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마치 깊은 산 계곡 어귀에서 새벽에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새소리 같았다. 얼굴을 보기도 전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였다.송가람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연한 베이지빛 무릎길이 스커트를 입은 예쁜 여자가 한 남자의 팔을 끼고 눈앞에 나타났다.그 순간, 송가람의 동공이 살짝 수축했다.송가람이 그렇게 놀란 건, 그 여자 때문이 아니었다.그녀가 팔짱 낀 남자는 바로 너무 오랜만에 보는 심원이었기 때문이다.심원은 송가람과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잠시 멈칫하더니, 곧 조용히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송가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심원의 손으로 내려갔다. 그는 옆에 있는 젊은 여자, 전연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송가람은 입술 끝이 절로 굳어졌다.그날, 양가에서 주선한 맞선이 어색하게 끝난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서 심원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비록 서로 연락을 하진 않았지만, 둘은 함께 유학을 다녀온 사이라 주변에 겹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 덕에 송가람은 따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심원의 근황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었다.그리고 맞선 사건 이후, 심원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심원의 집안에서 또다시 그에게 억지로 맞선을 주선하려 한다는 것도 알았고, 심원이 한밤중 몰래 송가람의 SNS를 들여다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취하면, 무의식적으로 송가람의 이름을 중얼거린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송가람은 그런 심원이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그녀의 눈엔 심원은 다루기 쉬운 남자였다. 아무리 개라도 오랫동안 곁에 있으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그래서 그녀는 가끔 유학 시절의 추억을 일부러 SNS에 올리곤 했다. 그녀가 올린 사진이든 글이든 모두 심원과 연관된 것들이고, 그런 게시물들은 심원을 다시 과거로 끌어들였다.송가람은 심원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였다. 그녀는 그 모든 걸
도무지 불쾌한 기분을 삭일 수 없었던 차미주는 빵빵한 볼을 한 채 송가람을 노려보았다. 송가람에게 인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싼 후에야 차미주는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대체 왜 가만히 놔두는 거야? 손가락 저 X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게 분명해. 그래서 계속 주아름 그 멍청이를 부추긴 거잖아. 제대로 한 방 먹였어야 했어.”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민서 약혼식이야. 내가 여기서 송가람과 싸우면 부정 타.”한성우가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역시 형수님, 현명하시네요.”차미주가 한성우의 손을 밀어냈다. “여자끼리 얘기하는데 남자는 끼어들지 마.”한성우가 말했다. “그럼 난 지금 남자 아니야.”차미주: ...‘어쩌다 이런 놈을...’바로 그때, 강한서가 그들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현진이 다가오는 강한서를 눈치 채기도 전에 송가람이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한서 오빠, 여기요.”한현진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억지로 돌린 강한서가 입술을 꾹 다물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정인월의 안부를 물은 한성우가 강한서에게 물었다. “좀 이따 어디 앉을 거야?”강한서가 대답하기 전에 송가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서 오빠, 여기 앉아요. 민서가 입장할 때 나가기도 쉽잖아요.”순간 한현진의 시선을 느낀 강한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냐. 난 앞에 앉으면 돼. 내 자리에서도 쉽게 나올 수 있어. 하객 분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 다들 미안해.”도륵, 눈을 굴린 한성우가 웃으며 말했다. “강한서, 연이도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해서 오라고 했어. 여기 식기 세트 2개 추가해줘.”“2개?”“응. 연이가 남자친구와 같이 온대.”강한서가 한성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었던 강한서가 대답했다. “준비하라고 할게.”“한서 오빠.”강한서의 거절을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강한서를 부른 송가람이 나지막
송가람을 힐끔 쳐다본 한현진이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편하실 대로.”송가람이 고맙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현진 씨가 친구 분과 대화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다른 테이블로 갈게요. 저희는 저쪽엔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라 조금 불편해서 여기로 온 거거든요.”주아름이 미간을 찌푸렸다. “뭘 그런 얘기까지 해요? 한서 오빠 가족도 아닌데 우리가 한현진 씨 눈치라도 봐가며 앉아야 하는 거예요?”“정신병동에서 문단속을 제대로 못해 환자가 도망쳤나보네요.”순간 화가 치민 차미주가 주아름을 노려보았다. “현진이가 마음대로 하라는 얘기 못 들었어요? 사람 말을 이해를 못 하는 건가?”주아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뭐예요?”차미주가 주아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머리가 어떻게 되셨나고요. 싫으면 다른데 가서 앉아요!”바로 분통을 터뜨리는 주아름을 본 송가람이 얼른 그녀를 말리며 작은 목소리로 진정 시켰다. “현진 씨와 저 사이에 오해가 있어서 미주 씨도 절 적대시하고 있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름 씨가 괜한 소리를 들었네요. 약혼식이 곧 시작하니까 일단 자리에 앉아요, 우리.”한현진을 힐끔 훑어본 주아름이 비꼬며 말했다. “부잣집 아가씨가 되더니 이젠 본인이 직접 얘기하지 않아도 시중이 먼저 나서서 얘기를 해주네요. 그 속 좁은 성격도 신분이 상승 한만큼 변했다면 좋았을 텐데...”공격을 퍼부으려는 차미주의 손을 한현진이 테이블 아래서 꾹 잡으며 그녀를 말렸다. 한현진이 시선을 올려 주아름을 쳐다보았다. “속이 좁은 걸 알면서도 시비를 거셨네요? 주아름 씨는 절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멍청하게 구는 걸 즐기시는 거예요?”“너...!”한현진은 주아름에게 받아칠 기회 같은 건 전혀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남자는 한쪽 발을 절뚝이며 클럽에서 술을 팔고 있다고 들었어요. 안타깝죠? 주아름 씨는 그렇게 관대하신 분이 왜 본인 사람이었던 남자를 그렇게 매몰차게 대하는 거예요?”아픈 곳을 찔린 주아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시 걸음을 멈춘 강한서가 말을 이었다. “민서랑 더 있지 왜 나왔어요?”민경하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대표님, 제가 단서를 찾은 것 같아요.”강한서가 민경하를 쳐다보자 그가 대답했다. “간민혜 씨에 관한 일이예요.”말하며 목소리를 낮춘 민경하가 강한서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안색이 변한 강한서 역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약혼식 끝나면 다시 얘기해요.”민경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은 차미주는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움직임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힘이 이렇게 세?”한현진이 웃으며 나지막이 차미주에게 말했다. “아마 널 만나서 기분이 좋아서 일부러 크게 움직이나 봐. 평소엔 강한서가 불러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차미주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엄마랑 제일 친한 친구인데.”말하며 슬며시 한현진의 배를 어루만진 차미주가 속삭이듯 말했다. “좋은 기운 받아야지.”주스를 가지고 다가오던 한성우가 물었다. “무슨 좋은 기운을 받아?”움찔한 차미주는 찰싹, 손바닥으로 한성우를 밀어냈다. “말할 때 이렇게 바짝 붙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해. 얼마나 놀라는지 알아?”한성우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바짝 붙은 것도 아닌데.”차미주가 노려보자 한성우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알았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용서해줘.”한성우의 최대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든 잘못을 빨리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한성우의 잘못이 아닌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런 점 때문에 차미주는 한성우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화가 풀린 차미주가 나지막이 한성우에게 말했다. “아기들 태동 엄청 세게 해. 정말 날 발로 차는 것 같았다니까. 남자 아이 같아.”한성우가 말했다. “잘 됐네. 남자애면 분명 강한서의 팔불출 같은 면을 꼭닮았을 거야. 우리도 노력해서 딸을 낳으면 나중에 한서 꿀 빨며 살 수 있겠어.”차미주: ...‘꿈이 야무지네.’“우리 오라버
“왜 그래요?”얼굴이 일그러진 민경하를 본 강민서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제야 생각에 잠겼던 민경하가 강민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것도 아녜요.”말하며 손을 뻗어 강민서의 옷고름을 정리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먼저 준비하고 있어요. 전 나가서 하객 분들을 맞이해야겠어요.”강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경하가 신부 대기실을 나선 후, 강민서는 손을 들어 반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조금 전의 키스를 떠올린 강민서의 볼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반지를 박스에 넣으며 민경하가 가져온 봉투를 본 강민서는 손을 뻗어 봉투를 열었다. 민경하가 도착했을 땐 현장은 이미 많은 하객들로 인해 시끌벅적해졌다. 한현진, 차미주와 한성우가 함께 앉아있었고 강한서는 강단해와 함께 하객을 맞고 있었다. 멈칫, 걸음을 멈춘 민경하가 강한서에게로 향했다. “대표님.”민경하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강한서가 그에게 오라며 손짓했다. 민경하가 강한서에게 다가가자 그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민경하를 소개했다. 전부 한주의 유명인사들이었다. 물론 민경하도 전에 강한서를 따라다니며 그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민경하는 강한서의 비서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었다. 하지만 강한서는 이번엔 민경하를 매제로 그들에게 소개했다. 민경하를 향한 강한서의 태도가 바로 한성 그룹이 이번 결혼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라 매제라고 소개하는 강한서의 모습에 강씨 가문이 민경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들도 곧 정중한 태도로 민경하를 대하기 시작했다. 민경하는 겸손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낮추지도 않은 태도로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물론 그는 강민서와의 약혼으로 잘난 척도 하지 않았기에 그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강단해는 민경하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민경하가 건네는 술잔을 보는 척도 하지 않으며 강한서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처럼 중요한 날, 형수님은 왜
‘이 멍청이.’강민서는 민경하의 눈을 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전 할머니와 오빠의 안목을 믿어요. 민경하 씨, 전 후회하지 않아요.”민경하는 심장이 쿵, 떨려왔다. 주먹을 그러쥔 민경하가 한참만에야 나지막이 대답했다. “저도 후회 안 해요.”손을 놓은 강민서는 민경하의 넥타이를 정리하며 갑자기 두서없이 입을 열었다.“저 강운 오빠 안 좋아해요.”멈칫하며 네, 라고 대답한 민경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일부러 민경하에게 들려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주강운을 포기한 후, 강민서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강민서에게 주강운은 오빠의 친구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강한서는 늘 강민서를 데리고 다녔고 주강운 역시 강한서와 마찬가지로 항상 그녀를 챙겨주었다. 그때의 강민서는 어린 마음에 오빠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아 스스럼없이 주강운을 대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강민서는 강한서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러니 당연히 강한서와의 만남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주강운과도 자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주강운이 연애를 시작했고 간민혜를 대하는 주강운을 보며 강민서는 서서히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그때부터, 강민서는 주강운에게 오빠 이상의 것을 바랐던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주강운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간민혜를 향한 주강운의 그런 마음을 좋아한 것일 뿐이었다. 구치소에서 석방되어 나온 후에도 주강운은 단 한 번도 강민서를 보러오지 않았다. 그때, 강민서는 주강운을 향한 모든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한성 그룹 막내딸이라는 신분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굳이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그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먼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다른 사람의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자기 자신조차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멸시를 받는
민경하: ?‘그게 중요한 거야?’“민서 씨도 간민혜 씨를 알아요?”“강운 오빠 전 여자친구예요. 주변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는데 내가 왜 몰라?”중얼거리던 강민서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궁금증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일부러 닮은 여자를 만나는 거예요?”민경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민서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오빠가 왜 계속 날 강운 오빠를 가까이하지 말라며 말렸는지 알 것 같네.”주강운은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최면으로 기억을 봉인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했다. 최면효과가 사라지면 그는 또 다시 자신이 잊지 못한 전 여자친구를 그리워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마음으로는 새로운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한서가 주강운과 강민서의 만남을 반대했던 건 주강운이 언젠가 기억을 회복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든지 주씨 가문을 도와 나쁜 사람이 되길 자처해 간민혜에 관한 모든 것을 주강운에게 숨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이 진흙탕 같은 그 집안에 발을 들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강한서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주강운이 강민서를 이성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설사 그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도 언제가 간민혜를 다시 기억하게 되면 강민서의 결혼 생활은 굳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비교에 약한 동물이었다. 특히 비교의 대상이 죽은 사람이라면 그건 치명적이기도 했다. 아무도 이미 죽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생각에 잠긴 강민서의 모습에 민경하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주 변호사님 자리를 가까운 곳으로 옮길까요? 그럼 더 자세히 볼 수 있잖아요.”강민서: ?강민서는 신기한 눈빛으로 민경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바보. 설마 질투하는 거예요?”민경하가 얼른 부인했다. “아뇨. 절대요. 그럴 리가요.”강민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말투에서 질투가 뚝뚝 떨어지는데 아니긴 뭐가 아냐.’‘비서는 고용주를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 강민서의 목을 보는 민경하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어디까지 했었죠?”“네?”뜬금없는 한 마디에 강민서는 어리둥절해졌다. 민경하가 나지막이 물었다. “우리 연애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고요.”그제야 민경하의 말을 이해한 강민서가 얼굴을 붉혔다. “실장님은 기억이 없어서 저한테 묻는 거예요? 전 그런 거 기억 안 해요.”민경하가 말했다. “손도 잡았고, 포옹도 했고.”강민서가 민경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포옹을 했어요? 손 다섯 번 잡은 게 전부고만.”민경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걸 헤고 있었어요?”강민서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민경하를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제가 기억력이 좋아서 그래요. 누구처럼 포옹한 적도 없는데 했다고는 안 하거든요.”민경하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에 밤낚시 갔을 때, 잠이 든 민서 씨를 안고 제가 텐트로 돌아간 거예요.”강민서: ...강민서도 그날 일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술을 마셨던 탓에 어떻게 잠이 든 건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니 이미 텐트 안이었고 민경하는 텐트 밖의 의자에 기대 앉아 자고 있었다. ‘내가 텐트로 들어가 잠이 든 줄 알았는데.’‘그때 안아준 거였구나. 술을 마셔서 추태를 부리진 않았나 모르겠네.’후회하고 있는 강민서를 향해 민경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키스도 안 하고 약혼하는 건, 좀 그런 거 아닌가?”강민서: ?그녀는 빨갛게 물든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강민서의 턱을 어루만지던 민경하가 강민서의 의자를 돌리며 그녀가 자신과 마주볼 수 있도록 했다. 시선을 내려 강민서와 시선을 마주한 민경하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민서 씨, 키스하고 싶어요.”강민서의 귓불은 툭, 하고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피를 쏟아낼 것처럼 빨개졌다. “뭐, 뭐... 술을 잘못 마신 거... 읍...
“그래요.”대답한 강민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민경하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사진을 찍은 민경하는 휴대폰을 강민서에게 건넸다. “이 사진 어때요? 괜찮으면 이거로 보낼게요.”휴대폰을 건네받은 강민서가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을 잔뜩 찍은 민경하가 두 장만을 남긴 채 강민서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진 속 강민서의 손은 길고 가늘어 액세서리의 손모델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예쁘잖아.’민경하는 그 순간 한현진에게 사진을 찍어주던 강한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강한서가 찍은 사진은 10장에서 3장을 겨우 남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강한서와 비교하면 민경하는 완벽한 남자친구였다. 그는 한 번도 강민서를 못생기게 찍어준 적이 없었다. ‘공부만 한 줄 알았더니 이런 것도 잘 하네.’“마음에 안 들어요?”민경하가 나지막이 물었다. 생각에 잠겼던 강민서가 빨갛게 달아오른 귓불을 한 채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내요.”“네.”민경하는 곧 사진을 고윤에게 전송했다. 고윤은 불안함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민서가 마음에 든대?]민경하가 문자를 작성했다. [네. 너무 마음에 든대요. 엄마 안목이 좋다고 하던데요?]고윤: [그렇다니 다행이네. 디자인이 촌스러워서 싫다고 하면 어쩌나, 했어.]민경하가 강민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금반지는 껴본 적이 없는 듯, 강민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집중한 그녀의 눈빛에는 뭔가를 탐구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 어쩐지 민경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 민경하가 답장했다. [좋아해요. 금반지라 모양도 쉽게 변하고 스크래치라도 날까봐 저더러 잘 보관해두래요. 중요한 날 낄 거라고.][그럼 조금 이따 약혼식에선 반지 안 해? 약혼식인데 반지는 해야지.]민경하가 답장했다. [하죠. 저희가 준비한 반지로 할 거예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고윤이 말을 이었다. [요즘 여자애들은 결혼식엔 다이아 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