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고 하도진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그냥... 하지 말까요?”민하윤은 민망한 듯 셔츠를 끌어당겨 드러난 몸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갑작스러운 태동에 두 사람의 흥도 완전히 깨져 버렸고 조금 전까지 달아올랐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하도진은 눈꺼풀을 한번 들었다가 민하윤의 손목을 잡아 내려놓고 얌전히 침대 반대편에 누웠다. 그러고는 못마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낮에는 가만히 있더니 꼭 이럴 때 움직이네.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하는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른쪽 아랫배가 또 한 번 꿈틀했다.민하윤은 할 말을 잃었다.“......”누가 봐도 방해받아서 심통이 난 모습이었다.민하윤도 정말 졸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에서 하도진의 새 잠옷 한 벌을 꺼내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욕실로 들어갔다.반투명 욕실 문 너머로 희미한 실루엣이 비쳤다. 잠이 완전히 달아난 하도진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얼음물 한 컵을 단숨에 마셨다. 그래도 갈증도 달아오른 몸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민하윤은 태블릿으로 헤어스타일 사진을 열심히 찾아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다양한 머리 길이와 스타일을 한 모델들의 사진이 가득했다.미용실에서 제공하는 스타일 참고 사진인 듯했다.“뭘 그렇게 열심히 봐?”하도진의 손이 자연스럽게 잠옷 밑으로 들어가 가느다란 허리를 쓸었다.민하윤은 반사적으로 손등을 탁 때렸다.“장난치지 마요. 저 지금 중요한 거 보고 있어요.”머리카락에서는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침대 시트 한쪽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하도진은 혀를 한번 차더니 욕실에서 새 수건을 가져왔다.민하윤의 머리에 수건을 덮고 부드럽게 물기를 닦아 줬다.민하윤은 턱을 괸 채 태블릿 화면을 이리저리 넘겼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쏙 드는 머리가 없었는지 얼굴까지 잔뜩 찌푸렸다.“저 단발로 자를까요?”민하윤은 화면 왼쪽 위 사진을 가리키며 진지하게 의견을 물었다.하도진은 수건으로 머리끝의 물기를 조
“언제까지 화낼 건지 미리 좀 알려 줘. 나도 마음의 준비는 하게.”하도진은 묵묵히 민하윤의 뻐근한 종아리와 발을 주물러 줬다. 솜씨가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힘을 조절해 가며 마사지한 덕분에 아까보다 한결 편해졌다.사실 민하윤은 하도진이 제때 돌아와 난처한 상황을 넘겨준 순간부터 화가 거의 풀린 상태였다. 다만 이제 와서 먼저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멋쩍어 말없이 침대에 기대 있을 뿐이었다.그러던 하도진이 갑자기 손을 멈췄다. 한 손으로 침대 옆 협탁을 짚고 천천히 몸을 기울이자 따뜻한 조명이 그의 몸에 가려졌다.“너무 보고 싶었어.”민하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하도진이 가까이 다가왔다.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눈가와 코끝, 입술로 천천히 내려왔다. 오랜만에 닿은 온기에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달라졌다.고요한 방 안에는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간간이 입술이 맞닿는 소리만 들렸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옷깃에 손을 가져가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민하윤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번에는 굳이 막지 않았다.그런데 어느 순간 하도진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긴 속눈썹이 살짝 떨렸고 깊은 눈으로 가만히 민하윤을 바라봤다.“왜 그래요?”민하윤이 먼저 물었다.하도진은 쉽게 숨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등에 밴 땀으로 셔츠까지 축축해져 있었다. 민하윤은 얼굴이 붉어진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뭐가요?”“네가 말해 봐.”민하윤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건 제가 물어봐야죠. 왜 갑자기 멈췄어요?”하도진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X발, 민하윤, 자꾸 나 건드리지 마.”민하윤은 바로 손을 뻗어 그의 입을 막고 눈을 흘겼다.“말 좀 가려서 해요. 배 속에 둘이나 듣고 있잖아요.”하도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그럼 계속해도 돼?”민하윤은 대답 대신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았다. 한동안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만 작게 이어졌다.민하윤이 부끄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겠어요?”“내가 조심할게. 그러
김옥자는 부축하던 손을 뿌리치고 두 손을 모아 허공을 향해 연신 합장했다.“아이고 하늘이 도왔네. 부처님 감사합니다.”채선화도 평소의 침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서둘러 휴대폰부터 찾았다.“이 좋은 소식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께도 알려 드려야겠다.”“하윤아, 네가 우리 집 복덩이구나!”김옥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민하윤의 손을 꼭 잡았다. 얼굴에도 생기가 돌아 한층 젊어진 듯 보였다.민하윤은 수줍게 웃었다. 다행히 어른들이 쌍둥이 소식에 너무 기뻐한 나머지 임신 사실을 지금까지 숨겼다는 건 더 이상 따지지 않는 눈치였다.하도진은 가족 앞에서도 장난기를 참지 못했다.“제가 예상했던 반응이랑 좀 다른데요. 말로만 좋아하시고 끝이에요? 뭐 실질적인 포상 같은 건 없어요?”“그래, 공이 큰 사람한테는 상을 줘야지!”어른들은 정말인 듯 하나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그 내용을 듣던 민하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두 아이 앞으로 스위스 은행에 각각 계좌를 만들고 개인 신탁과 교육기금까지 마련하자는 이야기였다.평소 무뚝뚝하고 엄격하던 채선화는 벌써 아이들 이름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아들인지 딸인지는 알아봤니?”하도진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엄마, 요즘 세상에 그게 중요해요? 아들이든 딸이든 똑같죠. 설마 차별하시려고요?”채선화는 억울하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아니 내가 왜 차별을 해. 이름을 생각하려니까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어. 우리 집에선 다 똑같이 귀하지.”오늘만큼은 채선화도 유난히 마음이 너그러웠다. 하도진이 장난스럽게 빈정거려도 화내지 않았다.“아직 검사 안 했어요. 낳을 때까지 모르는 재미로 기다리려고요. 엄마도 명색이 대학 인문대 학장인데 아들이니 딸이니 따지시면 안 되죠.”말은 채선화에게 했지만 사실상 거실에 있는 모든 어른에게 미리 못을 박는 셈이었다.민하윤은 그럴듯하게 말하는 하도진을 듣다가 몰래 눈을 흘겼다.말로는 아들이든 딸이든 똑같다면서 정작 매일 밤 오른쪽 배만 끌어안고 태교랍시고
“정말 못 말리겠구나. 오늘 같은 날 아니었으면 애들 낳고 나서야 안고 나타날 생각이었니?”“도진아, 너도 참 답답한 짓을 했구나. 이렇게 큰일을 집에 말 한마디 안 하고 둘이서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있었어?”채선화와 김옥자가 한마디씩 보태며 하도진을 몰아세웠다.“설마 그러려고 했겠어요? 아직 낳으려면 멀었는데요.”하도진은 어이가 없어 웃으며 변명해 봤다.“배가 저렇게 큰데 뭐가 멀었다는 거야? 아무리 봐도 곧 낳을 것 같은데.”민하윤은 원래 체구가 가늘었고 첫 임신이라 배도 단단한 편이었다. 출산 경험이 있는 채선화와 김옥자는 그렇게 불러온 배를 보고 당연히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하도진은 “아이고” 하고 한마디하더니 민하윤의 배 위에 올라와 있던 두 사람의 손을 슬쩍 치워 냈다.“그만 만지세요. 일단 앉게 좀 해 주세요.”순식간에 거실이 부산스러워졌다.하준혁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이 불편한 며느리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줬다.하진석도 지팡이를 짚은 채 이것저것 지시했다.“등에 쿠션 받쳐 줘. 나아주머니한테 쿠션 몇 개 더 가져오라고 하고. 편하게 기대게.”민하윤은 조금 민망했다. 모두가 조심스럽게 챙겨 주는 게 고맙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관심을 받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동물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판다라도 된 것 같았다. 그래도 다들 나름대로 조심하는지 둘러싸서 배를 만지지는 않고 떨어져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평소 무뚝뚝하던 채선화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기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이 역력했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 수도 없어 작게 몇 마디만 보탰다.“몇 개월 됐니? 이제 곧 낳는 거야?”“너희도 참, 이렇게 큰일을 왜 집에 한 마디도 안 했니? 임신하는 동안 영양은 제대로 챙겨 먹었고? 진작 알았으면 집에서 사람을 보내 돌보게 했을 텐데.”김옥자는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안 되겠다. 나 아주머니한테 옷이랑 짐 좀 챙기라고 해서 너희랑 같이 보내자.”그 말을 들은 하도
김옥자는 한참 동안 민하윤을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하윤아, 너 혹시......”그 순간 현관 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집안 도우미가 서둘러 나가며 반갑게 말했다.“도진 도련님, 오셨어요? 눈 많이 맞으셨어요?”하도진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현관에서 벗은 검은 코트 어깨에는 얇게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도우미는 코트를 받아 옆 옷걸이에 걸었다.소리를 들은 민하윤은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한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감추기 힘든 긴장감도 묻어 있었다.하도진은 잠시 멈칫하다 거실로 들어섰다.시선이 소파 한쪽에 앉아 있는 민하윤에게 닿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민하윤은 넉넉하고 두꺼운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채 소파 끝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길게 내려와 자연스럽게 등 뒤로 흩어져 있었다.원래부터 화려하고 눈에 띄는 미인이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잔뜩 긴장해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이리 와.”하도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민하윤에게 손짓했다.민하윤은 잠시 망설이다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워진 몸을 천천히 움직여 하도진 곁으로 다가갔다.김옥자는 이미 무언가 짐작한 듯 민하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손에 쥔 향나무 염주를 꽉 쥔 탓에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추워?”하도진은 어른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데도 자연스럽게 민하윤의 손을 잡았다.손끝이 부드럽고 차가웠다. 민하윤도 이제 하도진이 뭘 하려는지 어렴풋이 눈치챘다.거실에 있는 어른들의 시선이 전부 두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안 추워요.”검은색 캐시미어 코트가 워낙 넉넉해 어깨와 허리선은 예전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가늘고 마른 체형이었지만 옆에서 보면 전보다 몸이 한층 묵직해져 예전처럼 가볍고 여린 느낌은 아니었다.하도진은 짧게 대답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민하윤의 코트를 벗겨 줬다.넉넉한 코트가 벗겨지는 순
민하윤은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어른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무심코 코트 주머니를 더듬었는데 텅 비어 있었다.‘휴대폰은 어디 갔지? 르네 별장에 두고 온 건가? 아니면 가방 안에 있나?’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집안 도우미가 현관으로 다가와 민하윤을 맞았다.“안은 따뜻하니까 외투 벗으세요.”민하윤은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넉넉한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 덕분에 공처럼 불러온 배가 그나마 가려지고 있었다.힘겹게 신발을 갈아 신은 민하윤은 뒤뚱뒤뚱 작은 걸음으로 거실에 들어섰다.집 안은 새해를 맞아 말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곳곳에는 정성껏 기른 화분이 놓여 있었고 탁자 위에는 탐스럽게 핀 수선화 한 화분과 자단나무 다기 세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호두나무 무늬가 들어간 과일 접시마다 땅콩엿과 초콜릿, 명원식 전통 과자와 각종 견과류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탁자 위가 빈틈없이 풍성했다. 거실에는 네 어른이 모두 모여 있었고 TV에서는 신년 특집 공연이 나오고 있었다. 주방 쪽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민하윤은 긴장한 나머지 얼굴까지 조금 창백해졌다.김옥자는 민하윤을 보자 반갑게 손짓하며 옆자리를 두드렸다.“하윤아, 이리 와서 앉아. 밖에 춥지? 눈은 많이 오고?”몸이 무거워진 민하윤은 넉넉한 코트로 겨우 배를 가리고 있었다.다행히 그때 거실 전화가 울리면서 어른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민하윤은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 뒤 얌전히 김옥자 옆에 앉았다.“도진아… 네가 어떻게 네 아내를 혼자 보내? 그래서 그랬구나. 응, 하윤이는 방금 왔어. 아직 밥은 안 먹었고. 멀쩡해. 아무 일 없어. 그래, 천천히 와. 네가 도착하면 그때 같이 먹자.”김옥자는 전화를 끊고 얼굴 가득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채선화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어머님, 도진이 전화예요?”“응.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고가도로가 막힌다더구나. 하윤이는 도착했는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묻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급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