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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짧은 휴식과 첩보 1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4 10:48:35

"왔다! 대장님이 오셨다!"

망루에서 보초를 서던 최가의 고함 소리가 담양 바닥을 울렸다.

객주 대문이 활짝 열리고, 미령이와 나대용이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그들 뒤로 익호군 병사들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나는 현무 1호기 지붕 위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내 뒤로는 쌀과 화약, 쇠붙이가 가득 실린 수레 수십 대가 줄을 잇고 있었다. 전주성을 털어... 아니, 후원받아 온 전리품들이었다.

나는 현무에서 뛰어내렸다. 착지하는 순간 다리가 살짝 후들거렸다. 며칠 동안 긴장하고 힘을 썼더니 피로가 몰려온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미령이가 얼른 달려와 물바가지를 내밀었다.

"대장님! 물 드세요! 목 마르시죠?"

"어, 고맙다."

그때 서백설이 쟁반을 들고 나왔다. 시원한 오미자차였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귀한 차였다.

"이거 마셔요. 머리 쓰는 데는 이게 최고라니까."

"고맙다."

차를 들이키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대용 형씨! 선물 가져왔습니다!"

내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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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84화: 쌍룡(雙龍), 주인을 찾다 2

    ​"미령아!"​내가 부르자 미령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녀석은 이미 붓과 먹물, 그리고 붉은 주사(朱砂) 가루를 챙겨 들고 있었다. 눈치가 빤하다.​"너, 글씨 좀 써야겠다. 이번엔 아주 중요한 거야. 장군님께 드릴 거니까 틀리면 안 돼."​"걱정 마세요. 제가 한 명필 하거든요. 훈장님 딸이잖아요."​미령이가 종이를 펼치고 붓을 들었다.​"이게 본검(本劍)이다. 여기엔 이렇게 써라."​나는 전생에서 봤던 쌍룡검의 실제 문구를 떠올렸다. 역사가 기억하는 그 문구.​"주득쌍룡검(鑄得雙龍劍) 천추기장(千秋氣丈)."​"쌍룡검을 얻으니 천추의 기상이 웅장하다... 와, 정말 멋진 말이에요."​미령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단아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필체였다.​나대용이 그 종이를 검신 위에 대고 밑그림을 떴다. 그리고 작은 정을 대고 망치로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땅, 땅, 땅.​쇠를 파내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글자 모양대로 홈이 파였다. 음각(凹刻)이었다.​"좋아. 그리고 보조검."​나는 나머지 한 자루를 가리켰다.​"여기엔 내 마음을 좀 담아야겠어. 한쪽 면엔 '겸양지덕(謙讓之德)'."​"겸양지덕이요? 겸손하게 양보하는 덕... 좋은 말이네요."​"그리고 반대쪽 면엔 '안분지족(安分知足)'."​미령이가 갸웃거렸다.​"겸손과 만족이라... 장군님 인품에는 어울리지만, 검에 새기기엔 좀 얌전하지 않나요?"​나대용도 정을 멈추고 거들었다.​"내 말이 그 말이오. '필사즉생'이나 '일격필살' 같은 게 낫지 않겠소?"​나는 피식 웃었다.​"형씨. 이건 이중적인 의미입니다."​"이중적?"​"겸양지덕.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죠. 이건 왜놈들한테 하는 말입니다. '내 앞에서 고개 숙여라. 안 숙이면 목을 베어주마'."​나대용의 눈이 동그라졌다.​"그리고 안분지족. '네 분수를 알아라. 감히 남의 땅 넘보지 말고 네 섬나라에나 처박혀 있어라'. 그런 뜻이죠."​"허... 허허허!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83화: 쌍룡(雙龍), 주인을 찾다 1

    ​날이 밝았다.밤새 내리던 이슬이 걷히고, 대장간의 화덕에는 다시 붉은 불이 붙었다.​나는 아침밥으로 멧돼지 뒷다리 하나를 뜯으며 마당으로 나갔다.​"서 행수!"​내가 부르자 서백설이 부스스한 얼굴로 안채에서 나왔다. 늦게까지 장부를 보느라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아침부터 왜 소리를 질러요? 고막 떨어지겠네."​"짐 싸라. 배달 갈 데가 있다."​"배달? 어디로요?"​"여수. 전라좌수영."​서백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잠이 확 달아난 모양이었다.​"이순신 장군님한테요? 설마 빈손으로 갈 건 아니죠?"​"당연하지. 우리가 누군데. 체면이 있지."​나는 창고를 가리켰다.​"저번에 전주성에서 이광 감사한테 뜯어온 거 있지? 쇠붙이랑 화약, 그리고 군량미 절반."​"네? 그걸 다요?"​"어. 싹 다 실어. 가는 김에 아주 생색을 제대로 내야지. 발신인은 '담양 의병장 김덕령'으로 대문짝만하게 쓰고."​"아니... 그게 얼마친데..."​서백설이 울상을 지었다. 장사꾼 입장에서 밑천을 통째로 내주는 건 살점을 떼어내는 고통일 것이다.​하지만 나는 단호했다.​"아까워하지 마. 그게 다 우리 목숨값이야. 바다가 뚫리면 우리 돈도 휴지 조각 되는 거 알잖아? 장군님이 든든하게 버텨주셔야 우리도 여기서 땅 파고 장사하는 거야."​"알죠, 아는데... 내 피 같은 쌀... 저거면 우리 애들 한 달은 먹일 텐데..."​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결국 익호군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야! 1조부터 5조까지! 창고 열어! 수레에 짐 실어라! 깨지기 쉬운 건 짚단 깔고! 쌀가마니 터진 거 있나 확인해!"​역시 일머리 하나는 기가 막혔다. 순식간에 수레 십여 대에 물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이광 감사가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질 노릇이지만, 알 게 뭐람. 어차피 그 양반 물건으로 생색내는 건데. 이게 바로 창조 경제지.​물자 준비는 끝났다.이제 남은 건, 가장 중요한 '메인 선물'이었다.-​대장간.열기가 후끈했다. 나대용이 쇳덩이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82화: 짧은 휴식과 첩보 2

    그날 밤.모두가 잠든 시각.객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쾅, 쾅, 쾅.급박하면서도 절제된 리듬.나는 미숙이를 챙겨 들고 나갔다."누구냐.""나주에서 왔소. 귀한 분의 심부름이오."나주?나대용의 고향이다.빗장을 풀자, 삿갓을 쓴 사내가 들어왔다. 옷차림은 평범한 보부상 같았지만, 허리춤에 숨겨진 단도와 단단한 몸놀림은 그가 훈련받은 군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김덕령 장사 되십니까?""그렇소만.""저는 전라좌수영 군관 송희립이라 합니다."좌수영? 이순신 장군의 부하?이 시점에 무슨 볼일로?갑작스런 방문으로 잠시 멍해졌다."어서 오십시오. 근데 여긴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혹여... 나대용 형씨를 찾아오신 겁니까?"송희립이 삿갓을 벗고 땀을 닦으며 말했다."예, 그렇습니다. 나대용 나으리를 뵈러 나주 본가에 갔더니 안 계시더군요.""아, 여기 와 계신 지 좀 됐습니다.""수소문 끝에 담양 산골짜기에서 쇠로 만든 거북이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장군께서 '대용이가 거기서 귀선(龜船) 연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시며 급히 저를 보내셨습니다."역시. 이순신 장군은 다 알고 있었구나. 나대용이 거북선에 미쳐 있다는 걸. 그리고 '쇠 거북이' 소문만 듣고도 나대용이 여기 있다는 걸 간파하신 거다."잘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나는 그를 나대용의 방으로 안내했다. 나대용은 늦은 밤까지 모형을 깎고 있었다."누구요? 이 밤중에.""손님이 왔습니다. 형씨를 보러."송희립이 정중하게 인사했다."나대용 나으리. 좌수사 영감의 밀명을 받고 왔습니다.""송 군관 아닌가! 자네가 여길 어떻게..."나대용이 벌떡 일어났다. 구면인 듯했다."장군께서 나으리를 찾으십니다."송희립은 품속 깊은 곳에서 비단 보자기에 싸인 서찰을 꺼냈다. 봉인에는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나대용이 떨리는 손으로 서찰을 받아 펼쳤다.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읽어 내려갈수록 그의 표정이 진지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81화: 짧은 휴식과 첩보 1

    "왔다! 대장님이 오셨다!"망루에서 보초를 서던 최가의 고함 소리가 담양 바닥을 울렸다.객주 대문이 활짝 열리고, 미령이와 나대용이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그들 뒤로 익호군 병사들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나는 현무 1호기 지붕 위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내 뒤로는 쌀과 화약, 쇠붙이가 가득 실린 수레 수십 대가 줄을 잇고 있었다. 전주성을 털어... 아니, 후원받아 온 전리품들이었다.나는 현무에서 뛰어내렸다. 착지하는 순간 다리가 살짝 후들거렸다. 며칠 동안 긴장하고 힘을 썼더니 피로가 몰려온 모양이었다."괜찮으세요?"미령이가 얼른 달려와 물바가지를 내밀었다."대장님! 물 드세요! 목 마르시죠?""어, 고맙다."그때 서백설이 쟁반을 들고 나왔다. 시원한 오미자차였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귀한 차였다."이거 마셔요. 머리 쓰는 데는 이게 최고라니까.""고맙다."차를 들이키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나대용 형씨! 선물 가져왔습니다!"내가 소리치자, 나대용이 수레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쌀에는 눈길도 안 주고, 오로지 쇠붙이와 화약 상자에만 매달렸다."오오! 이것은 정제된 유황 아니오! 게다가 이 쇠들은... 관아 대장간에서나 쓰는 상급 정철이구먼!"그는 쇠덩이를 볼에 비비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이거면 현무 4호기는 물론이고, 수류탄도 백 개는 더 만들겠소! 아니, 거북선 포신도 주조할 수 있겠어!""맘껏 쓰십쇼. 부족하면 또 뜯어오면 되니까."객주 마당은 다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전주성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짓고, 고기를 볶았다.나는 오랜만에 갑옷(누빔옷)을 벗고 편한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이곳이 전쟁터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평화롭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평화는 내가, 그리고 우리 익호군이 목숨 걸고 지켜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조각 같은 것이라는 것을.-"아저씨."미령이가 쟁반을 들고 왔다.삼계탕이었다. 닭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80화: 전라감영의 호출 2

    끼이익- 쿵.​성문이 열렸다.우리는 당당하게 입성했다.​전주 백성들이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저게 그 호랑이 잡은 장수가 타는 수레래!""왜놈들도 저거 보고 오줌을 지렸다던데?"​현무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이 울렸다. 쇳덩어리의 육중함이 백성들에게는 든든함으로, 관군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다.​감영 앞마당.이미 수백 명의 관군이 창을 들고 도열해 있었다. 기선 제압용이겠지. 하지만 현무 세 대가 마당으로 들어오자, 그들의 기세는 순식간에 쭈그러들었다.​"주차해."​내 명령에 현무들이 관아 건물 정면을 향해 멈춰 섰다. 포구가 정확히 감사가 앉아 있는 대청마루를 겨누고 있었다.​나는 미숙이를 어깨에 걸치고 현무에서 뛰어내렸다.​"담양 의병장 김덕령! 감사 영감을 뵙습니다!"​목소리에 힘을 실었다.​대청마루 문이 열리고, 이광이 모습을 드러냈다.창백한 얼굴. 깡마른 체구.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마당을 가득 채운 철갑 전차들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자, 자네가 덕령인가?"​"예. 부르셔서 왔습니다."​"오느라 수고했다. 헌데... 저 흉물스러운 쇳덩어리들은 무엇이냐?"​"흉물이라뇨. 왜놈들 때려잡은 일등 공신입니다. 영감님께 구경도 시켜드리고,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보여드리러 왔습니다."​"오해?"​"네. 제가 이걸로 딴맘 품으면 큰일 나겠다, 뭐 그런 오해요."​나는 빙긋 웃었다.말은 공손했지만, 속뜻은 '나 건드리면 이걸로 밀어버린다'였다.​이광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그는 알았다. 저 전차들이 맘만 먹으면 여기 있는 관군들을 뚫고 자신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크, 크흠! 그럴 리가 있나. 자네의 충심은 익히 들어 알고 있네."​이광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내 자네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그 뛰어난 무용을 높이 사서 관직을 내리고자 함일세."​"관직요?"​"그렇네. 내 휘하의 조방장(助防將) 자리를 주겠네. 관군과 합류하여 내 명을 받들라."​역시.예상대로다. 벼슬 하나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9화: 전라감영의 호출 1

    ​"장군님! 감사합니다! 익호장군 으뜸이오!"​담양으로 돌아오는 길은 꽃길이었다.진짜 꽃을 뿌려주는 건 아니었지만, 길가에 늘어선 백성들의 환호는 그 어떤 꽃보다 화려했다.​금산에서 700 의병을 구하고 왜군을 섬멸했다는 소식은 이미 바람을 타고 호남 전역으로 퍼졌다. 나는 더 이상 동네 힘센 형이 아니었다. 호남을 지키는 수호신, '익호장군(翼虎將軍)'이었다.​"어깨 펴라. 너희가 영웅이다."​내가 말하자 흙투성이가 된 익호군 녀석들이 가슴을 쫙 폈다. 최가는 아예 코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봤냐? 내가 바로 그 익호군 조장 최가다!"​객주에 도착하자 서백설이 달려 나왔다.​"왔어요? 다친 데는요?"​"멀쩡해. 밥이나 줘. 배고파 죽겠다."​"하여간... 밥 타령은."​서백설은 눈을 흘기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녀도 알 것이다. 내가 이기고 돌아올 때마다 그녀의 상단(주식회사 익호)의 가치도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는 것을.​며칠간은 평화로웠다.참전했던 이들은 전투의 피로를 풀고, 영규 대사는 요양을, 망가진 무기들은 수리를 하고, 논공행상을 했다.​​조헌 영감님과 영규 대사는 담양에 며칠 머물며 전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떠나는 날, 두 사람은 비장한 얼굴로 내게 왔다.​"호남은 자네가 지키게. 나는 충청도로 가야겠네."​"충청도요? 거긴 이미 왜놈들 천지 아닙니까?"​"그렇기에 가야지. 놈들이 청주성을 점거하고 충청도를 유린하고 있다네. 내 그곳을 탈환하고, 더 많은 의병을 모아 한양으로 올라갈 것일세."​조헌의 눈빛은 확고했다.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나라의 허리를 끊고, 임금이 계신 곳으로 길을 뚫겠다는 우국지사의 결의였다.​나는 옆에 서 있던 영규 대사를 바라보았다.​"스님도 가십니까?"​영규 대사가 껄껄 웃으며 육중한 철장을 들어 올렸다.​"바늘 가는 데 실이 가야지 않겠나. 그리고 자네가 금산에서 구해준 이 목숨, 부처님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백성을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는가."​"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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