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등으로 선실을 비추던 강한서는 주저앉은 유현진을 발견했다. 유현진은 빨개진 눈으로 강한서의 이름을 불렀다.강한서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이내 선실 문을 닫고 큰 걸음으로 유현진을 향해 다가와 그녀의 손을 당겨 안전 시트에 앉히려고 했다.하지만 유현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강한서는 화난 말투로 말했다. "지금이 성질부릴 때야?"유현진은 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언제 성질부렸다고 그래. 나 다리 아파서 못 움직이겠어."강한서는 손전등으로 그녀의 다리를 비추어 보았다. 유현진의 다리에는 타박상으로 인한 크고 작은 멍이 가득했다.'어쩐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다 했어. 다리를 다쳤네.'"이거 들어."강한서는 손전등을 유현진에게 넘겨주었다. 유현진은 언제 싸웠냐는 듯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강한서는 유현진을 놀려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서러운 표정을 보고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켰다.그는 몸을 낮추고 공주님 안기로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유현진은 강한서의 목을 두 팔로 감싸더니 이내 멍해졌다.강한서의 등은 다 젖어있었다.강한서는 멍해 있는 그녀를 안전 시트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주었다.바로 이때, 선체는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서는 넘어지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강한서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유현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강한서를 불렀다. "강한서!""움직이지 마!" 강한서는 거친 숨을 내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괜찮아.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는 게 나 도와주는 거야."유현진은 손전등을 켰다. 강한서는 침대 옆에 넘어져 있었다.다행히도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빨리 앉아."유현진이 다급하게 말했다.강한서가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 순간 선체는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한서는 침대 다리를 더 힘주어 잡았다.선체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유현진은 안전 시트에서도 멀미가 났다. 강한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몇 미터 안 되는 거리였지만 강한서는 몸을
......강한서는 유현진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우습기도 해서 한참 뒤에야 답했다.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지. 이 상황에 왜 왔냐고? 내가 안 오면 당신 이리저리 부딪혀서 바보라도 되면 어떡하려고. 나 바보랑 살기 싫어.강한서는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계속 말했다. "뭐 부딪히기 전에도 이미 바보였지만.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안전 시트에 가만히 앉아있었겠지."유현진은 기가 막혔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증조할아버지 걱정돼서 나가려고 한 것뿐이야. 이렇게 흔들릴 줄 내가 알았겠어?""네 걱정이나 해. 증조할아버지는 제일 빠른 시간에 구명조끼를 입고 안전 시트에 앉아계시더라.""당신이 어떻게 알아?"강한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나 거기서 오는 길이야."유현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증조할아버지한테 갔었던 거야?"유현진의 반응에 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나 어디가?"유현진은 입을 삐죽였다. '송민영한테 간 거 아니었어?'여기까지 생각한 유현진은 강한서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비도 많이 오는데 송민영 씨는 어때?"강한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처럼 바보는 아니겠지."…...'송민영한테 간 거 아니었네.'유현진은 점점 궁금해졌다. 강한서는 대체 송민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현진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물에 빠졌으니 저번 자선 파티에서보다 더 많이 다쳤을 텐데… 저번에는 바로 송민영을 안고 나가더니 왜 오늘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더군다나 편애받는 사람은 더 제멋대로 행동할 텐데, 왜 강한서를 쳐다보는 송민영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걸까?난 강한서를 막 대하는데 말이야.'이때 강한서의 휴대폰이 울렸다.강한서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저편에서 한성우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한서야, 두 사람 괜찮은 거지?""괜찮아, 넌 어때?""나 괜찮아. 나 강운이랑 같이 있어. 강운이가 구명조끼 가져왔어. 구명조끼 안 부족해? 강
"나 부동산 계약서 본 적 있어. 당신 그 집 77억에 샀던데 지금은 아마 시세가 올라서 120억은 됐을 거야. 인테리어랑 두루두루 해서 6억은 들었을 거 아니야? 그럼 이렇게 하자. 집 명의 나한테 넘겨주고 위자료 2,000억에서 140억은 빼고 줘. 부부로 지낸 정도 있고 하니 나 너무 독하게는 안 할게."강한서는 기가 막혔다.나쁜 년, 매번 이런 식으로 나한테 서프라이즈를 준단 말이야.이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나 내쫓을 궁리나 하고!140억이라니. 뻔뻔스럽기는!'강한서는 확실히 77억에 집을 구매했지만 때는 8년 전의 가격이다.지역 개발이 잘 되다 보니 가격도 미친 듯이 올라 지금의 시세로는 250억도 훨씬 넘었는데 유현진은 가격을 절반이나 잘라먹고는 착한 척 행동했다.'이 여자 계산 잘하네.'유현진은 확실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때렸다. 한 방면으로는 그 집에 적응되기도 했고 집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뒤에 유현진은 자기의 취향대로 리모델링을 했었다.강한서는 업무가 바쁘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유현진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그녀의 취향대로 바뀌었다.유현진은 다른 집을 알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하면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간혹 구조도 좋고 햇빛도 잘 들어오는 집이 있긴 했지만,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무리 보아도 지금의 집처럼 편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남산 병원과도 20분 거리에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이 집을 고집하는 두 번째 원인이다.이 집의 1층에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안방이 있고 2층에는 헬스 방도 있어서 노인이 살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다. 혹시라도 하현주가 회복되면 유현진은 헬스 방을 재활 방으로 개조해 하현주의 재활을 도울 수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더군다나 강한서의 명의로 된 부동산은 수두룩하니 하나 적어져도 그만이다. 그래서 유현진은 요즘 이 말을 꺼낼 기회를 찾고 있었다.강한서가 아무 대답이 없자 유현
유현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지금 눈앞의 강한서는 마치 어린애처럼 삐쳐있었다.그렇지만 유현진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입 밖에 냈다가 강한서가 화날 게 뻔하니 말이다.유현진은 나지막한 소리로 강한서를 다독였다. "강 대표. 미안해, 삐치지 마. 당신 돈 많이 벌어서 나 먹여 살려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이 죽길 바라겠어? 당신 조금만 다쳐도 내 마음이 아프단 말이야. 내가 잡아줄 테니 이리로 와. 일단 안전 시트에 앉고 나서 삐쳐도 돼."유현진의 사과에는 영혼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물론 강한서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달콤한 말에 혹하고 넘어가 버렸다."강 대표, 침대 시트 이리 넘겨줘. 내가 당길 테니까."강한서는 그녀의 가는 팔다리를 보며 말했다. "당길 수나 있겠어?""나 만만하게 보지 마. 내가 얼마나 힘이 센데."강한서는 유현진의 하얗고 가는 다리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다리 힘은 좋긴 하지.'강한서는 손잡이에 묶었던 침대 시트를 풀어 유현진이 있는 방향으로 힘껏 던지며 말했다. "이거 안전 시트에 묶어."유현진은 강한서가 시키는 대로 했다.강한서는 침대 시트를 당겨보며 안전성을 체크한 뒤 천천히 유현진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모든 게 순리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안전 시트에 도달했을 때, 선체는 또다시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한서는 무릎을 바닥에 대고 침대 시트를 꽉 당겼다.유현진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 손 잡아."강한서는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유현진의 손이 닿지 않았다. 유현진도 아무리 몸을 앞으로 기울여 보아도 강한서에게 닿지 않았다. 계속되는 흔들림에 강한서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급해진 유현진은 안전 벨트를 풀어버리고 강한서의 손을 덥석 잡았다.하지만 그녀가 기뻐하기도 전에, 파도는 두 사람을 겨냥한 듯 배는 더 격하게 흔들렸다. 유현진은 안전 시트에서 튕겨 나가 강한서의 품에 엎어졌다.강한서는 유현진에게 치여 바닥에 넘어졌지만,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유현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강한서의 체온에 유현진은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 흔들림 속에서 저도 몰래 잠이 들었다.폭풍우는 새벽에야 서서히 멈추었다. 유현진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유현진은 몸을 움직이다가 자기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강한서의 팔을 보았다. 두 사람은 함께 침대 시트에 묶여있었다.아마 그녀가 잠들었을 때, 강한서가 불가피한 사고를 막기 위해 묶어놓은 듯싶다.유현진은 강한서를 깨우지 않고 침대 시트를 풀었다. 간단히 씻고 나서 유현진은 선실을 나갔다.갑판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파도로 여러 가지 해산물들이 배로 들어왔고 선원들은 갑판을 정리하고 있었다.유현진은 어르신의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선실에 어르신은 보이지 않고 민경하만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증조할아버지는요?"민경하가 말했다. "어르신은 갑판에 해산물 주우시러 갔어요. 집에 가서 해물탕 끓여 드실 거래요."…...'증조할아버지 거이 아흔 살 되시는 거 맞지? 컨디션이 어쩜 젊은이들보다 좋네.'유현진은 갑판을 둘러보다 겨우 어르신을 찾았다. 어르신 옆에는 주강운도 보였다. 두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유현진은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바다 거북이가 있었다.어르신은 턱을 만지며 말했다. "내 경험상 이건 아마 암컷 거북이 같네."주강운은 휴대폰을 뒤지며 말했다. "갑각이 길쭉하고 꼬리 홈이 펼쳐진 거로 보아서는 수컷으로 보이는데요.""그럴 리가! 수컷 거북이가 이렇게 작다고?"주강운이 말했다. "혹시 아직 덜 자란 거 아닐까요?""이렇게 큰데 덜 자랐다고?""청 바다거북은 20년이라야 성년이 되죠. 성년이 되면 체구가 80~150센티미터 정도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 거북이는 보기에도 대략 40센티미터 정도이니 아직 덜 자란 거 맞아요.""아기 거북이였군." 어르신은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몸보신용으로 딱인데."유현진은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증조할
"얼굴도 강한서 그놈보다 잘났더구먼.""현진이 너는 왜 주강운을 안 만난 거야."…...'증조할아버지 왜 이래?'"주 변호사님은 강한서 친구예요. 아무 말이나 하지 마세요. 누가 들으면 오해해요.""그냥 말해본 거야." 어르신은 느긋하게 말했다. "강한서도 괜찮아. 어제 나랑 장기도 몇 판 뒀어. 그러다가 밖에 비바람이 몰아치니 바로 달려 나가더군. 쓸 만은 해."…...'쓸만은 하다고? 이게 무슨…'그들이 돌아갔을 때 강한서는 이미 준비를 끝내고 나왔다.몇 시간 뒤면 배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유람선에서의 시간을 즐겼다.송민영은 어제 일을 설욕하기 위해 식당에서 노래를 불렀다.송민영은 비록 연기는 안 되지만 앨범도 내었던 적이 있는지라 가창력은 좋았다.하지만 노래하는 와중에도 이따금 강한서에게 눈길을 돌리는 모습은 정말 꼴 보기 싫었다.다행히도 강한서는 메일을 확인하느라 송민영의 뜨거운 눈길을 느끼지 못했다.유현진은 감귤을 발라 강한서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강한서는 깜짝 놀라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유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타박상에 최고래."…...말을 끝낸 유현진은 이내 감귤을 강한서의 입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달콤하지?"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신맛이 강한서의 혀끝을 자극했다.하지만 강한서는 뱉어내지 않았다.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던 송민영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유현진은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때 세프처럼 보이는 사람이 두 사람앞에 디저트를 가져다 놓았다.유현진이 말했다. "주문 안 했는데요?"상대는 스페인어로 유현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솰라솰라거렸다. 하지만 이를 알아들은 강한서는 금세 얼굴색이 변했다.말을 끝낸 상대는 마지막으로 어정쩡한 영어로 말했다. "즐거운 식사 하세요."유현진은 그제야 물었다. "저 사람 뭐래?"강한서는 쌀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강운이가 만든 스파게티 맛있었어?""맛…" 하마터면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정식 입장을 기준으로 하며 정식 입장을 내 놓기 전에는 타인의 이용 거리가 되지 않게 아무런 추측을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타인의 이용 거리라는 말은 무언가를 암시하기에 충분했다.송민영이 '봄의 연인'에 출연한다는 말은 몇 달 전부터 소문이 자자했다.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송민영은 '봄의 연인'이라는 타이틀로 실검에도 몇 번 올랐다.차이현의 명성과 송민영의 인기가 한데 어우러져 매번 기사가 나갔다 하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당시 송민영은 이러한 기사에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촬영이 시작되었는데 송민영은 촬영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내 이런 입장을 내 놓았으니, 팬들은 제작진에서 송민영을 이용해 관심을 끌려는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했다.입장 발표가 나간 뒤, 송민영의 팬들은 분분히 '봄의 연인' 계정에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봄의 연인' 계정에는 제작진과 스텝을 향한 악플이 수두룩하게 달렸다.다행히 차이현의 선견지명으로 촬영에 참여하는 배우들을 공개하지 않았으니 말이지 하마터면 배우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뻔했다.송민영은 워낙에 관종이라 관심을 끄는 일을 잘했다. 팬들은 그녀에게 이용당한 줄도 모르고 송민영을 위로했다.차미주가 단체톡방에서 말했다.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도 실검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아무 해명도 없다가 왜 하필 지금 이런 입장 발표를 했을까요?"유현진도 이상했다. 갑자기 이런 입장 발표를 한다는 건 욕 먹으려고 작정한 거나 다름없었다.차이현은 이런 방식을 제일 질색하는 사람이다. 일을 이렇게 키우다니, 송민영은 아마도 앞으로도 차이현의 작품에 출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진희연이 말했다. "혹시 새 작품 들어가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일부러 시선 끌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요?"처음에 사람들은 진희연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송민영이 '평화의 세상'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찌라시가 올라왔다.'평화의 세상'은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인기 있는 작품이다.이 소설은 독
사실 송민영의 매니저인 시우진도 송민영이 '평화의 세상'에 출연하는 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어제 송민영이 물에 빠진 뒤, 강한서는 대본 하나를 들고 송민영에게 찾아왔었다.하지만 그 대본은 '평화의 세상'이 아니라 '차상'의 대본이다. 비록 이 작품은 차이현의 '봄의 연인'보다 뒤쳐지지만, 전형적인 여주 원탑의 작품이다. '봄의 연인'은 궁중 세력 싸움을 기반으로 두었지만 '차상'은 말 그대도 찻잎 장사를 하는 세가의 이야기다.여주는 아무것도 모르던 말괄량이로부터 집안의 주인이 되고 나중에 찻잎으로 큰 사업가가 되는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다.사실 이 작품의 여주는 '봄의 연인'의 여주보다 더 몰입감을 주는 성장형 여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하지만 송민영은 제작 회사가 작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 작품의 감독은 예술 영화로 많은 상을 받았었지만, 작품성이 너무 뛰어난 탓에 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작품마다 흥행에 실패했다.송민영은 화제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차이현의 명성과 퀄리티를 믿고 '봄의 연인'에 출연하고 싶었다.하지만 '차상'은 아무런 배경도 없고 기껏해야 상이나 하나 받고 끝날 작품이라 생각되어 굳이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차상'은 연말에야 촬영을 시작하다 보니 빨라야 내년 여름에야 방송에 나갈 수 있었다. 섬블 컴퍼니와의 계약도 거의 만료되는 데다 차기 작품이 없으니 만약 '차상'에 출연하게 되면 공백기가 생기게 된다.그렇게 되면 대중들의 눈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니 송민영 같은 관종에게는 아주 불리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신인들도 끊임없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 상황에 송민영은 공백기가 두려웠다.하지만 '평화의 세계'는 달랐다. 제작진과 촬영 규모는 '봄의 연인'과도 겨눌 수 있을 만큼 강대했다. 게다가 촬영 전부터 수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촬영도 이번 달에 시작해 3월이면 크랭크업으로 연말이면 상영할 수 있었으며 출연료도 '차상'의 세배보다 더 높았다.제일 중요한 건 방송 시간대가 '봄의 연인'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