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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꼰대와 괴물 1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30 20:24:00

​"밀어! 바퀴 빠졌다!"

​진흙탕에 빠진 현무 2호기를 꺼내느라 익호군 녀석들이 끙끙거렸다.

​이치 고개에서 금산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산 넘고 물 건너는 강행군. 전투 직후라 다들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쉴 틈이 없었다.

​나대용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바퀴 축을 살폈다.

​"대장, 무리요. 현무들이 한계에 다다랐소. 바퀴 살이 휘고 축이 틀어져서, 이 속도로는 금산까지 하루 꼬박 걸릴 거요."

​"하루면 늦습니다. 그 영감님 성격에 벌써 들이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초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조헌(趙憲).

호는 중봉(重峯).

임진왜란 의병장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지만, 동시에 조선 최고의 '꼰대'로도 유명했다.

​그는 도끼를 들고 대궐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리던(지부상소) 강성 인물이었다. 타협이란 걸 모르는 불같은 성격. 그런 양반이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성에 틀어박힌 왜군을 치러 갔다.

​역사대로라면, 그는 내일 아침 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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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6화: 물리적 설득 2

    붉은 불기둥이 치솟고,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폭심지 근처에 있던 일본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에 있던 놈들은 충격파에 휩쓸려 낙엽처럼 날아갔다.​"끄아아악!""화산이 터졌다!"​아비규환.정돈되었던 일본군 진형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조총수들은 총을 버리고 도망쳤고, 승병들은 염불을 욀 새도 없이 불타올랐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었다.​"보셨습니까, 영감님."​나는 넋이 나간 조헌을 내려다보았다.​"저게 제가 싸우는 방식입니다. 내 피는 한 방울도 안 흘리고, 놈들의 피로 강을 만드는 거."​"......"​"의(義)요? 좋습니다. 훌륭하죠. 근데 죽어서 지키는 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살아서 놈들 목 하나라도 더 베는 게 진짜 의 아닙니까?"​조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는 불타오르는 적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평생 믿어왔던 '죽음의 미학'이,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그때, 옆에서 "으음..." 하는 소리가 들렸다.영규 대사가 깨어났다.​그는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산 아래의 불바다를 보고 눈을 비볐다.​"허... 내가 지옥에 온 것인가? 염라대왕이 불놀이를 하는구먼."​"아직 이승입니다, 스님."​내가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그리고 저 불놀이는 제가 한 겁니다."​영규 대사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허허허! 대단하군. 자네가 우리를 살렸어."​그는 조헌의 어깨를 짚었다.​"중봉(조헌의 호). 고집 그만 피우시게. 부처님도 개죽음은 원치 않으실 걸세. 저 젊은이 말이 맞아. 이기는 게 중요해."​조헌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강한 노인이었지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서 독기가 빠져나가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감정이 들어차고 있었다. 인정. 그리고 전율.​"네놈... 이름이 뭐라고 했지?"​"김덕령입니다."​"덕령이라..."​조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5화: 물리적 설득 1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이 무식한 놈! 상놈! 도적놈!"​등 뒤에서 찰진 욕설이 랩처럼 쏟아졌다.조헌 영감님. 연세도 지긋하신 분이 폐활량 하나는 기가 막혔다. 산을 오르는 내내 쉬지도 않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영감님. 혀 깨무십니다. 좀 조용히 가시죠."​나는 짐짝처럼 둘러멘 조헌을 추스르며 산길을 올랐다.​내 왼쪽 겨드랑이에는 기절한 영규 대사가 끼여 있었다. 덩치 큰 스님이 축 늘어져 있으니 무게가 꽤 나갔지만, 내게는 솜이불 정도였다.​"네놈이 감히 의병장을 능멸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 당장 내려가서 왜적과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게 선비의 도리거늘!"​조헌이 내 등짝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안마받는 기분이었다.​"도리 좋아하시네. 개죽음 당하는 게 도리입니까?"​나는 씩씩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뒤를 돌아보니 가관이었다.700명의 의병들이 쭈뼛거리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대장이 납치되어 가니 구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납치범(나)이 너무 강력해 보여서 덤비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도망가자니 의리가 없고.​그야말로 오리 떼가 어미 오리 따라오듯 줄줄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빨리 가자! 밥 줄 테니까!"​최가가 맨 뒤에서 양치기 개처럼 의병들을 몰았다.​우리가 도착한 곳은 금산성 맞은편, 험준한 산봉우리였다.아래로는 조헌이 원래 진을 쳤던 연곤평(눈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였다.​"도착했습니다."​나는 조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영규 대사도 옆에 뉘었다. 스님은 아직도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내가 급소를 너무 정확하게 쳤나 보다.​"쿨럭! 이, 이 괘씸한..."​조헌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지팡이를 찾았다. 없으니까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나를 겨눴다.​"네놈이 나를 욕보였어! 내 오늘 너를 죽이고 저승에 가겠다!"​독기 어린 눈빛.진짜로 찌를 기세였다.​나는 피하지 않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죽이려면 죽이쇼. 근데 그전에 구경이나 좀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4화: 꼰대와 괴물 2

    전쟁에서 이기는 게 장땡이지, 방식이 뭐가 중요한가. 이 양반은 전쟁을 무슨 예법 대결로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영감님. 전쟁은 소꿉장난이 아닙니다. 이기면 충신이고 지면 역적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죽이는 게 군인의 본분 아닙니까?"​"말버릇 보게!"​조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군인에게 중요한 건 기개와 명분이다! 오랑캐 놈들처럼 비열한 술수를 쓰느니, 차라리 떳떳하게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게 낫다!"​전형적인 꼰대 논리.죽어서 이름을 남기면 뭐 하나. 내 가족, 내 백성은 다 죽어나가는데.​"그래서, 저 수많은 백성을 데리고 죽으러 가시겠다는 겁니까?"​나는 밖을 가리켰다.​"저기 있는 700명.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입니다. 영감님 명예 챙기자고 다 죽이실 겁니까?"​"이, 이 무식한 놈이!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다! 의(義)를 보이러 가는 것이다!"​조헌이 지팡이를 바닥에 쾅 찍었다.​"우리가 여기서 피를 뿌려야, 잠자고 있는 조선의 선비들이 깨어날 것이다! 조정이 정신을 차릴 것이다! 우리는 불쏘시개가 되러 온 것이다!"​말이 안 통한다.이 사람은 군사적 승리가 목적이 아니었다. '순국(殉國)'이라는 거대한 퍼포먼스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이다.​숭고하다. 인정한다.하지만 나는 그 꼴 못 본다.살아서 싸울 수 있는 700명의 병력을, 고작 불쏘시개로 태워버리는 건 낭비다. 그것도 내 눈앞에서.​"영감님."​나는 목소리를 깔았다.​"저는 장사꾼입니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합니다. 저 아까운 인력을 잿더미로 만드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네놈이 못 보면 어쩔 텐가? 썩 물러가라! 내일 날이 밝으면 우리는 진격한다!"​조헌은 완고했다. 벽창호가 따로 없었다.옆에 있던 영규 대사가 나직하게 거들었다.​"젊은이. 뜻은 고마우나, 우리 대장의 고집은 황소도 못 꺾네. 그냥 돌아가게."​황소?황소라.​내가 제일 잘 다루는 게 황소인데.​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3화: 꼰대와 괴물 1

    ​"밀어! 바퀴 빠졌다!"​진흙탕에 빠진 현무 2호기를 꺼내느라 익호군 녀석들이 끙끙거렸다.​이치 고개에서 금산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산 넘고 물 건너는 강행군. 전투 직후라 다들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쉴 틈이 없었다.​나대용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바퀴 축을 살폈다.​"대장, 무리요. 현무들이 한계에 다다랐소. 바퀴 살이 휘고 축이 틀어져서, 이 속도로는 금산까지 하루 꼬박 걸릴 거요."​"하루면 늦습니다. 그 영감님 성격에 벌써 들이받았을지도 모릅니다."​나는 초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조헌(趙憲).호는 중봉(重峯).임진왜란 의병장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지만, 동시에 조선 최고의 '꼰대'로도 유명했다.​그는 도끼를 들고 대궐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리던(지부상소) 강성 인물이었다. 타협이란 걸 모르는 불같은 성격. 그런 양반이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성에 틀어박힌 왜군을 치러 갔다.​역사대로라면, 그는 내일 아침 전멸한다.함께 간 승병장 영규 대사도, 이름 없는 의병들도 모조리.​그 아까운 목숨들을 역사책의 한 줄로 남게 할 순 없었다.​"최가야."​"예, 대장님. 헉헉."​최가가 혀를 빼물고 달려왔다.​"현무는 천천히 오라고 해. 나대용 형씨한테 맡기고, 우린 정예 요원만 추려서 먼저 뛴다."​"뛰어서 말입니까? 여기서 금산까지요?"​"그래. 다리 튼튼하잖아. PT 체조로 단련된 허벅지를 믿어라."​나는 미숙이를 허리춤에 단단히 묶었다.​"늦으면 다 죽는다. 살리고 싶으면 뛰어."​우리는 산길을 달렸다.전생의 나는 5분만 뛰어도 숨이 찼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였다. 산을 타고 계곡을 넘었다.​한밤중이 되어서야 금산성 인근, 눈벌(연곤평)이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허억... 허억... 대장님... 도착했습니다..."​최가와 병사들이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하지만 나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금산성.성벽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2화: 웅치·이치의 철벽 2

    거리는 10보.​노장은 칼을 뽑아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두려움보다는 호기심, 그리고 전율이 섞인 눈빛이었다.​"네놈이냐. 내 보급대를 털고 벼락을 내린다는 자가."​"그래. 담양의 김덕령이다. 기억해 둬라."​"훌륭하군. 조선에 이런 무인이 있을 줄이야."​고바야카와가 말 배를 걷어찼다.정면 승부. 피하지 않겠다는 기백이었다.​하지만 나는 놈과 칼을 섞을 생각이 없었다.시간이 아까우니까.​나는 품에서 마지막 남은 수류탄 하나를 꺼냈다.​"선물이다. 가져가라."​심지에 불을 붙여 놈의 말발굽 아래로 던졌다.​"뭐, 뭐냐?"​고바야카와가 바닥을 보는 순간.​꽝!​말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폭발의 충격으로 고바야카와가 말에서 떨어져 흙바닥에 굴렀다.​"크윽!"​노장이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내 그림자가 그를 덮고 있었다.​나는 미숙이를 들어 올렸다.​"항복해라. 노인 공격하긴 싫으니까."​고바야카와는 피 묻은 입술을 닦으며 헛웃음을 지었다.​"항복? 사무라이에게 항복은 없다. 목을 쳐라."​그는 눈을 감고 목을 내밀었다.기개 하나는 인정해 줄 만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목을 칠 생각이 없었다. 죽은 적장보다는 산 포로가 더 비싼 법이니까.​"목은 됐고, 잠이나 자쇼."​퍼억!​나는 놈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고바야카와가 기절하며 널브러졌다.​"적장을 잡았...!"​내가 소리치며 놈을 묶으려는 찰나였다.​"주군을 지켜라! 막아라!!"​어디선가 시뻘건 눈을 한 무사 수십 명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고바야카와의 친위대였다. 그들은 칼을 휘두르는 대신, 맨몸으로 나에게 몸을 던졌다.​"이거 안 놔?!"​한 놈을 쳐내면 두 놈이 달라붙고, 두 놈을 떼어내면 세 놈이 내 팔다리를 잡고 늘어졌다.​"어서! 주군을 모셔라! 빨리!"​친위대장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그 사이 부관들이 기절한 고바야카와를 말에 태우고 엉덩이를 찔러대며 도망쳤다.​"이 독한 놈들이!"​나는 몸을 털어 녀석들을 떼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1화: 웅치·이치의 철벽 1

    ​적장의 머리통이 깨지는 소리가 신호탄이었다.​잠시 멈칫했던 왜군들이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지휘관을 잃은 분노보다는, 눈앞의 괴물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는다는 공포가 그들을 움직였다.​"죽여라! 다구리쳐!"​일본어가 아닌 조선말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놈들은 사방에서 칼과 창을 들이밀었다.​나는 미숙이를 고쳐 잡았다.흑단목의 묵직한 중량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오냐. 다 덤벼라."​나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허리의 탄력을 이용해 원심력을 극대화한, 인간 팽이 그 자체였다.​부웅-!​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고막을 때렸다.​퍼억! 우지끈!​내 주변을 에워쌌던 왜군 넷이 동시에 날아갔다. 갑옷이 구겨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화음처럼 울렸다.​"뭐, 뭐야! 저거!"​뒤에 있던 놈들이 기겁하며 멈춰 섰다.​이전의 참나무 방망이였다면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백설이 구해준 흑단목은 달랐다. 쇠보다 단단하면서도 특유의 탄성이 있어 충격을 고스란히 적에게 되돌려 주었다.​"역시 흑미숙이. 타격감이 다르네."​나는 피 묻은 미숙이를 어깨에 걸치고 씨익 웃었다.​"자, 다음 타자."​하지만 놈들은 나에게 덤비는 대신,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더 거대한 절망이 다가오고 있었다.​쿠르릉- 쿵! 쿵!​육지 거북선, 현무(玄武) 세 대가 내리막길을 타고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막아! 저 수레를 막아!"​왜군 조총수들이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타타타탕!​수백 발의 납탄이 빗발쳤다. 하지만 현무는 멈추지 않았다. 두꺼운 정철 장갑에 맞은 탄환들은 힘없이 찌그러져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다.​팅! 채앵!​"안 통해! 쇠가죽이야!"​공포에 질린 왜군들이 창을 들고 현무 앞으로 달려들었다. 바퀴 틈에 창을 꽂아 멈추려는 심산이었다.​하지만 현무는 단순한 수레가 아니었다.나대용이 설계하고, 내가 감수한 '살상 병기'였다.​"고슴도치 전개!"​현무 2호기 안에서 최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철컥.​현무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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