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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유현진은 헤어 드라이기 전원을 끄고 말리다 만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연기 전공하지 그랬어. 너한테 제격인 것 같은데.”

차미주가 조심스럽게 가방을 만지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오늘 얘랑 같이 잘 거야. 꿈에서 부자 돼야지!”

“마음대로 해. 하지만 자기 전에 그것 좀 예쁘게 찍어줘.”

차미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사진은 왜? 설마 인스타에 업로드하려고? 누구 샘나게 해서 죽일 일 일어?”

“아냐.”

유현진이 앉으며 답했다.

“팔려고.”

“뭐?”

“내일 강한서랑 이혼하러 가. 이혼하고 집 하나 장만하려고. 남산 병원과 가까운 곳이면 좋겠어. 인테리어도 마쳐서 바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곳으로. 엄마도 더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예전에 근처 집들 알아본 적 있는데 마음에 드는 집은 가격이 비싸더라고. 나한테 있는 돈으로는 집 마련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아. ‘정상에서’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오디션에서 떨어졌대. 이혼하면 돈이 부족할 테니 그거라도 팔아서 보태야겠어.”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차미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네가 붙은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잖아. 계약서만 준비하면 된다며. 왜 갑자기 탈락이래?”

“나도 물어봤는데 그냥 나랑 안 맞대. 투자자 한 명이 내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나 봐. 음색이 너무 성숙하다나.”

“흥! 분명 누군가 연줄로 따냈을 거야. 아니면 어떻게 정해진 결과를 번복할 수 있어? 누구랑 계약했는지 알아?”

“됐어. 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구두로 약속한 건 원래 효력이 없어.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뭐.”

차미주는 씩씩대며 “낙하산” 을 욕하다가 강한서를 욕했다.

“너는 너무 물러 터졌어. 나였으면 바로 강한서가 바람난 증거를 모아서 재산을 몽땅 차지하겠어.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고!”

“상관없어.”

유현진이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이젠 신경 쓰지 않아.”

오늘 강한서가 내뱉은 말과 그녀를 거리에 버린 사건으로 인해 유현진은 현실을 직시하고 빨리 이혼하여 관계를 청산하기만을 바랐다.

차미주 역시 그녀를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서 힘껏 유현진을 안으며 말했다.

“내가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들을 많이 알아. 반드시 가장 좋은 남자를 너한테 소개할게. 강한서가 후회할 수 있게!”

유현진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말했다.

“일단 돈부터 벌자. 돈 벌고 나서 이번에는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 선택할 거야. 다른 사람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이튿날 아침 유현진은 늦게 잠에서 깼다. 어제 비를 맞은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거울을 한참이나 보더니 이혼하는 날인 만큼 예쁘게 단장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유현진은 강한서와 혼인신고를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급히 움직였다.

그날은 그녀의 졸업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밤새 논문을 수정하다가 날이 밝아서야 잠자리에 들었지만 2시간 뒤에 강한서의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동안 그녀는 강한서와 단 세 번만 만났는데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없던 그녀는 룸메이트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급히 화장실로 향해 전화를 받았다.

“시간 있어?”

사실 강한서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지만 그에게 푹 빠져있었던 그녀로서는 그런 목소리마저 듣기가 좋았다. 해서 낮은 소리로 시간 있다고 답했다.

“그럼 데리러 갈게.”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어, 어디 가게?”

자동차 엔진 소리에 강한서가 운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그의 대답이 들렸다.

“혼인신고하러.”

사실 그날 유현진은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는데 그의 말대로 셔츠를 입고 행여나 그가 무를세라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도 대충, 사진도 대충 찍었다. 두 사람의 사진 속의 강한서는 웃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만이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대충 시작한 그들의 관계는 대충 끝낼 수 없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빨간 입술이 그녀에게 생기를 부여했다.

유현진은 자존심을 지키며 헤어지는 것이 길고 긴 짝사랑에 후회가 없는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후 두시 반. 유현진이 시청으로 가는 길에 남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의 심장이 멈췄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한 유현진은 얼른 남산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아직도 응급실에 있었고 간호사가 그녀에게 하현주의 상태가 얼마나 위독한지 알리는 문서를 건네주며 사인을 하게 했다.

지금껏 그녀는 수많은 문서에 사인을 했는데 매번 사인을 끝내고 나면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언제 마지막 사인이 될지 몰랐기에.

사인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착잡한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유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엄마 상태 안 좋아요. 병원으로 오세요.”

그녀는 침착한 말투로 얘기했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유상수의 주위는 조금 복잡했다.

“여기 중요한 미팅이 있어. 당장 출발하기 어려워.”

유현진은 폰을 든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의사가 이번에는 정말 위독하다고 했어요.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요.”

“그 말은 6년 전부터 했어. 네가 놓지 못하는 거잖아! 그런 상태로 정말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해?”

유현진이 붉어진 눈시울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상수가 대충 답했다.

“일 마치고 전화할게.”

말을 마친 그는 유현진이 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씁쓸한 심정으로 수술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손에 들린 폰이 다시 울렸고 발신자는 강한서였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강한서, 엄마가...” 위독해.

“유현진, 나 놀리니까 재밌어? 이혼하자며. 너 어디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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