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연기는 끝났어, 은서율. 그런데 누가 우리 관계까지 끝났다고 했지?” 대한민국 톱배우 최태혁.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 촬영을 앞둔 그는 체형 대역 배우 은서율에게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 연습을 제안한다. 절박한 사정으로 그와 위험한 계약을 맺은 서율.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규칙, 거부하기 힘든 긴장감,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시선. 처음에는 단순한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혁이 이끄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일수록 서율은 자신조차 몰랐던 은밀한 욕망을 깨닫게 된다.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던 아슬아슬한 관계. 그리고 마침내 계약이 끝난 순간, 서율을 향한 태혁의 지독한 소유욕이 본색을 드러내는데…. “착각하지 마. 네가 끝냈다고 해서 나까지 끝난 건 아니니까.”
View More금요일 오전 8시 17분.은서율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침대 옆에는 전날 준비해 둔 가방이 놓여 있었다. 짙은 남색 원피스와 회색 재킷도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오늘은 《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의 초청 낭독회가 열리는 날이었다.서율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벌써 일어났어?”뒤에서 최태혁의 목소리가 들렸다.“네. 잠이 안 와요.”태혁은 시계를 확인했다.“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알아요. 그런데 괜히 긴장돼서요.”그는 팔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이리 와.”서율은 다시 침대에 앉았다.태혁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오늘 대본 수정할 건 없지?”“네. 이제 정말 끝이에요.”“그럼 오늘은 작가가 아니라 네 작품을 처음 선보이는 사람으로 가면 되겠네.”서율은 웃었다.“그게 더 떨리는 것 같은데요?”오전 10시 42분.소극장에 도착한 서율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무대 뒤편으로 이동했다.배우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연출자가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작가님, 오셨네요.”“안녕하세요.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네. 조명과 음향 확인하고 있습니다.”서율은 무대를 바라봤다.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그리고 두 개의 책갈피.여러 차례 보았던 무대였지만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곧 이곳에 실제 관객들이 앉을 것이었다.연출자가 물었다.“긴장되세요?”서율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생각보다 많이요.”“배우들도 긴장하고 있어요.”그 말에 서율은 웃었다.“그럼 저만 그런 건 아니네요.”오후 1시 26분.최종 점검이 끝난 뒤 서율은 대기실에서 만년필을 꺼냈다.태혁이 선물한 검은 만년필이었다.그녀는 수첩 첫 장에 짧은 문장을 적었다.오늘은 내 이야기가 내 손을 떠나는 날.글씨를 바라보던 서율은 잠시 눈을 감았다.그동안 수없이 원고를 마감했다.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린 적도 많았다.하지만 오늘처럼 자신이 쓴 문장을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날은 처음이었다.휴대전화가 울렸다.태혁에게
목요일 오전 9시 26분.은서율은 작업실에서 낭독회 일정표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최종 리허설까지 마쳤으니 이제 남은 것은 실제 관객 앞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일이었다.그런데 제작팀에서 보낸 이메일 한 통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작가님, 낭독회 종료 후 참석 관계자들과 간단한 교류 자리가 마련될 예정입니다. 참석 여부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서율은 잠시 고민했다.공연이 끝나면 최태혁과 조용히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처음으로 연극을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도 중요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주인님,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태혁은 외부 자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응. 무슨 일이야?”“낭독회 끝나고 관계자들끼리 교류하는 자리가 있대요.”“잘됐네.”“그런데 우리 저녁 먹기로 했잖아요.”태혁이 웃었다.“그건 늦게 먹어도 되지.”“주인님 기다리시게 될 텐데요.”“괜찮아. 네 첫 낭독회잖아.”서율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기는 싫어요.”“그럼 끝나는 시간 봐서 연락해. 내가 근처에 있을게.”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제작팀에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오전 11시 43분.서율은 낭독회 당일 진행될 관객과의 대화 질문지를 마지막으로 검토했다.질문은 모두 6개였다.작품을 쓰게 된 계기부터 두 인물의 관계, 소설과 연극의 차이까지.그중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가져갔으면 좋겠습니까?서율은 한동안 빈 답변 칸을 바라봤다.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적었다.그러다 문장을 지웠다.너무 정해진 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녀는 다시 적었다.관객마다 다른 장면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기다림을, 누군가는 지나간 시간을, 또 누군가는 지금의 선택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서율은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면 충분했다.오후 2시
수요일 오전 10시 14분.은서율은 소극장 무대 앞에 서서 객석을 바라봤다.《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의 최종 리허설이 진행되는 날이었다.무대 위에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소품 담당자가 책갈피 2개를 확인하고 조명 위치를 조정했다.“작가님, 오늘은 실제 공연과 같은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연출자의 말에 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는 객석에서 보겠습니다.”“혹시 특별히 확인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세요?”“마지막 장면이요. 보배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조명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보고 싶어요.”“알겠습니다.”서율은 객석 중앙으로 이동했다.그런데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최태혁이었다.“주인님?”태혁이 고개를 들었다.“왔어?”서율은 놀란 얼굴로 다가갔다.“여기 어떻게 오셨어요?”“오늘 오전 일정이 취소됐어.”“그래서 극장에 오신 거예요?”“응. 제작팀에 참관 가능한지 먼저 물어봤어.”서율은 웃음을 터뜨렸다.“저한테는 왜 말씀 안 하셨어요?”“놀라게 해주려고.”그녀는 태혁의 옆자리에 앉았다.“그럼 오늘도 제 첫 번째 관객이시네요.”태혁은 무대를 바라보며 웃었다.“오늘은 그냥 조용히 볼게.”오전 11시 03분.리허설이 시작됐다.서율은 대본을 무릎에 올려놓았지만 펼치지 않았다.배우들의 목소리가 객석으로 퍼졌다.차보배가 오래된 책갈피를 발견하는 장면.서이강이 2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두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면.서율은 자신이 쓴 문장을 듣고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옆에 앉은 태혁이 어떤 표정으로 무대를 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서율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태혁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그녀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잠시 후 서이강이 말했다.“그때 답장을 기다렸습니다.”차보배가 대답했다.“알아요.”“그런데 끝내 오지 않았죠.”“네. 보내지 않았으니까요.”객석이 조용해졌다.서율은 자신도 모
화요일 오전 9시 18분.은서율은 작업실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 제작팀에서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작가님, 낭독회 전 최종 리허설 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당일 오전 11시부터 진행하며, 관객 입장 전까지 무대 점검을 마칠 예정입니다.서율은 일정을 확인한 뒤 답장을 보냈다.그런데 곧이어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추가로 관객과의 대화 진행자가 마지막 장면에 관해 질문할 예정입니다. 질문지를 검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첨부파일을 열어본 서율은 세 번째 질문에서 멈췄다.차보배와 서이강은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요?서율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또 이 질문이네.”그녀는 질문을 삭제하지 않았다.대신 옆에 짧게 메모했다.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지보다 보배가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그리고 진행자에게 전달할 답변 방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오전 11시 32분.최태혁은 외부 자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있었다.서율이 작업실에서 나왔다.“주인님, 오늘 몇 시쯤 끝나세요?”“오후 3시 전에는 끝날 것 같아.”“그럼 저녁은 집에서 드시는 거죠?”“응. 왜?”“오늘은 제가 조금 늦을 수도 있어서요.”태혁이 고개를 들었다.“극장 가?”“네. 마지막 장면에 관한 질문을 연출자님이랑 직접 이야기해 보려고요.”“무슨 문제 있어?”“문제라기보다는 해석이 조금 달라요.”서율은 현관 옆에 기대어 섰다.“자꾸 두 사람이 다시 연인이 되는지에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네가 쓰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잖아.”“맞아요.”태혁은 구두를 다 신고 일어났다.“그럼 네가 생각한 방향을 정확히 말하고 와.”서율은 웃었다.“네. 그렇게 하려고요.”태혁이 코트를 집어 들자 그녀가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주인님.”“응?”“오늘 회의 잘하고 오세요.”“너도.”그는 서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집을 나섰다.오후 1시 46분.소극장 회의실에는 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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