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로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유현아의 한마디에 화두를 유현진에게 돌렸다.그러자 신미정도 한 마디 덧붙였다."그래, 현진아. 장씨가 너희를 여러해 동안 보살폈는데, 네가 너그럽게 봐주렴."지금 유현진이 오명을 뒤집어쓰면 강한서가 회사에서의 명망을 잃는 일은 피면할 수 있을 것이다.유현진은 민경하가 자신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문서를 가져와?거짓말!일이 커지면 강한서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까 봐 그더러 오명을 뒤집어 쓰라는 거잖아!유현진은 차디찬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봤다. 민경하는 마음이 찔리는지 눈길을 피했다.이때 강한서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 이미 사적으로 협의가 끝난 일이잖아요. 제가 오늘 장씨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나중에 회사에서 짤린 사람마다 와서 소란을 피우면 제가 모두 받아들여요? 회사가 자선 사업이 아니잖아요."연기로 따지면 강한서는 유현진보다 한 수 위다!유현진이 오명을 뒤집어쓴 상황에서 이렇게 태연하게 말하다니.그때 신미정이 입을 열었다."현진이와 조금 오해가 있었던 거잖아. 현진이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장씨더러 현진이한테 사과하라고 하면 되잖아. 나를 봐서라도 그만 넘어가주면 안 되겠니?"장씨 아주머니는 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유현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작은 사모님, 제가 잘못했어요. 저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저 진짜 이 일자리를 잃으면 안 돼요."주변이 갑자기 또 들끓기 시작했다."이렇게 연세가 있으신 분이 무릎을 꿇다니!""일자리를 찾는 게 오죽 어려우면 이러시겠어?""아무 근심 걱정 없는 귀하신 사모님께서 어떻게 일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알겠어. 그의 한 마디면 사람을 바로 짜를 수 있잖아.""유씨 집안도 일반인에서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사람이 저 정도로 매정할 수가 있어."
"자신이 비를 맞았다고 다른 사람한테 펄펄 끓는 물을 뿌리려는 격이죠."......유현아가 이 소리를 듣고는 입고리를 말아올리더니 나서서 유현진을 말렸다. "언니, 아빠가 늘 타인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타일렀잖아. 그만해. 아주머니가 사과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안 풀린다면 대충 벌하면 되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계속헤서 소란을 피우는 것도 보기 안 좋잖아."유현진은 그런 유현아를 쏘아보았다.만약 오늘 이만 끝내면 유현진은 "연세 든 사람에게 일말의 연민도 없는 냉혈 인간"이라는 오명을 뒤집에쓰게 된다.그래서 유현진은 바로 입을 열었다."아주머니, 한서 씨가 저 때문에 아주머니를 짜른다고 하셨죠? 그럼 이 자리에서 원인을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여기에 있는 분들이 제가 아주머니에게 너무 심한 벌을 줬는지 판단을 해주게요."이 말에 장씨가 멍해졌다. 그걸 어떻게 그의 입으로 말하란 말인가?자신이 피임약통을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버려 신미정과 정인월이 발견하도록 하여 강한서와 유현진이 피임하고 있는 사실을 유출했다고.그가 체결한 계약에서 첫 번째가 바로 주인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설령 신미정이 시킨 일이더라도 그는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다. 그가 계약한 사람은 강한서이기 때문이다. 이 바닥에서 비밀누설은 금기 사항이다. 그래서 장씨 아주머니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그게......쓰레기를 까먹고 버리지 않아서......"참 교묘하게 큰 잘못을 에둘러 갔다.유현진은 그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 줄 알았다."아주머니, 한서 씨가 결벽증이 있고, 또 조금이라도 지저분한 환경에서 잠자면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거 아시잖아요. 재작년에도 아주머니가 진드기를 제때에 제거하지 않아서 한서 씨가 붉은 발진으로 병원에 한 주나 입원한 거 기억하시죠. 그때도 제가 아주머니한테 침실만은 격일로 반드시 소독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주머니는 어떻게 하셨죠?"재작년에 강한서가 진드기로 인해 붉은 발진을 앓았던 사실은 전체 회사
의사가 알레르기 증상이라고 하자 집에 돌아온 유현진은 알레르기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우연히 CCTV에서 장씨 아주머니의 아들이 집에서 하룻밤 머문 사실을 발견했다.신미정은 도우미들이 규정을 어기는 것을 질색한다. 그래서 신미정에게 자신의 아들을 하룻밤 묵게 한 사실이 들켜 일자리를 잃을까 봐 울면서 유현진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애원했다.그래서 유현진은 당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침대 시트를 다 새로 바꾸고, 앞으로 최소 한 주에 세 번은 소독하라고 당부했다.유현진은 타인의 잘못을 계속 언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이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자 아주머니 본인도 이 일을 까먹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신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고 방 청소에 소홀히 했다고 하고 있으니 유현진이 예전의 일을 다시 상기시키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그는 스스로 강한서가 자신을 짜르려는 진짜 이유를 밝힐 수가 없었기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장씨 아주머니는 입술을 깨물면서 불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딱 한 번 실수한 거예요. 사모님, 저한테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이때 강현우가 눈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형수님, 아주머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사소한 일로 짜른다는 게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실수를 하지 않아요.""사소한 일이요?"유현진이 눈을 치켜뜨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강현우를 응시하면서 말했다."도련님,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사소한 일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주머니의 작은 실수가 저의 남편, 그러니까 도련님 형님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응급실 밖에서 생사를 모르고 기다리는 마음이 어떤지 아세요."유현진의 목소리는 결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또박또박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실된 감정이 실려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그의 말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게 하였다. 물론 이 모든 게 다 강한서의 생명 안전을 위한 일인 것도 사실이
유현아도 딱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대충 얼버무렸다. "적어도......일자리는 보존해야지. 다른 부서에 보내든가. 바로 짜르는 건 아니라고 봐."유현진은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 장씨 아주머니에게 물었다."아주머니, 진짜 회사에 남고 싶은 거예요?"장씨 아주머니는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네, 회사에 남겨만 준다면 뭘 해도 상관 없어요."유현진은 강한서를 향해 말했다."사실 난 장씨 아주머니를 방 사모님 댁으로 보내려고 연락도 다 해놓았어. 급여도 우리 집에서 받던 대로 협의했고. 그런데 아주머니가 회사에 이렇게 깊은 감정이 있는 걸 안 이상 바로 짜르는 건 아닌 것 같아. 현아 말대로 장씨 아주머니를 회사 청소부로 보내는 건 어때? 그러면 장씨 아주머니의 원대로 회사에 남을 수도 있고."이 말에 유현아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그가 언제 장씨 아주머니를 회사 청소부로 보내라고 했던가?회사의 청소부라는 말에 장씨 아주머니는 손에 땀이 났다.회사 청소부는......가장 낮은 급여를 받으면서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그가 이곳에 와서 소란을 피운 건 이런 결과를 보려고 했던 게 아니다."강 대표님, 저---"장씨 아주머니가 말을 채 하기 전에 강한서는 신미정을 향해 물었다."엄마 생각은 어때?"체면이 구겨질 때로 구겨진 신미정은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네가 알아서 해."신미정은 차갑게 한마디 하고는 바로 가 버렸다.그러자 강한서가 바로 민경하한테 분부했다."민 실장님, 인사팀에 연락해서 장씨 아주머니의 계약서를 새롭게 작성하라고 하세요."그러고는 장씨 아주머니를 쳐다보면서 물었다."거기에 앉아서 계약서에 사인할 건가요?"
장씨 아주머니는 당장이라도 입이 싼 유현아를 물어 죽이고 싶었다.장씨 아주머니는 지금의 직업을 잃기 싫은 것이지 아무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강한서는 이미 많이 양보해주었다. 하지만 신미정도 더는 상관하지 않으니 더는 장씨 아주머니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은 없었다.지금의 직업을 잃기는 싫고 다른 직업을 찾아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진상을 부리는 것은 사리구별을 못 하는 행동이다.장씨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애써 눈물을 참고 웃어 보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대표님."유현아는 그런 장씨 아주머니를 다 이해한다는 듯이 다가가 부축했다.그런데 장씨 아주머니는 가드레일을 넘어가더니 유현아를 밀쳐버렸다.유현아는 몸을 휘청이더니 뒤로 넘어갔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자기한테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잽싸게 피해버렸다.꼼짝없이 꼬꾸라진 유현아의 모습은 우습기 그지없었다.유현진은 유현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현아야, 일어나. 바닥이 차다."유현아는 이를 악물고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고마워, 언니."그러고는 유현진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하지만 유현진은 이내 손을 거두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절로 일어나. 남들 보면 웃어."유현아는 주먹을 꽉 쥐더니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사건은 '원만'하게 마무리되었고 다들 질서 있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강현우는 천천히 유현진에게 다가와 입꼬리를 올렸다. "형수님, 오랜만이에요. 더 아름다워지셨어요."유현진은 강현우를 쌀쌀맞게 쳐다보았다.분명 강한서와 비슷한 얼굴인데 매번 그녀를 보는 눈빛은 마치 독사같이 그녀를 소름 돋게 했다.
유현진은 마음속의 증오를 억누르고 대강대강 대답하고서는 뒤돌아서 강한서에게로 갔다.강현우도 발을 움직여 그녀의 뒤를 따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셔츠를 입어야 진짜 미모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네요." 강현우의 눈빛은 그녀의 가슴을 쓸더니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소곤소곤 말했다. "흰색 셔츠를 입어도 섹시한 여자는 처음 봤어요."유현진은 강현우의 눈빛에 소름이 돋아 화를 누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도련님, 한서 씨가 있으니 좀 떨어져 주시죠."강현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형수님 생각에는 형이 신경 쓸 것 같아요?"강현우는 한마디로 유현진의 약점을 건드렸다. 유현진은 두 주먹을 꽉 쥐고는 입술을 깨물었다.강현우는 더 크게 비웃었다. "형이 요즘 어떤 연예인과 가까이 지낸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형수님을 두고 형도 참 좋은 줄을 모르네요. 내가 막 안타깝지 뭐예요."강현우는 한쪽으로 말을 하며 유현진에게 다가와 유현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려 했다. 그때 유현진이 쌀쌀하게 한마디 했다. "도련님은 서부에 가시고도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강현우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지난번 사건으로 인해 강현우의 아버지는 심복을 몇 명 잃었으며 강현우도 고생을 꽤 했다.그곳에서는 누구도 그를 강씨 가문 도련님 취급을 하지 않았으며 궂은일도 직접 해야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강현우가 언제 그런 고생을 해봤을까?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오겠다고 난리를 쳐봤지만, 정인월은 그의 카드를 정지시키고 차 키도 빼앗았으며 여권과 주민등록증도 몰수해버렸다.그곳을 벗어나려 악을 써봤지만 되는 일이 하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강한서의 덕분이었다.유현진은 발걸음을 움직여 자리를 떠나려 했다.이때 강현우가 그녀 뒤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형수님, 왜 임신이 안되는지 생각해 봤어요?"유현진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물었다. "무슨 말씀이죠?"강현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강씨 가문 사람들을 쉽게 믿지 마시라고요."
유현진은 머리를 돌려 강한서를 바라보고는 표정을 숨기며 말했다. "별 얘기 아니야."그러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강한서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서류 여깄어. 나 먼저 갈게."그녀는 표정이 쌀쌀해서 한마디도 강한서와 더 나누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에 그를 돌볼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민경하가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회의 곧 시작해요."강한서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손을 내밀어 서류가 아닌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사무실에서 좀 기다려."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가, 나 볼 일 있어.""무슨 일?"유현진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병원에 엄마 보러."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이따 데려다줄게."유현진은 강한서가 자기에게 누명을 씌운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대표님 바쁘실테니 그럼 이만."강한서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말 들을래 아니면 나한테 들려 갈래? 선택해."유현진은 입을 뻥긋거렸다. '강한서 이 자식,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갑자기 뭔 개소리야?'강한서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했지만, 장난은 아닌 듯싶었다."선택 안 하면 들고 가는 걸로 할게."말을 끝낸 강한서는 이내 그녀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수많은 직원이 보고 있으니 유현진은 창피해 재빨리 그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나 지금 화난 상태로 당신 사무실에 가면 다 부숴버릴 수도 있어!"강한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이 좋은 대로."유현진은 목이 메여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강한서도 표정을 가다듬고 뒤따라 올랐다.10층에 도착하자 강한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민경하에게 유현진을 사무실로 데리고 가라고 분부했다.사무실에 들어 온 유현진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재떨이를 메치려고 했다.민경하는 유유히 걸어와 말했다. "사모님, 그 재떨이는 대표님이 작년에 프랑스 출장하러 갔을 때 거래처에서 준 선물이에요. 크리스탈로 제작된 거라 60만 달러... 라고.
민경하가 다시 들어올 때, 그 뒤로 주강운도 함께 들어왔다.유현진은 주강운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주 변호사님. 여긴 어떻게?""한서랑 일 때문에 약속이 있어서요." 주강운은 늘 그렇듯 온화했다. "설마, 한서 퇴근하길 기다리고 있어요?""누가 기다린대요?" 유현진은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더는 그들 사이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두 사람 일도 같이 봐요?""그렇다고 할 수도 있죠."주강운도 일에 관한 일은 유현진에게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민경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머리를 들어 말했다. "사모님. 주 변호사님과 얘기 좀 나누세요. 저는 회의실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유현진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빨리 가보세요."민경하가 나간 뒤, 유현진은 주강운에게 차를 넘겨주었다. "주 변호사님, 차 한잔하세요."주강운이 가볍게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찻잔을 들지 않자 유현진이 물었다. "혹시 차 안 좋아하시면 커피 타드릴까요?""아니요, 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금연할 때 자주 마셨어요. 근데 많이 마시니까 밤에 잠을 못 자서요. 그래서 많이 안 마시려고 조절하고 있어요.""금연 중이에요?"주강운은 머리를 끄덕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끊으라고 해서요."유현진은 그 말에 아주 찬성했다. "금연하면 건강에도 좋고, 강한... 우리 남편이 주 변호사님이 한동안 해외에서 치료받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워낙 몸이 약하니 금연하면 좋죠."주강운은 의아했다. "한서가 그런 말도 해요?"유현진은 주강운이 불쾌할까 봐 다급히 해석했다. "그냥 잠깐 말한 거라, 상세하게는 잘 몰라요."주강운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요. 저 괜찮아요. 비밀도 아닌데요, 뭐."유현진은 화제를 돌리고 싶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어디가 아팠어요?"주강운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여기요."유현진은 경악했다. "정신병이요?"주강운은 어이가 없었다.주강운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두개골에 문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