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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Author: 임공
지하는 병실 문을 두어 번 상징적으로 두드렸다.

“유건아, 나 들어간다.”

문을 열고 시연을 휙 끌고 들어갔다.

“사람 데려왔다!”

곧장 침대 앞으로 가서 손을 놓자, 시연은 앞으로 확 밀렸다.

“꺅...”

발이 헛디뎌 중심을 잃은 시연은 침대로 고꾸라졌다.

넘어질까 봐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본능적으로 기대버린 사람은, 유건이었다.

유건은 기다렸다는 듯 단번에 그녀를 안아 올렸다.

“괜찮아?”

그리고는 지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행동 좀 조심해! 시연이는 임신 중이라고!”

지하는 눈썹만 슬쩍 올리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난 이만 간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려다가, 문득 다시 뒤를 돌아 시연을 가리켰다.

“아, 맞다. 시연 씨, 밥 먹다 말고 따라온 거라 아직 배고플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진짜로 나갔다.

복도엔 정민환과 정기환이 좌우로 서 있었다. 마치 병실 수호신처럼.

그들은 지하를 보자 바짝 서며 인사했다.

“지하 도련님.”

“응.”

지하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형수님이 좀 날뛸 텐데, 잘 보고 있어. 절대 도망 못 가게.”

“네, 도련님.”

“그럼, 수고들 해.”

...

병실 안.

시연은 유건 품에서 빠져나가려 팔을 밀었다.

하지만 유건은 꽤 단단히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와줬네?”

‘뭐래...?’

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 그 말, 당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왔는지, 당신이 모를 리 없잖아요?”

그녀는 손목을 들어 유건의 눈앞에 들이댔는데, 하얀 팔목에 붉게 남은 자국이 선명했다.

지하는 손이 워낙 거칠었는데, 시연에게 사심이 없기에 더더욱 거침없었다.

하지만 이런 시연의 손을 본 유건은 마음이 아주 아팠다.

유건은 시연 손목을 조심스레 감싸 쥐고 쓰다듬었다.

“많이 아파? 약이라도 바를까? 내가 지한한테 약국 좀...”

“됐어요.”

그는 한 손만 자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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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76화

    “안 되는 거예요?”시연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수저를 들었다.“알겠어요. 난 당신과 달리 입맛에 안 맞는 식사 한 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바로 반찬을 집은 후, 죽을 떠먹으며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유건은 차마 말을 끊지 못하고, 평소처럼 말없이 반찬을 덜어주었다.밥 먹을 땐 말이 없는 법이라 시연은 금세 배를 채웠다.오히려 유건은 그녀 챙기느라 두어 숟갈밖에 못 먹었다.입을 닦은 시연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이제 가도 돼요?”유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시연을 자극할 수 없어 조심스레 팔로 그녀를 감쌌다.“여기서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돼?”‘같이 있긴, 뭐가 좋아서...’시연은 눈을 굴리며 대꾸했다.“여긴 잠 자기 불편하거든요.”보호자 침대를 가리켰다.“너무 작아요. 나, 요즘 뒤척임이 심해졌단 말이에요.”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밤에 잠들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보호자 침대는 안 돼.”유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 침대는 넓으니까 충분히 잘 수 있을 거야. 네가 뒤척여도 내가 안고 잘 테니까, 떨어질 걱정은 없어.” 두 사람이 같이 자자는 얘기였다.시연은 잠시 멍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은 것처럼, 피식 웃음이 터졌다.“내가 뭐라고 말했길래, 아직도 우리가 한 침대에 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유건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시연의 말투를 따라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언제 허락했길래, 네가 방을 나가서 자는 게 당연한 줄 아는 거야?”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나 말싸움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시연은 황당하다는 듯 잘라 말했다.“어쨌든 난 당신이랑 같이 안 잘 거니까... 못 나가게 할 거면, 난 여기 소파에서 밤새 앉아 있을 거예요.”그 눈빛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타협은 없다는 듯.결국, 유건이 물러섰다.“좋아, 같이 자자고 안 할 테니까 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77화

    거칠게 시연에게 키스하는 유건의 행동에는 분명히 어떤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건... 내 분풀이야...’ 그는 불쾌함을 발산하듯 시연을 깨물었다. 물론, 세게가 아니라 살짝이었다. 시연은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물리기까지 하니,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입을 열어, 그대로 되물었다. 남자는 가볍게였지만, 시연은 제대로였다. 아프게, 확실하게. “읍...” 고통을 느낀 유건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깊어지고, 거칠어졌다. ‘미쳤나, 이 남자...?’ 시연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유건이 얼마나 거칠게 키스하든, 그녀도 그만큼 세게 물었다. 결국 입 안에 금세 피비린내가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유건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놓았다. 시연이 고개를 들자, 유건의 입가에 피가 맺혀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이어서 손끝으로 피를 닦았고, 손에 붉은 자국이 묻었다. “진짜 독하다. 사람을 이 정도로 문다고?” 시연은 순간 당황했다. 이 정도로 세게 물 줄은 몰랐다. ‘내 잘못인가...?’ 하지만 곧 눈을 부릅떴다. “누가 먼저 키스하래요? 자업자득이죠.” “뭐?” 유건의 가늘어진 눈엔 모호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젠 내 아내한테 키스하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난 듯한 말을 남기고 욕실을 나가버렸다. “옷은 밖에 있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골라.” 밖으로 나온 시연은, 그제야 유건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아 이 바보... 내 짐을 통째로 보냈네.’ 시연은 한숨을 쉬며 캐리어 앞으로 다가갔고, 옷을 골라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병실로 나오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리니, 발코니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옆모습이 어딘가 쓸쓸하고 지쳐 보였다. 시연은 아무 말 없이 보호자 침대로 가서 앉았다. 머리는 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78화

    유건은 숨이 턱 막혔다. 마치 이빨을 드러낸 들고양이가 가슴팍을 사정없이 할퀸 듯, 마음에 생채기가 그대로 남았다. ‘이 기분, 진짜 최악이다.’ 표정이 굳어졌지만, 여전히 잘생긴 남자의 얼굴에 억지 미소가 걸렸다. “내 아내한테 잘해주는 게 왜 시간 낭비야? 그리고 당신, 내 아내인 이상 단 하루도 도망 못 갈 줄 알아. 알아서 하면 뒷일은 감당해야 할 거야.” ‘허...?’ 시연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마음대로 해요. 어차피 손해 보는 건 내가 아니니까...” 그리고 말을 툭 끊고, 시선을 돌렸다. “머리 다 말렸어요? 나 이만 잘 거예요.” “응, 다 말렸어.” 유건은 수건을 옆에 내려놓고 시연을 번쩍 안아 올렸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팔은요...? 팔 망가지게 하려고요?”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힘써도 돼요?” “괜찮아.” 유건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피부만 좀 까진 거라 괜찮아. 그리고 내가 안 안아주면, 당신이 혼자 알아서 침대에 누울 수 있을 것 같아?” 말하는 사이, 그는 시연을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당신...!” 시연은 눈을 부릅떴다. “같이 안 잘 거라고 했잖아요!” “진정해.” 유건은 그녀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당신이 싫어하니까 약속한 거고, 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보호자 침대는 싫다며? 당신은 여기서 자. 나는 보호자 침대에서 잘게.” ‘뭐...?’ 시연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환자 침대에서 자고, 환자인 고유건 씨는 보호자 침대에서 잔다고?’ “장난치지 좀 마요!” “여보, 내 말 좀 들어.” 유건은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당신이 편히 못 자면, 나도 편히 못 자. 그러니까 그냥 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시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면 내가 마음이라도 돌릴 줄 아나?’ “그럼 알아서 해요.” 이제 할 말은 다 한 듯, 시연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79화

    시연은 민환을 바라보며 말했고, 민환은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정말 땅이라도 파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그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즉, 시연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얼른 가 봐요.” 시연은 가방을 들었다. “나도 출근해야 해서요.”“여보!” 유건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화났어?”“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시연은 차분하지만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화났다고 하면, 그 여자 만나러 안 갈 거예요?” “여보... 장소미 씨가 지금 많이 힘들어...” 유건은 난감한 얼굴이었다.“알아요. 그래서 나도 당신이 가는 거 안 막았잖아요.” 시연은 유건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는 내 일이 있고, 내 일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당신이 내 일을 방해하면... 나, 당신이 미워질 거예요.” ‘미워질 거라고?’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유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곧이어 그는 여자의 손을 놓았다.시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인수인계를 마치고 잠시 앉았는데, 유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무슨 일인데요?” [지금 회사로 가는 중이야.] ‘회사? 장소미는? 그럼 팔은?’ 시연은 잠깐 놀라 물었다. “수액은 안 맞아도 돼요?”[맞아야지. 낮엔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 병원에서 맞을 생각이야.] ‘정말 일에 미친 사람.’ 시연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지난번에도 칼을 맞고 병실에서조차 일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때 유건이 덧붙였다. [오늘 퇴근하고 데리러 갈게.] 시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당신은... 당신이나 잘 챙기세요.”[그렇게 정했어. 병원 앞에서 기다릴게.] 그 말을 끝으로 유건은 전화를 끊었다. 시연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이걸로 다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0화

    “조 선생님, 그런 뜻이 아니라...” 시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팀도 아니고, 조한나가 맡은 환자 상태는 시연이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진료차트를 정리하란 말인가?“그럼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 해!” 조한나는 차트를 시연 손에 억지로 쥐여주며 말했다. “빨리 처리해. 난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해!”“아, 조 선생님...” 시연이 불렀지만, 조한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시연은 진료차트를 품에 안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유건이었다.[여보. 나 지금 병원 앞이야. 내려올래?]시연은 손에 들린 진료차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일 안 끝났어요. 좀 더 있어야 해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요.”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유건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표정은 어두워졌고,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렀다. ‘안 내려온다고? 그럼 내가 올라가야지.’‘남자는 융통성 있어야 하니까... 뭐 이런 일쯤이야.’그는 외과 병동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고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조한나가 나왔다.그녀는 전화 중이었다. “나 출발했어. 근데 나오기 직전에 누군가 진료차트를 처리하라고 하길래, 지시연한테 맡겼어. 어, 그 재벌 며느리 말이야.” “맞지? 나도 걔 되게 유난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잘났으면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살지, 뭐 하러 여기 와서 일을 해? 너 그거 알아? 양석현 교수가 걔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난 걔네 둘 뭐 있는 줄 알... 아악!”순간, 핸드폰이 손에서 확 낚아채졌다. 조한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누, 누구...!!!”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건이 손을 들어, 그녀의 핸드폰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꺄아악!” 조한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유건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1화

    유건은 간신히 유지하던 표정을 더는 감추지 못 했다. “내가 보기엔, 네가 너무 모르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든, 우리 관계엔 아무 영향도 없을 거야.” ‘영향이 없다고? 그럴 리가...’ “당신은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난 달라요.” 시연은 입술을 꾹 눌러 담았다.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란 건 인정해요. 나도 한때는 당신한테 마음이 있었고, 앞으로 쭉 함께할 수 있겠다는 환상도 품었으니까요.” “그럼 계속 그렇게 생각해.”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말하는 유건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하지만 시연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이젠 그만두기로 했어요.” “그럴 필요 없어...” 유건은 놀란 듯 여자의 손을 붙잡고, 두 손으로 감쌌다. “그럴 필요 없어, 여보. 난 정말로 장소미 씨를 보살펴주고 있을 뿐이야. 그 이상은 없어.” ‘그 이상은 없다고?’ 시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하나만 물을게요. 대체 언제까지 장소미를 돌볼 생각이에요? 하루? 이틀?”유건은 말이 없었다. 소미의 상태를 생각하면, 금방 끝날 일이 아닌 건 분명했다. 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루아침에 회복시킬 수 있는 병은 아니었다.“오래 걸릴 거잖아요?” 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내 입장에선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여보...” “그 여자를 보살피고 싶으면, 마음껏 그렇게 해요. 하지만 난, 내 남편이 다른 여자한테 그렇게까지 잘해주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유건 씨, 난 싫어요.”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남자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냈다. 허공에 남은 손끝을 바라보자, 유건은 가슴이 싸하게 저며왔다. “나한테... 아무런 미련도 없는 거야?” “있죠.” 시연은 잠시 생각한 뒤, 솔직하게 말했다. “당연히 아쉽고, 조금은 슬플 거예요. 하지만 인생엔 사랑만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을 잃는 건 안타깝지만... 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2화

    식사를 마치고, 유건은 약속대로 시연을 진아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기환은 이미 짐을 옮겨놓은 상태였다.“도착했어요. 난 이만 올라갈게요.” 시연은 손을 흔들고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손이 탁 잡혔다. 유건은 앞을 보며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이 건물, 복도 등이 다 고장 나 있어. 당신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어떡해?”‘진짜 별걸 다 챙기네.’ ‘이럴 필요가 있을까? 지금 우리 같은 사이에?시연은 굳이 뿌리치지 않았다. ‘고유건도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내가 애교 부리는 것도, 밀당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다음 날, 시연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빴다. 오전에 정리해야 할 자료와 진료차트가 한가득, 오후엔 외래 진료까지 있었다.외래 진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병원 로비 쪽이 왁자지껄해졌다.시연은 마지막 환자를 진료하고 차트를 건네며 당부했다. “정해진 날짜에 꼭 다시 오세요.” “네, 선생님.”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시연은 궁금해져서 복도를 따라 걸었다. 몇 걸음 가지도 않아, 날카롭고 귀에 익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보지 마! 다들 그만 봐!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시연은 잠깐 멍해졌다가, 곧 머릿속에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곧이어 두 눈이 그 사실을 확인해 줬다. 조한나였다.로비 한쪽, 병원 홍보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의료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환자와 보호자였다.“비켜! 다들 꺼져! 가라고!!” “야, 사진 속 여자랑 똑같은데?” “진짜야? 가슴에 명찰 달고 있잖아.” “맞네, 조한나라고 적혀 있어!” “어머, 저 여의사, 진짜 뻔뻔하네.”“더러워, 손대지 마!” “아악!”조한나는 눈이 벌게진 채, 게시판에 붙은 사진을 찢고 사람들을 마구 밀쳤다. 그리고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소리 질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시연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3화

    시연은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을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조한나의 상대 남자들... 얼굴은 꽤 괜찮았다.‘인성은 글러도, 눈은 제대로 달린 모양이네.’그렇게 감탄하고 있던 찰나, 시연의 눈앞이 훅 어두워졌다. 누군가 그녀의 두 눈을 가렸다.은은한 민트향의 향수 냄새. 누군지 안 봐도 알 것 같은 그 향기.유건은 시연의 손에서 팸플릿을 쓱 빼내고 나서야, 두 손을 풀었다. “이런 거 보지 마. 예쁜 눈 더럽히지 말란 뜻이야.”‘또 시작이네...’시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만으로도 유건은 알 수 있었다. ‘나랑 눈도 마주치기 싫다는 거구나...’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만하지. 내가 잘못했으니까. 조금만 참자.’“오늘 저녁은 같이 못 먹겠어.” 유건은 말투를 낮춰 설명했다. “수액 맞고, 바로 옆 도시로 가야 해. 비즈니스 미팅이 있어.”“나한테 그런 말 안 해도 돼요.” 시연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일찍이 그런 반응을 예상한 유건은 예전만큼 동요하지 않았다.“아니, 해야 해.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매일 당신한테 보고할 거야.”‘맘대로 하던가.’ 시연은 그저 대꾸하지 않았다. “할 말 다 했어요? 그럼 어서 수액 맞으러 가요.” ‘제발 빨리 좀 가라.’유건은 그녀의 표정에서 ‘귀찮음’ 세 글자를 읽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 내일 오후, 늦어도 저녁엔 돌아올 거야.”“그래요...” 시연은 성의 없는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유건은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시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만큼은 안 봐도 되네. 다행이야.’그리고 몸을 돌리자마자, 기환과 딱 마주쳤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를 은근히 지켜주는 사람이었다.기환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시연을 보자 화들짝 놀라 그 봉투를 얼른 등 뒤로 숨겼다. “형수님, 이제 퇴근하세요?”“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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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4화

    진아는 눈을 깜빡이며 말끝을 흐렸다.“그냥... 요즘 시험 준비 때문에 조금 힘들어서 그런가 봐.”“그럴 줄 알았어.”성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진아의 팔을 놓았다.“이따 밥 오면, 네 몫까지 두 배로 먹어야 해. 알지?”띵동-그 말을 막 끝내자마자,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오! 배달 왔다! 내가 받을게!”성빈은 성큼성큼 현관 쪽으로 향했다.“후...”그가 나가자마자, 진아는 긴 숨을 내쉬며 이마를 문질렀다.그 모습을 본 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진아를 바라봤다.“긴장 풀어. 얼굴 안 빨개졌어. 성빈이는 둔해서 눈치 못 챌 거야.”진아는 화들짝 고개를 들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근데... 너 어떻게 알았어? 티... 많이 났어?”“아니.”시연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근데 난 성빈이처럼 눈치 없는 타입은 아니거든.”“시연아...”진아는 시연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제발. 약속해.”“안 해.”시연은 웃으며 진아의 등을 토닥였다.“말할 거였으면 진작에 했어. 근데 진아야, 너 이렇게 계속 말 안 하면... 성빈이는 평생 몰라.”진아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나는 성빈이가 날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나 혼자 좋아하는 거야.” “진아야...”시연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진아를 바라보았다. 진아의 씩씩한 말투 뒤에 가려진 애정이 너무 뻔히 보였다.진아가 웃어 보이자, 눈꼬리가 살짝 휘어지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내가 성빈이를 좋아하는 건 내 마음이야. 성빈이는 날 그냥 여자 사람 친구로 생각하지.”“근데 내가 그 얘기 꺼내면, 그 친구마저 사라질 것 같아서 싫어. 그냥 지금 이대로도 좋아.”그 말에 시연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마음을... 얼마나 오래 혼자 안고 있었을까.’그때, 성빈이 음식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왔다!”두 사람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뭐야? 무슨 비밀 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3화

    무언가를 깨달은 순간, 시연의 눈빛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그리고 몸이 저도 모르게 작게 떨렸고, 입술마저 새하얗게 질렸다.‘설마... 진짜 그 이유야?’“당신...”시연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있었다.“당신... 장소미를 살리려고, 날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거예요?”“당신 미래 장인어른의 목숨은 소중하고, 나는... 우리 우주는, 그저 버려도 되는 목숨이에요?”시연의 눈가가 붉어졌고,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당신... 예전에 분명히 말했잖아요. 다신 나를 몰아붙이지 않겠다고.”‘맞아... 그땐 그 말을 믿었는데.’유건은 약속을 지켰다. 강제로 함께하자고 하지 않았고, 이혼하자는 말에도 아무 말 없이 수긍했다.그런데 지금, 다시 칼을 쥐고 휘두른 건, 장소미 때문이었다.[시연아.]유건은 그녀의 숨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너... 지금 떨고 있어? 어디 안 좋아? 추워?]시연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G시 고씨 가문의 고유건 대표님... 이 정도쯤은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지.’“진짜 대단해요. 힘 있는 사람이란 건 이런 거군요...”[시연아, 그런 뜻이 아니야. 난...]“그럼 뭐예요?”시연의 목소리가 커졌다.“그럼 당신, 대체 왜 날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요? 내가 뭐 그렇게 잘못했는데요?!”유건은 입을 열지 못했다. 진실을 말 할 수 없으니까.‘오선화 교수 말대로... 지금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쉬어야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남겨둘 수 있다고 말 할 순 없어.’ ‘그 말을 지금 시연이에게 하면... 무너질 거야.’‘아이도, 이미 시연의 뱃속에서 꽤 자랐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시연에게 사실을 말하는 건 너무 잔인했다.‘시연이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라.’“하...”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자, 시연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내가 바보였어요. 이런 전화... 걸질 말았어야 했는데...”‘한마디만 하면... 이 사람이 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2화

    “교수님.”시연은 당연히 무슨 업무 지시일 거라 생각하며 조용히 문을 닫고 다가섰다.“앉아.”양석현은 손짓으로 자리를 권하며 시연을 위아래로 찬찬히 살폈다.“아직도 컨디션 안 좋을 텐데, 벌써 출근한 거야?”“괜찮아요.”시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 지었다.“감기 기운 조금 있었을 뿐이에요.”“음...”양석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딘가 말을 꺼내기 어려운 표정이었다.그러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이제 임신 후기가 됐잖니. 그냥... 이번 기회에 병가 좀 길게 쓰고, 출산하고 회복될 때까지 쉬는 게 어때?”“네?!”시연은 놀란 눈으로 양석현을 바라봤다.‘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그동안 양 교수는 누구보다 그녀의 업무 능력을 신뢰하고, 임신 중에도 특별 대우 없이 똑같이 대해줬던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교수님... 저는 정말 괜찮아요. 이전에 선배 선생님들도 다 출산 직전까지 근무하셨어요.”“알아.”하지만 이번엔 양석현이 단호했다.“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고 판단했어. 시연아, 그냥 내 말 듣고 이번엔 좀 쉬어.”시연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이상해. 무조건 쉬라니... 무슨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해.’“교수님, 무슨 일 있었나요? 저에 대한 안 좋은 얘기라도 들으신 거예요?” 양석현은 깊게 숨을 들이쉬곤, 조심스레 말했다.“병원 고위층에서 직접 전화가 왔어. 네가 당분간 병가 쓰게 해달라고 하더구나.”“네...?”시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병원 고위층...? 갑자기 왜 그런 명령이...?’“교수님... 이번엔 또 누가 뭐라고 한 건가요?”“그런 건 아니고...”양석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별다른 설명은 없었어. 그냥 병원 측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한 거라고만 했어.”‘종합적인 판단...? ‘내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인가?’시연은 한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그냥 평범한 레지던트일 뿐인데...’‘병원 고위층이 나서서 병가를 밀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1화

    VIP 병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들락날락했고, 장미리와 장소미는 병실 밖으로 내보내졌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안쪽에선 응급처치가 시작됐다.“유건 씨...!”유건이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자, 장소미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대로 유건에게 달려들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무서워요... 아빠가... 아빠가 이대로 못 일어나시면 어쩌죠... 흐윽...”유건은 소미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였다. “의사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하고 계셔. 너무 걱정하지 말고...”하지만 위로의 말을 끝내기도 전, 유건의 시선은 복도 반대편에서 막 도착한 사람에게 향했다. 시연이었다. 유건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가, 소미를 떼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지금... 내가 장소미를 뿌리치면... 더 무너질 거야.’‘하지만... 시연이 앞에서 이러는 건...’시연은 그런 모습을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이제 놀랍지도 않아. 저런 장면, 처음도 아니니까.’“지시연!”갑자기 장미리가 시연을 발견하곤 발걸음을 재촉해 다가왔다.“지시연!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네 아버지가 지금 안에서 저러고 있는데, 왜 이러고만 있는 거야?!”장미리는 시연의 손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돈이 필요하니? 얼마든지 줄게. 필요한 게 얼마든 말만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게!”손을 너무 세게 잡힌 바람에 시연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놓으세요.”하지만 장미리는 놓지 않았다. ‘이 사람... 정말 절박하구나.’ ‘그 정도로... ‘그 사람’ 상태가 심각한 거야?’“맞다... 너 돈은 안 부족하지? 고씨 기문 며느리인데, 뭐가 부족하겠어?”장미리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원하는 게 뭐야? 말만 해! 내가 무릎이라도 꿇을게. 네 엄마 묘를 원래 자리로 돌리자는 거야? 아니면 내가 너한테 사과하길 바라는 거야? 뭐든지 해줄게...”시연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고, 어떤 감정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0화

    ‘생명이 장담 못 할 수도 있다니...’유건은 상상도 못 했던 진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유건의 눈매엔 서리가 맺힌 듯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턱선은 단단히 굳었고, 두 손은 무의식중에 꽉 쥐어져 있었다.‘결국, 내가 시연이를 제대로 못 챙겼구나...’그 순간, 오선화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사실 전에 사모님께 말씀드린 적 있어요. 일 그만두고 푹 쉬시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태아랑 본인만 생각하시라고요. 그랬으면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었어요. 근데... 사모님이 거절하셨죠.”‘왜 거절했어? 시연아.’유건은 더 이해가 안 됐다.그때, 안쪽 진료실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오선화가 바로 유건 쪽을 향해 조용히 일렀다.“고 대표님, 사모님 나오십니다.”유건은 깊은 숨을 들이쉰 뒤, 표정을 최대한 평정심 있게 정리하고는 자연스럽게 시연 앞으로 다가갔다.“다 끝났어. 오선화 교수님이 그러는데, 특별한 건 없대.”시연은 잔뜩 찌푸렸던 미간을 살짝 펴며 말했다.“그래서 괜찮다고 했잖아요. 굳이 병원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요.”하지만 속으론 안도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괜찮아서...’“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유건은 조심스레 시연의 팔을 감싸며 말했다.“가자. 오선화 교수님께 인사드리고 가자.”“교수님, 수고하셨어요.”“두 분, 안녕히 가세요.”...돌아가는 길. 차 안은 무겁도록 조용했다. 유건은 말없이 운전대를 잡은 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시연을 집으로 데려가는 중이었다.도착하자, 먼저 내린 그는 시연 쪽으로 돌아와 문을 열어주었다.시연은 남자의 얼굴을 힐끔 보았는데, 표정은 어둡고, 눈빛엔 깊은 생각이 깃들어 있었다.‘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장소미랑 문제 생긴 거야?’ ‘혹시... 또 안 좋은 소식 들은 건가?’시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나 혼자 올라가도 돼요. 오늘 밤, 내가 시간을 뺏었잖아요.”그 말에,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9화

    “시연아!”유건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시연을 그대로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눈을 떼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 눈동자에는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어디 아파? 또 불편해?”시연은 눈을 꼭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또야... 이 어지러운 느낌...’ ‘눈앞이 자꾸 흔들려...’세상이 좌우로 출렁이는 듯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어지럼증이 다시 찾아왔다. “시연아?”아무런 대답 없는 시연에 유건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조금만... 잠시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잠깐 기다리자고? 이 상태에서 어떻게 기다려?’유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고, 두 팔로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며 말했다.“기다릴 수 없어. 병원 가자.”시연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유건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재빨리 차로 향했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그가 평소 신뢰하던 사설 산부인과였다.예약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오늘 밤 근무는 오선화 교수였다. 시연은 검진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유건 앞에 오선화가 나타났다.그녀는 양팔을 가볍게 감싸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건을 훑었다.“어머, 고 대표님. 그렇게 바쁜 분이 오늘은 웬일이세요?”그 말투에는... 분명한 날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유건은 바로 기억해 냈다. 며칠 전, 오선화 교수에게 전화가 온 적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시연과 냉전 중이던 그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땐 감정이 너무 엉켜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그리고 바로 표정을 차분히 가다듬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교수님, 지난번 연락하셨을 때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됐어요.”오선화는 쿡 웃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고 대표님이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고 대표님의 아내와 아이에게 해야죠.” ‘그게 무슨 뜻이지?’유건은 직감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그 말의 속뜻을 읽으려는 듯,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교수님, 돌려 말하지 마시고... 솔직히 말씀해 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8화

    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 맑고 커다란 눈엔 어딘가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맴돌았다.“여기 오자고 한 건 당신이니까, 오늘 당신이 사는 거죠?”“응...?”유건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당연하지. 근데 왜 그런 걸 물어?”“그냥 확실히 해두려고요.”시연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고는 아직 옆에 있는 직원 눈치를 보며 작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앞으로 나 혼자선 이런 데 못 올 거예요. 오늘 제대로 배 채우고 가야죠.”그 말에 유건의 손이 잠시 멈칫했고, 표정도 살짝 굳었다.‘앞으로 못 온다니, 왜 이렇게 쉽게 선을 긋는 거야?’“아냐, 네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 데려올게.”그가 조용히 말했다.“말이라도 고마워요.” 시연은 웃었지만,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근데... 굳이 다시 데려오진 마요. 혹시 장소미가 알게 되면...? 아마 속이 터져라 질투하겠죠? 그건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에요.”‘또 장소미...’미간을 살짝 떨던 유건이 입을 열었다.“시연아, 우리 일이랑 다른 사람은 아무 상관 없어.”“네?”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건을 바라봤다. 곧 이해한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결국, 장소미 편을 들겠다는 거네. 우리 관계가 여기까지 온 게 그 사람 때문은 아니라는 뜻... 그래, 알아. 다 내 탓이지 뭐.’“나도 장소미를 탓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 이혼하는 건... 애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잖아요. 나도 잘 알고 있어요.”유건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게... 네가 알고 있는 전부라고?’‘아니야, 사랑... 없었던 건... 너 하나뿐이었어.’그때, 직원이 음식 카트를 밀며 들어왔다.“고 대표님, 사모님, 실례하겠습니다.”테이블 위에 따뜻한 음식이 하나둘 차려졌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시연은 코끝을 찌푸리며 군침 도는 표정으로 말했다.“먹어.”유건은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고, 곧장 시연이 접시에 반찬을 덜어줬다.직접 국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7화

    병가를 낸 김에, 시연은 아예 집에서 푹 쉬기로 마음먹었다. 임신 후반기인 만큼, 몸 상태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곤란했다. ‘지금은 무리하지 말고, 그냥 자는 게 제일 좋은 휴식이지.’그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요기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낮에도 마찬가지. 계속 잠을 자던 시연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무렵에서야 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커튼을 젖히자, 창밖엔 눈이 이미 멎어 있었다. 하지만 풍경은 오히려 더 쓸쓸하고 차가워 보였다.‘배고프다...’그 순간, 시연은 문득 컵라면이 당겼다. ‘가끔 한 번쯤은 괜찮겠지. 너무 자주만 아니면...’이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달걀도 있고 채소도 조금 남아 있었다. 적당히 끓여 먹기 딱 좋은 상태.그녀가 준비를 시작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유건이었다.“여보세요?”[집이야?]“네, 왜요?”[나 지금 네 아파트 1층이야. 올라갈게.]“알겠어요...”시연은 별다른 거절 없이 대답했다. ‘이혼 관련해서 정리하러 온 거겠지.’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벨이 울렸다.문을 열자, 카멜색 롱코트에 같은 톤의 머플러를 두른 유건이 서 있었다. 워낙 잘생긴 얼굴에 깔끔한 옷차림이라, 말 그대로 ‘탑모델’ 그 자체였다.“들어와요.”시연은 돌아서며 말했다.“슬리퍼가 큰 게 없네요. 그냥 양말 신고 들어와도 돼요. 집이 따뜻해서 안 추울 거거든요.”유건은 조용히 거실 소파에 앉았고, 시연은 부엌에서 물을 따라왔다.“여기... 물이에요.”유건에게 컵을 건네며 덧붙였다.“따뜻한 물이에요. 당신 위 약하잖아요. 더군다나 요즘 추워서 찬물 마시면 안 돼요.”순간 눈빛이 흔들린 유건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말했다.“날 걱정하는 거야?”시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마실 거예요, 말 거예요?”그 표정을 눈치챈 유건은 바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마실게.”조용한 공간에, 컵을 탁 놓는 소리가 났고 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6화

    “할아버지, 또 올게요.”시연은 조용히 인사한 뒤 고개를 숙였다.“그래, 그래. 우리 착한 아가.”고상훈은 인자한 미소로 시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시연은 단 한 번도 유건을 보지 않았다. 그저 고상훈에게 인사를 끝내고 곧장 병실 밖으로 돌아섰다.“시연아...”유건이 본능적으로 뒤따르려는 순간, 고상훈의 낮고 묵직한 한마디가 방 안을 가르며 울렸다.“멈춰라!”“넌, 무슨 자격으로 쫓아가냐?”“할아버지...”유건의 발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혼란스러웠다. 머릿속도, 가슴도 엉망이었다.‘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왜 하필 지금... 할아버지는 이렇게까지...?’“따라가지 마.”고상훈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 긴말을 내뱉은 뒤의 피로감이 얼굴에 역력했다.그는 유건을 바라보며 말했다.“넌 네 아이가 너처럼 자라길 바라는 거냐? 커서도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살아가길 원해?”유건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쪼여 드는 듯했다. 숨이 막혔고, 가슴 한가운데가 찢기는 기분이었다.‘나처럼...?’그 말은 유건에게 치명적이었다. 고상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반드시 해야 할 말이기에 던졌다.“한 가지만 약속해라.”고상훈은 더 이상 차가운 말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친, 마지막 당부처럼 낮고 느린 말투였다.“그 여자 연예인? 좋다, 네가 좋다면 만나라. 나도 더 이상 참견하지 않으마. 하지만 내 눈앞엔 절대 데리고 오지 마. 우리 집안엔 한 발짝도 들이지 마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엔 절대로.”‘너는 선택했고, 나는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신, 내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킬 거다.’그 말이 끝나자, 고상훈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인제 그만 가봐. 피곤하구나. 쉬어야겠다.”유건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목은 뜨겁고, 가슴은 무겁고, 머릿속은 멍했다.‘나는 지금, 모든 걸 잃은 건가?’...결국 유건은 참지 못하고 시연을 따라 병실을 나섰다. 배가 많이 불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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