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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름 없는 조력자 (The Faceless Ally)]

Author: Doon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2-20 08:30:06

지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서윤은 숨을 멈춘 채 진우의 옷소매를 꽉 쥐었다. 진우는 조각칼을 고쳐 잡으며 문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똑, 똑똑, 똑.

​다시 한번 들려오는 신호. 삼촌 민호가 살아생전, 가장 위험한 순간에만 쓰라며 일러주었던 그 박자가 틀림없었다. 진우가 조심스럽게 문잠금장치를 풀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지하실 안으로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한 사내가 스며들듯 들어왔다.

​짙은 회색 코트에 눌러쓴 모자. 사내는 방 안의 서윤과 진우를 훑어보더니 모자를 벗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의 사내였다.

​“...사토미 상?”

​서윤이 기억을 더듬어 이름을 내뱉었다. 그는 츠바시 유키 총리의 최측근 비서이자, 민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유일하게 신뢰했던 인물이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가디언즈의 미행을 떼어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군요.”

​사토미는 짧은 한국어로 답하며 지하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의 옷소매에는 옅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일본에서 츠바시가 피격당한 직후, 그는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사토미 씨, 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총리님은... 정말로...”

​진우의 물음에 사토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품 안에서 피에 젖은 하얀 손수건에 싸인 물건을 꺼내 작업대 위에 놓았다. 그것은 부도칸의 대리석 바닥을 굴렀던, 츠바시의 은 실반지였다.

​“각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이 연극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이 반지는 민호 씨에게 전해달라고 하셨던 마지막 신호입니다. 하지만 민호 씨마저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이 짐은 당신들의 몫이 되었군요.”

​사토미의 눈에 회한이 서렸다. 그는 진우의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Plan-G' 문서를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그 문서에 담긴 건 가디언즈의 과거일 뿐입니다.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건, 각하가 죽기 직전 전 세계에 송출하려 했던 ‘사쿠라의 유언’ 풀버전이죠.”

​사토미의 말에 따르면, 츠바시가 피격당하던 순간 끊겼던 영상의 뒷부분이 존재했다. 가디언즈가 방송국을 장악해 삭제해버린 3분 남짓의 영상. 그 안에는 가디언즈의 실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일본 정부가 어떻게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왔는지에 대한 결정적 폭로가 담겨 있었다.

​“그 영상이 어디 있죠?”

​진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사토미는 서윤이 들고 있던 은 거울을 가리켰다.

​“민호 씨는 천재적인 복원가였습니다. 그는 거울의 파편 하나하나에 데이터의 조각을 심어두었죠. 칩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거울의 모든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져야만, 그 영상의 암호가 풀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서윤은 거울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개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손거울. 그중 몇몇 조각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나머지 조각은요? 삼촌이 다 가지고 있지 않았나요?”

​“가디언즈가 눈치챌 것을 대비해 민호 씨가 흩어놓았습니다. 하나는 이곳 인사동 작업실 어딘가에,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21년 전 아키라와 민호 씨가 처음 만났던 그 장소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때, 작업실 밖에서 타이어가 지면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사토미가 재빨리 스탠드 불빛을 껐다.

​“놈들이 생각보다 빠르군요. 진우 씨, 서윤 씨. 지금부터는 시간이 곧 생명입니다. 나는 놈들의 시선을 끌 테니, 당신들은 마지막 조각을 찾아야 합니다.”

​사토미는 다시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그는 문을 나서기 전, 서윤의 손을 꼭 잡았다.

​“서윤 씨, 당신은 작가라고 들었습니다. 팩트는 진우 씨가 밝히겠지만, 그 팩트에 영혼을 불어넣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당신의 몫입니다. 아키라 각하가 왜 여자가 되어야 했는지, 그 슬픔을 세상에 알려주십시오.”

​사토미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작업실 건너편 골목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서윤 씨, 정신 차려요!”

​진우가 서윤의 어깨를 흔들었다.

​“삼촌이 숨겨둔 조각부터 찾아야 해요. 이 작업실 안, 복원가인 삼촌만 알 수 있는 장소... 거울과 관련된 곳이 어디죠?”

​서윤은 눈을 감고 삼촌과의 기억을 더듬었다. 삼촌은 늘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숨기는 법이다.’ 서윤의 시선이 작업실 정중앙, 민호가 평생을 앉아 있던 낡은 작업대 위의 **‘세면용 커다란 벽거울’**에 멈췄다.

​진우와 서윤은 동시에 벽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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