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현의 목소리가 반하준의 귓가에 들리고, 그는 포박당한 채 매서운 눈빛으로 TV 화면을 응시했다.강민아를 저격하는 말인 건 안다.대체 강민아의 무슨 약점을 잡은 걸까.강민아가 강씨 가문을 파멸로 몰고 갈 만큼 위험한 짓을 한 건 그를 이곳에 가둔 것뿐이었다.하지만 강나현이 그가 감금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고?반하준은 자신의 뇌 어딘가에서 신경이 거칠게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안 돼!’절대 그가 이곳에 감금된 사실을 폭로해선 안 된다.이윽고 반하준의 동공이 확장되며 스크린에는 적나라한 영상이 재생되었다.강성진의 얼굴이 단번에 퍼렇게 질렸다.“아아악!”도민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지만 미처 입을 가리지 못한 채 비참한 비명을 내뱉었다.강씨 가문의 다른 친척이나 주주들도 일제히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좋지 않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강나현은 단상에 서서 모두의 반응을 살피고는 단상 아래 손님들에게 말했다.“여러분, 다 보셨나요? 저런 사람이 강승의 리더가 될 자격이 있나요? 저렇게 사생활이 엉망인데 정말 강승 테크를 믿고 맡길 수 있나요?”강나현이 눈가에 악의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차갑게 웃었다.무죄로 석방된 후 강민아에게 주는 큰 선물이었다.‘그러게 누가 감히 도발하래?’반하준의 얼굴을 다른 남자로 바꿨으니 이제 강민아가 심은호와 사귀면서 다른 남자와 낯 뜨거운 행각을 벌인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다.강나현은 심은호를 바라보며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했다.무대 맨 앞줄에 서 있던 심은호는 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강나현 씨의 가족도 서슴없이 희생하는 용기는 대단하네요!”강나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심은호는 왜 저렇게 담담한 걸까.게다가 대놓고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강나현은 기가 막혀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역시 심은호는 강민아를 그저 데리고 놀 생각이었고, 어쩌면 진작 그녀가 방탕하다는 걸 알고 있었나 보다.강나현이 승리의
강나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강성진에게 설명했다.“아빠,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올린 영상이 아니라고요!”강성진은 이제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과 어린 비서의 동영상이 폭로되었고, 게다가 폭로한 당사자는 그의 잘난 딸이었다.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는 행복한 얼굴로 단상 아래에 있는 임직원들에게 두 딸이 강승 테크에 입사해 온 가족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그의 열정적인 연설이 아직도 귓가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효녀 강나현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강성진은 당장이라도 강나현의 목을 비틀어 머리를 공처럼 차버리고 싶었다.“개자식,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강성진은 발을 들어 강나현의 머리를 세게 걷어찼다.이대로 머리를 박살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강나현은 겁에 질려 오줌까지 지리며 서둘러 기어서 도망쳤다.그때 강민아를 돌아보았다.‘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냥 내버려두진 않겠지?’그런데 강민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 도민영의 어깨를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엄마, 일어나봐요!”강민아가 손을 뻗어 도민영의 인중을 누르자 도민영은 미간을 깊게 찡그렸다.그러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을 뜨며 강민아를 노려보았다.“아파!”그리고 다시 기절했다.강민아는 연기라는 걸 알았다.지금 상황에서는 무고한 피해자인 척 연기하는 것만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도 엄마를 걱정하는 효녀인 척 강성진에게 맞는 강나현을 무시하고 있었다.강나현의 비명이 끝없이 울려퍼졌지만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강성진은 그들의 대표였고 말 한마디로 그들을 해고할 수 있으니까.임원들과 주주들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굳은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았다.강성진이 어린 비서와 놀아난 사실은 사내에서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적나라한 영상이 공개되고 현장에 기자까지 있으니 일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그들은 지금 어떻게 하면 강승 테크에 미칠 부정
그녀가 강기성에게 약을 먹이고 나서야 그는 조금 나아질 기미가 보였다.강기성은 이 집안에서 강성진에게 맞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강나현은 어렸을 때부터 강성진에게 매를 맞으며 점차 폭력을 동경하게 되어 여성의 정체성을 버리고 남자 무리에 어울리려 했다. 마치 자신도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되어야만 매 맞는 사람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처럼.“그 사람이 도민영을 아끼는 것처럼 보여도 예전에 때려서 도민영 얼굴이 부은 걸 봤어. 난 어렸을 때부터 도민영이 저 사람한테 맞아서 머리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어젯밤에 왜 오빠를 때린 거야?”강기성은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내가 사람을 시켜서 친부모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았어.”강기성이 그녀를 돌아보았다.“강씨 가문은 남자가 물려받아야 한다면서 내가 친부모에게 가면 강씨 가문 대가 끊길 거래.”말하며 강기성이 경멸하듯 비웃었다.“난 언젠가 저 사람 죽여버릴 거야.”그저 홧김에 하는 말이었다. 강성진의 피가 튀는 것조차 더러운데 아무 상관 없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앞길까지 망칠 필요는 없었다.강민아는 숟가락으로 강기성에게 포도당 물을 먹여주었다.“언젠가 우리가 크면 저 사람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날이 올 거야.”도민영이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걸 강성진이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강기성은 그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하지만 고리타분한 마인드와 강나현의 출생 이후 강성진은 큰딸을 되찾으려는 생각을 접었다.“다들 이만 돌아가세요.”직원들에게 말하던 강민아는 자리에 있던 임원들과 주주들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단상 위에 꿇고 앉은 그녀의 발치에는 아직 기절한 척 시늉하는 도민영이 있었다.그녀의 단호한 눈빛에 임원들도 마음을 진정시켰다.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강민아의 차분한 모습은 임원들에게 구원의 지푸라기와 같았다.강민아는 심은호의 손바닥 위로 손을 올려놓으며 그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민아는 눈을 깜빡이며 물잔이 강나현의 가슴을 강타하고 뜨거운 물이 마침 강나현의 얼굴에 튀면서 그녀의 얼굴도 씻기는 것을 바라보았다.“아악! 젠장!”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강나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물이 그녀의 얼굴에 있던 핏자국과 뒤섞이며 연분홍색으로 바뀔 때쯤 그녀가 허둥지둥 소파에서 일어났다.“죄송해요...”김예나는 조심스럽게 말하면서도 어두운 동공엔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이런 망할!”강나현은 욕설을 내뱉으며 뒤에서 쿠션을 잡아 김예나를 향해 세게 내리쳤다.김예나는 피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강나현이 던지는 딱딱한 물건에 맞아 머리에 피가 난 적도 있는데 이까짓 쿠션쯤이야.강기성이 손을 뻗어 쉽게 쿠션을 낚아채더니 김예나를 등 뒤로 보내면서 쿠션을 옆으로 던졌다.그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예나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그의 눈에 강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미친개 같았다.강나현은 입에 솜을 물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당장이라도 김예나를 산 채로 잡아먹을 것 같은 위협적인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일부러 그런 거야! 왜 아직도 우리 집에 살게 놔두는 거야? 저번에 내 그릇도 깨고, 내 옷도 잘못 빨고, 내 방 창문도 열어놔서 엄청나게 큰 벌레가 내 침대에 기어들어 왔어!”김예나는 벌벌 떨며 강기성 뒤로 숨었다.강나현의 말이 맞다. 일부러 그랬다.강기성의 손에 이끌려 강씨 가문에 살게 되면서 강나현은 일부러 그녀에게 집안일을 시켰다.김예나도 기꺼이 도우미를 자처했는데 청소도구를 들고 강나현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강씨 가문의 다른 도우미들이 너도나도 일을 도와주는 탓에 강나현의 방을 꼼꼼히 뒤져 불리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강나현에게 학창 시절 겪었던 괴롭힘을 하나하나 되갚아주는 것뿐이었다.2년 내내 강나현에게 괴롭힘을 당했기에 강씨 가문에서 강나현에게 했던 복수는 그녀가 한 짓에 비하면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그러자 강성진은 강나현에게 소리쳤다.“민아를 좀 봐! 우리 회사를 위해서 애쓰고 있잖아!”강민아가 덧붙였다.“그런데 오늘 파티에서 공개된 영상이 서경 상류층에 퍼졌어요.”그녀는 부드러운 한숨을 내쉬며 강나현에게 물었다.“나현아, 넌 상류층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니까 가서 확인해 봐. 다들 우리 집 얘기하고 있는지.”강나현은 심장이 철렁하고 소름이 돋았다.강민아가 지금 그녀를 골탕 먹이고 있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강성진이 곧바로 강나현을 재촉했다.“휴대폰 내놔.”강나현은 두 볼이 부어올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강민아가 또다시 함정을 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그녀는 강성진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곧바로 강성진이 그녀의 뺨을 또 때렸고, 이미 빨갛게 부어오른 뺨 사이로 새빨간 피가 스며 나왔으며 살갗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강성진은 그녀의 앞에 서서 내려다보며 명령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강성진의 위협적인 압박에 강나현은 순순히 휴대전화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부은 얼굴로 휴대폰 잠금이 풀리지 않자 지문으로 해제한 뒤 카톡 채팅 기록을 살펴보았다.곧 여러 명이 친구 추가 요청을 보냈고, 강나현을 삭제하지 않은 재벌 2세들이 파티에서 강나현이 당당하게 강성진이 바람피운 것을 공개한 영상 링크를 보냈다.[강나현, 너 멋있다!][나현, 이게 네가 말한 빅 뉴스야?][역시 너야. 나오자마자 아빠부터 건드리네. 강나현, 용감해! 너는 내가 인정한다!]강성진은 강나현을 칭찬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두 눈에 담긴 불길이 거세게 번졌다.한심한 재벌 2세들은 부모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강나현이 파티에서 보여준 행동은 그들에게 ‘모범’ 역할을 했기에 강나현을 숭배하기 시작했다.강나현은 소파에 앉아 강성진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발바닥부터 올라오는 한기가 온몸을 휩쓸고 팔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래위 치아가 달달 떨리며 서로 부딪혀 딱딱 소리를 냈다.“아빠...”강성진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강나
강나현은 강성진의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고 상황을 뒤집을 희망이라도 본 듯 서서히 안도했다.‘그래, 이제 강민아가 맞아서 이빨이 뽑힐 차례야!’강성진은 강나현의 휴대폰 앨범 속 강민아와 관련된 영상을 지우고 숨을 고르더니 손을 들어 또다시 강나현의 뺨을 때렸다.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강나현의 얼굴을 강타했다.강나현의 입에 머금었던 솜뭉치가 끈적끈적한 피와 섞여 바닥에 튀어나왔다.“강나현, 이 망할 것! 날 해친 것도 모자라 민아까지 해치려고 들어? 강씨 가문을 무너뜨리고 싶은 모양이구나! 내가 오늘 너 때려죽인다.”강성진은 당장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아니에요!”강나현이 피를 뱉자 혀끝에는 온통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소리를 질렀지만 그녀의 설명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강성진은 왜 그녀를 믿지 않는 걸까.휴대폰을 강나현에게 던진 뒤 강성진은 벨트를 풀었다.강나현은 강성진이 벨트로 자신을 채찍질하려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린 표정을 드러냈다.그 순간 강성진의 휴대폰이 울렸다.벨트로 강나현을 한 대 세게 내려친 뒤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여보세요.”강성진은 발신자를 확인한 후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들어와요.”강승 테크의 주요 주주 몇 명이 들어왔고 맨 앞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성진, 지금 여론이 자네한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옴 쪽에서는 입찰에서 빠지려고까지 해!”강성진은 그 말에 덩달아 조바심을 냈다.“네? 어떻게 멋대로 발을 뺀다는 거죠? 지금 당장 옴 테크 쪽 임원에게 연락해 봐야겠어요!”또 다른 주주가 강성진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지금 어디든 자네가 나서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다는 걸 몰라? 사람들 웃음거리가 되고 싶어?”“난...”주주들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우린 고심 끝에 만장일치로 자네가 먼저 대표 사임 발표를 하길 바라네. 그래야 자네나 회사에 대한 불리한 여론이 잠잠해질 거야.”“어떻게 강승
강나현은 다급한 어조로 강민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아빠! 이 모든 게 강민아가 우리를 해치려고 짠 계획이에요!”그런데 얼굴 전체가 돼지처럼 부어올라 말을 해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목소리가 어눌하게 들렸다.그런 그녀의 말에 강성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서둘러 벨트를 반으로 접은 뒤 강나현의 콧대를 조준해 휘둘렀다.“민아랑 내 부녀 사이 이간질할 생각 마!”강나현은 당황했다. 강성진이 왜 갑자기 강민아 편을 드는 걸까.“아빠가 키운 자식은 저예요! 강민아랑 무슨 감정이 있다고 그래요? 애초에 데려올 생각도 없었잖아요!”“닥쳐!”강성진은 화가 났다. 그의 평판은 무너졌지만 강민아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앞으로 그녀에게 의지해야 할 일이 많은데, 강나현이 대놓고 헛소리하는 걸 그냥 둘 리가 없었다.강성진이 소리를 질렀다.“테이프 가져와!”작고 하얀 손이 검은 테이프를 건넸다.강기성은 강성진에게 테이프를 건네는 김예나를 보고 날카로운 눈썹을 들썩였다.강성진이 테이프를 찢자 강나현이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아빠, 뭐 하는 거예요?”강성진이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네 망할 입을 막으려는 거지!”강성진은 본인과 강민아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강민아가 강씨 가문에 돌아온 지 9년이 지났어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건 손에 꼽힐 정도였다.게다가 둘은 한때 팽팽하게 맞서 싸운 적도 있었다.하지만 이제 강성진은 강민아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아빠! 하지 마요!”강나현이 비명을 질렀지만 강성진의 행동에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강성진이 곧장 테이프로 그녀의 입을 감자 김예나는 한쪽에 서서 진흙탕처럼 혼탁한 눈빛으로 싸늘하게 지켜보고 있었다.비슷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한때 강나현은 그녀를 화장실에 가두고 테이프를 붕대 삼아 눈과 머리, 입, 코를 감아 숨도 못 쉬고, 살려달라고 애원할 힘조차 없게 만들었다.그렇게 그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 잠식되어 갈 때 가위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주부에게 이런 야망이 있다니 제법 놀라웠다.강민아가 심은호와 손을 잡고 연인관계라는 사실을 공개한 건, 심은호 명의로 된 회사를 이용해 우강 그룹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위해서였다.이제 강민아가 임시 대표직을 맡았으니 분명 강승 테크의 인수를 서둘러 진행할 거고, 머지않은 시일 내에 정식으로 인수 계약을 진행할 거다.이런 생각을 하며 우경아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일단 먹잇감을 포착했으면 절대 그녀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다.강승 테크를 인수하는 것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강민아라는 주제넘은 주부를 만나게 되었다.강민아가 독단적으로 태산 그룹과 인수 프로젝트를 끝내려 한다면 그녀도 손을 쓸 수밖에.우경아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들고 강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가 전화를 받자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민아 씨, 우리 둘이 협업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 프로젝트는 중단해야겠어요.”강민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 대표님,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 아웃이란 뜻이에요.” 우경아의 목소리에 놀리는 듯한 웃음이 번지자 강민아가 말했다.“우 대표님, 제가 직접 개발한 독점 알고리즘을 드렸는데 저를 쫓아낸다고요?”“그렇죠.” 우경아가 가볍게 말했다.“민아 씨, 우리 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줘서 고마워요. 그쪽이 없어도 우리 팀이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니 이제 그쪽은 필요가 없죠.”강민아가 미소를 지었다.“우 대표님,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 저한테서 원하는 게 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거죠?”우경아가 말했다.“나랑 계속 일하고 싶으면 강승을 나한테 팔아요. 지금 그쪽이 강승의 결정권을 쥐고 있잖아요.”강민아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다.“우 대표님께선 얼마에 강승을 인수할 생각인데요?”우경아가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이미 40억 줬을 텐데요.”강민아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재계 마녀라고 불리는 우경아의 수법을 지금 그녀가 직접 겪고 있다.우경아가 재계에서 아무런 불이익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심은호가 옆에 앉아 강민아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강민아의 눈은 평소처럼 투명하지 않고 옅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문득 무언가 생각난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반용화의 시원한 목소리가 귓가에 맑은 샘물처럼 울려 퍼지며 술로 인해 달아오른 열기를 말끔히 씻어주었다.“선생님, 제가 강승을 손에 넣었어요.”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강민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반용화에게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강민아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자 심은호의 속눈썹이 살짝 펄럭였다.강민아는 반용화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심은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강민아를 바라봤다.전화기 너머로 계곡물처럼 서늘한 반용화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 반하준이 강승에서 한 짓 다 알아.”강민아는 입꼬리를 올렸다.“그래도 덕분에 강나현을 제거했어요. 하지만 절대 용서는 안 해요. 반하준의 타깃은 심은호 씨였거든요.”강민아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심은호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이내 반용화가 말했다.“귀찮으면 내가 걔를 판주 지사로 보낼 수 있어.”강민아의 목구멍에서 나지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아직은 괜찮아요. 조금 더 놀려먹을 수 있거든요. 우경아 손에 있는 프로젝트를 넘겨받아서 양자 테크가 내 손에 들어왔어요. 부신 그룹은 우영 그룹의 파트너니까 사업에서도 패배의 쓴맛을 보게 할 거예요.”말하며 강민아의 눈동자가 한층 맑아졌다.“언젠가 반하준이 판주로 가게 되어도 본인이 원해서 가야 할 거예요.”반용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민아는 수화기 너머로 그의 숨소리만 들었다.“선생님?”반용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7년 전의 너로 돌아온 것 같네.”어깨를 움츠리던 강민아의 귓가에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그녀가 말했다.“다음 주 승덕 학교에서 축제를 여는데 정이가 공연해요. 석현이가 보겠다고 하면 초대하고 싶은데.”“그래, 말해볼게.”그 순간 심은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민아 씨, 벌써 3분 넘게 날
의아한 건 강민아였다. 반하준은 일부러 이렇게 멍청한 질문만 골라서 하는 걸까.“당신은 부신 그룹 대표니까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 당신과 강나현 중에 누굴 제거하는 게 더 쉬운지는 나도 분간할 수 있어.”반하준이 모든 책임을 강나현에게 돌리는 동안 강민아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지금 나서서 반하준과 강나현이 꾸민 짓이라고 하면 그 둘을 같은 편으로 만드는 게 된다.반하준이 강나현을 망가뜨릴 생각이라면 그의 손을 빌려 강나현을 제거한 뒤 그녀가 쥐 죽은 듯 살기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반하준, 또다시 심은호 씨 건드리기만 해.”반하준은 씁쓸하고도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그의 소매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었는데 강민아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심은호를 감싸고 있지만 네 마음은 나에게 향해 있다는 걸 알아.”반하준은 본인을 설득하듯 말했고 강민아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라 무시해 버렸다.더 이상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를 걱정하지 않는 거고 이 모든 건 반하준이 자초한 거다.그가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긴 사이 강민아는 우아하게 눈을 흘기며 쓸데없는 설명으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민아 씨.”심은호가 강민아 옆으로 다가오자 그를 본 반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심은호를 무시한 채 강민아에게 물었다.“우강 그룹을 손에 넣었는데 언제 심은호랑 헤어질 거야?”반하준이 이미 그녀와 심은호가 계약 커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강민아는 잠시 당황했다.심은호는 능글맞게 웃었다.“그쪽 주제 파악이나 하지? 전남편 주제에.”반하준의 한쪽 눈꺼풀이 부자연스럽게 떨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심은호, 잘난 척 그만해!”심은호는 강민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아 씨만 잘 나가면 난 계속 잘난 척할 건데?”강민아가 심은호의 팔짱을 끼자 두 사람은 함께 뒤돌아 파티가 열리고 있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은은하고 영롱한 빛을 발하며 파티장 전체를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비췄다.
친한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으며 귓속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경 모두가 강나현이 반 대표 좋아하는 걸 다 알고 있는데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손을 쓰려고 했네. 반 대표가 체면 때문에 떠들지 않고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겠지. 반 대표가 이렇게 고집스러운 사람인 것도 모르고.”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경멸하듯 말했다.“강나현도 참 멍청해. 반 대표가 마음이 있었으면 강나현 언니가 반씨 가문 사모님이 됐겠냐고.”강민아는 우강 그룹 직원 몇 명에게 지시했다.“나현이 아래층으로 데려가요. 지금쯤 구급차가 왔을 테니까.”직원들이 들어와 의식을 잃은 강나현을 들어 올렸다.강나현은 바지와 옷으로 몸을 가린 채 고개를 갸웃하며 여전히 달콤한 꿈속에 있는 듯했다.손님들은 역겨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반 대표님.”강민아가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반하준은 곧바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단지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그의 두 눈이 금세 반짝이기 시작했다.“그쪽도 같이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가세요.”쫓아내는 거다.애초에 그녀는 반하준을 강승의 인수식에 초대한 적이 없었다.반하준은 거절했다.“난 강나현과 같은 구급차 안 타!”손님들은 그런 그를 이해했다. 이런 일을 당했으니 트라우마가 생기는 게 당연했다.이어 반하준은 강민아에게 말했다.“부사장님은 이 수갑 풀 열쇠나 좀 찾아주지?”강민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그럼 반 대표님께선 일단 다른 휴게실로 가 계세요.”...반하준이 다른 휴게실 소파에 앉아있는데 강민아의 비서가 들어왔다.“반 대표님, 열쇠를 찾았습니다.”비서는 열쇠로 수갑을 풀었고, 반하준의 손목 상처에 닿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수갑을 빼냈다.이어 반하준이 비서에게 말했다.“강민아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비서는 놀란 듯 그의 손목을 바라보았다.“반 대표님, 손을 그렇게 다쳤는데 안 아프세요?”반하준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끈적끈적했고 안색은 창백했다.“강민아를 만나야 한다고!”비
심은호의 날카로운 칼날 같은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반하준 저 자식이 강민아 앞에서 약한 척을 하고 있다.조금 전까지 약에 취했어도 오만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심은호를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더니, 강민아 앞에서는 불쌍한 척을 하고 있었다.심은호는 경멸하듯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반 대표가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봐. 강나현이 왜 기절했지? 옷은 네가 벗긴 거야?”반하준과 강나현 둘이 짠 계략을 반하준의 입으로 직접 말하길 원했다.그들이 먼저 반하준이 한 짓을 밝히면 오히려 반하준에게 반격할 기회를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심은호와 강민아는 반하준이 본인이 만든 난장판을 어떻게 처리할지 보고 싶었다.“아니야!”반하준은 곧바로 부인했다.“강나현이 약에 취해 직접 옷을 벗고 여러 번 나를 덮치려고 했어. 난 그저 때려서 기절시킨 것뿐이야!”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강민아의 눈치를 살폈다.자기 몸이 더럽혀졌다는 오해를 받기 싫었다.반하준은 수갑에 묶인 두 손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등을 돌렸다.“강나현이 나를 묶어두려고 수갑까지 채웠어!”금속 수갑은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반하준이 수갑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 살갗이 베인 것이다.일부는 살을 파고들어 피와 살이 드러나 끔찍하기까지 했다.손목의 잘린 살점들이 수갑에 뭉쳐있어 하얀 손목뼈가 보일 정도였다.“어이쿠!”다친 반하준의 손을 본 손님들은 모두 일제히 충격과 슬픔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이 정도로 처참한 광경에 차마 반하준을 탓할 수가 없었다.강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도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반하준은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도 강나현을 기절시켰는데 강나현의 능력으로 어떻게 반하준의 손에 수갑을 채우겠나.반하준이 직접 손에 수갑을 찬 게 분명했다.심은호도 그녀와 똑같은 의심을 하고 있었다.단지 모든 책임을 강나현에게 돌리려고 그렇게 둘러댔을 뿐이었다.서경에서 강나현을 제일 싸고돌았던 그조차 그녀를 버렸다.아마 오늘 밤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강나현이 반하
강민아는 휴게실로 향했다. 반하준의 계획을 파악하자마자 심은호에게 알리고, 그걸 이용해 반하준과 강나현을 함정에 빠뜨리는 방법을 선택했다.그녀는 내내 어떻게 두 사람의 계획을 폭로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직접 사람들 앞에서 폭로하면 반하준은 오히려 그녀가 이 모든 것을 꾸몄다며 적반하장으로 굴게 분명하다.이제 심은호가 칼을 건넸으니 그녀는 반하준과 강나현을 폭로하기 위해 휘두르면 그만이다.강민아가 사람을 시켜 열쇠를 가져와 방 문을 열자 향긋한 냄새에 피비린내가 뒤섞여 코끝으로 스며들었다.“콜록!”강민아는 목구멍에서 솟구치는 역겨움에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의 뒤로 여러 개의 머리와 크게 뜬 눈이 호기심 가득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강민아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심은호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조심해요!”심은호가 선두로 앞장서자 강민아는 그 뒤를 따랐다.그때 강나현이 얼굴에 잔뜩 멍이 든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이미 기절한 듯했다.심은호는 역겨운 듯 고개를 돌렸고, 강민아는 옷을 얇게 입은 강나현의 모습을 보며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그녀에게 덮어주었다.그 순간, 어두운 구석에서 반하준이 거칠게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강민아를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구석에 기대어 앉은 반하준의 두 손이 등 뒤로 묶여있는 것을 보았다.그가 입고 있던 셔츠는 단추가 여러 개 풀려 있었고 옷깃이 활짝 열린 채 가슴에는 새빨갛게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흐트러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젖은 이마에 붙어 있었고, 가슴을 들썩이는 그의 두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그가 홱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서 강민아를 주시했다. 이젠 이 방을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지금 여기서 나가도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강민아 뒤에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가운데 낯익은 얼굴 몇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그들은 반하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충격에 휩싸여 외쳤다.“반... 반 대표 맞아?”“하준아, 너 어떻게 강나현이랑... 세상에! 남들이
강민아는 태산 그룹 임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쯤 반하준과 강나현은 정신이 거의 나간 상태일 거다.반하준은 강나현과 짜고 파티에서 심은호의 스캔들을 폭로할 계획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필 멍청한 상대와 손을 잡았고 강승 테크 내부를 장악한 강민아의 능력을 간과했다. 반하준은 강승 테크 직원을 매수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가 직원과 접선할 때 그들이 강민아에게 반하준이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는 걸 알릴 줄은 몰랐을 거다.강민아는 그들이 계획대로 흘러가게 놔두었다.반하준은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매수했다. 그들은 자기가 할 일을 제외하고 남들이 뭘 하는지 몰랐다.누구는 휴게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누구는 파티에서 심은호에게 술을 건네며, 또 다른 사람은 담당자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주방에서 술에 약을 타는 역할을 했다.그 모든 정보가 강민아의 귀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반하준이 심은호에게 무슨 짓을 할지 전부 파악했다.그리고 강나현은 그중 한 직원에게 약물을 건네는 역할이었다.일부러 디퓨저까지 사서 휴게실에 놓는 걸 강민아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강민아는 강나현과 반하준이 모든 일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디퓨저와 카메라가 있는 방을 바꾸었다.반하준이 심은호의 몸에 와인을 뿌렸을 때 그가 곧 움직일 거라는 걸 예상했다.강민아는 오늘 초대된 재벌가 거물급 인사들에게 반하준의 비열한 물밑 작전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다.“민아 씨!!”갑자기 장내에서 심은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고,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심은호가 황급히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심은호의 얼굴은 다소 하얗게 질렸고 눈빛에는 의미심장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심 대표, 왜 그래?”누군가 묻자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돌아보며 몰려들었다.심은호는 강민아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건네는 척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방금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옆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서 들어갔더니 반하준과 강나현이...”심은호는 머
심은호가 말했다. “셋 셀 테니까 알아서 결정해. 안 그러면 아무도 해독제를 못 받아.”그는 웃으며 반하준에게 말했다.“삼.”반하준의 이마엔 푸른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심은호는 순전히 그들을 놀리려고 해독제를 꺼낸 것이었다.“강나현한테 줘!”반하준은 강나현이 또다시 약기운을 빌미로 무모하게 자기 몸에 손대지 않도록 차갑게 말했다.이내 강나현이 소리를 질렀다.“하준 씨한테 줘!”반하준은 신경이 예민하게 지끈거리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왜 나한테 먹여? 멀쩡한 정신으로 너한테 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으라고?”반하준이 거칠게 쏘아붙이자 강나현은 어깨가 살짝 떨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반하준은 욕설을 퍼붓고 난 뒤 서둘러 심은호를 다그쳤다.“나와 강나현을 여기 가둔 주범이 바로 너지? 민아 비서를 통해 민아 이름을 대고 날 여기로 끌어들인 것도 너야.”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반하준의 뺨에는 굵직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그는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심하게 헐떡이며 심은호를 향해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심은호는 해독제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강나현은 곧바로 달려와 해독제를 집어 들고 다시 반하준에게 돌진했다.“하준 씨, 해독제 먹어!”어쨌든 반하준의 두 손은 이미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고, 그만 멀쩡한 상태로 둘이 일을 치르면 나중에 이성을 잃었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을 거다.강나현이 반하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심은호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반하준이 강나현을 뿌리치고 가려는데 그녀가 앞을 가로막았다.“하준 씨, 빨리 약 먹어!”“꺼져, 나 나갈 거야!”소리를 지르며 강나현은 반하준의 입에 약을 밀어 넣었다.강나현은 곧바로 반하준의 입을 막았고 반하준은 작은 알약이 입에서 녹는 것을 느꼈다.눈을 크게 뜬 반하준의 목구멍에서 억눌린 분노의 소리가 흘러나왔다.그렇게 그는 심은호가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걸 보고만 있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목
강나현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자 반하준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급히 돌아서서 강나현을 경계하며 마주 봤다.“그럴 필요 없어.”반하준은 강나현에 대한 경계심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딱딱하고 차갑게 말했다.하지만 강나현은 반하준이 왜 자신을 거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 꺼내서 구해줄 사람 부르면 되잖아!”반하준은 강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강나현의 눈빛 속 욕망을 진작 꿰뚫어 보고 있었다.강나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지금 약기운을 빌미로 그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속셈이다.휴대폰이 바지 주머니에 있는데 강나현이 주머니에 손을 대는 순간 또 어떤 선 넘는 행동을 할지 몰랐다.반하준은 등을 문에 딱 부이고 말했다.“멈춰! 움직이지 마!”그는 강나현을 위협했다.“나한테서 떨어져!”“하준 씨, 못 참을까 봐 걱정돼?”강나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차마 감추지 못하며 반하준을 달랬다.“내가 하준 씨 다치게 할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계속 이러면 몸이 망가질 거야.”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몸 안에서 비명을 지르던 세포들이 강나현을 통제했고, 그녀는 조바심을 내며 반하준을 향해 돌진했다.“내가 휴대폰 꺼내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날 무서워해?”그때 반하준의 등 뒤에서 달칵 소리가 들리더니 고개를 돌리자 방 문이 열렸다.반하준은 눈을 크게 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이 그의 눈에는 희망처럼 보였다.누군가 그를 구하러 온 건가?방 문이 열리고 옷을 갈아입은 심은호가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심은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하준을 훑어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셔츠부터 바지까지 모두 엉망이 된 채 흐트러진 반하준의 모습은 처음 본다.반하준은 숨을 헐떡이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심은호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는 지금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심은호에게 보여도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저 그를 제압한 뒤 도망치고 싶었다.심은호는 그의
강민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반하준은 눈을 크게 떴다.그 이름이 무수히 많은 작은 바늘로 뒤바뀌어 심장을 쿡쿡 쑤시며 온몸에 통증을 느끼게 했다.강나현은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하준 씨, 난 당신을 구하고 싶어. 당신도 날 구해줘!”반하준은 발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강나현이 그의 몸을 덮치고 있어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꺼져!”그는 강나현의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걸 보며 고함을 질렀다.그가 홱 몸을 돌리자 강나현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아악!”강나현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고, 반하준은 도망치듯 몸을 웅크리고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났다.강나현은 바닥에 쓰러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반하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무 아파!”반하준은 몸에 천 조각만 남은 강나현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문득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리며 가슴을 뚫고 피부 밖으로 튀어나올 듯 심하게 요동쳤다.반하준의 눈앞에 헛것이 보였다. 강나현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울부짖을 때 그녀의 얼굴이 강민아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순식간에 반하준의 몸속에서 난폭한 세포가 꿈틀거리고 피가 들끓으며 몸이 주체할 수 없이 심하게 떨렸다.“하준 씨!”강나현은 손과 발을 동원해 반하준을 향해 기어갔다.반하준은 제자리에 굳어진 채 눈가가 선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입술 위로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강나현은 그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이윽고 반하준의 동공이 훅 움츠러들며 단번에 시야에서 강민아의 흐릿한 얼굴이 사라졌다.강나현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설레던 마음이 사라지고 피가 차갑게 식으며 발로 강나현의 손을 뿌리쳤다.“하준 씨?”강나현의 의아한 눈빛에는 속상함이 내비쳤다.“난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역겹게 굴지 마!”그는 차갑게 이 말을 뱉어내고는 다시 방 문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강나현은 반하준이 문을 발로 차는 모습을 그저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