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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도망자들 (The Fugitives)]

Author: Doon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2-20 08:05:22

“...누구십니까?”

​진우가 본능적으로 노트북 화면을 덮으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서늘한 금속음이었다.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거칠게 휴게실 안으로 밀고 들어왔고, 그들 중 가장 체격이 큰 사내가 진우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민호 씨의 유품 중 오동나무 궤짝이 있을 텐데. 국가 보안 물품이다. 순순히 넘겨.”

​그의 억양은 매끄러웠지만 끝이 미세하게 딱딱했다. 재일교포거나, 혹은 철저히 훈련된 가디언즈의 요원이 분명했다. 진우는 등 뒤로 서윤을 밀쳐내며 궤짝을 발로 끌어당겼다.

​“보안 물품? 여긴 삼촌 빈소야! 당신들 정체가 뭐야!”

​“기자님, 정직 중이라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인데. 이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냐.”

​사내의 손이 궤짝 손잡이에 닿으려는 찰나, 서윤이 옆에 있던 뜨거운 찻물을 사내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악!”

​비명과 함께 사내의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 진우가 노트북 가방과 궤짝을 낚아챘다.

​“서윤 씨, 뛰어!”

​장례식장 복도는 이미 가디언즈의 다른 요원들이 봉쇄하고 있었다. 진우는 서윤의 손을 잡고 비상구 대신 주방 연결 통로로 몸을 날렸다. 뒤에서 구둣발 소리가 거칠게 따라붙었다.

​“잡아! 궤짝이 우선이다!”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화물 엘리베이터에 간신히 올라탔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사내들의 흉흉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낡은 SUV 키를 눌렀다.

​“서윤 씨, 안전벨트 꽉 매요!”

​끼이익—! 타이어 타는 냄새와 함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백미러에는 검은 세단 두 대가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는 것이 보였다. 서울 도심의 밤거리가 거대한 추격전의 무대로 변했다.

​“진우 씨, 저 사람들... 정말 가디언즈 맞죠? 삼촌이 말한 그 그림자들?”

​서윤은 품에 안은 은 거울을 꼭 쥐었다. 거울의 날카로운 파편이 손바닥을 찔렀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맞아요. 츠바시 총리가 죽자마자 한국까지 날아온 걸 보면, 이 궤짝 안에 든 게 그놈들에겐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는 증거예요.”

​진우는 현란한 핸들 조작으로 좁은 골목길을 파고들었다. 기자 시절 잠행 취재로 익힌 인사동 지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추격하던 세단들이 좁은 골목 어귀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진우는 라이트를 끄고 익숙한 한옥 뒷마당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그곳은 민호의 작업실 뒤편, 오래된 창고와 연결된 비밀 통로였다.

​인사동, 민호의 지하 작업실.

​다시 돌아온 작업실은 주인 잃은 고요함 속에 잠겨 있었다. 진우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윤 역시 다리가 풀린 듯 궤짝을 내려놓고 숨을 헐떡였다.

​“여긴... 아직 모를 거예요. 삼촌이 생전에 이중으로 계약해둔 공간이라 장부에도 안 나오거든요.”

​서윤이 떨리는 손으로 작업실의 구식 스탠드를 켰다. 노란 불빛 아래, 아까 제대로 보지 못한 칩의 폴더들이 다시 나타났다. 진우는 노트북을 켜고 아까 중단되었던 음성 파일을 다시 재생했다.

​이번에는 2005년이 아닌, 2006년의 기록이었다. 아키라가 일본으로 돌아간 지 1년 뒤, 츠바시 유키로의 '개조'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의 음성.

​“...민호 씨, 오늘은 내 목소리를 죽이는 수술을 했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낮은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내일부턴 가짜 고음으로 일본 국민들을 선동해야 하겠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내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내 영혼은 더 깊은 지옥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걸.”

​지직거리는 노이즈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고통으로 젖어 있었다.

​“성대 수술까지 강요당한 거군요... 가문을 위해서.”

​서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진우가 폴더 깊숙한 곳에서 'Plan-G'라는 이름의 암호화된 문서를 발견했다. 파일을 열자, 소름 끼치는 도표와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가디언즈가 일본 정계를 장악하기 위해 아키라를 어떻게 '여성 총리'로 기획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불법 수술과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는지를 기록한 **'인간 개조 백서'**였다.

​“이건 특종 수준이 아냐... 국가 간의 전쟁감이라고.”

​진우가 경악하며 문서를 훑어 내리던 중, 작업실 천장에서 툭, 하고 작은 흙먼지가 떨어졌다.

​스윽, 스윽.

​지하실 천장 위, 누군가 작업실 안을 살피듯 조심스럽게 걷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디언즈가 벌써 이곳을 찾아낸 것일까?

​서윤과 진우는 숨을 죽이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진우는 작업대 위에 놓인 묵직한 조각칼을 집어 들었다. 긴장감이 극도로 치닫는 순간, 지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똑, 똑.

​일정한 박자. 민호가 생전에 서윤과 진우에게만 알려주었던, **'비밀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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