈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어머, 오빠. 벌써 누우면 어떡해. 우리 춤춰야지."나는 쓰러진 놈의 허리춤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100kg이 넘는 거구였지만, 내겐 솜인형이었다.나는 놈을 내 가슴 쪽으로 꽉 끌어안았다.놈의 몸뚱이가 종이인형 마냥 흔들거렸다."우쭈쭈, 우리 오빠. 너무 신이 나서 춤이 절로 나오나 봐? 막 신나?""아악! 사, 살려줘! 허리! 내 허리!"게야무라가 발버둥 쳤지만, 내 팔은 쇠사슬보다 단단했다.나는 양손 깍지(쇠가락지 포박술)를 끼고 놈의 허리를 짓눌렀다.백브레이커(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