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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사쿠라의 성벽: Capítulo 1 - Capítulo 10

34 Capítulos

[프롤로그: 성벽의 낙화(落花)]

​2026년 2월, 도쿄 부도칸.​만 이천 명의 열기가 돔 경기장의 천장을 무너뜨릴 듯 진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일장기와 츠바시 유키의 사진을 흔들며 광기에 가까운 환호를 내질렀다. 전후 일본 역사상 이런 지지를 받은 정치인은 없었다.​"츠바시! 츠바시! 츠바시!"​파도처럼 밀려오는 연호 소리 속에 츠바시 유키는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조명은 그녀를 위해 설계된 듯 완벽하게 쏟아졌고, 그녀가 입은 백색 실크 정장은 눈부신 반사광을 내뿜으며 그녀를 여신처럼 보이게 했다.​하지만 그 화려한 정장 안쪽에서, 츠바시는 질식하고 있었다.​가슴을 짓누르는 네 겹의 압박 붕대. 남자의 골격을 지우기 위해 2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감아온 그 빳빳한 면직물이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를 옥죄었다. 그녀는 입가에 경련이 일지 않도록 우아한 미소를 유지하며 생각했다.​아키라. 네가 죽어야 유키가 산다.​할아버지가, 그리고 가디언즈가 주입했던 그 지독한 세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처음으로 그 명령에 거역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츠바시는 단상 위에 놓인 화려한 금박 원고를 밀어냈다. 가디언즈가 설계한 ‘거짓된 평화’와 ‘군사 대국화’의 서막이 담긴 연설문이었다. 대신 그녀는 정장 안쪽 포켓에서 낡고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21년 전, 인사동의 그 눅눅한 지하실에서 민호와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이 적힌 메모였다.​그녀가 입을 떼려는 찰나, VIP석 중앙에 앉은 야마구치와 눈이 마주쳤다.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창조하고 조종해온 창조주. 그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한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야마구치는 무심한 손짓으로 곁에 선 비서에게 무전기를 내밀었다.​그것은 ‘집행’의 신호였다.​"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츠바시의 목소리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오늘 저는, 츠바시 가문이 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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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마지막 복원 의뢰 (The Last Commission)]

인사동의 밤은 낮보다 깊고 무거웠다. 츠바시 유키 총리의 암살 속보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 그 소식을 라디오로 전해 들었던 노(老) 복원가 이민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사인(死因)은 노환에 따른 심정지였으나,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마치 누군가와의 약속을 다 지키고 떠난 사람처럼, 그의 표정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삼촌, 대체 뭘 남기고 간 거예요." ​서윤은 상복 소매로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작업실에서 가져온 오동나무 궤짝을 내려다보았다. 민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조카인 서윤을 딸처럼 아꼈다. 소설가를 꿈꾸며 문장 사이를 헤매던 서윤에게, 민호의 작업실은 언제나 현실의 풍파를 피해 숨어들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였다. ​궤짝 위에는 서윤의 이름 옆에 낯선 이름 하나가 더 적혀 있었다. ​[진우] ​그 이름의 주인공은 장례식 사흘째 되던 날 밤, 헝클어진 머리와 핏발 선 눈을 한 채 빈소로 뛰어 들어왔다. ​"이민호 선생님은요?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진우는 민호의 영정 사진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는 촉망받는 사회부 기자였으나, 최근 가디언즈와 연계된 국내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다 정직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진우의 아버지는 과거 민호의 절친한 벗이자 언론인이었으나,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진우에게 민호는 아버지이자 스승, 그리고 유일한 정보원이었다. ​"진우 씨 되세요? 삼촌이... 이 궤짝을 진우 씨와 저에게 남기셨어요." ​서윤의 말에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한 명은 삼촌의 죽음을 슬퍼하는 작가였고, 다른 한 명은 진실에 목마른 기자였다. ​두 사람은 빈소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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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21년 전의 지하실 (The Basement of 2005)]

​칩 속에 담긴 2005년의 기록이 열리자, 화면 가득 습한 여름의 냄새가 베어 나오는 듯했다. 서윤과 진우는 홀린 듯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록은 21년 전, 서울 인사동의 한 구석진 골목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2005년 8월, 서울 인사동.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잦았다. 낡은 한옥들이 밀집한 골목 끝자락, ‘이민호 복원소’라는 초라한 간판이 달린 지하 작업실은 빗소리와 섞인 흙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당시 서른 초반이었던 민호는 작업대 위에 놓인 조선 시대 백자 파편을 맞추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낡은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며 낯선 발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낮고 맑은 미성. 민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비에 젖은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짙은 남색 코트를 입은 청년은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품 안에서 무언가를 소중하게 꺼내 놓았다. ​비단보자기에 싸인 그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난 은 손거울이었다. ​“...고칠 수 있겠습니까?” ​청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민호는 핀셋을 내려놓고 청년의 얼굴을 살폈다. 창백한 피부, 서늘하면서도 깊은 눈매. 그리고 젖은 셔츠 깃 사이로 살짝 엿보이는, 목 밑까지 빳빳하게 감긴 흰 면 붕대. 민호는 직감했다. 이 청년이 가져온 것은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부서진 자신의 영혼이라는 것을. ​“복원은 가능합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파편이 너무 잘게 부서졌군요.” ​“상관없습니다. 다만...” ​청년이 말을 멈추고 민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완벽하게 새것처럼 고치지는 말아 주십시오. 거울이 깨졌던 흔적, 그 금이 간 자국들이 그대로 남았으면 합니다. 내가 얼마나 부서졌었는지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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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도망자들 (The Fugitives)]

“...누구십니까?” ​진우가 본능적으로 노트북 화면을 덮으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서늘한 금속음이었다.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거칠게 휴게실 안으로 밀고 들어왔고, 그들 중 가장 체격이 큰 사내가 진우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민호 씨의 유품 중 오동나무 궤짝이 있을 텐데. 국가 보안 물품이다. 순순히 넘겨.” ​그의 억양은 매끄러웠지만 끝이 미세하게 딱딱했다. 재일교포거나, 혹은 철저히 훈련된 가디언즈의 요원이 분명했다. 진우는 등 뒤로 서윤을 밀쳐내며 궤짝을 발로 끌어당겼다. ​“보안 물품? 여긴 삼촌 빈소야! 당신들 정체가 뭐야!” ​“기자님, 정직 중이라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인데. 이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냐.” ​사내의 손이 궤짝 손잡이에 닿으려는 찰나, 서윤이 옆에 있던 뜨거운 찻물을 사내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악!” ​비명과 함께 사내의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 진우가 노트북 가방과 궤짝을 낚아챘다. ​“서윤 씨, 뛰어!” ​장례식장 복도는 이미 가디언즈의 다른 요원들이 봉쇄하고 있었다. 진우는 서윤의 손을 잡고 비상구 대신 주방 연결 통로로 몸을 날렸다. 뒤에서 구둣발 소리가 거칠게 따라붙었다. ​“잡아! 궤짝이 우선이다!” ​두 사람은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화물 엘리베이터에 간신히 올라탔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사내들의 흉흉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낡은 SUV 키를 눌렀다. ​“서윤 씨, 안전벨트 꽉 매요!” ​끼이익—! 타이어 타는 냄새와 함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백미러에는 검은 세단 두 대가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는 것이 보였다. 서울 도심의 밤거리가 거대한 추격전의 무대로 변했다. ​“진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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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름 없는 조력자 (The Faceless Ally)]

지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서윤은 숨을 멈춘 채 진우의 옷소매를 꽉 쥐었다. 진우는 조각칼을 고쳐 잡으며 문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똑, 똑똑, 똑. ​다시 한번 들려오는 신호. 삼촌 민호가 살아생전, 가장 위험한 순간에만 쓰라며 일러주었던 그 박자가 틀림없었다. 진우가 조심스럽게 문잠금장치를 풀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지하실 안으로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한 사내가 스며들듯 들어왔다. ​짙은 회색 코트에 눌러쓴 모자. 사내는 방 안의 서윤과 진우를 훑어보더니 모자를 벗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의 사내였다. ​“...사토미 상?” ​서윤이 기억을 더듬어 이름을 내뱉었다. 그는 츠바시 유키 총리의 최측근 비서이자, 민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유일하게 신뢰했던 인물이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가디언즈의 미행을 떼어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군요.” ​사토미는 짧은 한국어로 답하며 지하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의 옷소매에는 옅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일본에서 츠바시가 피격당한 직후, 그는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사토미 씨, 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총리님은... 정말로...” ​진우의 물음에 사토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품 안에서 피에 젖은 하얀 손수건에 싸인 물건을 꺼내 작업대 위에 놓았다. 그것은 부도칸의 대리석 바닥을 굴렀던, 츠바시의 은 실반지였다. ​“각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이 연극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이 반지는 민호 씨에게 전해달라고 하셨던 마지막 신호입니다. 하지만 민호 씨마저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이 짐은 당신들의 몫이 되었군요.” ​사토미의 눈에 회한이 서렸다. 그는 진우의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Plan-G' 문서를 보더니 씁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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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거울 속의 거울 (Mirror within a Mirror)]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사토미가 유도한 총성이 인사동의 정적을 찢어발겼다. 진우는 작업대 위의 망치를 집어 들었지만, 서윤이 그의 팔을 급히 붙잡았다.​"잠깐만요, 진우 씨. 삼촌은 무언가를 부수면서 숨길 사람이 아니에요."​서윤의 눈은 벽거울의 테두리를 훑고 있었다. 낡은 참나무 프레임 구석, 세월의 때가 탄 모서리에 아주 작은 홈이 보였다. 서윤은 제사 때 쓰던 얇은 대나무 꼬챙이를 그 틈에 밀어 넣었다.​딸깍.​기분 좋은 기계음과 함께 거울 면이 경첩을 축으로 부드럽게 열렸다. 그것은 거울이 아니라, 벽면 속에 매립된 아주 작은 비밀 보관함이었다. 진우가 손을 뻗어 안쪽에서 신문지에 싸인 무언가를 꺼냈다.​신문지를 펼치자 반짝이는 유리 조각 하나가 나타났다. 손거울의 왼쪽 하단부를 완벽하게 채울 수 있는 날카로운 파편이었다.​"찾았어요! 이게 두 번째 조각이에요."​진우가 서둘러 궤짝에서 손거울을 꺼내 파편을 맞춰보았다. 놀랍게도 파편이 자석처럼 착 달라붙는 순간, 거울 뒷면에 새겨진 櫻(사쿠라) 문양의 획 하나에 푸른 빛이 돌기 시작했다. 거울 자체가 하나의 정교한 회로판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세상에... 삼촌은 복원 기술에 암호학까지 결합한 거였어."​감탄도 잠시, 작업실 천장의 환풍구 너머로 타는 냄새가 스며들었다. 가디언즈가 사토미를 놓치고 작업실 위치를 특정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정공법 대신 지하실에 가스를 주입하거나 불을 지를 기세였다.​"진우 씨, 여기서 나가야 해요. 뒷마당 통로는 이미 막혔을 거예요."​진우는 주위를 둘러보다 민호가 생전에 아꼈던 육중한 가구인 '약장'을 바라보았다. 민호는 늘 약장 뒤편의 벽지가 헐거워질 때마다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었다.​"서윤 씨, 저 약장 좀 같이 밀어줘요!"​두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약장을 옆으로 밀어내자,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크기의 비밀 배수구가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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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진실의 인양 (The Recovery of Truth)]

서치라이트의 강렬한 백색광이 폐허가 된 정원을 대낮처럼 밝혔다. 눈이 멀 것 같은 섬광 속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야마구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구두가 마른 나뭇가지를 짓밟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들렸다. ​“그 거울, 참 오래도 우리를 괴롭히는군.” ​야마구치의 목소리는 감정이 메마른 기계음 같았다. 그의 뒤로 무장한 요원들이 총구를 겨누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진우는 서윤을 등 뒤로 숨기며 거울을 가슴팍에 바짝 끌어안았다. ​“이 거울 안에 든 게 그렇게 무서웠나 보지? 국가 하나를 통째로 속인 기록치고는 참 작고 초라하잖아.” ​진우의 도발에 야마구치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렸다. ​“진실은 힘이 없다. 그것을 믿어줄 대중이 없다면 말이지. 그 거울을 넘겨라. 그러면 너희 둘의 목숨은 보장해주지. 이민호가 죽기 전까지 누렸던 그 평온한 노후처럼 말이야.” ​“삼촌의 노후가 평온했다고? 당신들이 감시하고 숨통을 조였던 그 시간이?” ​서윤이 진우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그녀의 손엔 어느새 거울 조각을 찾을 때 썼던 날카로운 대나무 꼬챙이가 쥐어져 있었다. ​“삼촌은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았어! 당신들이 망가뜨린 한 남자의 인생을 붙잡고 매일 밤을 지새웠다고!” ​야마구치는 비웃듯 손가락을 튕겼다. 요원들이 방탄 방패를 앞세워 전진했다. 진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여기서 잡히면 모든 게 끝이었다. 그는 거울 뒷면의 櫻(사쿠라) 문양 중 가장 밝게 빛나는 중앙 부분을 강하게 눌렀다. ​치지직—. ​허공에 투사되던 홀로그램 영상이 커지며 야마구치와 요원들 사이의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단순히 영상이 아니라, 사토미가 심어둔 ‘강제 실시간 스트리밍’ 장치였다. 거울이 완성되는 순간, 사전에 지정된 전 세계 주요 언론사와 SNS 채널로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는 츠바시 가문의 아들, ‘아키라’입니다.] ​영상 속 츠바시(아키라)의 목소리가 정원을 울렸다. 야마구치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가디언즈는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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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벚꽃이 지는 시간 (The Time When Cherry Blossoms Fall)]

정원에 내려앉은 정적은 무거웠다. 야마구치의 어깨에서 흐른 피가 낙엽 위로 검게 번졌고, 그를 포위한 경찰들의 총구는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야마구치는 무너진 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허공에 흩어진 홀로그램의 잔상을 노려보았다.​“이겼다고 생각하나? 진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 같나!”​야마구치가 피 섞인 침을 내뱉으며 소리쳤다.​“대중은 곧 잊을 거다. 그들에게 총리는 여신이었고, 이제는 그저 ‘기괴한 사기극’의 주인공일 뿐이지. 너희가 한 건 복원이 아니라, 한 시대를 쓰레기통에 처넣은 것뿐이야!”​“아니.”​서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당신은 사람들의 기억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마음은 통제할 수 없어. 아키라 씨가 남긴 건 ‘사건’이 아니라 ‘삶’이니까. 당신이 지우려 했던 한 남자의 21년은 이제 우리가 쓴 문장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될 거야.”​그 순간, 진우의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진동했다. 일본 부도칸 현장, 그리고 도쿄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일장기가 아닌, 하얀 종이에 손으로 그린 벚꽃 문양이 들려 있었다.​영상 속 아키라의 진심이 성벽 너머 사람들의 가슴에 가 닿은 것이었다.​“야마구치, 당신의 계산이 틀렸어. 사람들은 속은 것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죽어간 한 인간에게 미안해하고 있어.”​진우가 스마트폰 화면을 야마구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아키라’, 그리고 ‘사쿠라의 성벽’이었다.​“데려가.”​사토미의 차가운 명령과 함께 요원들이 야마구치를 끌고 갔다. 권력의 정점에서 일본을 주무르던 거물은 그렇게 초라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사태가 수습된 후, 사토미는 서윤과 진우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아키라가 암살당하기 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사토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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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죽은 자의 역습 (The Counterattack of the Dead)]

아키라의 폭로 영상이 전 세계를 뒤흔든 지 한 달. 세상은 바뀌었을까?​겉보기엔 그랬다. 일본 내각은 총사퇴했고, 가디언즈의 핵심 인물 수십 명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서윤과 진우는 알고 있었다. 거대한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는 언제나 날카로운 파편이 남는다는 것을.​서울, 서윤의 새로운 집.​서윤은 창밖의 눈을 보며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소설 《사쿠라의 성벽》은 출간되자마자 한일 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안함이 서려 있었다.​띠링.​진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서윤 씨, 지금 당장 TV 켜봐요. 채널 7번.]​서윤이 리모컨을 누르자, 긴급 속보 자막이 화면을 채웠다.​[속보: 구치소 이송 중이던 가디언즈 수장 야마구치, 의문의 폭발 사고로 사망]​“사망...?”​서윤의 손에서 리모컨이 떨어졌다. 화면 속에는 불타버린 호송 차량의 잔해가 흉측하게 뒤틀려 있었다. 경찰은 차량 결함에 의한 사고라고 발표하고 있었지만, 서윤은 직감했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꼬리 자르기’**였다. 야마구치라는 거대한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린, 더 거대한 몸통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그때, 서윤의 집 벨이 울렸다.​인터폰 화면에는 낯선 택배 기사가 서 있었다. 서윤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기사는 말없이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네고는 서둘러 복도를 빠져나갔다.​상자 안에는 익숙한 물건이 들어있었다.​피 묻은 압박 붕대 한 조각, 그리고 그 위에 날카로운 칼로 새겨진 문장.​[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진우 씨!”​서윤이 다급하게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음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진우는 최근 가디언즈의 자금이 한국 내 모 대기업인 '솔브레인(Solbrain)'과 연계되어 있다는 단서를 잡고 취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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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큐브의 그림자 (Shadow of the CUBE)]

서윤은 빗길을 뚫고 인사동으로 달렸다. 밤이 깊은 인사동 골목은 평소보다 훨씬 어둡고 서늘했다. 삼촌의 작업실은 이미 경찰의 통제선이 처져 있었지만, 그녀는 담장을 넘어 뒷마당 비밀 배수구로 몸을 밀어 넣었다.​“북극성이 길을 잃을 때, 사쿠라는 다시 지하실로 돌아간다.”​서윤은 작업실 구석, 낡은 제도판 밑바닥을 더듬었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 고리가 걸렸다. 힘껏 잡아당기자, 바닥 타일 한 장이 들리며 작은 지하 금고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삼촌이 남긴 두 번째 칩과 함께, 낡은 가죽 지갑이 들어 있었다.​지갑 속에는 사진 한 장과 메모가 적혀 있었다.[솔브레인(Solbrain) 62번 창고. 진우가 거기 있다.]​“삼촌... 여기까지 예상한 거예요?”​서윤은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칩을 자신의 스마트폰에 연결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츠바시 가문의 가계도였다. 그 맨 끝자리, 공식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 하나가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츠바시 레이: 프로젝트 ‘큐브’의 프로토타입]​아키라가 ‘대외용’ 꼭두각시였다면, 레이는 가디언즈의 뒤에서 자금과 정보를 주무르는 ‘실전용’ 병기였다. 서윤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작업대 밑에 숨겨진 삼촌의 호신용 전기 충격기와 호각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인천항, 솔브레인 제62번 창고.​비린내 섞인 바닷바람이 컨테이너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진우는 컨테이너 내부, 의자에 결박된 채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는 은테 안경을 쓴 레이가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기자님, 당신이 건드린 건 단순한 비자금 장부가 아니야. 일본과 한국을 잇는 거대 자본의 ‘혈맥’이지.”​레이가 진우의 턱을 들어 올렸다.​“야마구치는 구시대의 유물이었어. 그는 명분에 집착하다 망했지. 하지만 우리는 달라. ‘큐브’는 국경도, 성별도, 명분도 따지지 않아. 오직 효율뿐이지.”​“아키라가... 불쌍하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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