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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Author: 임공
“일어나는 거 도와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시연은 지동성을 부축해 조심스레 일으켰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유건의 눈빛은, 금세 타오르기 시작했다.

‘왜 자꾸 저 인간 몸에... 자꾸 손을 대는 거야?’

유건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지시연, 놔! 그 손 당장 놔!”

“내가... 내가 다시는 그 인간한테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유건의 눈동자에서는 불이 이는 듯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화산처럼, 들끓고 있었다.

시연은 속에서부터 전율이 일었지만, 지동성이 또 다칠까 봐 얼른 보내야 했다.

“이제 가세요, 빨리요.”

시연은 그의 눈을 피하며 재촉했다.

“얼른요!”

“하지만, 시연아...”

지동성은 머뭇거렸다. 딸을 남기고 가는 것이 불안했다.

“제발요, 그냥 가요! 내 일이에요.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요. 여기 남아봤자 또 맞기만 해요, 그걸 원해서 이러시는 거예요?”

“그럼, 또 보러 올게.”

지동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유건의 눈빛은 살기를 품고 있었다.

“가긴 어딜 가?”

‘저 노친네, 생각할수록 더 화난다니까? 시연이가 저 노친네를 지키다니, 내 마음은 점점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한 발짝도 못 나가.”

“고유건 씨!”

시연은 유건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해요! 다신 누구도 때리지 마요!! 알겠어요?!”

“여보!!!”

유건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상처가 뒤섞여 있었다.

“나한테 화내는 건 이해해. 하지만... 저 사람은...”

그때, 지동성이 발걸음을 멈췄다.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 대표님, 이만 시연이를 놔주세요.”

“하.”

유건은 비웃었다.

“저 노친네가 지금... 씨X,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는 다시 앞으로 다가가려 했고, 주먹을 말았다.

“안 돼요!”

시연은 본능적으로 유건을 껴안았다.

“부탁이에요!! 때리지 마요!!”

지동성은 담담하게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말을 이었다.

“내 딸은 내가 가장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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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2화

    시연은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유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협상의 여지... 상상도 못 한 방법...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저 사람, 분명 뭔가 꾸미고 있을 것 같아...’...그날 이후, 시연은 지동성이 사준 강울대 근처 아파트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매일 병원까지 걸어 다니며 출퇴근했고, 생활은 그녀가 계획한 대로 흘러갔다.그리고 유건은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이상하네...’ 조용해서 좋으면서도, 시연은 이상하게 가슴 깊은 곳이 계속 불안했다. 어딘가, 아주 미세하게 균형이 어긋나 있는 느낌.그날 오후, 마침 병원 쉬는 날이었던 시연은 버스를 타고 태산요양병원으로 향했다....“우주 누나, 왔네요?” 경비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인사했다.“네, 저 왔어요.” 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웃음을 멈췄다.“혹시 우주가 뭐 놓고 갔어요? 찾으러 오신 거예요?”“네...?” 시연의 미간이 즉시 찌푸려졌다.“우주가 뭘 놓고 갔다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경비는 당황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어라? 그게 아닌가요? 전 그냥... 뭔가 두고 갔나 싶어서... 그럼 우주 보러 오신 거예요?”“당연하죠.” 시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그 순간, 경비는 뭔가 눈치챘다는 듯 입술을 떼었다.“설마... 정말 몰랐어요? 우주, 여기서 퇴원했어요.”“뭐라고요?” 시연의 온몸이 얼어붙었다.“퇴원이요...? 언제요? 어디로요?”경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안에 들어가서 의사나 간호사분들께 한번 물어보세요. 아마 아실지도...”“네, 알겠어요!”시연은 거의 달리다시피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복도를 빠르게 지나 간호 스테이션에 도착했다.하지만 의사와 간호사들도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저희도 정확한 건 몰라요. 퇴원 절차는 최예민 씨가 진행하셨어요.”“고 대표님과 보호자 되시는 분, 그러니까 시연 씨와 상의해서 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3화

    시연은 병동 복도 끝, 창가에 기대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유건이 병실에서 나왔다.“여보.”남자의 부름에 시연은 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우주 어딨어요? 지금 어디 있어요?”시연의 표정은 얼핏 차분해 보였지만, 꼭 쥔 양손이 그녀의 진심을 말해주고 있었다.‘떨지 마... 지금 화내면 지는 거야.’유건은 여자의 손을 흘긋 보고, 미간을 살짝 좁혔다.“태산요양병원, 솔직히 말해서 최고는 아니야. 자폐 스펙트럼 관련 전문 치료도 그리 뛰어나지 않고.”그는 의도적으로 말투를 부드럽게 했다.“더 좋은 시설이 있어서, 우주를 거기로 옮겼어. 최예민 씨랑 심재규 교수도 같이 갔고, 우주 상태는 아주 좋아.”그 말투, 그 표정... 모든 게 너무 완벽해서 더 불쾌했다.“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요. ‘어디’ 있는지 물었는데, 왜 말을 돌려요?” 시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억눌려 있던 감정이, 그 순간 확 터져 나왔다.“나는! 지금 당장, 우주를... 보고 싶다고요!”유건은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게 시연을 바라봤다.“보고 싶어? 내 조건은 간단해. 당신도 내가 원하는 걸 알잖아?” ‘진짜, 이 인간... 끝까지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네.’순간, 시연은 숨이 턱 막혔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그래, 애초에... 우리는 계약으로 시작된 관계였어. 내가 아주 잠깐, 착각했을 뿐이야.’ ‘고유건의 다정함에, 사람다운 모습에... 내가 방심했어.’시연은 눈을 들어, 유건의 눈동자를 곧장 바라봤다.“당신한텐 장소미가 있잖아요. 장소미가 당신의 ‘나비 공주’라면서...”“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데요? 나한테도, 장소미한테도 왜 이렇게 잔인하게 구는 건데요?”유건은 입꼬리를 거의 티 나지 않게 올렸다.“당신만 순순히 굴었으면, 나도 이런 방법은 쓰지 않았을 거야.”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4화

    우주는 거기 있었다.별산장에 있는 조용한 산기슭에 자리한 독립 고급 전원주택. 심재규 교수와 최예민이 상주하며, 우주에게 1:1 집중 치료와 생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누나!”우주는 시연을 보자마자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달려왔다.“우주야.” 시연은 무릎을 꿇고 동생을 꼭 안았다.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나도! 누나 보고 싶었어!” 그는 시연 뒤에 선 유건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매형도 왔네! 매형, 여기 진짜 크다!”유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매형이 뭐랬어. 여기가 더 좋고, 더 재밌을 거라고 했잖아.”“응, 진짜야!”시연은 놀란 듯 우주를 바라봤다. “여기... 마음에 들어?”우주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좋아! 음식도 맛있고, 방도 넓고... 누나도 올 수 있고!”그 말에 시연은 가슴이 콱 메었다. ‘우주... 정말 행복해 보여.’ 직접 눈으로 보고, 말도 나눠보니 시연이 그간 품고 있던 불안이 조금은 풀렸다.그 순간, 유건이 조용히 시연의 손을 잡았다.“잠깐만, 나 미팅이 하나 있는데, 당신은 우주랑 더 있을 거지? 아니면 나랑 같이 갈래?”시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히 우주랑 있고 싶어요. 지금은...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니까요.”유건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옆머리를 정돈해 주듯 쓸었다. 그 동작은 다정했지만, 시연은 알았다.‘이건 다정함이 아니라, 경고야.’“기환이를 두고 갈게. 당신 곁에 누군가 있어야 내가 안심되니까.”‘보호? 아니지, 감시겠지.’시연은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 겉으론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그때 유건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손으로 잡으며 눈을 맞췄다.“여보,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해. 우주는 곧 해외로 나가야 하니까.”“환경이 자주 바뀌는 건 아이에게 좋지 않잖아. 그건 당신도 알지?”그 말에 시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이거... 협박이구나. 또 마음에 안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5화

    유건은 숟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시연의 입가로 가져갔다. 표정은 다정했고, 동작은 섬세했다.겉보기엔 따뜻함이 느껴지는 배려 같았지만, 시연의 머릿속엔 오늘 병실에서 본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그때도, 저렇게 장소미를 먹이고 있었지.’그리고 입술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시연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됐어요.” “여보.”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내 말은... 내가 직접 먹을게요.”남자의 눈치를 보며, 시연은 재빨리 수건을 내려놓고 국그릇을 받아서 들었다. “머리도 거의 말랐으니까 그냥 내가 마시면 돼요.”그녀는 숟가락을 들어 조용히 한입을 떠넣었다.유건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간을 슬쩍 풀며 물었다.“맛은 어때? 괜찮아?”“음... 괜찮아요.” 시연은 평범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아무리 좋은 재료로 정성껏 끓인 거라도... 지금은, 아무 맛도 안 나.’유건은 그녀의 미묘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별로 맛없는 것 같네?” “아뇨, 그냥... 냄새가 좀 익숙하지 않아서요.”“싫지 않으면 됐어.” 유건은 억지로 웃음을 띠며 말했다.“당신이랑 아이한테 좋은 재료니까, 하루 한 그릇 정도는 괜찮지?”‘하루 한 그릇... 하루 한 그릇이면 괜찮다고? 그게, 괜찮은 거야?’시연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이제 씻어야죠? 난 좀 누울게요. 많이 피곤하네요.”“그래, 금방 씻고 와서 곧 옆에 누울게.”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욕실로 향했다.욕실 문이 닫히자마자, 시연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이런 하루하루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아니, 끝이 있긴 할까?’국은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넘기기는 힘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겉보기엔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지만, 시연은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자신과 장소미가 납치를 당한‘그날’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걸.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병원 창가에서 내리는 가을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6화

    “괜찮아요...”시연의 목소리는 작고 흔들렸지만, 소미의 비명은 멈추지 않았다.“장소미 씨! 제발 진정하세요!” “진정제 가져와요!” “네!”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녀를 제어하지 못했다.“장소미 씨, 그렇게 움직이면 위험해요! 다치실 수 있어요!”“저 여자야...!” 소미는 시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여자! 나를 망친 게 저 여자라고!! 으아아아아!!”의사는 당황한 얼굴로 시연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저는...” 시연은 멍하니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내가 뭘 했다는 거야?’“너, 당장 여기서 나가! 나가라고!!! 으아아아아!!!”또다시 소미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지 선생님,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환자가 너무 예민한 상태라...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이럴 땐 자극을 주면 안 됩니다.”“네...”시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무겁고 혼란스러웠다.‘이 상태라면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거야. 근데, 장소미는 분명히 뭔가 알고 있어. 그날 밤... 그 사람의 정체를...’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소미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또 누구를 통해 알 수 있을까?’...그 시각, 병실 안.의사가 소미에게 진정제를 투여하자, 그녀는 점점 고요해졌다. 그런 장면을 기환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유건에게 연락했다.유건은 통화 내내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다가, 짧게 대답했다.[알겠어.]잠시 정적.그리고 천천히 덧붙였다.[앞으로 시연이랑 소미, 절대 마주치게 하지 마.]“네, 형님.”통화를 끊은 유건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눈을 뜬 그는 조용히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밤, 고씨 가문의 본가. 유건은 곧장 2층 서재로 향했다. 문을 열자, 시연은 책상 앞에 앉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7화

    시연이 울었다.유건의 기억 속에서, 시연은 늘 강한 사람이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사람. 특히 감정 문제에 있어서, 그녀가 눈물을 흘린 건 오직 한 사람, 우주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 시연이 울고 있었다. 그것도, 유건의 앞에서.시연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유건이었다.유건은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시연의 뺨을 닦아주려 했다.하지만, 시연은 남자의 손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나가주세요. 지금은... 당신 얼굴 보기 싫어요.”“혼자 있고 싶으니까, 제발 나가줘요.”유건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시연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밀어낸 건, 처음이었다.“알겠어. 나갈게.”그는 조용히 물러서, 서재 문을 닫았다. 문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내가... 너무 몰아붙였나?’‘시연이가 정말 잘못한 걸까? 혹시 내가 오해했던 건 아닐까?’‘그날도... 장소미랑 같이 납치됐을 때도, 두 사람이 일부러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면?’유건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편으로는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점점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시연이 ‘혼자 있고 싶다’고 했기에, 그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하지만 밤 11시가 넘어도, 시연은 침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진작에 자고 있을 시간.유건은 결국, 다시 서재 문을 열었다.“여보?”조심스럽게 불을 켰다.방 안은 어두웠고, 시연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배 위엔 얇은 담요가 덮여 있었지만, 겉보기에도 불안정했다.‘저 좁은 소파에... 저렇게 배가 불렀는데,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유건은 조용히 다가가 그녀를 안아 침실로 옮겼다.시연은 깊이 잠든 상태였기에 그를 밀치지도, 눈도 뜨지 않았다.유건은 속으로 안도했다.‘지금은... 그냥 자게 두자.’아침.시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8화

    “지 선생, 이렇게 좋은 날 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맞아요! 우리 지 선생님, 명색이 사모님이신데 한턱내셔야죠!”“한턱이 뭐예요! 파티해요, 파티!” “좋아! 좋아!”“...”사무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축하의 의미를 담은 장난 섞인 말들이 오가며 분위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양석현 교수가 슬쩍 시연을 보더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자자, 후배인 시연이가 정식으로 입사했으니, 선생님이자 선배인 우리가 환영회를 열어줘야 하지 않겠어?” “아... 과 모임이라는 게 다 그렇지.”“예산은 정해져 있고, 장소도 늘 그 나물에 그 밥...”“교수님 말씀대로면 또 그 식당이겠지...” “병원 근처에 있는 몇 군데서 맴돌 뿐인데...”“차라리 그냥 내가 쏠걸 그랬나...”“그래도 이번엔 사모님 덕 좀 보나 했는데...”“...”묘하게 아쉬운 눈빛들이 여기저기서 오갔다.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이 오가던 가운데, 누군가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슬쩍 시연에게 다가왔다.“지 선생님, 혹시 따로 생각해 두신 데 있으세요?”“저요...?”시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정말 돈도 없는데... 차라리 과에서 하는 게 나을 거야.’“그럼... 제가 따로 커피라도...”그때, 문이 열리며, 날렵하고 단정한 실루엣 하나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정장에 단정한 머리, 은은한 미소까지.“분위기 좋은데요?”모든 시선이 일제히 유건을 향했다. 사무실 안은 마치 누군가 리모컨으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조용해졌다.‘저 사람이... 왜... 왔지?’시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 앞을 막아섰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나 곧 끝나니까, 나가 있어요.”“이미 들어왔는데, 나가긴 좀 그렇잖아, 응?” 그는 미소를 지으며 시연이 손을 가볍게 잡았고, 곧장 열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깍지 꼈다. ‘제발,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러지 마.’시연은 당황하며 손을 빼려 했지만, 유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9화

    외과 사무실을 나와 병원 건물을 벗어날 때까지, 시연의 얼굴엔 내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여보.” 유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세웠다.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물었으니 대답해야 할 터였다. 시연은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식사 자리는 내가 마련했어야 하는 건데, 왜 아무 상의도 없이 당신이 정했어요?”“어...?” 유건은 억울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내가 예약한 데가 마음에 안들어? 당신 셀레스트 음식 좋아하잖아.”“좋아하긴 하는데...” 시연의 눈썹이 확 짧아졌다. “당신, 우리 과에 몇 명이나 있는 줄 알아요? 의사 간호사 포함하면 30명은 넘는다고요!”“그래서?” 유건은 고개를 갸웃했다.‘‘그래서’라니...’ 시연은 숨을 꾹 참았다.‘대충 계산해도 거의 몇천만 원이야. 그걸 아무 말 없이 덜컥?’“비싸잖아요, 당신 정말 몰라서 그래요?”“그게 비싸?” 유건은 미간을 찌푸렸고, 진심으로 의아한 듯했다.“우리가 부담 못 할 정도는 아니잖아.”‘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만약 자신들이 ‘정상적인' 부부였다면, 그녀도 이걸 기분 좋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당신한테 빚지고 싶지 않다고. 그게 싫은 거야.’그녀가 진심으로 표정을 굳히자, 유건은 눈치 빠르게 태도를 바꿨다.“알았어, 이번엔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턴 꼭 당신한테 먼저 물어볼게. 미안해, 응?”‘다음? 우리 사이에 다음이 있긴 한 걸까?’시연은 속으로 냉소적인 웃음을 흘렸지만, 입 밖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 자리는 돌아오는 주말로 정해졌다. 당일, 당직 간호사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전원 참석 예정.근무 시간이 끝나기 전부터 사무실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하지만 시연만큼은 평소처럼 진료차트를 정리하며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래도... 다들 내가 임신 중인 걸 챙겨주는 덕에, 차트 정리는 내 몫이 된 거야.’ “지 선생, 그만하고 옷 갈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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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2화

    시연은 진아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뭐, 그런 셈이지.” 그러고는 비웃듯 웃어 보였다. “고 대표는 항상 자기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근데 이번엔 미안하지만... 실망 좀 해야 할걸?’ ‘우주를 위해서라면, 난 절대 물러설 수 없어.’ 그날 밤, 유건은 나타나지 않았다. G시에 아예 안 온 건지, 왔지만 시연을 피한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시연은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시연은 강울대병원에 들렀다. 갑작스러운 병가 탓에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하고 나온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었다. 서류며 자료가 다 사물함에 있어서, 후임에게 전달하려면 직접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마무리하고 병원을 나서려던 때, 외래 진료 대기석에 앉아 있던 지동성이 눈에 들어왔다. 시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번 병환 이후로 지동성은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피부도 푸석했고, 눈빛도 많이 흐려진 듯했다. 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먼저 알아챈 건 지동성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시연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시연아.” 시연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오늘 퇴원이에요?” “응. 병원에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집이 그리워지더라.” 지동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더는 입원해도 큰 효과 없는 보존 치료. 그는 이제 집에서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동성의 시선이 시연의 배로 내려갔다. “배가 많이 나왔네.” “네.” 시연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동성은 개의치 않은 듯 미소 지으며 물었다. “고 대표랑은... 잘 지내고 있어?” ‘잘?’ 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눈빛에는 어떤 온기도 없었다. “아마도... 잘 지내는 편이겠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1화

    시연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봤다. “아니, 그냥 책 몇 권 봤을 뿐인데, 그렇게 잡아먹을 듯한 표정은 좀 아니잖아요?” “지시연.” 유건이 그녀의 이름을 낮게 불렀고, 단추를 잠그던 손이 잠시 멈췄다. “너 지금 몇 살이지? 이 상황이 장난 같아? 너 출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기나 해?” 시연은 물론 알고 있었다.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내 배 속애를 걱정하는 거예요?” “그럼 안 되니?” ‘뭐야, 갑자기 왜 이러는데?’ “하...” 시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이 나왔다. “진짜 웃기네요. 내 배 속의 아이... 당신의 아기도 아니고, 당신이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오버예요? 드라마 찍고 싶어요?” “지.시.연.” 시연의 무심하고 조롱 섞인 말투는 유건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는 시연의 어깨를 꽉 잡았다. 눈빛은 싸늘했지만, 뭔가 폭발하기엔 또 너무 절제된 감정이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결국 그는 손을 놓았다. “밥 먹자.” 시연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이래도 화를 안 낸다고?’ 아침은 유명한 맛집인 ‘가을’에서 배달 온 것이었다. 둘은 마주 앉아, 마치 조금 전 싸움은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시연이 한입에 모닝빵을 먹자, 볼이 빵빵하게 부풀렸다. “천천히 좀 먹어.” 유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두 입으로 나눠 먹는 게 그렇게 힘들어?” 시연은 생각도 없이 유건에게 맞받아쳤다. “두 입으로 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장소미? 혹시 그것 때문에 걔를 좋아한 거예요?” 말투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일부러 던진 말이었다. ‘찔리지? 그래, 찔려야 해.’유건은 순간 움찔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결국 가볍게 한숨만 내쉬었다. “너 체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 별걱정 다 하게 해 놓고선.” 시연은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만 숙인 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0화

    식탁 위엔 여러 가지 반찬이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종류는 많은데, 양은 조금씩. 시연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게 세심하게 준비된 상차림이었다.한 입 떠먹자마자 익숙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왕성애 이모님 손맛이다.’한동안 못 먹었던 그리운 맛. 시연은 괜히 마음마저 편안해진 듯, 말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유건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기분이 어떻든, 먹을 건 잘 먹는 건 참 다행이지.’‘이런 건... 늘 본받고 싶을 만큼 좋은 거야.’식사가 끝나자 시연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그 순간, 유건이 물 한 잔을 건넸다.“배불러?”“네.”물컵을 받아 두어 모금 넘긴 시연은 남자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아까 말한 거, 단 한 글자도 안 믿어요.”“시연아...”“그게 장소미 때문이든 아니든 상관없고, 이제...”시연은 목소리를 낮췄지만, 말 하나하나가 단단했다.“오늘 밤부로 이 집에서 나가줘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요.”“나 씻고 잘 거니까 나갈 때 문 잘 잠가줘요.”말을 마친 시연은 테이블에 손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유건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시연은 매끄럽게 피했다.‘이젠... 이런 접촉도 무의미해.’유건이 설거지하고 조금 늦게 침실에 들어섰을 때, 시연은 이미 욕실에 들어가 있었다.샤워기 물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유건은 욕실 유리문 가까이 다가가 살짝 두드렸다.“시연아.”대답은 없었다.“씻고 나서 푹 쉬어. 난 할아버지 뵈러 가야 해서 먼저 간다.”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유건은 이마를 조용히 문지르며 한숨처럼 속삭였다.“잘 자, 시연아.”그리곤 조용히 돌아섰다.욕실 안.따뜻한 물줄기 아래, 시연은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세게 문지르면서 속으로 중얼댔다.‘이런다고 씻기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를 지우고 싶어.’‘오늘 밤, 잠은커녕 눈이라도 붙일 수 있을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9화

    “시연아, 넌 날 신고 못 해.”유건은 느릿하게 다가와 시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괜히 흥분하지 마. 우리 아직 법적으로 부부야. 내 아내 집에 오는 게 어떻게 불법 침입이야?”시연은 벼락 맞은 듯 숨이 턱 막혔다.‘진짜... 이 인간, 제정신이야?’“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시연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유건을 노려봤다.“왜긴?”유건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조용히 손을 들어 시연의 머리를 쓸어내렸다.손끝이 스치자, 시연의 전신에 닭살이 돋았다.‘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사람?’“쉬는 거 나쁘지 않잖아. 병가도 유급이고, 배도 이렇게 불러왔는데, 나는 그냥... 너랑 아이 둘 다 무사했으면 해서 그래.”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러섰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강하게 말해도 안 되니까, 이제 부드럽게 회유하는 거예요?”“너, 내가 진짜 그렇게밖에 안 보여?”“그럼 뭔데요?”시연은 조용히 웃었다. 비웃음 섞인 미소.“고 대표님, 기억력이 정말 안 좋으시네요. 며칠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었죠? 남을 위해 나한테 아주 ‘좋은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요?” 시연의 입에서 나온 건, 장미리가 시연이 있는 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던 그날의 일이었다.그날, 유건은 시연에게 몇 마디 조심스럽게 충고를 건넸었다.그 일이 떠오르자, 유건의 턱선이 살짝 굳었다.‘그래... 그땐 확실히 선을 넘었지.’‘그때부터 지금의 이 상황은 이미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였어.’“넌 말이야...”유건은 이를 앙다물고 한숨을 꾹 눌렀다. 갑작스러운 무력감이 밀려왔다.찰나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다시 물었다.“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로 할래?”시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고 대표님 뜻대로 하세요. 제 의견 따윈 애초에 안 중요하잖아요.”유건은 시연을 조용히 바라봤다.그 말에는, 섣불리 반박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그럼 내가 정할게. 밖에 나가기 싫어 보이니까, 집에서 먹자.”그는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8화

    ‘정말일까?’시연은 조용히 유건을 바라봤다. 유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럽기만 했다.‘일 못 하게 한 것도, 우주 데리고 간 것도... 다 이 사람의 수단 아니었어?’‘이제 와서, 일 안 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고, 우주가 수단이라는 식으로 말하다니.’‘이 사람... 이제 와서 물러서는 척하면서 방심시키려고?’하지만 시연은 알고 있었다. 고유건이라는 남자는, 자신을 무너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걸.‘힘의 격차가 너무 커. 내가 이 사람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유건 씨.”시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남자의 셔츠 앞자락을 살짝 쥐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제발... 우리 우주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마요.”“우주는... ‘그분’이 자기 아빠란 걸 몰라요. 아빠도, 우리 엄마처럼...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연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곧 조용히 울음이 터져 나왔다.“흑... 부탁이에요... 제발...”시연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유건은 먼저 그녀를 품에 안았다.한 손으로는 등을 감싸 안고, 다른 손으로는 조용히 지시했다.“시연이 집으로 가자.”“네, 형님.”차는 곧장 시연의 집 방향으로 움직였다....시연의 집 앞. 차가 멈췄지만, 유건은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고, 그도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그는 조심스럽게 시연의 외투를 여며주며 말했다.“올라가서 좀 쉬어. 이런 날, 혼자 생각만 하면 기분만 더 안 좋아져.”시연은 말없이 유건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담긴 뜻을, 유건은 바로 읽었다.“우주는 잘 있어. 별산장에 데려다줬거든. 오늘은 많이 피곤하니까... 다음에 같이 보러 가자. 못 믿겠으면... 최 선생님께 연락해서 영상 통화해 봐.”‘그래도... 그 아이를 걱정하는 네 마음, 나도 알아.’시연은 길게 떨리는 속눈썹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겠어요.”유건은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끝까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7화

    진아는, 스무 해가 넘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었다.이런 경험이라는 것은... 첫 키스. ‘지금 이게 뭐야?’그녀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렇게 모든 감각이 멈춰버렸다.‘이거... 꿈인가? 아니면... 악몽?’다행히도, 지하는 그리 오래 키스를 이어가진 않았다.금세 입을 떼었지만, 두 사람의 이마는 여전히 맞닿아 있었다. 남자의 거친 숨결이 진아의 얼굴을 휘감았다.그리고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낮고 거친 목소리.“진성빈이랑... 잔 거야?”진아는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뭐라고? 내가 누구랑 뭘 했다고?’“묻잖아.”지하의 손이 진아의 턱을 살짝 더 조였다. 그리고 눈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진성빈이랑 잤어? 어젯밤에? 아니면... 그 전부터?”‘이게 지금, 진짜로 나한테 하는 말이야?’그제야 진아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에서 현실로 끌려 나왔다.그리고 엄청난 수치심과 분노가 뒤늦게 터졌다.“미친...!”진아는 손을 번쩍 들어 지하의 뺨을 그대로 올려 쳤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힘껏.철썩!예상치 못했던 손길에 지하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임진아!! 미쳤어?!!”진아의 두 눈엔 눈물이 맺혔고, 금세 투명한 진주처럼 뚝뚝 흘러내렸다.“진짜... 최악이야, 당신이란 사람!”“문 열어! 나 내려야 해! 당장 내려줘!”진아는 문손잡이를 잡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열리지 않았다.“아저씨!! 이 사람이 미친 거예요!! 문 열어달라고요!!”하지만 지하의 명령 없이, 운전기사가 움직일 리 없었다.“임진아!”지하는 진아가 다칠까 봐 뒤에서 그녀를 껴안은 채 두 손을 감싸 안았다.“좀 진정하고, 움직이지 마.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어디 다친 거 아니야? 내가 좀...”“싫어!!”진아는 겁에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부짖었다.“만지지 마! 제발... 제발 그만 좀 해!!”팔이 붙잡혀 있으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6화

    순간, 유건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드리워진 어둠은 말 그대로 ‘폭풍 전야’였다.“귀신이라도 봤어?”“그건 아닌데요.”지한은 고개를 저었지만, 표정은 진짜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그리고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형수님... 주무시고 계십니다.”“자는 게 뭐 어때서?”유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바로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지한이 급히 팔을 잡고 막았다.“형님!”“형수님, 혼자 주무시는 건... 아니에요.”‘뭐...?’유건의 눈이 번쩍 들렸다. 날카롭게 지한을 쏘아보며 낮게 물었다.“누구랑 자는데?”지한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하나하나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우주 도련님, 임진아 씨... 그리고...”말끝을 흐렸지만, 유건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진성빈? 설마 지하 이 자식 말이 맞았다고?’그 순간, 유건의 눈앞에 불이 번쩍 켜졌다.‘씨... 진짜 그럴 줄은 몰랐는데...’이성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끈이 ‘툭’ 끊어졌다.길고 날렵한 다리를 성큼 내디딘 유건은 말 그대로 번개처럼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하...”지한은 웃음을 참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좋은 말로 하면 안 들어. 형은 꼭 이런 식이야.’“지... 지하 도련님.”민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같이... 안 들어가세요?”“가야지.”지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따라나섰다.“너희 형님이 질투하는 거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거든. 이건 못 참지.”유건과 지하는 거의 동시에 테라스 쪽 방으로 들어섰다.그리고 두 사람이 본 풍경은...넓은 소파침대 위, 나란히 누운 네 사람이 곤히 자는 모습이었다.왼쪽부터 우주, 시연, 성빈, 그리고 진아.우주와 시연은 단정하게 담요를 덮고 제법 떨어져 자고 있었다.문제는 성빈과 진아.각자 담요는 있었지만, 두 사람은 마주 보고 누워 있었고, 성빈은 무의식중에 진아를 안고 있었으며, 진아는 그 품에 꼭 파묻혀 있었다.두 사람 모두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5화

    “아야...”진아를 옮겨 눕힌 성빈이 머리를 살짝 흔들며 중얼거렸다.“좀 어지럽네. 뭐지, 이거...”그러고는 진아 옆에 털썩 누워버렸다.“술이 확 돌았나 봐. 좀 누워 있을게.”그 순간, 시연의 눈매가 반짝 빛났다.‘우주 옆은 안 된다더니, 진아 옆은 괜찮다는 거야?’‘그럼... 이건 뭐, 노골적인 배려인가?’“성빈아.”“응?”“요즘은 여자 친구 얘기 안 하네? 설마... 또 헤어졌어?”“푸흐.”성빈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아냐, 저번에 헤어지고 나서 쭉 혼자야. 벌써 얼마나 됐는데.”“그래?”시연은 흥미롭게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다시 안 사귀는 이유라도 있어?”“딱히... 그냥 이젠 안 끌리더라.”성빈은 팔을 뒤통수 밑에 괴며, 조금 피곤한 듯한 말투로 이어갔다.“연애라는 게... 처음엔 괜찮은데, 조금만 깊어지면 피곤해져. 내가 문제인 거지 뭐. 금방 지치고, 오래 못 가.”‘좋아하는 마음이 부족했겠지.’“흠...”그 옆에서 진아가 작게 코를 훌쩍이며 몸을 말았다.“진아야? 어디 불편해?”성빈은 바로 몸을 일으켜 옆에 있던 담요를 챙겼다. 우주에게 한 장, 그리고 진아에게 한 장 정성스럽게 덮어주었다.‘히터 틀어놨지만, 자다 보면 또 추워질 수 있지.’시연은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근데 궁금한데... 너 정말 연애 많이 했잖아. 그럼 도대체 어떤 스타일이 좋은 건데?”성빈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순간 눈빛이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다들 착하고 괜찮았어. 근데... ‘이 사람이라면 평생 같이 갈 수 있겠다’ 그런 느낌이 안 들었어.”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빈의 시선은 진아에게 머물러 있었다.진아의 머리끈이 살짝 조여져 있는 걸 보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말없이 고무줄을 빼주었다.찰랑- 길게 풀린 머리가 베개에 흘러내렸다.“뭐 하는 거야?”시연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아.”성빈은 자연스럽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4화

    진아는 눈을 깜빡이며 말끝을 흐렸다.“그냥... 요즘 시험 준비 때문에 조금 힘들어서 그런가 봐.”“그럴 줄 알았어.”성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진아의 팔을 놓았다.“이따 밥 오면, 네 몫까지 두 배로 먹어야 해. 알지?”띵동-그 말을 막 끝내자마자,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오! 배달 왔다! 내가 받을게!”성빈은 성큼성큼 현관 쪽으로 향했다.“후...”그가 나가자마자, 진아는 긴 숨을 내쉬며 이마를 문질렀다.그 모습을 본 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진아를 바라봤다.“긴장 풀어. 얼굴 안 빨개졌어. 성빈이는 둔해서 눈치 못 챌 거야.”진아는 화들짝 고개를 들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근데... 너 어떻게 알았어? 티... 많이 났어?”“아니.”시연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근데 난 성빈이처럼 눈치 없는 타입은 아니거든.”“시연아...”진아는 시연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제발. 약속해.”“안 해.”시연은 웃으며 진아의 등을 토닥였다.“말할 거였으면 진작에 했어. 근데 진아야, 너 이렇게 계속 말 안 하면... 성빈이는 평생 몰라.”진아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나는 성빈이가 날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나 혼자 좋아하는 거야.” “진아야...”시연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진아를 바라보았다. 진아의 씩씩한 말투 뒤에 가려진 애정이 너무 뻔히 보였다.진아가 웃어 보이자, 눈꼬리가 살짝 휘어지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내가 성빈이를 좋아하는 건 내 마음이야. 성빈이는 날 그냥 여자 사람 친구로 생각하지.”“근데 내가 그 얘기 꺼내면, 그 친구마저 사라질 것 같아서 싫어. 그냥 지금 이대로도 좋아.”그 말에 시연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마음을... 얼마나 오래 혼자 안고 있었을까.’그때, 성빈이 음식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왔다!”두 사람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뭐야? 무슨 비밀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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